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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오늘 7월29일 염화실 인터넷방송 법문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진행이 매끄럽지 못해서, 5분이 경과가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날씨도 비가 막 쏟아지다가, 또 햇빛이 좀 나는 듯하다가, 오늘 하루 종일 그러더니 지금도, 하늘은 훤한데 비는 쏟아지는 환경입니다.
여러 가지가 전체적인 흐름이 있는가 봐요. 이럴 때 그런 것들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약왕보살 본사 품. 239쪽 법화경은 이러한 능력이 있다. 하는 부분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약왕보살은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법화행자로서 부처님 가르침 중에 최고가는 경전이라는 이 법화경을 제대로 실천봉행 할 때, 어떠한 모습이 되겠는가? 실천봉행 하는 사람의 그 어떤 모습을 하나의 표본으로 이렇게 등장 시키는 일들이 있는데, 그중에 약왕보살이 그런 분 중에 한 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법화경은 이러한 능력이 있다. 이랬는데, 여기 아주 좋은 비유가 있습니다.
p,239
6. 법화경은 이러한 능력이 있다
25 수왕화여, 이 경은 능히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것이며,
모든 중생을 구원 한다 그랬습니다. 또 이 경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괴로움을 여의게 한다. 불교가 한 마디로 표현할 때, 離苦得樂(이고득락)이 목적이라는 표현을 하지요.
괴로움을 떠나서 편안함을 얻는 것! 이것이 목적이다 하는데, 여기도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또 이 경은 모든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여 그 소원을 만족하게 하느니라. 그러니까 이익하게 하면서, 또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는가? 그 바라는 바를 만족 시켜준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만족을 어떤 식으로 시켜주느냐? 하는 것, 이것이 참 중요해요. 중생들이 원하는 그 소원, 내가 딱 집어서 원한다면 그 소원을 그대로 충족 시켜주는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원하고 바라는 바에 대한 마음을 해소시켜서 충족시켜 주는가? 그것은 해소시키는 것이지, 사실은 충족이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긴 하지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해소시키는 이것이 사실은 훨씬 더 바람직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할 그런 부분이지요.
그러면서 이제 비유를 이렇게 들고 있습니다.
마치 시원한 못이 일체 모든 목마른 이를 만족케 함과 같다. 시원한 못이 일체 목마른 사람을 전부 만족케 함과 같다.또
추운 이가 불을 얻음과 같다. 헐벗은 이가 옷을 얻은 것 같다. 장사하는 사람이 물주를 만남과 같다. 이제 소매장사는 물주를 잘 만나야 물건도 대주고 돈도 빌려주고, 장사할 수 있는 자리도 잡아주고, 하거든요, 큰 대상을 여기서 물주라고 표현을 합니다. 대상이 있어야 그 다음에 그 안에, 예를 들어서 요즘 종합백화점, 대형백화점 하면 거기에서 가게가 수백개, 수천 개 가 나오지 않습니까? 장사하는 소매상들은 큰 물주를 만났을 때, 참 편안하게 장사를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아들이 어머니를 만남과 같다. 멀리 객지에 나갔던 아들이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 안도감! 뭐라고 형언할 수가 없겠지요. 이 법화경은 바로 그러한 능력이 있다 그랬습니다. 또
물을 건너는 이가 배를 만남과 같다. 물 건너 갈 때 반드시 배를 타고 건너게 되지 않습니까. 물을 건너야 되는데 배는없다. 그랬을 때, 어떻겠습니까. 법화경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중생을 제도 한다. 이 언덕에서 저 언덕에 건너 준다
이런 표현들을 불교에서는 많이 쓰지요.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이 此岸(차안)! 이 사바세계의 모든 문제와 모든 고난이
다 해결된 그런 彼岸(피안)으로 건네주는 그런 것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입니다.
병이 난 이가 의사를 만남과 같다. 병 났을 때, 병을 바로
고쳐줄 수 있는 의사를 만난다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참 요즘은 병도, 각양각색의 병이 많아서, 의학적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병들도 참 많아요. 그런데 나을 수 있는, 의사의 손으로 나을 수 있는 병이라면 의사를 만났을 때, 마음이 놓이지요.
