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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 |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는 1712년 6월 28일 스위스의 제네바 공화국에서 이자크 루소와 슈잔느 베르나르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루소가 태어난지 불과 열흘만에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루소는 어렸을 때 몸이 허약했었다. 그는 두 숙모의 양육을 받으면서 자라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매우 감성적이었으며 머리도 매우 좋은 편이었다. 그가 7,8세 되었을 때는 어머니가 즐겨 읽었던 소설책을 아버지와 함께 밤을 세워 가며 읽기도 하였다. 독서의 영향으로 그는 얼마 안 가서 많은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그 책의 내용을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사물에 대한 감지 능력이 크게 발달하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예사로 보는 일이 없었고 매사에 매우 탐구적이었다. 그가 읽은 책 중에서 『플루타크 위인전』은 그의 애독서 였다고 한다. 그는 희랍 모라의 영웅들이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이야기에 매혹되고 감격하였다.
그의 나이 13세에 제네바에 와서 시계 세공업을 하는 집에서 견습생 겸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악우들과 사귀고 타락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얼마 후 뽕삐어르 사제의 소개로 바랑부인을 만나게 되었다. 루소의 인생은 이때부터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게 된다. 바랑부인의 친절과 권유로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이탈리아의 토리노 수도원에서 약 두 달 동안 승원생활을 하였다. 그 다음해(1729)루소는 바랑부인의 배려로 신학교에 들어가 음악지식을 배워 음악교사를 한 일도 있었다. 1731년 10월 루소는 바랑부인 곁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 동안의 방랑생활의 종막이었다. 그는 바랑부인의 집에서 가사일반의 심부름을 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사상가로서의 루소가 태동된 것이다. 바랑부인은 루소에게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어머니와 같은 바랑부인과 10여년동안 동거생활을 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비교적 체계적으로 공부에 열중했다고 한다.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읽던 습관을 고쳐서 한 가지씩 학문의 영역을 구분하여 공부함으로써 서로의 관련을 찾아보려 했다. 그가 더욱 집중력을 얻기 위해 시간표를 짜 놓고 독학으로 공부한 것이 학교에서 하는 것보다 많은 성과를 얻는 것 같다. 논리학.철학.기학학.대수.라틴어 등을 오전 중에 하고, 오후에는 밭에서 일하면서 사이사이에 생리학.해부학.식물학 등을 공부했다.
루소는 28세 때(1741) 바랑부인의 보호에서 떠나 리용의 재판관인 마불리 집안의 가정교사로 들어갔다. 그러나 가정교사 일은 얼마 못 가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의 성격이 교사직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다시 샹베리로 돌아와 음악공부에 전념하면서 악보의 표기법을 간단히 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것은 일일이 오선지를 그려 그 속에 부호를 써넣는 것이 아니라, 숫자로 음계를 나타내는 방법이다. 그는 이 새로운 고안을 파리 아카데미에 제출하였으나 당시의 음악 권위자들의 인정을 받지 않았다. 루소는 계속 파리에 머물면서 음악 표기법도 그가 쓴 희극 『나르시스 』도 모두 인정을 받지 못하자 실의에 빠졌으나 그 대신 당시의 대표적인 계몽주의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그 중에서 디드로를 알게 되어 실의에 차 있던 그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디드로는 그 후 약 15년 동안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루소의 나이 32세 되던 해 이탈리아에서 파리로 돌아온 루소는 음악공부에 열중하고 오페라 '사랑과 뮤즈'를 작사 작곡하였으나 당대의 음악평론가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1749년 여름 루소는 반센느성에 감금되어 있던 백과전서의 편집자 디드로를 면회하러 가는 도중이었다. 여름 소나기를 피해 나무 그늘에 앉아 손에 쥐었던 신문을 펴놓고 그곳에 실린 광고를 보았다. 거기에는 디종의 아카데미가 다음해의 현상논문을 모집하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논문의 주제는 '학문 예술의 진보는 풍속을
타락하였는가 아니면 순화시켰는가'였다. 루소는 바로 이에 응모할 것을 결심하고 디드로에게 그 내용구상을 위하여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루소의 최초의 논문 「학문예술론」(1750)은 당선되었고, 루소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학문예술론」으로 그에 대한 명성이 높아졌으나 한편으로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고 고질병인 요페증이 악화되었다.
