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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혼 영광의빛<41> | ||||||
강위원 여민동락원장/광산구 노인복지관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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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와 운동은 하나이며 인류를 위한 최고의 실천적 사랑입니다” 묘량 여민동락 설립운영 ‘투게더광산’으로 새로운 사랑운동 주목 영광 묘량에서 농촌노인들의 새로운 생활복지로 인정받고 있는 여민동락(與民同樂) 강위원 원장. 그가 광주 광산구가 운영하는 노인복지관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지난 2월 광산구가 운남권 노인복지관을 위탁에서 직영으로 전환하면서 시설장을 공모하자 새로운 복지모델을 만들겠다며 지원서를 냈다. 응모자 3명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채용된 그는 첫 출근과 함께 관장실을 개방해 등록된 노인들을 만나면서 기존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매일 어르신 500여명이 이용하는 시설인 만큼 문 닫는 시간을 저녁 6시에서 밤 10시로 늦추고, 주말·휴일에도 북카페 공연장 등을 운영해 항상 열려 있는 쉼터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민형배 광산구청장과 머리를 맞대고 민관 공동복지망 ‘투게더광산’이 지난 6월 10일 광산문화예술회관에서 출범식을 갖고 공식 활동에 돌입했다. ‘투게더광산’은 전국최초로 민간영역과 공공영역의 장점을 합해 사회적 배려계층을 지원하는 참여와 나눔의 광산형 복지모델이다. 이를 위해 관내 광주시공동모금회와 광주시사회복지협의회 등 사회복지기관은 물론 언론 및 의료기관과 공동체 사업 MOU를 체결하고,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하는 공동체사업 교육 컨설팅을 비롯해 첨단·보훈·KS·호남·수완병원 등과 공동체 사업 추진, 사회적 배려계층 1:1로 돕는 일촌나눔운동, 재활용협회와 나눔장터, 중고가전제품 수리 사업, 에너지공급업협회와 연탄 수급가구 지원, 유치원·보육시설연합회와 보육 멘토링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하는 ‘투게더광산’의 새로운 복지모델이다. 이를 토대로 지난 10월30일에 ‘투게더광산 나눔페스티벌’이 경산공원에서 성대하게 열려 다양한 행사와 먹거리, 볼거리는 물론 가족들과 함께 할 충분한 감동의 나눔장터가 되었다. 이 중심에 강위원 투게더광산집행위원장이 서있다. 기본 사업을 구상하고 출범식에서 페스티벌까지, 함께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방향을 제시했다. 5.7매
지난 2008년 묘량면 영양리에 자리잡은 '여민동락(與民同樂)은 농촌공동체 모델을 만들어 복지 사업의 새로운 표본을 만들어보겠다고 설립했다. 여민동락은 설립 이후 모시떡을 '할매손'의 이름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등 농촌 일자리 사업단과 야학, 마을기업센터 등의 사업에 주력하면서 이곳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기본 자산을 바탕으로 도시에서 생산과 유통, 소비가 일체를 이루는 자급자립형 공동체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역에서 조손가정 아이들을 비롯해 학습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도 ‘여민동락’ 일꾼들의 나서 ‘큰들야학’을 운영하고, 폐교 위기의 묘량중앙초등학교를 살리기 위한 ‘작은학교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여민동락’이 생각하는 작은학교는 그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닌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지역민이 모여 함께 어울리는 곳이 목표이다. 그래서 ‘작은 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밤이면 마을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기도 한다.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도 담당하고 있다. 강원장은 “앞으로 농촌은 인구가 고갈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대규모로 유입될 것이고, 도시가 아닌 농촌기반의 삶이 각광받는 시대가 될 것이다.”고 말한다. “농촌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들이 종횡으로, 유기적으로 묶이고 엮이는 전국적 네트워크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게 강 원장의 포부다. 그는 ‘여민동락공동체’가 출발할 때 10년의 목표를 세웠다. 지역 주민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공동체의 모델은 농촌공동체, 도농복합공동체, 도시 공동체 등에서 각각의 환경과 조건에 따라 방식이 다른 실험이 시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영광의 ‘여민동락’이 농촌공동체의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면 광산구는 대표적인 도농복합지역으로서 신도시와 구도시가 공존하며 농촌까지 포괄하고 있으며, 생산과 유통, 소비를 조그마한 자치단체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지역이므로, 이곳에서 도농복합도시의 특성을 살린 자급자립형 공동체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의지이다. 강위원은 광주 서석고에 다니던 89년 광주지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맡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정과 참교육 실천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가 6개월 동안 수감됐다. 이 일로 학교에서 제적되자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형편이 어려운 동료들과 ‘바보회’를 만들어 복지시설을 후원하기도 했다. 94년 전남대 국문과에 입학한 뒤에는 과 학생회와 장애인 공동체의 자매결연을 주선하는 등 일찍부터 나눔을 실천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전남대 총학생회장과 한총련 의장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4년2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면서 “현장 실천은 사회복지로 한다”는 결심을 굳히고 출소 후 사회복지를 공부하였다. 예전에는 분열이 사고의 중심에 서 있었더라면 지금은 그 당시의 삶 자체가 소중하게 다가온다는 강 원장은 “적극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학생운동은 인턴 과정으로 인턴은 실수할 수 있다”면서 “본격적인 운동의 시작은 사회진출 이후로서 생활인으로서의 경쟁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자기 분야에서 확실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지금이야말로 일정한 생활 기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열정은 그 당시의 치열함으로, 새로운 일에 대한 도모는 생활인의 시각으로 학생운동 때 보다 오히려 더 대중에 기반한 성숙한 운동을 할 수 있다”며 “정치 활동에 대한 지향이 있으면 진보정치로,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현장에서 서로 경계나 구분을 짓지 말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통일운동의 ‘선봉장’이었던 한총련 전직 의장 강위원은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복지 공동체를 통해 통일시대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한 시대를 함께 한 친구들에게도 그는 손을 내밀며 밝은 웃음을 건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