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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녹색수필상 수상소감
걸어서, 걸어서 온 길
가슴속에 불씨로 살아 잔바람에도 무시로 불을 일으키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해 왔다. 누구에게, 무엇을, 왜 말하고 싶은가? 자문하면서.
‘문학은 인간의 삶을 대상으로 삼고 생활의식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백거이의 신념을 귀담으며 恥己言而過其行. 修己安人.
그런 생활의식으로 조금 늦더라도 걸어서 가자고 자신에게 말하곤 했다. 걷다보니 자연히 그늘진 곳, 작은 사람들, 자잘한 생명체들 쪽으로 사유의 촉수가 뻗치어 그들과 소통하며 더불어 걷는 길이 편안했다. 그러면서 매 해 종자처럼 거두어 놓은 것들을 모아놓고 보니 그만그만한 게 보잘것 없다. 삶에 치열하지 못했던 탓이리라.
상은 잘한 일을 칭찬하거나 칭송하기 위해 준다. 그래서 나는, 참 부끄럽다. 아마 잘 하라는 격려와 채찍이지 싶다. 그러니 잘 살고, 잘 쓰고, 글에 일치된 행위가 따라야 하는 부담이 한층 더 무겁다. 그래도 이 아름다운 부담을 업고 다시 걸어서, 가야 할 것 같다.
부족한 사람의 글을 눈여겨 보아주시고 선選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양복임 / 1948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으며 1997년 『시와산문』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가지치기』가 있고, <그루터기>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9회 녹색수필상 수상작품
가지치기 외 2편
지인에게서 빨간 손잡이의 전지가위를 선물로 받았다. 얼마 전 장례를 마친 시아버지의 유품이란다. 고인의 소지품 상자에서 전지가위만 70여 개가 발견되어 유족들에게 수수께끼를 남긴 채, 그 중 하나가 내게로 건너온 것이다.
그 전지가위가 이런저런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잡다한 생각의 갈래를 자르고 유태인 이야기가 떠오른다.
제자들과 함께 장례식에 다녀온 후에 랍비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무엇을 보았느냐?”
한 제자는 돈을, 또 한 제자는 덕을, 다른 제자는 관을 보았다고 했다.
“랍비께선 무엇을 보셨습니까?”
“나는 나의 죽음을 보았노라”고.
죽음은 생의 엄숙한 결산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항목마다 삶의 궤적이 적나라하게 들춰진다. 인생의 성적표가 될 수도 있다. 인생엔 우열이 없다지만 엄연히 등급이 매겨지게 마련이다. 또 남아있는 자들은 타인의 죽음이란 거울 앞에서 옷깃을 여미며 중간결산을 해 볼 기회를 갖는다. 오류를 수정하며 욕망의 줄기를 다듬기 위해 마음속에 가위 하나씩 품기도 할 것이다.
갈수록 가위들기가 조심스럽다. 내 시각, 내 관점에서 자르다 보면실패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몇 발짝 물러나서 사방을, 그리고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숙련된 기술을 요한다. 젊은 시절엔 이런 망설임이 있었던가. 감각이나 감성만으로 곧잘 가위질을 했던 것 같다. 그렇듯 사람과의 관계정리도 신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봄 아파트 화단의 나무들이 마구잡이로 전지를 당했다. 낮은 층의 창을 가려서였을까. 연한 이파리들이 반짝반짝 찰랑이던 나뭇가지들을 잘라낸 뭉툭뭉툭한 자리마다 흐르다 만 수액이 피딱지마냥 엉겼다. 그런 중에도 남겨진 외팔가지에 조롱조롱 꽃을 피운 애기사과나무랑 때죽나무를 바라보기가 무참했다. 전문가의 손을 빌었더라면 나무의 성질과 모양에 상처를 입히진 않았을 텐데. 생활 속에서 섣부른 판단, 서툰 손놀림으로 주변의 관계를 저처럼 망치진 않았는지.
삶은 어느 의미에선 관계짓기라는 생각을 해 본다. 부모와 자식으로, 이웃으로, 또는 자연 속의 모든 사물과 얽히고 설키며 지어가는 관계놀이. 넓게는 신과 우주와의 관계로 이어진다. 그 중에는 세포처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건물의 초석이나 기둥처럼 변함없는 관계로 남기도 한다. 모든 것들과의 원만한 관계짓기가 곧 원만한 삶이 되리라.
사람들만 그러한가. 숲을 보자. 아무데나 감겨드는 칡넝쿨도, 독야청청 소나무도, 늦은 봄까지 고집스레 잎을 달고 있는 참나무도 서로 이웃해서 자란다. 제 머리에 새들의 집 한 칸을 내어주는 미루나무와 새와의 관계는 아름다운 관계짓기다. 온갖 풀과 나무들과 짐승들이 어울리어 무질서 속의 질서를 이루며 사는 건 자연스런 상생의 관계다.
