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恩海寺)의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도처가 중암암(中巖庵)이다. 백홍암을 지나 산길 끝까지 오르다 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중암암인 것이다.
거대한 바위 사이에 돌로 쌓은 작은 문 하나가 암자의 일주문(一柱門)인 모양이다. 돌문을 지나니 두리번거릴 새도 없이 법당 하나와 요사채 하나가 나타난다. 마치 낭떠러지 위에서 사랑이 깊은 연인처럼 법당과 요사채가 서로 껴안고 있는 형국이다. 낭떠러지 위의 터이므로 모든 게 앙증맞을 만큼 작다. 법당도, 요사채도, 정랑(淨廊)도, 종도, 샘[泉]도 미니이다. 안내를 맡은 법운(法雲)스님만 키가 장대같을 뿐이다.
"여기 샘에 얽힌 전설이 잇지요. 지금은 바위 사이에서 물이 흘러 나오고 있지만 옛날에는 암자에 게시는 스님을 위해 쌀이 나왔다고 합니다. 날마다 한 사람 몫만 나왔다고 해요."
법당 측면에 있는 작은 돌샘을 가리키며 꺼낸 법운스님의 이야기다. 아침마다 돌샘에서 한 사람 몫의 쌀이 나와 탁발을 하지 않고도 암자에서 수도를 했는데, 산적 한 명이 나타났다. 돌샘에서 쌀이 나오는 것을 목격한 산적은 욕심이 나 스님을 죽이고 쌀이 더 많이 나오게끔 돌샘의 구멍을 크게 뚫었는데, 쌀 대신 피가 솟구치며 바위 사이에서 석풍(石風)이 나와 산적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욕심을 경계하라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 전설 속에 녹아든 경우이리라. 불교의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도 삼독(三毒), 즉 악의 씨앗인 탐(貪 : 욕심), 진(嗔 : 성냄), 치(痴 : 어리석음)를 경게하라는 부처님의 당부가 수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의 정랑도 특이하지요. 낭떠러지 위이므로 용변을 보는 즉시 사라져버리거든요.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허공에서 공중분해 돼버리거나, 팔공산 어느 숲속의 미물 앞에 떨어지지 않갰는가. 어쨌든 이곳의 스님은 평생 정랑 청소를 하지 않아서 좋겠다.
중암암의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한 글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돌문 밖에 있는 석탑을 보아 오래된 암자라고 추측할 뿐이다. 석탑이 일주문격인 돌문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은 암자터가 낭떠러지 위의 비좁은 터이기 때문이다. 쓰러져 나뒹구는 탑신(塔身)을 모아 엉성하게 세워둔 것이지만 그래도 신도들에게는 소중한 기독의 대상인 느낌이다. 텁기단(塔基壇) 위에 자신의 소원을 담아 조그만 돌멩이들을 쌓아두고 있는 것이 간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암자의 식구들을 보려면 암자 밖으로 나와야 할 것 같다. 암자가 비좁다고 탑도, 미로(迷路)를 연출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들도, 산의 정상에 서 있는 만년송(萬年松)도 밖으로 나와 산바람을 쐬고 있음이다.
無染 정찬주/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