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타인이 말하는 경외심
우주의 삼라만상 가운데 사람이 무엇이기에, 당신은 그 존재를 기억하십니까?
우주의 삼라만상 가운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당신은 그를 마음에 담아두셨습니까?
- <시편> 8편 4절
신은 누구인가? 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신은 우리가 아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뛰어넘는 혹은 그러한 논의조차 하찮게 보이는 단계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보다 위대한 우주에 숨겨진 어떤 힘’과 대면했을 때 감동한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서 본 세상, 칠흑 같은 밤에 고비 사막에서 만나는 별빛 들은 우리의 오감을 사로잡아 아무 생각 없는 무아(無我)의 상태로 인도한다.
이때 우리는 인간의 경험이나 과학적인 지식의 바깥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을 만나면 우리의 오감은 자동적으로 반응해 그 순간 우리는 과거의 자아에서 벗어나 자기를 넘어서는 새로운 자아를 경험한다. 우리는 이것을 ‘경외심’이라한다. 아인슈타인은 경외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감정은 신비입니다. 아름다움은 모든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힘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모르는 사람, 더 이상 궁금해 할 수 없거나 황홀경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마찬가집니다.
우리에게 침투 불가능한 것들이 실재로 존재합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무뎌진 감지 능력으로는 그것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만을 이해하는 숭고한 지혜와 가장 빛나는 아름다움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알고 느끼는 것이 진정한 종교성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저는 진정한 종교인들 축에 속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과학적 탐구와 순간성을 넘어, 앞으로 발견될 과학적 지식까지 포함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는 신의 말을 잘 듣는 인간에게는 상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주는 그런 신에게는 관심이 없다.
주 우리의 하나님, 주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저 하늘 높이까지 주의 위엄 가득합니다.
어린이와 젖먹이들까지도 그 입술로 주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주께서는 원수와 복수하는 무리를 꺾으시고,
주께 맞서는 자들을 막아낼 튼튼한 요새를 세우셨습니다.
주께서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주께서 친히 달아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주십니까?
<시편> 8편은 그 옛날, 우주와 생명의 신비를 경험한 인간들이 자신의 삶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킨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관한 이야기다. 성서에 등장하는 신의 위대한 질문들은 우리와 우주 안에 숨어 있는 숭고함을 일깨울 것이다. 인간은 우주와 사람 안에 숨겨진 그 경외심을 찾아가는 순례자와 같은 존재며, 그 다양한 순례의 길이 바로 종교가 아닐까. (26~3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