노년의 문 앞에서 전지가위가 던진 화두는, 치렁치렁한 생활을 단순하게 정리하며 살라는 재촉 같다. 그 어르신은 아마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자신을 절제하고 다스리려는 의지를 전지가위에 담지 않았을까. 많은 이들의 가슴에 참숯처럼 남으셨다는 그 분의 뜻이 가위를 통해 전해지는 듯하다. 노인이 걸리기 쉬운 병이라는 노탐老貪, 노추老醜를 면하려면 소유, 감정, 생각, 관계, 글 한 줄에까지 군더더기 없이 절차탁마해야 할 텐데.
나이 듦으로 관계의 허실을 분변分辨할 지혜가 깊어질까.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하게 갈고 닦고 잘라낼 용기가 생겨날까. 아픔을 주고 걸림이 되는 사람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애쓰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가질 수 있을까. 그 인내의 가지에서 더 단 열매를 거둘 수 있을는지.
‘뼈의 아름다움’*으로 서고 싶다. 예술작품처럼 잘 전지된 분재목을 볼 때마다 그처럼 산뜻한 절제미를 갖추고 싶다. 그러나 자는 열 번 재고 가위는 한 번 대라는 친정어머니의 부탁말씀이 잠재된 성격 탓인지, 결단에 더디다. 답답하다.
가위를 놓고 내 안의 두 마음이 접전을 치를 것 같다. 한 쪽에서 느긋한 목소리로 속닥거린다. 그냥 숲의 잡목으로 살면 어떻겠냐고. 그러자 다른 한 쪽이 완강하게 잡아끈다. 가지치기엔 지금이 가장 적기 아니냐고.
어쩌랴. 가위를 든 채 지금, 흔들리고 있다.
*심천 김용옥의 시, 「잊고사는 것」에서.
진료실 소묘
안개비 베일을 벗으며 먼 데 산들이 연록으로 부풀어오르고 있다. 군데군데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 산등성이로부터 번져 내려오는 복사꽃 일렁임에 눈이 아리다. 산야가 온통 새봄의 축제 준비로 수런거리는 철이다.
몇 날 째 코를 싸매고 병원 출입하느라 한나절씩을 뺏기다 보니, 내게 봄은 40여 리 차창 밖으로만 스쳐가나 싶다. 크달 것도 없는 얼굴 한복판에서 코 하나가 사방을 집적거리고 말썽을 부려대니 얼굴은 저절로 을씨년스런 겨울하늘 같을 수밖에. 견디기 힘든 수술도 견뎌냈을 넌지라 이만한 아픔쯤이야 못 참을까마는. 치료기간이 길어질수록 험한 병명이 머릿속에 오락가락하여 불안에 옥죄인 판이다.
길을 가다보면 모두가 멀쩡하게만 보이던데 이비인후과병원에 가서 보면 웬 고장 난 코, 귀들이 그리도 많은지. 북적이는 대기실 한 귀퉁이에 천근의 무게로 앉아있는데 아까부터 접수창구에서 가벼운 실랑이 소리가 건너온다. 슬며시 눈을 돌려보니, 서른을 갓 넘었을까 말까 한 여자가 주소를 정확히 대지 못해 난감해 하고 있다. 임실 어디에 사는데 처음 전주나들이를 했대나. 무료한 시간을 때울 겸 읽고 있던 잡지를 밀쳐놓고, 그녀의 어수룩해 보이는 몸짓에 시선을 꽂는다.
드디어 진료실에 그 촌부까지 예닐곱 명이 불려 들어갔다. 옆 옆에 앉게 되자마자 귀 아파서 왔냐고 내게 묻는다. 고개를 저으며 미소만 건네니 자못 실망한 듯 불안한 표정이다. 초조한 듯 상기된 그녀의 얼굴에서 내 어린 시절 뒷마당의 복숭아나무가 떠오른다. 긴 간짓대 끝에서 대롱이던 주근깨투성이의 검붉은 ‘각시복상’말이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녀에게서 알싸한 칙내가 난다. 말꼬리에서 귀가 좀 아프다곤 했지만 그 풋풋한 건강이 부러워 내 모습이 한층 후줄근하게 느껴진다.
차례가 되어 호명을 당한 그녀는 엉거주춤 높은 의자에 궁둥이를 반쯤 걸치고는 “저어, 아저씨, 귀가 그냥 찌끔 아픈디 보건소에서 가보라 혀서요. 살째기 혀주쇼 잉?” 병원을 무서워하는 아이처럼 겨우 귀를 내민다. “찌끔만 낫게 할까요?” 웃음 섞인 대꾸와 함께 치료의 손을 바삐 놀리는 의사. 눈을 꽉 감고 있던 그녀가 어느덧 눈빛이 게슴츠레 풀리며 자못 느긋하고 황홀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오메~ 시원한 것! 하루죙일 허라면 좋것네에~” 한다. 푸푸, 하하, 호호, 후훗, 킥킥. 참고 있던 웃음이 터지면서 갈앉았던 진료실은 갑자기 개나리 꽃밭이 되었다.
