The Thinker
(1903-1904)
Musée Rodin - Paris
Sculpture - bronze
이 유명한 동상은 1880년 로댕이 파리의 새로운 장식 예술 박물관을 위해 디자인한
'지옥의 문' 위에 70cm의 더 작은 높이로 고안되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시인'으로 불릴 예정이었다
단테의 '신곡(神曲)'을 주제로 한 '지옥의 문' 가운데 시인을 등장시키려고 하는 로댕의 시도가
여러 인간의 고뇌를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에 잠긴
영원히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으이 강렬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1888년에 독립된 작품으로서 발표하여 1904년 살롱에 출품하고부터 유명해졌다
살롱 출품 후 파리의 판테온에 놓아두었으나(1906-1922) 그 후 프랑스 로댕 미술관의 정원으로 옮겨졌다
포즈는 미켈란젤로의 '로렌초 데 메디치(1526-31)'의 대리석 동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1888년에 전시된 후 인기를 얻었고 작가는 1904년에 원본의 기념비적인 복사본을 만들었다
그 인기로 인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캐스트가 있으며
그 중 로댕의 생애 동안 적어도 21개가 캐스팅되었다
The Thinker
1880-1881
Bronze
우리는 고독하다
우리는 착각하고
마치 그렇게 고독하지 않은 듯이 행동한다
그것이 전부이다
Wir sind einsam
Man kann sich darüber täuschen und tun
als wäre es nicht so
Das ist alles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Briefe an einen jungen Dichter)
라이너 마리아 릴케 (Rilke, Rainer Maria, 1875-1926, Austrian poet and novelist)
The thinker in 'Gates of Hell'
(1880-1881)
Musée Rodin - Paris
Sculpture - bronze
카미유 클로델은 그의 연인이다. 로댕의 유명한 조각인 '지옥의 문'은 로댕이 1880년에 주문받았으며,
평생 작업한 작품이었다. 1881-1882년 자신의 제자이자 동업작가인 '카미유 클로델' (작가 콜로델의 누이동생)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클로델은 16년 뒤 그와의 결별 후 정신이상자가 되었지만
로댕은 '칼레의 시민들', '빅토르 위고', '발자크' 같은 중요한 여러 작품의 주문을 받는다.
1900년에 로댕은 조각가로서 대성공을 거둔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1905년 그의 비서로 활동했으며, 1908년에는 현재의 로댕 미술관인
비롱 호텔을 빌리도록 촉구하였다.
로댕은 1916년 작품과 전시물을 국가에 기증하고, 1917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켈란젤로 이후의 최대의 거장으로 예리한 사실의 기법을 구사하여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의 감정 안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약동을 표현하려 하였다.
이로써 근대 조각에 새로운 방향을 여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