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조하조今朝何朝
이른 아침 집을 나섭니다. 수영강습을 위해서랍니다. 수영장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가지요. 아파트를 막 벗어나면 자전거 도로가 있어요. 그 도로는 얼마 가지 못해 갑자기 사라져요. 저 멀리 내가 가고자 하는 공단까지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요, 수영장은 공단에 있답니다. 버스를 탄다면 정류장에 내려 한 정거장 정도 걸어가야 해요. 그것이 번거로워 자전거를 이용하지요. 요즘은 자전거 타기에 최적의 날씨랍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와 하루하루 변해가는 가로수의 나뭇잎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답니다.
달리다 보면 대학교문을 두 번 지납니다. 그 문들을 지나 대학교 담장을 벗어나면 아주 커다란 사거리가 나와요. 사거리를 건너면 자전거 도로가 또 나타나요. 뜬금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하는 요상한 길이랍니다. 그때부터는 속도를 내며 막 달리지요.
드디어 마지막 신호등을 만나요. 그렇다고 마지막 횡단보도는 아니랍니다. 또 한 번 신호등 없는 건널목이 있답니다. 얼마 전까지는 될 수 있으면 신호등을 만나면 내려서 파란불을 기다렸어요. 요즘은 간이 부었나 봐요. 신호들을 보고 용감하게 차들과 같이 달리기도 하니까요.
수영장에 도착하면 십이 분이 조금 안됩니다. 전에는 십칠 분이나 걸리는 거리였죠. 오 분을 줄였어요. 오 분은 자전거를 타고 일 킬로미터를 갈 수 있는 시간이랍니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해요. 다시 신호등마다 멈추며 느리게 움직여야겠어요. 빨리 오는 것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안전한 것을 택해야겠지요.
출근길이라 사람의 마음이 바쁠 수 있어요. 신호등이 바뀌려 하는 그 순간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지요. 급하게 먼저 가려는 사람과 사람이 일을 내는 법이거든요. 나도 그런 적이 있답니다.
좌회전 신호 앞에서 차가 뜸해 무단횡단을 할 작정이었답니다. 그 때 분명 좌회전하려는 차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보이지 않던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달려왔어요. 몇 초 남지 않은 신호를 받으려 했던 것이겠지요. 가슴이 철렁하며 이래서 사고가 나는구나 싶었지요.
우리는 짧은 거리를 두고 멈추었답니다. 그리고 동그래진 눈동자 네 개가 허공에서 만났답니다. 운전자도 얼마나 놀랐는지 움직이지를 못하더군요. 물론 내가 잘못했어요. 그 후로는 무리해서 신호등을 건너지는 않는답니다.
수영장에 도착해서 운동을 시작할 때 하기 싫다는 생각이 또 마음을 지배하지요. 물론 수영하는 내내 몸이 고통스러워요. 고통스런 운동을 왜 하는지 가끔 자문을 하고는 해요. 하지만 나는 답을 알고 있답니다.
강습이 끝나면 뭔가를 해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고통 뒤에 아픔을 잊으려 호르몬인 도파민 혹은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고 해요. 그 때문일까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던 몸이 기분 좋은 평화를 찾아요. 하루의 출발부터 나와의 싸움에서지지 않았다는 생각과 몸의 개운함과 나른함이 나를 감싼답니다. 그리고 기분 좋은 열이 나고, 힘이 솟는답니다.
수영을 끝내면 집을 향해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습니다. 출근시간이 지나서 거리가 조용하답니다. 네 번의 신호등과 두 번의 횡단보도를 지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아, 마지막 신호등을 지나면 오르막길입니다. 그때부터는 서서 페달을 밟아야 해요.
길은 점점 더 가팔라집니다.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요. 그야말로 허벅지가 찢어질 것 같아요. 아, 너무 고통스러워요. 운전을 포기한 것이 새삼 후회되는 순간이랍니다.
젊은 시절에 운전을 조금 했답니다. 그렇다고 능숙하게 한 것은 아니고 남편이 술을 마셨을 때 대리운전을 했지요. 지금도 남편만 옆에 태우면 운전을 할 수 있답니다. 이제는 그것도 하기 싫어요. 이상하게 운전을 하려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답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 운전이 무서워져 버렸어요. 사실 자전거도 탈 때마다 겁이 납니다. 힘도 들고요. 그래도 어쩝니까. 이거라도 타니 조금 먼 거리는 편하게 갈 수 있는 걸요.
아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두 가지랍니다. 하나는 끝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고, 두 번째는 집 가까운 곳에 있는 대학교의 작은 축구장을 지나 숲길로 가는 방법이 있답니다. 숲길이라고 해서 험하고 긴 길은 아니고 작은 언덕이지요. 요즘은 그 길을 애용한답니다.
숲의 이름은 궁산이에요. 활 모양을 닮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지요. 오늘은 자전거에서 내려 숲길을 걸어봅니다. 도심 속에서 숲길을 걸을 수 있다니 얼마나 좋아요. 그 길을 걸을 때는 사는 게 또 새삼 행복하답니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쥐꼬리망초가 풀 속에서 빠꼼이 얼굴을 내밀고 있네요. 이질풀이 분홍꽃을 피웠어요. 보라색의 쑥부쟁이와 벌개미취와 하얀 구절초도 피었답니다. 여기저기 들꽃이 한창 수선스럽습니다. 궁산의 색깔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답니다. 연두색도 아니고 겨자색도 아닌 잎들이 영역을 넓히고 있네요. 수수수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도 들려오네요.
드디어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지금부터 자전거를 세우고 홀가분하게 걸어 갈 겁니다. 집에 도착하면 따뜻하고 쓴 커피를 먼저 마셔야겠어요. 아, 힘든 아침의 일상이 끝났답니다. 매번 힘들다, 하지말까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정작 그만두지는 않네요.
시작은 고통스럽지만 운동 후에 찾아오는 개운함으로 세상이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또 거리에서 만나서는 산책 나온 강아지들, 계절 따라 색깔이 바뀌는 가로수와 풀꽃과 햇살이 번지는 하늘과 구름, 그 풍경과 풍경 사이를 흐르는 바람······. 이 모든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래서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아침의 일상이 바뀌지 않는 것이겠지요.
시원한 바람이 홍시같이 붉어진 뺨을 스치고 갑니다. 상쾌하네요. 불현듯 시경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금석하석今夕何夕 견차양인見此良人(이 얼마나 좋은 저녁인가 님을 만났네)’ 그 구절을 이렇게 바꾸고 싶어요. ‘금조하조今朝何朝 견차양풍見此凉風(이 얼마나 좋은 아침인가 시원한 바람을 만났네)’. 지금 이 순간 바람도 시원하고 마음도 시원하고, 이 얼마나 좋은 아침인가요.
첫댓글 한문을 안 배운 세대에겐 한문 "금조하조"를 빼곤 아주 쉽게 쓰여진 그리고 아주 쉽게 읽혀지는 새문체의?
댓글 감사합니다~.
'이 얼마나 좋은 아침인가'를 제목으로 하려니 긴것 같아 '금조하조'라고 했어요.
이런 문체는 제가 이야기 하듯이 자주써보고는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