그녀의 솔직한 순박함이 무겁던 마음들에 잠시나마 봄바람을 일으켰나 보다. 집중되는 시선에 무안해하기는커녕 천진스럽게 같이 따라 웃는다. 귀를 내맡기고 한없이 앉아있고 싶어하는 그녀에게 “다른 환자도 봐 드려야죠. 중이염이 좀 심하니 며칠 다니세요.” 하자 조금 아팠다는 것도 잊은 듯 “긍게 말도 마요. 징그랍게 가렵드랑게.” 한다. 웃음을 참고 주사실로 들어가던 내가 드디어 물풍선이 터지듯 “우∼흐흐흐!” 놀란 의사의 눈길도 아랑곳없이 주사를 맞으면서도 키득키득, 종래에는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수술 후 일 년여를 몇 주일 건너 찾고있는 병원. 낫지 않는 것이 자신들의 탓인 양 서로가 미안해하다 보니, 나와 의사는 거의 말이 없었다. 서울의 시설 좋은 병원에 연결도 마다한 것은, 내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최선을 다 하기 때문이다. 의사를 신뢰할 수 있음도 큰 위안이 아닌가. 그러나 요즘 들어 자꾸 처지는 기분을 눈치 챘는지 ‘그냥 놀러온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오라 했다. 그런 그분에게 처음 보인 웃음이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너털웃음을.
그렇게 주사 맞기를 걱정하던 아낙에게 전기치료만 한다니까 깡충 뛰듯 좋아하며 “아저씨, 언지 또 오까요?” 하자, “선생님이라 하세요∼.” 간호사의 웃음기 어린 핀잔에 머쓱해 하더니, 아이만 놓고 왔으니 얼른 가야겠다며 아직 불이 켜진 채인 치료기를 던져놓고 휘익 나가버린다. 또 한 차례 웃음이 출렁인다.
거리는 가랑비가 곰실대고 있다. 회색빛 도심까지 연록이 되살아나는 듯 싱그럽다. 까짓 산성비면 어떠랴 싶어 우산 없이 걷는다. 빤질빤질 포장된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자기합리화에 급급했던 나.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것과 아니할 것을 분별하지 못 했었다. 그 아낙이 준 큰 웃음이 내면 깊은 데를 정화시켰을까. 간질이는 빗방울처럼 가슴 속에서 빙긋빙긋 웃음이 새어나온다. 비로소 내게서도 쌉쌀한 쑥내가 나는 듯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빗발처럼 산뜻한 웃음을 퍼뜨렸다. 저녁 밥상 앞에서 내 목소리는 한 옥타브 더 올라간다. “그렇게도 재미있는가?” 남편의 눈속에서도 웃음기가 잘잘 넘친다. 아마 하고 싶은 말은 참고 있는 성싶다. ‘누군 어떻고? 숙맥이긴 자기도 매한가지일 텐데?’ 하고.
창 밖에 봄이 만발한 중에도 봄을 맞아들이지 못한다면 그에게 봄은 무의미하다. 꽂과 신록이 있어서만 봄인 게 아니라, 나의 구각이 깨어지고 속잎이 돋아날 때 비로소 내게 봄이 있음을 새삼 느꼈다.
웃음으로 온 봄, 웃음으로 맞는다.
새우랑
그가 점점 내게서 멀어져갑니다. 나는 유기되었고 어쩌면 이미 잊힌 건지도 모릅니다. 이제 더 이상 그를 기다리지 않으렵니다. 아니 기다릴 수도 없습니다. 그를 다시 만날 수 없게 될 시간이 점점 다가옵니다.
내가 이곳에 온 지도 하마 백 하고 스무 날이 넘었을 걸요. 생사의 기로에서 운 좋게 살아남아 그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얼마동안은 세월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는 사방이 훤히 내다보이는 방을 따로 마련해 주고서, 시시때때로 다가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는 “잘 있었니? 밥은 먹었니?” 하며 이런저런 얘기랑 노래를 들려주며 놀아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컴퓨터라는 요술 상자 앞에 데려가데요. 그러더니 한참이나 날 요리조리 뜯어보다 고개를 갸웃, 컴퓨터를 들여다보다, 하더군요. 슬쩍 보니 내 종족들에 관한 자료인데 새우라는 이름의 종족이 그리 많은 줄 몰랐습니다. 인간이란 참 복잡한 머리를 갖고 사나봅니다. 그 많은 종족에다 갖가지 이름을 붙여놓았더라고요. 난 민물새우 ‘새뱅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데요. 내 족보는 절지동물 십각목 새뱅이과의 갑각류라나 봐요. 그걸 알아냈다고 내가 달라질 리도 없는데 참. 그나저나 내가 이 고립무원의 유리병 속에 갇히게 된 기막힌 무용담을 얘기해야겠습니다.