어두울 적에 등불을 얻음과 같다. 먼 길을 가는데 밤이었다지요. 그러면은 밝은 등불을 얻었으면 얼마나 길을 화안하게 비추면서 가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은 이제 비유이면서 사실은 경전이나 어록에 많~아니 등장합니다. 뭐 초발심자경문에도 보면, 법문하는 사람을 마치 등불을 든 사람과 같다. 등불 든 사람이 선량한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냐 따지지 말고, 그가 들고 있는 등불의 빛만 받고, 길을 제대로 찾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그래서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그 법에 의지하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이가 보물을 얻음과 같다. 그랬습니다. 그렇지요. 가난한 사람에게는 재물보다 더 우선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업이 되어서 가난이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에속 끝임 없이 또 재물을 탐하고, 또 재물을 구하려고 하는 그일밖에 못하는 사람들이 차~아암 많습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 삽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가난했을 때 돈을 버는 것을 업으로 삼아서, 오~오직 돈, 돈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것이 본의가 아니면서도, 업이 되버려 가지고는 나중에 잘살게 되고 여러 가지 시간 여유도 있고, 모든 것이 다서 풍요로워 졌는데도, 그다음 익힌 것이 없어 놓으니까 어떻게 할줄을 모르는 거라, 돈버는 일밖에는 달리 익힌 것이 없으니까, 할일이 없어져 버리지요.
그래서 안목이라든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된다든지 이런데 대해서 참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예들도 참 많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가 보물을 얻음과 같다. 하는 이 말속에는 그런 뜻 까지도 우리가 헤아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백성이 임금을 만남과 같다. 옛날에 忠(충)하고, 孝(효)아닙니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임금께 충성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그리고 부모님께 효도 하는 것! 그것이 삶의 모든 것 이었습니다. 그랬을 때, 생각한다면 백성들에게 참 섬길만한 임금을 만난다는 것,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요.
장사하는 사람이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다. 바다를 건너서 아주 장사가 잘되는 미개척 지역이 있다면, 거기가면 노다지로 정말 장사를 잘할 수 있는 경우를 여기서 비유로 들고 있습니다, 이 법화경은 그와 같다는 것이지요.
횃불이 어둠을 없앰과 같다 어두울적에 등불을 밝힘과 같다는 것을, 여기서 다른 말로 표현을 해서...
부처님의 깨달음의 가르침 이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결국은 우리들의 어리석은 마음을 좀 제도해서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스스로 어떤 이치를 깨닫고, 깨달은 소신대로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것이 불교입니다.
방금도 어떤 편지 한 장을 제가 읽었는데, 불교T.V에서 어떤 스님이 이상한 법문을 해서 그것이 궁금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편지를 보냈어요.
스스로 이미 어느 정도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못 믿어워 서 편지를 했는데...
요즈음은 법문 홍수라, 사실은 너무 흔하고 포화 상태고, 또 어떤 경우 식상할 정도까지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걸러지지 않아서 정말 아무나, 정말 아무소리나 막하는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법문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많은데, 정말 제대로 된 법문을 듣기는 그만치 더 어려워지지 않았나? 중구난방 이지요. 이사람 이런 소리하고, 저사람 저런 소리하고...
그래서 집에서 법문을 듣고는 너무 이상해서 그렇게 편지로 물어 왔어요.
그에 대한 대답으로, 불교는 결국은 스스로 공부해서 스스로 깨닫고, 자기의 소신껏 판단을 해서 실천에 옮기는 것이지, 내가 또 이런 말을 하면은, 그 말을 또 들고는 또 다른 스님에게 가가지고는 또 딴 사람에게 가가지고 어떤 스님은 이런 말을 했는데 맞습니까 틀립니까? 또 이렇게 할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스스로 잘 판단하고,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배워서, 스스로 자기 확신이 설 때 그 확신 따라서 행동에 옮기도록 하라고 일러주고 말았습니다마는.
그만치 사실은, 이 중생의 어리석음을 제거해주는 그런 지혜의 역할을 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법문이 포화상태임에도 사실은 어리석음을 제거해주지 못하고, 더욱 좋지 아니한 곳으로 인도하는 그런 상황까지 또 생겨나니 참, 법문을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고 우려가 적지가 않습니다.
