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 화창 이보다 더 화창할 수 없는 화창한 주말이다. 한창 더워야 할 때인데 덥기는 커녕 아침저녁으로는 양말을 벗고 있을라치면 발이 시렵다. 오늘은 북가주 소노마 카운티의 시골동네 Fort Ross에서 열리는 Russian Festival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여관방을 구하지 못하여 포기하고. 대신 올림픽 구경이며 밀린 마당일을 하면서 집에서 딩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집에서 3시간 반 거리에 있는 Fort Ross의 Russian Festival에 흥미를 느낀 것은 약간의 연유가 있다.
나파밸리와 함께 미국 와인 생산지로 쌍벽을 이루는 바로 이웃동네 Sonoma County를 관통하는 Russian River 를 끼고 거의 200여개의 크고 작은 winery가 자리를 잡고있다. Russian River가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가는 입구에 Jenner라는 자그만한 동네가 있고 바로 그 북쪽 약 30분 거리에 Fort Ross라는 1812년에 소련 사람들이 세운 營門이 자리잡고 있다. 한두번 소개한 바있는 Bodega Bay는 남쪽으로 한시간 거리이고, Fort Ross에서 San Francsico 까지는 130km 거리다.
1985년 처음으로 북가주에 이사왔을 때 왠 Russian River가 여기에 있나 궁금했었는데 알고보니 19세기 초에 이미 소련사람들이 이곳에 정착을 해서 제법 발자취를 남겼다고 한다. 그러니까 1849년 칼리포니아 gold rush가 있기 전이고, 물론 1867년 William Seward 국무장관 주도아래 Alaska를 소련으로부터 720만 달러에 매입하기 훨씬 전이니까 Alaska를 통치하고있던 소련 사람들로서는 농산물의 안정된 공급처로서 따뜻한 남쪽 땅으로 진출하고 싶었을게 뻔하다. 뿐만 아니라 소노마 카운티의 풍부한 삼림자원은 Alaska에서 필요로하는 목재로서는 안성마춤이며 당시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물개가죽의 공급처로서도 칼리포니아 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소련정부에서는 Russian American Co. 를 세우고 無主空山이던 California 깊숙히 까지 진출을 시도한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여러 조사팀을 보내어 사전준비작업을 마치고 드디어 1812년에 소련인들이 세운 Fort Ross (Ross는 Russia에서 온 말)가 공식적으로 문을 열게 되었고 소련인 약 200여명과 그들이 데리고 온 알라스카의 Aleutian 인들 및 현지 인디안을 포함하여 400여명의 식솔을 거느리는 일종의 러시아 식민지가 탄생한 것이다. 그 당시 San Francisco에는 멕시코의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어 서로 견제하는 관계에 있었지만 그때 멕시코는 스페인과 독립전쟁을 하는 중이어서 산프란시스코 북쪽까지 신경을 쓸 형편이 못되고 보니 두 세력간에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다고 한다.
Fort Ross에서는 농업, 벌목사업, 어업 (물개포획) 이외에도 심지어 조선사업 (어선건조)까지 여러분야에서의 활동이 전개되고 있었고 식물학자들이 북가주의 생소한 식물도감을 만든다든지 칼리포니아 역사상 최초로 기상관측과 기후변화를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련식 교회건물을 세우는 등 서구문명의 도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먼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Alaska의 매각을 염두에 두고있던 소련정부로서는 Fort Ross를 키워서 멕시코와 대항하여 본격적으로 미대륙 진출을 시도하기보다는 현상유지에 급급하다가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채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1941년 당시 금광개발에 손을 데고있던 Sutter 일가에 Fort Ross 전체를 팔아버리고 철수하게 된다. 그러니까 29년간 소련의 신대륙에 대한 교두보 역할을 하던 Fort Ross는 농장으로 탈바꿈하였다가, 20세기에 접어 들면서 Calfironia 주 정부의 역사보존구역으로 지정을 받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북가주 일대에 살고있는 새로 이민온 신세대 소련사람들이 1812년 Fort Ross 창설 200주년이 되는 금년에 대규모 Russian Festival 을 계획하고 소련에서 유명한 악단과 무용단을 초청하여 Russian cultural boom을 재현하고싶어 제법 큰 규모의 축제를 계획한 모양이다.
역사의 물줄기는 백짓장 하나의 차이로 이렇게 흐르기도 하고 저렇게 흐르기도 하는 듯, 어쩌면 소련땅이 될수도 있을 뻔했던 미국 서부의 흘러간 역사를 잠시 더듬으며 소련 음악과 소련 춤을 감상하면서 Russian River Valley에서 생산된 와인을 곁들여 정통 소련 요리를 맛보려 했던 나의 조그만한 계획이 여관방을 예약하지 못한 엉뚱한 실수로 차질을 빚게 되었으니 이 또한 하나의 아이러니 아닌가.
첫댓글 롯또 대박을 팽게친 소련 놈,지금은 가슴을 치고 있겠지.여기 한국은 푹푹 찌는 더위에 시달리고 있는데 거긴 시원해서 좋겠네.미국 시골 구경을 언젠간 한번 해야지......
저녁에 동네 산보 나갈 때는 잠바를 하나 걸치고 나가야 할 정도로 싸늘하고, 낮에도 뽀송뽀송한 낮은 습도에 이상 저온인지 섭씨 25도를 넘지 않으니 사람 살맛 나네. 한국에 있는 여러분께 너무 죄송하외다. 소련사람들이 알라스카를 헐값에 판것을 보면 역사의 흐름이란 기묘한기라. 며칠전 한국 진보당에서 이상한 여자 국회의원 한 사람이 중립을 선언하는 바람에 빨갱이 의원 두 사람이 쫓겨나는 것을 면했는데 그것이 한국 정치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두고 볼 일이로세. 이상한 input 하나가 엉뚱한 output을 낳게 되기 십상인기라.
통진당이 명맥을 유지하고 그들나름의 투쟁을 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그들의 실상을 더욱 더 확실하게 알게되고 앞으로는 그런 야바우같은행동으로 나라를 공산국가를 만들려는 무리가 다시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뜻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난 총선에서 그런 나쁜 행태를 했음에도 아직도 그들에게 미련을 두는 젊은이들이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맞아요.통진당 사태가 오히려 국가, 국민에게 좋은 영햘을 줄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