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의 전원교회, 양평 성민교회 매주 600여명이 찾아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에 가면 4만평 대지에 3,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교회가 있다. 혹한의 추위에도 매주 약 600여명의 신도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 대부분이 서울에서 온 신도들이다. 담임목사는 허영무목사(82살)이다.
허목사는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옆에서 약 600여명의 신도들과 함께 목회를 하다가 앞으로 서울이 비좁아질 것 같아서 미리 앞을 내다보고 10여년 전에 파크처치(전원교회)를 생각하며 양평 깊은 산골짝으로 교회를 이동했다. 그러나 신도들은 거의 이탈이 없었다. 허목사는 양이 나를 알고 내가 양을 알기 때문에 거의 이탈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교회입구에는 그가 직접 산에서 고목나무를 주워다 목공예를 하여 의자와 문을 만들고 안에는 에덴동산처럼 만들기도 하였다.
▲ © 황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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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당입구 © 황규학
▲ 다락방 © 황규학
▲ 노아방주 © 황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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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사는 목회의 길을 걷기 전에는 한옥을 짓는 대목장이어서 자신의 목공실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산으로 들어온 이후 교회건축물을 손수 제작하였다. 다락방, 방주, 말구유, 문, 물레방아, 기차, 비행기, 정자 등을 손수 만들었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면서 기차바퀴와 비행기 프로펠러까지 돌아가게 만들었다. 기차는 연기까지 뿜어댄다. 안에는 교제할 수 있도록 탁자까지 만들었다.
또한 그는 산에서 물줄기를 끌어내 연못을 만들기도 했다.
교회복도마다 15살이전에 배운 한자실력으로 표구를 만들어 부착시키기도 했고, 옥상에는 자신의 서예실까지 있어 신앙적인 문구로 써붙이기도 하였다.
허목사의 목회철학은 확신, 실천, 순종, 완성
허목사의 목회철학은 확신, 순종, 실천, 완성 이다. 그는 한자문화권으로서 행함이 떨어지는 현대인들에게 실천의 삶을 강조한다. 한 신도는 자신도 감리교 신도로서 다른 교회에 다녔는데 20여년전에 목사님을 만나 성민교회의 신도가 되었다고 말한다. 성민교회를 선택한 것은 목사님이 말씀그대로 한결같은 삶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일부 신도들이 잘못된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 바람에 목사님 이하 신도들도 많은 마음고생을 하였지만, 법원에서 대부분이 무혐의처리돼, 신도들은 한 명도 요동함이 없었다고 전했다. 최근에도 목사님의 횡령사건으로 경찰에 고소가 되었지만 이 또한 무혐의 처리되었다고 말한다.
허영무목사는 성경그대로 말씀과 기도에만 전념하고 재정이나 행정을 신도들에게 전부 맡기는데 그 중 일부 장로가 허목사에 대해 역공을 폈다는 것.
이러한 많은 소문과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도들이 허목사를 따르는 것은 허목사의 삶이 다른 목사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허목사의 자가용은 4륜구동 산악오토바이이다.
허목사가 산에 기도하러 갈 때, 일하러 갈 때 항시 사용하기 때문이다. 엄동설한의 추위에도 허목사는 하루에 6시간씩 기도하고, 하도 기도를 많이 해서 그의 복숭아 뼈는 굳은 살로 배겨있다고 한다.
친 아들이라도 신앙없으면 후계자 안돼
허목사는 큰 아들을 잃었다. 부흥회 참석 중에 어린 큰 아들이 감기가 걸렸는데 교회 목사가 병원가지 말고 기도로 고쳐야 된다는 그릇된 신앙관으로 병원에 늦게 방문하게 되었고 결국 감기가 급성폐렴이 되어 큰 아들을 잃었다. 그래서 허 목사는 아프면 빨리 병원가라고 설교한다고 한다.
몇년전에는 둘째 아들을 부목사로 세웠는데 신앙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하여 후계자로 물려주지 않고 아들을 내쫏았다. 그에 의하면 아무리 육의 아들이라도 신앙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의 목회 유산을 물려받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나는 목숨을 버려 양을 지키지 못한 목자, 자서전 쓸 자격없어
자서전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자신은 목숨을 버려서까지 양을 지키지도 못해 목자로서의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허목사는 일하기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말씀대로 자신은 지금도 일을 하고 있고, 부교역자들과 신도들도 끊임없이 노동일을 하고 있다.
전원교회이다 보니 넓은 텃밭을 이용해 신도들이 직접 농사지은 채소로 음식을 먹는다. 모두 밭에서 나는 것을 재료로 하는 무공해 음식이며, 연료도 정부에서 벌목을 하다가 버려진 나무를 주어다가 사용하여 주일 하루 연료비는 약 5만원정도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히터를 전혀 사용하지 않음으로 기름도 필요없다는 것이다. 허목사 자신이 손수 만든 난로의 열기로 예배당은 훈훈하다.
신도들은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며, 평일에도 양평구석까지 매일 5시에 약 100여명이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온다. 한 신도는 주일마다 소풍가는 기분으로 교회에 간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신도들이 주일아침 예배를 마치고 오후예배까지 드리고 간다.
현재 허목사가 속해 있는 교단은 군소교단으로 합동 전통측이다. 허목사는 그리스도의 정신만 있으면 자신은 교파에 전혀 구애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누구든지 와서 친교할 수 있고, 영적 교제를 나누고,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름에는 수영장도 있어서 교인들의 자녀들이나 주일학교 학생들이 교회에 와서 수영을 즐긴다고 있다. 허목사는 아이들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기차와 헬기, 물레방아까지 만들었다. 심지어는 물레방아로 전기발전까지 하고 있다.
또한 매년 한번씩 양평주민들을 초청하여 친교를 나누기도 하여, 양평군청에서도 사회에 공헌하는 모범적인 교회로 소문이 나 있다. 최근에는 양서역까지 전철역이 생기고 주위에 전원주택이 점점 늘어나,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올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허목사의 고민은 자신이 점점 연로해 가는데 후계자의 구도가 분명하지 않은 것. 또한 교단신학교가 제기능을 다하지 못함으로 인해 체계적인 교회교육이나 인재양성이 되지 않기 때문에 교세확장이 어렵다고 말한다. 허목사도 자신은 아이디어가 많은데 자신을 뒷받침해 줄 스텝진들이 약하다는 것이 그의 고민거리이다.
허목사는 성민교회는 예장 전통이라는 교단에 속한 장로교회이며, 가나안농군학교와 같은 이상촌도 아니고, 단지 전원교회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든 열려있고, 교파를 떠나서 신앙생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허목사는 세습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허목사는 아들 후계자를 신앙적이지 않다며 과감하게 후계세습포기를 용단하였으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양을 지키지 못했다고 자서전을 쓸 수 없다고 하며,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며 하루에도 서너차례씩 약6시간이상씩 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고, 매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시간나면 목공예를 하고, 한자를 쓰는 우리시대의 교회문화와 역행하는 기인임에는 틀림없다.
신도들이 성민교회를 찾는 이유는 공기좋은 전원교회보다도 허목사의 40년동안 한결같은 삶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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