정말 여기서 이야기 했듯이, 횃불이 어둠을 없앰과 같다. 이런 역할을 해야 되거든요. 병이 난 이가 의사를 만난거와 같다. 그래야 되는데, 오히려 사람들에게 병을 더 나게 한다던지, 더 어둡게 만든다던지, 더 가난하게 만든다던지, 나라를 끌고 가는 훌륭한 임금을 만나야 되는데, 주인이 없어서 백성들을 갈팡질팡 하게 한다던지, 오히려 그런 방향으로 오도 되지 않을까 우려가 적지가 않습니다.
이 법화경도 또한 그와 같아서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고통과 모든 병을 여의게 하며 능히 모든 중생들의 생사(生死)의
속박을 풀어주느니라.
그렇습니다, 궁극에 가서는 삶과 죽음의 구속으로부터 영원히 해탈하게 하는데 까지 이르러 가는 그런 가르침이다. 참 법화경은 이러한 능력이 있다 라고 하는 그 재목에 글은 간단 하지만, 중생을 구원 하는 것! 괴로움을 여의는 것! 중생들을 이익하게 해서 소원을 만족하게 하는 것! 이렇게 말씀해 놓고는 그것을 여러 가지 비유로서 아주 명료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p,240
7.경을 수지하는 공덕
(1)전경(全經)을 들은 공덕→경 전체를 들은 것! 그리고 이것이 약왕보살 본사 품이니까, 약왕보살 본사 품만을 들은 공덕! 이것을 비교를 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럼 경 전체를 들었다고 했을 경우,
26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법화경을 듣고 스스로 쓰거나 사람을 시켜 쓰면 그가 얻은 공덕은 부처님의 지혜로 그 수효를 계산하여도 그 끝을 다할 수 없느니라.
요즈음은 글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옛날에는 글 모르는 사람이 거이 다 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을 시켜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제가 언제 여의주 사경 원 을 소개를 하면서, 願力隨生(원력수생)한 분이다 그랬는데, 그 분도 천하의 명필을 찾아서 그 명필에게 쓰게, 모든 여건을 준비해 드리긴 했지만, 스스로 쓴 것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시켜서 쓰는 것도 스스로 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고, 그만치 공덕이 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만일 이 경을 쓰고 꽃. 향. 영락. 사르는 향. 가루 향. 바르는 향. 번기. 일산. 의복과 갖가지 등인 우유등. 기름등. 향유등. 첨복 기름등. 수만나 기름등. 바라라 기름등. 바리사가 기름등. 나바마리 기름등으로 공양하면 그가 얻는 공덕도 또한 한량이 없느니라.
옛날에는 등불을 밝히는 것이 참 중요한 일이잖아요.
요즈음은 전기가 흔하니까 그저 훤한 대낮에도 전기를 켜놓고 끌줄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마는, 옛날에는 어두울 때 불을 밝히려면 그 귀한 기름을 짜서, 그 기름으로 등불을 밝혔습니다. 석유도 아니지요. 여기에 소개한 대로 별별 향유등으로 불을 밝혔는데, 그 얼마나 불을 밝히는데 기름값이 많이 들겠습니까?
그래서 불경에 일찍이 빈자일등 이니 하는 그런 이야기도 있고, 등불을 밝히는 것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 약왕보살본사 품(本事品)을 들은 공덕
27 수왕화 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약왕보살본사 품(藥王菩薩本事品)을 들으면 또한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을 얻으리라. 만일 여인(女人)이 이 약왕보살본사 품 듣고 능히 받아 지니면 이번에 받은 여인의 몸이 다한 후에는 다시는 받지 아니하리라.
전번시간에도 그렇고 몇 곳에서 소승들의 소견, 또 그 당시 사회의 어떤 통념으로써, 경전에서 이렇게 남녀의 차별에 대한 그런 표현들이 간혹 나오지요.
그것은 그 당시의 사회상으로는 어쩔수 없는 표현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떤 경전이든지 그것이 사회의 상식이라든지 관습 이라든지풍속 이라든지 이런 것을 간혹 그렇게 반영하는 이야기들이 나오지요. 그렇게 이해하시면 별문제 없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약 여래가 열반한 뒤 후(後) 오백년 가운데 어떤 여인이 이 경전을 듣고 말한 대로 수행하면 여기서 명(命)을 마치고는 곧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이 보살대중들에게 둘러싸인 곳에 가서 연꽃 속에 있는 보좌(寶座) 위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후 오백년 하는 것은 금강경에 제1오백년, 제2오백년 해서 오백년 씩, 오백년 씩 짤라서, 그렇게 시대의 상황이 다른 것을 이야기를 하지요.