1753년 다시 디종의 아카데미가 '인간에 있어서의 불평등의 기원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현상 논문을 모집한다는 것을 알고 루소는 다시 그 논문구상에 골몰하여 2년 후에 발표하였다. 『인간불평등기원론』(1755)은 인간의 불평등이 사유재산과 고용된 노동에 의해 산출된다는 내용의 혁명적 책이다. 이 논문은 당선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논문으로서 그의 사상은 체계를 갖추어 갔다.
한편 동년 제네바 시민권을 얻어 시민으로서의 긍지를 갖게 된 루소는 신교로 개종하였다. 그러나 그의 종교관을 구교나 신교에 일치되지 않는 자연종교였다. 그는 조국을 그리워했으나 뜻대로 일이 되지 않아 파리 교외의 몽모랑시 숲에 있는 에르미따류에서 살게 되었다. 그곳에서 6년간 그는 정열적으로 저작 생활을 하였다.
그는 1761년『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 정치이론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으며,『에밀』은 교육론이라는 부제가 붙여진 교육의 고전이다.
그는 1년간의 체류 후 영국을 떠나 프랑스로 돌아와 시골구석에 박혀 계속 집필생활로 세월을 보냈다. 1768년에는 데레르와 정식으로 결혼하였다. 루소에게 쾌락과 죄를 공유했던 이들의 관계는 마침내 합법화되었다. 1770년 말에 『참회록』이 완성되어 낭독회를 개최하려 하였으나 저지 당하고 고독에 휩싸인 그는 그후 8년 동안 다시 악보필사의 직으로 되돌아갔다.
그의 저서로 『보몽에 보내는 편지』,『식물학술어사전』,『음악사전』이 있고 다수의 정치이론, 연극, 서한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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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루소의 생애와 그의 저서 등을 살펴 볼 때 그 사상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자연주의의이다. 인간의 자연성을 존중하고, 모든 인간문화와 도덕을 자연에서 이끌어 내려고 하였다. 그는 자유가 인간의 특징이며 그것이 인간의 자연가운데 새겨져 있어서 인간의 본질적인 권리를 이룬다고 본다. 그의 열렬한 자유의 주장이 여기에서 전개된다. 사람만이 향유하는 특권으로서의 자유는 세 가지 양상을 띤다. 첫째는 '자연적 자유'이다. 이는 행위를 외부로부터의 강제 없이 스스로 결정함을 의미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방해받음이 없이 행할 수 있고, 하기 싫은 일을 타인에게서 강요받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사회적 자유'이다. 사회적 자유는 사회의 법적인 '일반의지'에 대한 복종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이 경우 일반의지의 표현으로서의 법에 복종하는 것은 동시에 개인이 자기자신에 복종하는 것 다시 말해 자유인 것이다. 개인의지는 일반 의지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1. 교육사상
루소는 인간성장의 자연적 단계에 따라『에밀』을 5부로 구성하였다. 에밀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남자아이의 성장발달 단계에 따라 유아기.아동기.소년기.청년기 그리고 결혼하기까지의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제 1단계에서는 우선 신체의 발육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시기의 양육 방법은 자연질서에 따라야 함을 강조하였다. 루소의 자유는 사물의 필연성이 가르치는 자연적 자유인 것이다.
제 2단계의 교육 또한 자연에 의한 교육이다. 루소는 이 시기에 발달하는 감각기관의 훈련이 신체적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이 시기에 책을 통해서 감각훈련을 하거나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유해하다는 것이다.
제 3단계의 교육은 에밀에서 제 3부와 제 4부에 해당되는 시기의 교육이다. 12세에서 15세까지에는 신체적.감각적 발달에 기초를 두고 지적 발달을 도모하는 시기였다. 지적 훈련만이 아니라 육체적 훈련 또는 육체 노동의 필요성도 함께 강조한다. 육체노동은 어른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연령에 맞는 신체 단련을 그리고 일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이해를 그 목표로 하였다.