지난 초겨울, 동료들과 하천 물풀 속에서 놀다 영문도 모른 채 우악스런 손에 끌려 도시의 시장 좌판에 나앉게 되었지 뭡니까. 윤나는 암갈색 밀알 같은 우리들이 차르르 몸부림칠 때마다 ‘이것 좀 보세요. 펄펄 살았지요?’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비닐봉지 감옥에 갇혀버렸지요. 그러다 숨막히는 암흑 속에서 풀려나 물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순간, 죽을힘을 다해 수돗물살을 타고 탈출을 시도, 빠삐용처럼 성공했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마도 하루 동안쯤 혼절해 있었던 모양인데 정신이 드는 순간, 눈을 질끈 감고 말았습니다. 누군가 날 집어 올린 채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한데 웬일인지 그가 더 크게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흥분된 목소리로 ‘세상에! 세상에!’를 연발하데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날 커다란 유리병에 담아 부엌 창틀 위에 놓더라고요.
그는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여자로 심심찮게 나를 보러 왔습니다. 무료한 것인지, 내가 안 돼 보여서인지 알 수 없지만. 내게서 나온 느낌표 같은 분비물이 자꾸만 쌓여가자 맹물만으론 안심이 되지 않는지 열대어들의 먹이를 넣어준다, 밥풀을 으깨어 준다 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덴 다소 어리둥절했지요.
나는 그의 그런 행동에 혼란스러웠습니다.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그가 알기나 하는지. 때론 다시 탈출을 꿈꾸며 솟구치기도 하고 자포자기상태로 드러눕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그가 몹시 재미있어 했습니다. 내 일거수일투족이 그에게 다 노출되어 있으니까요. 어쨌거나 그에게 나의 생사를 내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그에게 길들여졌다 할까요. 그런데 그가 변하더군요.
어딘가로 격리된 후론 그는 어쩌다 내가 살아있는 것만 슬쩍 확인하는 듯했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가 자주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려 봅니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부르다보니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는 듯하네요. 어느새 그를 기다리며 사랑하게 되었나 봅니다.
새우의 빨개진 몸뚱이가 거의 해체되다시피 한 것을 쪼그리고 앉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며칠 있다 냇물로 데려갈게.” 했었다. 지난 몇 달간 고작디작은 생명체에서 신비감과 활력을 맛보았다. 내가 돌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새우 그가 내게 반짝 생기를 주지 않았던가. 보이지 않는 벽 속에 갇힌 나와 유리병 안의 새우는 절로 내통했나 보다. 그 앞에서 난 아이처럼 깔깔대기도 하고, 때론 생의 허무를 주절거리다가, 사랑타령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밥상에 오를 뻔했던 한 마리 새우를 향한 애착, 그 아이러니에 자조하면서.
강추위가 걱정되어 싱크대 밑 구석자리에 옮긴 후, 눈에 보이지 않자 소원해졌다. 차츰 수돗물만으로 버티는 새우의 끈질긴 생명력이 지루해졌다. 그를 돌보는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새우의 움직임이 거의 멈추다시피 한 걸 보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척하다 어느덧 방관했다. 그리고 새우, 죽었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퍼뜩, 한 사람이 떠올랐다. 면회한 지가 언제인가. 회신을 미룬 지도 한 달이 되간다. 수형생활 중인 그에게 자청해서 형제 결연을 맺자고 해놓고는 겨우 삼 년인데, 게으름을 피우다니. 편지를 자주 보내지 않아도 괜찮다며 수줍은 듯 말을 더듬던 모습이 어른거린다. 처음, 그에게서 초등학생처럼 또박또박 힘들여 쓴 편지를 받고는 사실 조금 실망했었다. 그때 막내아들이 “엄마가 그 사람에게 뭘 얻으려 하는 게 아니잖아요?” 했을 때의 그 부끄러움을 다시 느낀다.
사랑이란 동정에 힘을 싣지 않은 관심이라 한다. 구심점의 이동, 즉 나 중심에서 상대방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예수께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아가페의 사랑을 명하신다. 하지만 나는 ‘그러니까’의 사랑에 겨우 머물고 있다. 그 마저도 헤치고 보면 자기만족이나 보상심리가 묻어있으니 온전한가. 실로 삶의 궤적에 공허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있다. 어렵겠지만 생명력이 있는 참사랑의 구현을 자신에게 바라고, 또 바란다.
새우야, 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