그것도 사실은 이 대승불교 운동이 부처님 열반 하시고 한 500년쯤 되었을 때,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그래서 이 500년을 상당히 중요시 여깁니다. 대승경전에서는요.
그래서 여기서도 후 오백년 하는 것은 제5 오백년은 말하는 것이지요. 제5 오백년은 鬪諍堅固(투쟁견고)시대다. 사람들이 투쟁하기를 좋아한다. 정신적으로...
개인적으로는 갈등이 있을 것이고, 이웃과 가까운 사람과 또 다른 사람과 늘 이런 갈등이니, 투쟁이니 시시비비니 싸움이니 하는 것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 그런 험한 세상, 험한 세상에서 예를 들어서 경전을 듣고 말 한데로 어떤 사람이 수행한다면 바로 극락세계로 태어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같이 모든 가치가 전도된 이런 시대에서 정말, 진정으로 순수하게 신심을 가지고 경전의 가르침! 성인의 가르침에 심취해서 어떤 법희 선열을 느낀다면 그대로 극락의 삶이지요. 그대로 극락세계 입니다.
다시는 탐욕의 괴로움도 없고 성내고 어리석음의 괴로움도 없고 교만과 질투 따위의 괴로움도 없으리라. 그런거 할 겨를이 어디 있습니까 사실은...
이 경전의 가르침!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에 저~엉말 깊이 심취한다면 그것이 즐거움이고, 그것이 낙인 사람에게 무슨 성내고 어리석고 괴롭고, 질투 교만 이런 것이 있을 까닭이 없지요. 그런 것이 침범할 틈이 없습니다.
보살의 신통과 무생법인(無生法인)을 얻으며, 이 법인을 얻고는 눈이 청정하게 되리라.
무생법인 이라고 하는 것은 [생사가 없는 진리] 생사가 없는 진리를 얻으리라.
이 법인을 얻고는 눈이 청정하게 되리라. 이 청정한 눈으로 칠백 만 이천억 나유타 항하사의 부처님 여래를 친견하리라.
28 이 때 모든 부처님들이 멀리서 함께 칭찬하리라. ‘훌륭하고 훌륭하여라. 선남자여, 그대가 능히 석가모니 불법(佛法) 가운데서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생각하며 다른 이에게 해설하나니 그로 인하여 얻는 복덕이 한량없고 그지없으리라.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하고 물이 능히 빠뜨리지 못하리라. 그대의 공덕을 일천 부처님이 함께 말씀하여도 능히 다 하지 못하리라.
이렇게까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하고 물이 능히 빠뜨리지 못하는 이 이야기는 좀 있다가 묘음보살 품! 그 다음에 관세음보살 보문품! 이렇게 넘어가면 법화행자의 그 위신 력! 진정 모~오든 정성과 오~오온 마음이 법화경의 가르침에 그대~에로 어떤삼매를 이루듯이 그렇게 정신이 형성되어 있다면 그야말로, 얼마든지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야기들 이지요.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이런 이야기가 수없이 나오게 됩니다.
여기에서도 미리 좀얼핏 비치네요. 그러니까 약왕보살 본사 품! 묘음보살 품! 관세음보살! 이런 이들이 대표적인 법화행자의 표본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촉루품까지가 법화경의 중요한 이야기가 거이 끝났는데, 그러면 법화경 내용의 실천자로써, 몸소 실천한 사람으로서의 어떤 모델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바로 그런 인물로써 약왕보살, 묘음보살, 관음보살 이런 이들 등장시켜 나간다고하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대는 이미 모든 마군을 능히 깨뜨렸으며 생사의 군대를 파괴하였으니 모든 원적(怨敵)들을 다 꺾어 버렸느니라.’선남자여, 백 천 의 부처님들이 신통의 힘으로 그대를 수호하나니 일체 모든 세간의 천신과 사람들 중에 그대와 같은 이가 없느니라. 오직 여래를 제외 하고는 여러 성문이나 벽지불이나 내지 보살의 지혜와 선정으로는 그대와 같은 이가 없느니라.
법화경만 우리가 잘 실천봉행하면, 바로 부처님처럼 된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래를 빼고는 그 어떤 법력이 더 덮을 수 없는 위대한 인물이 된다는 이야기로 정리할 수가 있겠지요.