청년기의 교육은 루소의 가장 의도적이고 본격적이 교육론이 전개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들어서 본격적인 지적 교육이 실시된다. 역사, 문학, 철학, 법률 등의 다양한 학과목이 교수내용이며, 뿐만 아니라 청년기에 가장 깊은 영향을 주는 사람과 종교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제 5부에는 에밀과 결혼하게 될 소피라는 이름의 가상적인 여자를 위한 교육론이 전개된다. 이는 에밀의 이성에 대한 사랑과 결혼을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여자교육론이라 하겠다.
루소의 여자교육론은 그의 진취적인 일반교육론과는 달리 보수적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그는 여성은 남성과 종으로서의 동등한 인간이나 성이
다르기 때문에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자는 과학이나 물리학 또는 사변적 학문에 맞지 않다고 보고 가정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이 있고, 남자에 대한 내조자로서 현숙한 여자가 여성교육의 목표라고 보았다. 그의 남성중심, 가정중심, 교육이 여자교육의 기초를 이룬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 혹은 노예와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위에서는 에밀의 내용을 개관하면서 그의 교육이론을 발달단계별 살폈다.
첫째, 루소는 사람의 교육은 3종의 다른 교사에 의하여 교육된다는 것이다.
그 3종의 교육이란 1.자연에 의한 교육, 2.사물에 의한 교육, 3.인간에 의한 교육을 말한다.
자연에 의한 교육이란 인간의 내부에 천성을 갖추어진 각 기관과 능력의 자연스러운 내면적 발달을 의미한다.
루소의 교육론은 주관적 자연주의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그리고 그의 교육론을 소극적 교육이라고 하는 점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에밀에서 교사는 지식을 가르치기 위한 교사라고 하기보다는 에밀의 천성이 순조롭게 발전하는 것을 보호하여 인위적인 간섭을 하지 않고 자연성 그 자체로서 진행을 믿고 돕는다. 따라서 교사는 무엇을 직접 가르치기보다는 안내자로서 선도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아동 자신이 스스로 발견하도록 유도할 뿐이다. 루소의 이와 같은 교육은 교육방법에 있어서 아동중심, 개성의 존중, 생활중심, 활동중심의 교육으로서 새로운 교육운동의 기초가 된 것이다. 둘째, 루소의 자연에 의한 교육은 습관형성과 노력과 연습에 의한 능력 계발 즉 육체적 훈련을 통한 정신적 육체적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교육에 대한 안내자로서 자연적 흥미의 원리를 열렬히 주장하였다. 루소는 사람의 감각, 지성 및 심성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차례로 그들 자신의 특유한 자연적
흥미를 나타낸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나타났을 때 교육은 여기에 적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루소는 인간발달에 있어 명확한 단계에 따른 교육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아동의 성장단계는 자연 자체가 창조한 뚜렷하고도 확실한 관계에 의해서 특징 지워지며 특별한 흥미, 충동, 혹은 각 단계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요구는 자연이 교사에게 제공한 교육의안내인 것이다. 여기에서 교사는 다음 단계를 예상해서는 안되며 단지 아동의 현단계에서 아동의 발전에 만전에 기해야 한다고 하였다.
루소의 자연에 의한 교육은 개인의 환전한 자연적 성장의 달성을 교육 목표로 삼는다. 그는 자연적 인간이 시민적 인간보다 더 위대하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자연의 질서에 따르면 인간은 모두 평등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루소는 시민, 전문적 직업준비라든가 어떤 사회계층에 속하는 생활에의 훈련교육은 모두 인간성의 완전계발에 저해요인이 된다고 하였다. 즉, 개인은 고정된 제도의 구속에서 벗어나 개성의 보전을 위하여는 미래에 대한 준비는 경시되어야 하며 개인의 성장단계에 있어서 그때그때의 자연적 흥미에 따른 교육을 하도록 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루소의 자연에 의한 교육은 우선 주된 교사를 자연에서 구했으며 자연적 흥미는 교육과정의 지침이며 교육의 목표는 인간형성이 그 중심내용이 되는 것이다.
2. 교육사적 의의
루소의 교육론은 아동존중사상과 자연주의사상을 핵심으로 사회개조를 목표로 한 교육사상이며, 현대 교육 사상의 효시하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육론은 그의 실제 생활태도와 일관성이 없는 서술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첫째로 그의 이론은 실행하기 어려운 교육론이라는 점이다. 특히 루소 자신이 자기의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냈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이론을 탁상공론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둘째로 비판되는 점은 그의 모순된 논리이다. 그가 주장하는 자연주의도 분명한 개념파악을 어렵게 한다.
