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2일 수요일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지음 / 김하현 옮김
진짜 도둑
집중력을 도둑맞다니. 도둑이라니. 무슨 소린가 싶다가 시선이 핸드폰으로 향한다. 내 시간, 생각, 관계, 대화, 때로는 잠도 밥도 다 삼켜버리는 핸드폰. ‘너라면 나의 집중력도 삼킬 수 있지.’ 그러다 곧 생각이 바뀐다. 따져보면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건 나인데. 매번 스스로 정한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이것까지만. 아니 이런 것도 있었네.’ 하며 스크롤을 계속 내리는 것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도 나인데 누굴 탓하고 있는 건가. 누가 도둑이라는 건가. “문제는 네 안에 있어.”(235쪽) 내면의 소리에 자책은 깊어지고 반복되면 괴롭다. 언제나 나는 아는 만큼 행동하지는 못하기에. 아는 것은 원하지 않아도 많아지는데 몸은 원하는 만큼 움직이질 않으니 “그래서 뭘 시도해 봤습니까? 당신은 뭘 해봤죠? 보통은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225쪽) 같은 말에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지나친 자책 모드를 경계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내가 느끼는 괴로움과 비슷한 감정에서 시작한다. “오래전부터 나는 집중이 안 될 때마다 화를 내며 스스로를 탓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넌 게을러, 자제력이 없어, 정신 바짝 차려야 해. 그게 아니면 핸드폰을 탓하거나, 핸드폰에 격노하거나, 핸드폰이 아예 발명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21쪽) 공감은 책장을 넘기는 속도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은 이 책을 끝까지 집중해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나는 집중력 저하가 주로 나나, 여러분이나, 여러분 자녀의 개인적 실패가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를 찾아냈다.”(22쪽) 강력한 증거란 무엇일까. 이토록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건 정말 맞을까. 확인하고 싶었다.
눈에 보이는 도둑은 핸드폰 혹은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나다. 그러니 핸드폰만 없으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더 의미 있게, 더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혹은 내가 핸드폰을 붙잡고 있지만 않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 같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언제나 보이지 않은 것이 더 크다. 힘도 세다. “우리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할 때마다 화면 너머에서 엔지니어 천여 명이 우리가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게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319쪽)고 있다니 섬뜩하다. 그들이 최선을 다하는 이유가 사람들의 집중력을 빼앗거나 끝장내기 위함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181쪽)에 씁쓸하다.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존중하고, 사람들을 최소한으로 방해하도록 기술을 설계할 수 있음에도 집중력을 좀먹는 현재의 기술 작동 방식을 허용한 것이 사회 전반의 선택, 우리의 선택이라는 사실(200쪽)에는 힘이 빠진다. 도둑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잡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 우리라니. 이러나저러나 도둑은 못 잡겠으니 방해 금지 버튼이나 찾아 누르겠다고, 핸드폰을 멀리하겠다고 고투(苦鬪)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의 최선이라니 답답하다. 집중력 저하가, 내가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나의 실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격하게 동의하고 위안을 얻기도 했지만, 핸드폰 화면 너머 도둑의 실체를 따라가다 보니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도둑을 잡을 수 있을까. 이 거대한 도둑을.
저자 역시 힘이 빠졌다(259쪽). 소설도 아닌 이 책에서 나는 감정선을 느꼈다. 괴로움, 열정, 희열, 분노, 좌절, 씁쓸함, 간절함…. 책을 끝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저자는 집중력 저하의 문제가 개인의 실패가 아님을 분명하게 밝히고,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고 있는 세력에 함께 맞서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간절하게. 정치적 체념이 느껴지는 문화에서(259쪽) ‘어차피 안 바뀔 텐데’를 수도 없이 경험한 우리는,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문화에서 끊임없이 개인적 해결책을 찾으라고 압박받고 있는(326쪽) 우리는 사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자책을 일삼다 무기력해진 개인으로 섬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바로 그것. “우리는 무력하며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비관적 믿음”(262쪽)은 악착같이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거대한 세력,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아 간 진짜 도둑이 가장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하는 힘, 포기하지 않는 힘이 거대하고 강력한 세력과 맞서 끝내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나아갔던 인류 역사를 이야기한다. 평범한 여성들이 뭉쳐 수많은 성차별과 여성 혐오에 맞서 싸웠으며, 상황이 무척 힘들 때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262쪽). 평범한 사람들이 단체를 조직해 동성애자의 삶을 좌절시키는 세력의 종식을 요구했다(263쪽). 1981년, 영국에서는 한 가정주부가 유연 휘발유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정부가 휘발유에 들어가는 납의 양을 2/3 삭감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327쪽). 핀란드에서(283쪽), 뉴질랜드에서(292쪽), 파리에서(303쪽) 지금도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적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혀 잡힐 것 같지 않은 도둑이 잡히기도 하는 것이다.
도둑의 실체를 이제야 알았다. 빼앗긴 것이 어디 집중력뿐일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다. 도둑맞은 것을 되찾는 일이 수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결코 불가능한 일이라 말할 수도 없다. 많은 사람이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길 원하고, 전례 없는 위기(기후 위기)에 직면한 우리에게 집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간절하다(431쪽). 언제나 그렇듯 이제 선택은 우리 몫이다. 힘을 합쳐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 움직일 것인가. 만만찮은 도둑을 어찌 상대할 수 있겠냐며 눈감을 것인가.
첫댓글 늦게라도 올렸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아무리 다듬어도 잘 다듬어지지 않는 글을 올려봅니다^^;
오, 책의 실천적인 부분을 강조해서 잘 정리하셨어요! 특히 마무리가 아주 좋습니다. 6월 등대나눔자료 서평으로 pick!
항상 거대집단을 어찌 상대할 수 있겠냐며 눈을 감은 일인은 책을 읽은 후부터 핸드폰을 놓고 산책하는 작은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쌤 글 너무 좋아요...! 힝~~ 소리 질러, 혜화 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