수왕화여, 이 보살이 이와 같은 공덕과 지혜의 힘을 성취하였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약왕보살본사 품을 듣고 능히 따라 기뻐하고 찬탄하는 이가 있으면 이 사람은 이 세상에 있으면서 입에서 청련화(靑蓮華) 향기가 항상 나고 몸에서는 모공(毛孔)마다 우두전단 향기가 항상 나리라. 그가 얻는 공덕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위에 공덕을 쭈욱 이야기했는데 그와 같이, 많은 공덕이 있다 그랬습니다. 특히 약왕보살 본사 품을 지칭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네요.
보문품 에도 가면 보문품 이라고 하는 품을 지칭하게 되고,그 다음에 묘음보살 품도 묘음보살 품! 이렇게 한개 의 품을 지칭해서 이야기하는 그런 예들이 간혹 이렇게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약왕보살 본사 품을 부촉하다 그랬습니다. 이 품 만 가지고도 충분히 경전이 된다 하는 그런 의미로 우리가 받아들일 수가 있지요.
그러니까 관세음보살 보문품은 법화경의 일부인데도, 그것이 관음경 이라고 하는 독립된 경전으로 우리가 추앙하지요.
많이 그것을 신앙하고, 그래서 그로인해서 관음사상이 우리나라에 많이 퍼져 있다고 볼 수가 있지요.
(3)약왕보살본사 품을 부촉하다
29 그러므로 수왕화 여, 이 약왕보살본사 품을 그대에게 부촉(咐囑)하노라. 내가 열반한 뒤 후(後) 오백년 동안에 널리 남섬부주(南贍部州)에 선포하여 끊어지지 말게 하라. 나쁜 마왕과 마군의 백성과, 천신. 용. 야차. 구반다들이 그 틈을 엿보지 못하게 하라.
수왕화여, 그대는 마땅히 신통의 힘으로 이 경을 수호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경은 남섬부주 사람들의 병에 좋은 약이 되기 때문이니라. 만일 병 이 있는 사람이 이 경을 들으면 병은 곧 소멸되고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리라.
이 경이 후오백년 다시 말하면 2500년 이후의 말세, 투쟁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들을 유혹하려면 어떻게 하겠어요? 소득이 많다고 해야 됩니다. 또 욕심은 많고. 채워지지는 않고, 그래서 그들의 욕심을 다 채워줄 수 있는 그런 말 로 유혹을 해야 됩니다. 또 사실은 정말 일념이 되게 하기만 하면 또 그것은 가능합니다. 거짓말은 아니어요.
말세 중생들의 특성을 잘 살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500년의 세월이 통과했다고 했을 때, 그때의 사람들도 이미 말세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500년이 지나서 이렇게 세상이 달라지고 사람들이 달라지는데, 이렇게 다섯 번이 경과한다면 그때 가서 과연 불법이 남아있을까 상당히 염려했겠지요. 그러니까 후 500세, 제5 오백년, 이런 식으로 지칭을 하면서 상당히 염려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우려했던 대로 인지 아니면, 뭐 지나친 우려인지 그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는 각자의 몫이어요. 우리가 부처님 정신에 얼마만치 충실하게 살고, 또 부처님 정신에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얼마나 사람의 가치를 잘알고 사람답게 사느냐 하는 그러한 문제의 척도지 뭐 꼭, 부처님 시킨 대로 잘 하고, 부처님 말씀 잘 듣고, 부처님 잘 믿고 이런 기준은 아닐 꺼예요. 불교는 그런 어떤 특정인을 내세워 놓고, 절대신 처럼 그렇게 따르고 위하고 하는 그런 기준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불교라고 하는 佛(불) 字(자)를 몰라도, 정말 불교이치에 맞게만 살면 그 사람은 누구보다도 불교인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아무리 불교를 입으로 이야기해도 불교이치에 맞지 않게 사는 그 사람은, 불교인이 아니다, 그래요, 이러한 이론도 불교만이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이런 말 못하지요. 그런 점들이 불교의 특징이고 장점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30 수왕화여, 그대가 만일 이 경을 받아 지니는 이를 보거든 미땅히 푸른 연꽃에 가루 향을 가득 담아 그 위에 흩어 공양할 것이니라. 흩고는 다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머지 않아서 반드시 길상초(吉祥草)를 깔고 도량(道場)에 앉아서 모든 마군들을 물리칠 것이니라.