셋째로, 그의 교육론은 이상적인 점을 긍정하면서도 현대사회에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한 아이에 한 교사가 늘 같이하면서 교육을 실시하는 일은 현실하회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루소 자신은 다른 서술에서 공교육문제를 생각하고 이상적인 공교육제도를 제시해 보기도 하였으나, 결국 학교교육이 이상적인 교육을 실시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진정한 의미의 교육은 한 인간이 쏟는 정열과 정성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진보주의 교육사상가들도 루소가 주장하였던 바와 같이 정치적,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곳에서는 개인을 교육의 주체로 삼았다. 여기에서 개인은 국가보다 우위에 두는 교육이 된다. 민주국가의 교육은 개인과 자유, 개성의 신장을 존중한다. 이런 이상이 존재하는 곳에서 여전히 루소의 에밀정신을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루소의 이러한 문명비판은 그 자체로서 파라독스적이다. 문명이 아무리 부정된다 하더라도, 그리고 루소가 말하는 `자연을 따르는 교육'이 아무리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해도, 교육의 종착점이 야만적인 자연상태일 수는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근대 시민사회의 혁명을 주도한 사회사상가로서의 루소가 가지고 있었던 문명관과 자연관은 생래적으로 파라독스를 안고 있었고, 이것이 그의 교육관이나 `교육이론'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사실 루소 그 자신의 삶과 사상 모두가 파라독스적인 요소들을 안고 있었고, 지금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말한다면, 이 점에서 그는 18세기적 사상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루소의 눈으로 보는 인간문명의 타락에 대한 고발과 이를 감동적인 필치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루소의 문체이다. 고교생이라 할지라도 이 책을 단숨에 다 독파하기는 쉽지 않으며, 우선 앞 부분(제 1권에서 제 2권까지)을 읽고 근대 문명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해서 `노예적 삶' 이상의 삶을 누릴 수 없게 되었는지에 대한 루소의 문제의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은 독자에 따라 더 나아가도 좋고, 중단해도 좋다.
다만 한가지 주의할 점은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루소라는 `교육 이론가'가 제시하는 교육이론들을 그대로 신봉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에밀>은 루소의 교육이론을 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를 가리켜 본격적인 의미의 교육이론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보아야 할 것은 그의 교육이론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안목으로 그가 본 인간과 문명 그리고 사회의 모순과 타락인 것이다.김안중/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에밀』
루소는 글의 내용의 흐름에서 『에밀』이라는 이름의 인물을 등장시켜서 그의 성장을 따라 글을 전개시키고 있다. 실제적으로 에밀의 자세한 성장의 흐름은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에밀의 성장을 단계적으로 구분하여 그 각각의 단계마다의 흐름 속에서 루소의 생각이나 주장을 나타내고 있다.
1편에서 루소는 교육은 출생과 동시에 시작된다고 하면서 우리가 참으로 배울 것은 인간과 그 환경이고 진정한 교육은 타에서 배운 것보다 스스로 실행해 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루소는 어린아이의 신체의 단련과 부모와의 관계를 논하였다. 어린아이의 신체의 단련의 시작은 태어난 직후 수건이나 허리띠나 보자기 같은 것으로써 잡아매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또한 사지를 자유로이 하여 어린아이가 자유로이 운동할 수 있도록 커다란 산 의를 입히도록 할 것을 표하였다. 이것은 막 태어난 아이가 꽉 막힌 것보다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게 함으로써 그의 신체적인 발달에 기초를 마련하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그리고 갓난아이가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것은 지성의 활동도 또한 의지의 활동도 없는 순전한 반사적 운동이기 때문에 그 것을 구속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귀족사회에서 귀족들이 즉 부모들이 자식이 태어났어도 자신들이 직접 돌보는 것보다는 유모들에게 자식을 맡겼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루소는 갓난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의 부모와의 관계를 교사의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였다. 그래서 좋은 교사는 어떠한 자격이 필요한 것에 대해서 많은 논의를 했지만 첫 번째로 제시한 것이 그 자격을 돈으로써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직접 즉, 부모 자신이 그것을 담당해야 한다고 하였다.
