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절 “그러나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하나님을 알지 못할 그때에는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을 했다고
말하는데 그것들은 본성적인 신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성의 유전이며 상속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육신에 미혹이 되어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을 섬기는(롬1:25) 부류들이 얼마나 많은지...
문제는 본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8장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그들이
믿음에 있어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님을 말합니다(요8:40) 그 다음엔 너희는 마귀의
자녀들이라고 말씀합니다(요8:44) 그들이 하나님이라고 칭하기만 할 뿐 정작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쉐마 운운하지만 아직까지 유대교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회심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이라고는 하지만 하나님 아닌 다른 자들에게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유대인이 큰댁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9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분이
하나님이시구나 하고 알도록 계시로 하나님이 알려졌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존재가 바로 이런 분이구나 하고 아는 계시의 시대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14:9)라고
하신 말씀이 실재가 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그리스도를 알면
‘아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 하고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요10:35절에는 ‘신들(데오이)’로 알려집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는 시비의 여지가 있으므로 각자가 들을 귀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약하고(병듦) 천박한(가난한) 초등학문으로 되돌아가야겠나 하고 묻습니다.
고물 자동차 같은 인간을 끊임없이 뜯어 고쳐야 하고, 빌빌대면서 구걸해야 하는
종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 선악과의 독성에 찌든 인간의 심리입니다. 얼마나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이와 같은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집단적 확신의 용기를
주면서 그들의 등을 치고 있는지 도무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거짓 선지자는 자신들이 거짓 선지자인 줄 까맣게 모른다는 데에 있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이라고 하면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고 여호와라면
그 자리에서 엎드리는 자들인데 너희가 섬기는 하나님은 진짜가 아니야 하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도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교 행사를 중계하고 있는 불쌍한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거기다가 실용주의 자본주의가
기독교에 침투하여 천박한 물질주의의 기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돈이 신앙의 목적이면 일반종교적인 가치도 없는 겁니다.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 8절의 본성적으로 신들(데오이)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하는데 그만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하나님의 의를 얻고 성령의 내주 역사하심이 있는데
종의 영을 먼저 받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말씀을 들어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갈4:19절은 종에서 아들로 다시 태어나야 하기 때문에 바울이 해산의
수고를 해야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르쳐서 되는 인간이 아니란 말입니다.
문제는 인간들이 진리의 복음을 듣고 아들로 거듭나는 일 보다 노예근성을
가지고 스스로 율법의 종노릇하러 제 발로 사람들 밑에 기어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히틀러가 독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노예근성을 가진 인간들이 자유가 불안해서
자유로부터 도피심리가 있음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권력을 잡았다고 분석합니다.
10절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갈라디아교회는 날, 달, 절기, 해(희년이나 안식년)를 삼가 지킵니다.
이렇게 신앙은 전통적인 습관이 무섭습니다. 루터교가 천주교와 비슷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루터의 뜻을 그의 제자들은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겁니다.
이를 확 바꾼 사람이 바로 칼빈입니다. 칼빈은 교회는 하얀 벽에 성경만 있으면
된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는 개신교를 매우 싫어합니다. 그러다가
개신교의 세력이 커지니 개신교가 그들의 작은 집 쯤 되는 것처럼 말하고 나옵니다.
11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를 향해 수고한 것이 헛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사도 바울의 의식 속에는 갈라디아교회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진리를 따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하늘가는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비밀인데 지금의 교회가 과연 이 비밀을 전하고 있는지 안타깝고
심히 두렵습니다. 큰 교회의 설교자나 나름 유명한 이들이 SNS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이름이 난 목사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도무지 구원은 어떻게
받는 건가 그들이 말하는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설명을 하지 못하니
답답합니다. 맹인이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으면 측은지심을 지나 두려워집니다.
따라서 교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많은 선교사와 성도들의 순교의 피가
흐르는 교회가 진리의 까막눈인 연유로 두려워 떠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첫댓글 아멘~~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