길상초를 깔고 도량에 앉아 라고 하는 말은 부처님이 6년 고행하고 마지막 일주일동안, 보리수 밑에 앉았을 때 그때, 부처님이 직접 손으로 뜯어서 깔고 앉았던 그 풀이 길상초 입니다. 그때 길상초 라고 불렀겠습니까? 그저 부처님이 그것을 깔고 앉아서 성도를 했다고 해서 “참 길상한 풀이다.” 그래서 길상초 라고 부르게 되었지요.
그리고 도량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우리가 수행도량이란 이런 말을 쓰듯이, 부처님이 보리수 밑에 앉아서 성도를 했기 때문에 바로 그자리가 도량이다 도의 장소다, 도를 깨달은 장소다. 그런 뜻 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무슨 도량, 무슨 도량하는 사찰을 도량으로 으로 쓰고 있는 것도 바로 거기서 유래한 것입니다.
도량에 앉아 모든 마군들을 물리칠 것이니라. 여기에도 조금 유의해야 할 부분이 도량에 앉아 마구니들을 물리친다 고 했지 성도 했다는 이런 말은 표현하지 않고 있지요. 우리가 팔상성도 를
보더라도 제목은 팔상성도인데 사실은 수하 항마상은 있어도, 수하 항마상 다음에 바로 녹원전법상 으로 넘어가지, 성도상이라고 하는 대목은 없지 않습니까?
이런 것도 문제로 남겨두고 곰곰이 한 번 연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의 소라를 불고 큰 법의 북을 쳐서 모든 중생들의 늙고 병들고 죽는 바다에서 해탈케 하리라’하라.→[녹원전법상 이
되겠지요] 그러므로 부처님의 도를 구하는 이는 이 경전을 받아 지니는 이를 보면 마땅히 이와 같이 공경하는 마음을 내야 하느니라.”
이렇게 설명을 하고, 그다음에 약왕보살 본사품 을 설한 이익을 간단하게 마지막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4)약왕보살 본사품을 설한 이익
31 이 약왕보살 본사품을 설하실 때에 팔난 사천 보살들이 모든 중생들의 말을 다 아는 다라니(多羅尼)를 얻었습니다.
다보여래(多寶如來)는 보탑 가운데서 수왕화보살을 찬탄하였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여라. 수왕화여, 그대는 불가사의 한 공덕을 성취하였느니라, 능히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이런 일을 물어서 한량없는 모든 중생을 이익케 하였느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런 법화경을 설하시면서 다보부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지요.
그래서 다보부처님으로 부터 이렇게 수왕화보살이 훌륭하고 훌륭하다 수왕화여 이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께 약왕보살본사 품에 대해서 수왕화보살이 물었는데 그 물은 사람의 일로인해서 한량없는 모든 중생들을 이익케 하였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어떤 질문하고 답하고 하는 그런 어떤 자리에서 제대로 물을 줄 안다면 그것이 개인에게만 여러 사람에게 큰 소득이 돌아가는 것이지요. 또 엉뚱하게, 主題(주제)하고 어긋난다던지, 주관하는 사람의 말을 못알아 듣든지 해서 엉뚱하게 질문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소비하게 하게하는 그런 예들도 잘 살펴야 하는 일입니다마는, 참 제대로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질문 그리고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있다면 참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하는 것을 우리가 배워둬야 할 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약왕보살 본사품 이 품 하나만으로도, 말하자면 법화경을 제대로 실천공양 하는 사람이 하나의 표본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끝에 보면, 이 약왕보살 본사품 하나만을 別立(별립)해서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뒤에 나오는 묘음보살도 그렇고, 관음보살도 그렇고 그래요. 그건 그렇고, 세 품 이 아주 유사한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선두주자가 없으면, 앞에 나서서 어떤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 있을 때, 따르는 사람이 많고 또 우리가 믿고 뒤를 따라가게 되는 것 이지요.
그런 선두주자로서의 약왕보살 품이 이렇게 등장을 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참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뭐 법화경의 이치를 드러내는 구절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마는, 그저 “위대하다 좋다 훌륭하다 비유컨데 뭐하다.” 이렇게만 했지, 사실은 법화경의 이치는...