2편은 3세부터 12세까지의 시기로서 전형적인 아동시대로 중심을 잡았다. 여기서 처음 나오는 것이 사람이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처음으로 배우고 가벼운 고통을 무서워하지 않고 참으며 큰 고통을 참으로 배워 나가는 시기로 설정을 하였고, 어린애의 성장의 중심이 되는 시기로서 아이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자 아이의 자유로운 성장배경을 제시하였다. 아이의 성장을 위하여 아이가 뛰어다니려고 할 때에 이를 제지하여서는 안되며, 아이가 가만히 있으려고 할 때 이를 권장하여서도 안 된다고 하였고, 아이들이 뛰고 싶어 할 때는 뛰게 하고 소리 지르게 하고 싶으면 지르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즉 아이의 자유로운 성장배경을 제시하였다.
3편에서는 제 3의 시기로서 12세부터 15세까지의 소년기를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는 청년기에 이르기까지의 어렵고 허약한 단계중 마지막으로서 이성의 훈련과 지성의 기초를 이루는 훈련을 다루고 있다. 또한 앞선 두시기와 같이 지속적인 사물의 교육을 중심으로 삼고 있으면서, 사회생활의 개념을 익히도록 유도를 하고 있다. 이 시기에 아이의 체력은 욕망보다도 훨씬 급속도로 발달하게 되며 삶에 있어서 근본을 이루는 최대 체력의 증진기로서 일생중 가장 귀중한 시기이자 짧은 시기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근로, 면학, 교훈을 얻는 시기이다. 이 체력증진의 기간에 그에 맞는 방향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장래에 소용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아이에게 교훈을 주고자 할 때에는 순전한 이론적 지식은 이 시기에는 적당치 않다고 서술하고 있다. 오히려 이 시기에는 모든 실험을 연역에 의해서 연결시키면서 자연의 모든 법칙을 연구함에 있어서 가장 평범하고 명백한 현상부터 아이의 사물교육의 근간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또한 노동은 사회에 사는 인간의 필수적인 의무임을 강조를 하면서 근로의 가치성과 자기자신의 실정에 맞는 노동의 선택을 중시하고 있다.
이렇듯 1, 2, 3편에서는 아직 이성을 형성하지 못한 '아이'라는 표현으로 그의 교육론을 표명하고 있는데 특히 '자연'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루소가 말하고 싶어하는 [자연]이라는 말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라기 보다, 더 넓은 광범위한 조물주가 창조한 그대로의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은 상태로서의 굳이 말하자면 '순결'이라고 해야 할까? 청소년기 이후도 마찬가지겠지만 유아기 때의 교육법은 있는 그대로를 가르치는 즉, [소극적인 교육]이라고 했다. 이 책의 서두에 [신이 만물을 창조할 때에는 모든 것이 선하지만, 인간의 손에 건네 지면 모두가 타락한다.]라고 시작된다.
그의 소위 [소극적 교육]이란 것은 아동기 교육 때에 특히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을 때 인간은 대단히 강하다. 그러나,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려고 안간힘을 쓸 때, 약한 존재가 된다'라는 표현으로 그의 소극적 교육론을 약간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그의 [소극적 교육론]에 대해 무조건 적인 찬성은 있을 수 없다. [에밀]이 쓰여진 시대에는 지금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필력에 동조했겠지만 시대가 변한 지금의 시점에서 내가 본 소극적 교육론은 그렇지가 못하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아이들은(물론 나도 지금의 아이들과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쳤지만) 이성보다는 감성 쪽에 치우쳐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런 소극적인 교육방법을 무관심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고 그런 무관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주위에 모든 현상을 너무 의식하게 되기 쉬워진다. 이런 것이 바로 소극적 교육의 역효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또, 루소는 '지혜라는 것은 모두 비굴한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지혜를 갖춤으로써 인간은 보다 더 사색하게 되고 발전하게 된다는 현대 철학가들의 주장도, 또 고대 '소피스트'들의 주장도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의 사상에 깔려 있기에 너무 극단적인 의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혜와 지식과의 상관관계와 그 차이를 염두하고 이렇게 생각해 볼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탁월히 우수성을 인정받는 아이는 어쩌면 지혜보다는 지식에 대한 갈구가 훨씬 큰 아이일 것이라는 비관 섞인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에밀에 대한 루소의 교육법중 '시간을 소비하는 교육법'에 아이의 내면에 있는 '자연'을 다치지 않게 보호하면서 아이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유의하여 관찰하고 그런 아이의 관심을 재능으로 연결하여 발전시켜 줌으로써 좀더 행복한 소년기를 보내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현대 아이들은 굳이 루소의 표현을 빌자면 학교라는 또 책이라는 속박 속에서 당연한 의무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앞으로 성장해서 소년기의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 지을 추억꺼리도 없이 말이다.
4편은 15세부터 20세까지로서 종교적, 도덕적 감성의 성숙의 시기이며 감정에 따라 이성을 완성하는 시기이다. 우정과 동정 등의 인간적 감정이 생기며, 성의 의식이 깊어지고 종교에 의하여 영혼의 교육이 완성되는 시기이다. 루소는 이시기에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신체적인 변화의 예를 들어 제 2의 탄생이라 일컬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인간의 진정한 삶이 시작되며 이 후는 인간의 욕정도 모르는 것이 없고 보통 교육이 끝나는 이 시기야말로 정말 교육이 시작되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를 하였다. 청년이 인간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얻기 전에는 세상을 보지 않는 것이 좋음을 말하면서 마음의 집중과 인간 자아의 힘을 강요하는 대상을 주의해서 멀리해야할 것을 제시하였다. 종교에 의한 영혼의 교육에서 도덕성은 행위에 관해서 스스로 판단하는 속에 있으며 선은 선한 것이 진실이라면 우리가 하는 일에 있어서와 같이 마음에서 선이어야 할 것이며 정의의 첫 보수는 그것을 실행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본성에 맞지 않는 다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인이 될 것이므로 스스로 본성을 타락시키지 않는 한 악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4편에서는 마지막으로 청년의 취미에서 논하면서 끝을 마무리 지었다.
이렇듯 4편에서는 청소년기의 교육법에 대해 다루어지는데 이 시기에는 유아기 때부터 쌓아 온 신체 및 감성, 오감을 토대로 잘 다듬어진 이성을 창출해 내는 시기로 그 중요성이 가장 강조되고 있다. 이시기에 인간은 참으로 인생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즉, 보통의 교육이 끝나고 정말로 우리의 교육을 시작해야만 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잘 발달된 신체와 감성이 올바른 이성을 확립하는데 기초가 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지혜롭지 못한 지식으로만 이성을 확립하려 한다면 이것은 아마도 언젠가는 붕괴할 사상누각의 위험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쌓아올리는 것과도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앞에서 다룬 [소극적인 교육]을 그는 배제하지 않았다.
그의 이런 주장은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기의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그 시기를 거치고 인생을 판단하기에 충분한 이성을 확립한 어떤 현자에게도 부족함이 있는 것이라는데 나의 지지를 보낸다.
청소년기의 교육은 비로소 한 아이가 사회를 향한 첫걸음을 보다 옳고, 건강한 방향으로 내딛게 하는데 그 중요성이 있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루소의 교육사상이 당시 현실비판에 젖어 있는 한 철학가가 내뱉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언어표현이라고 생각되지 않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제 5편은 청춘시대의 막을 고하면서 결혼시기이며 이것은 생활을 수립하여 감정을 안정하고 내적인 자유를 낳는 완성이다. 루소는 이 5편에서 에밀의 배우자를 찾으면서 소피이라는 여자인물을 내세우면서 『여성교육론』을 서술하였다. 물론 "소피이"는 전편에서도 서술되었지만, 이 5편은 결론부분이 에밀의 결혼시기이므로 이 5편에서 에밀의 배우자인 "소피이"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서술하였다. 소피이의 성장과정과 그녀의 교육의 근간을 논하였으며 다시 에밀과의 결혼 직전에 있었던 그 사이를 서술하고 글의 마지막에서는 에밀과 소피이 사이에 아기가 태어날 것임을 말하면서 다시금 새로운 시작을 느끼게 하였다.
이상으로 루소의 [에밀]에 관해 각 단계별 교육법에 대해 이해와 비판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루소는 이 책의 서문에서 그가 말했듯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 나가 느낄 수 있는 너무도 공상적이고 이상적인 교육론으로 인해 비판의 소리를 듣기도 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 비판의 소리보다는 반드시 그의 고찰을 이용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표현하였다.