사실 알고 보면 간단하거든요. 그러니까 크게 밝히지 않아도, 충분히 이 약왕보살을 통해서 우리가 믿고, 실천할 수 있다고 보도록 하게한 품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 법화경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기록: 날마다좋은날, 정리: 대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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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성 |
법화행자로서 최고의 경전을 제대로 실천 躬行할때 모습을 표본으로 등장시키는데, 약왕보살이 그런분 中에 한 분이다.불교는 離苦得樂이 目的이다. 마치 아들이 어머니를 만난 것 같은 안도감이 들며,물을 건너는 이가 배를 만난것과 같으며 횃불이 어둠을 없앰과 같다. 우리의 어리석은 마음을 제거해서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스스로 이치를 깨닫고 소신대로 잘 살수 있도록 해주는것, 이것이 불교다. 투쟁견고 시대에 경전이나 성인의 가르침에 빠져서 법희선열을 느낀다면 그대로 극락의 삶이다. 순수하게 깊히 심취해서 그것이 즐거움이고 樂인 사람에게 무슨 성내고 어리석고 질투와 교만이 있을수있겠는가? 무생법인을 얻을것이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_()_
법화행자로서 최고의 경전을 제대로 실천 躬行할때 모습을 표본으로 등장시키는데,약왕보살이 그런분 中에 한 분이다.불교는 離苦得樂이 目的이다.마치 아들이 어머니를 만나것 같은 안도감이 들며,물을 건너는 이가 배를 만난것과 같으며 횃불이 어둠을 없앰과 같다.우리의 어리석은 마음을 제거해서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스스로 깨닫고 소신대로 잘 살수 있도록 해주는것, 이것이 불교다.투쟁견고 시대에 경전이나 성인의 가르침에 빠져서 법희선열을 느낀다면 그대로 극락의 삶이다.순수하게 깊히 심취해서 그것이 즐거움이고 樂인 사람에게 무슨 성내고 어리석고 질투와 교만이 있을수있겠는가?무생법인을 얻을것이다
삼보에 귀의하옵고... 고귀하고 희유하신 법화경의 말씀 삼가 경청하였습니다. 무더위 속에도 영글어가는 벼싹을 보고 미소를 짓는 농부의 얼굴을 보면서 잠깐이라도 더위를 잊어봅니다. 그리 오래된 시간은 아니지만 나무묘법연화경과의 인연에 머리숙입니다!_()()()_
거룩한 진리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머리숙여 인연에 감사합니다. _()()()_
.()()().
無比 스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솔선수범하시며 많은 공덕 쌓으시는군요 미륵골 님! 감사합니다. _()()()_ ....
_()()()_
정말..감사합니다 _()()()_
귀의불, 귀의법, 귀의승..._()()()_
큰스님가르침 감사합니다 삼배올립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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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생명을, 어두움에서 빛을, 가난한자가 부를, 강건너야할사람에겐 배를~~~더이상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모든게 원만구족 인걸요. 너무나 거룩한 진리입니다.머리로만 아는사람이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고 실천에 옮기는 불자가 되겠습니다,
큰스님 항상 건강 챙기십시요
_()()()_ 큰스님! 법문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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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왕화여, 그대는 마땅히 신통의 힘으로 이 경을 수호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경은 남섬부주 사람들의 병에 좋은 약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병이 있는 사람이 이 경을 들으면 병은 곧 소멸되고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리라. 또한 이 경을 받아 지니는 이를 보거든 미땅히 푸른 연꽃에 가루 향을 가득 담아 그 위에 흩어 공양하며 생각하길, ‘이 사람은 머지않아 반드시 吉祥草를 깔고 道場에 앉아서 모든 마군들을 물리칠 것이다. 법의 소라를 불고 큰 법의 북을 쳐서 모든 중생들의 늙고 병들고 죽는 바다에서 해탈케 하리라’하라. 부처님의 도를 구하는 이는 이 경전을 받아 지니는 이를보면 마땅히 이같이 공경하는 마음을 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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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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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병 이 있는 사람이 이 경을 들으면 병은 곧 소멸되고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리라...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_()()()_
이 경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괴로움을 여의게 한다....나무묘법연화경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수왕화여, 이 경은 능히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것이며, 이 경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괴로움을 여의게 한다...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