현대를 사는, 아이를 키우거나, 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환경에 적당히 혹은 의도적으로 철저히 적응하면서 환경에 굴복하기보다 자신만의 확고한 주관을 정립하여 [루소]처럼 대중에게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도 이사회의 한사람으로써 지금껏 주로 표면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나의 주관을 보다 확실하게 정립하므로 써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의 감정에 대해 부끄러움 없는 생활을 하려 노력해야 갰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대에 씌어진 책은 아니지만 감성적인 교육을 실행함에 있어 어떤 기준을 제시해 주는 책으로써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보다 낳은 교육, 살아있는 교육, 자연적인 교육을 위한 지침서가 될 만한 책이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얻는 여러 가지 지혜와 지식중 어쩌면 어른이 되어서는 얻을 수 없는 아이들만의 지혜와 지식을 얻게 해 주는 것이 현대교육에 부여된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된다.
일반의지
일반의지는 루소의 정치철학이 집약적으로 표현되는 중심적인 개념이다.
개인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구성원 공동의 힘으로 각자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며 개인은 전체에 결합되어 있지만 자기자신에게밖에 복종하지 않고 이전과 같이 자유로울 수 있는 하나의 결합 형태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계약을 통해 형성된 사회에서는 개인과 전체의 유기적 통합을 통해 개인의 이익과 국가이익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종전의 계약론자들이 개인과 국가를 대립갈등의 관계로 보는 것과는 달리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전체 질서를 파괴하거나 전체질서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을 금하고 있다.
계약의 성립과 동시에 개인들 대신 하나의 정신적이고 집합적인 단체가 형성된다. 이 단체는 정치체(국가)이며 이 정치체가 갖는 의지가 일반의지이다. 일반의지는 국가 유지를 위해 각 구성원에 대하여 절대적인 힘을 가진다. 일반의지의 기본속성을 보면 첫째, 일반의지는 항상 정당하고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다. 둘째, 일반의지는 구성원 전원의 의지를 바탕으로 해서 형성되어야 하며 모든 구성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전체의지와 일반의지의 차이를 살펴보면 일반의지는 공동이익을 고려하지만 전체의지는 개인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특수의지의 합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특수의지로부터 지나친 것과 모자라는 것을 상살하게 되면 그 합계로서 일반의지가 남는다. 여기서 루소는 전체 구성원의 의지라고 해서 반드시 공동이익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며 항상 일반의지가 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일반의지와 전체의지의 구분은 루소가 합리주의적 자연법 이론자들을 비판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자연법은 공동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객관적 조건으로 제기된 것이지만 실상은 불평등한 조건에서 개개인의 이해관계를 타협적으로 조정한 것에 불과하며 결과적으로 그것은 사회적 불평등과 소유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있다. 반면에 일반의지는 사회내 기존의 다양한 이해관계나 견해의 조정 내지는 타협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성원을 동일선상에 놓고 그런 동질성 위에서 실현가능한 단일한 원리로 구성된 정의와 진리이다.
루소는 일반의지는 다수결로 판명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자기의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이 우세를 차지했을 때 그것은 자기가 일반의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실은 일반의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반의지는 항상 올바르지만 그것을 인도하는 판단이 항상 현명한 것은 아니다. 공중은 행복을 바라지만, 무엇이 행복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면서 인민은 스스로 일반의지를 인식할 수 있다고 보지 않고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계몽을 통해서일반의지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계몽자로는 입법자(사회 내에서 이익을 갖지 않는 자)를 들고 있다.
루소는 그 시대 사상가들이 기존의 사회 불평등을 인정하고 특수계층만을 위해 내세웠던 합리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자연법 이론 대신에 일반의지를 설정한 것은 그들이 보편적 정의를 외적법칙에서 찾는데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함이었으나 자연법 이론에서 완전히 이탈한 것이 아니라, 고전적 자연법이론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 루소는 일반의지가 당시 광범위하지만 소외된 선량한 농민들의 의사를 바탕으로 해서 발견될 수 있다고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을 신뢰하지는 못한다. 입법자의 계몽을 통해서 획득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교육
루소는 그의 정치적 핵심사상인 일반의지를 실현할 수단으로 교육을 택했다. 사회적 정념에 지배되어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본성을 지닌 개인들의 개별의지를 공공선을 추구하는 일반의지와 일치시키는 것은 저절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공의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공공교육은 두가지 목적을 추구한다. 첫째, 유덕한 시민을 길러내어 개인 의지를 일반의지와 일치시키는 것, 둘째, 일반의지의 기반이 되는 동질적인 사회의 형성과 유지를 통하여 사회유대를 강화해 일반의지를 유지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자연적 관계는 법에 의해서 형성된 관계와 잘 조화되게 된다. 즉 법의 강요 없이도 사회에 충실한 시민이 육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 교육이 추구하는 바가 공교육과 개별교육이 가가 대립된다. 공교육이 질서와 평등을 강조하여 개인을 규제하는 교육이라면 개별교육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이 두 교육방법의 조화가 가능한가? 개별교육은 당시 절대주의 체제와 그 교육제도 아래에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함을 깨닫고 자연주의 교육을 통해 자유를 최고로 발휘케하며 개인이 이성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공공선을 지향하게 되는 것을 시민의 덕성으로 간주한다. 결국 두 교육방법은 모두 공공선의 지향아래 모순없이 조화된다. 그러나 이 두 교육방법은 적합한 사회가 다르다. 일반의지가 구체화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개별교육을 통해서 그리고 일반의지가 도덕적으로 표현된 사회에서 의무에 자발적으로 복종케하는 태도를 공교육을 통해 육성하여 유덕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루소의 사상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아직 이성을 중시하는 합리주의가 팽배해 있던 시기였으므로 이성을 비판하고 감성을 중시하는 그의 태도는 당시의 사상가들로부터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는 당시의 교육풍토를 비판하고 사회를 비판함으로 많은 적을 만들었다. 후에 여론까지 안좋아져 이리저리로 피신을 다녀야 할 정도였다.
그가 쓴 <<에밀>>은 그의 교육철학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그의 삶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에밀>>에서는 아동의 어린시절 부모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고 있지만 테레즈와의 사이에서 낳은 다섯 자녀들을 모두 고아원에 맡기는 등 이율배반적 면모를 보인다. 루소의 이율배반성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그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안아 어머니를 잃음으로써 그의 따스한 모성애에 대한 결핍과 집에서 안락하게 보살핌을 받을 시기에 남의 집을 전전하는 등 결코 평탄하다고는 볼 수 없는 그의 불우한 환경때문인 것 같다. 그러한 결핍들이 그로 하여금 이성적인 면보다 감성적인 면에 치중하도록 만들었다. 감성적인 면은 그가 이성적이고 도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함에 있어서 장애요인으로 작용했을 뿐 아니라 그가 지닌 운명의 두 극단과 양립될 수 없는 그의 두 가지 성질들이 그로 하여금 이울배반성을 지니게 한 것이다.
사회 계약설
17, 18세기의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이론으로 정치 사회 성립의 역사적·논리적 근거를 평등하고 이성적인 인간의 계약에서 구하려는 정치 사상입니다. 중심 개념은 국가 등 정치적 제도의 성립 자체가 평등한 개인들 사이의 계약에 의해 형성된 것이며 계약의 당사자인 개인의 의상에 따라 그 존재가 좌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중세 이후 성장한 시민 계급의 사상적 기반이 되어 절대 왕정에 대항하는 시민 혁명을 낳게 하였다. 그러나 사회 계약설이 민주 국가의 윤리성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측면에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하더라도 정치 사회 성립의 실증성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문제점도 또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 이론을 발전시킨 대표적 사상가로는 T. 홉스, J.J. 루소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홉스의 경우에는 인간의 자연 상태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로써 이러한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자신의 자연권을 특정 지배자에게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반면 로크나 루소의 경우에는 아무리 계약에 의해 자연권을 양도하였다 하더라도 결코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있으며 그것은 생명과 자유, 재산 등과 같은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권리라고 주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의 권리를 양도받은 지배지가 계약을 위반하였을 때는 마땅히 자신의 권리를 되돌려 받기 위한 '저항의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루소의 경우 일반 의지로 표현하였으며 이러한 일반 의지로서의 국가가 각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고 하였다.
사회 계약설의 발달
자연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