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묵주기도 요일
요일 배분
묵주기도는 날마다 신비 전체를 다 바칠 수 있으며, 그렇게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무일도의 시간 기도처럼 묵주기도는 수많은 관상가들의 나날을 기도로 채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신자들은 한 주간의 어떤 순서에 따라 하루에 묵주기도의 일부 밖에 바칠 수 없습니다. ‘복음의 요약’인 신비 묵상은 그리스도 일생 전체를 묵상하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 주간에 나누어 바칠 경우에는 요일(曜日) 배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전례주년의 다양한 시기를 여러 색으로 채색하는 것처럼, 신비 묵상을 요일마다 영적인 ‘색깔’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배분합니다.(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38항)
마치 사제가 전례시기에 맞춰, 혹은 축일과 관련지어 미사 중 제의(祭衣)의 색깔을 바꿔 입는 것처럼, 묵주기도의 신비를 요일의 전례적 의미와 연결 지어 묵상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묵주기도는 전례와 상충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전례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묵주기도는 우리를 전례로 훌륭하게 이끌어 주는 동시에 전례를 충실하게 반영하므로, 전례에 내적으로 충만히 참여하게 하고 일상생활에서 그 열매를 거두게 합니다.(교서, 4항)
2002년 10월16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라는 교서의 발표로 더욱 완전한 ‘복음의 요약’을 위해 공생활의 신비인 ‘빛의 신비’가 추가되면서, 묵주기도의 신비 선포에 대한 요일에 변화가 생깁니다.
교황님은 교서를 통해 ‘환희의 신비’는 월요일과 토요일에, ‘고통의 신비’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영광의 신비’는 수요일과 주일에, ‘빛의 신비’는 목요일에 바치도록 권고하셨습니다.
요일 배분의 의미
묵주기도의 신비 묵상이 그리스도의 일생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환희의 신비’부터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로 바치지 않고 변화가 생긴 것은, 요일에 영적인 ‘색깔’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이 ‘빛의 신비’가 추가되기 이전의 신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빛의 신비’가 추가 되었다고 하여 전혀 새로운 묵주기도가 아니라, 묵주기도는 여전히 교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묵주기도 신비 묵상은 ‘빛의 신비’가 들어오기 이전의 신비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목요일부터 이어지는 신비 묵상에 변화가 생깁니다. 목요일에 ‘빛의 신비’를, 금요일에 ‘고통의 신비’를, 토요일에 ‘환희의 신비’를, 주일에 ‘영광의 신비’로 구성된 것은, 묵상의 요일 배분이 전례시기 중 가장 중요한 ‘파스카 성삼일’의 신비를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삼일(聖三日)은 ‘성 목요일’ 성찬례의 제정(빛의 신비)과 ‘성 금요일’ 주님의 죽으심(고통의 신비), 그리고 ‘부활 대축일’(영광의 신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 목요일’은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기 전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 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사랑의 새 계약과 희생 제사의 표지인 ‘성체성사’를 제정하셨기에 성체성사와 관련된 ‘빛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합니다.
‘성 금요일’은 주님께서 수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묻히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속죄의 어린양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전례는 ‘부활 대축일’을 향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죄와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요일이 아닌 ‘주일’ 곧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님의 날’을, 매 주일마다 경축합니다. ‘주일’은 주님의 부활에 대한 영광을 묵상하는 ‘영광의 신비’를 선포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저승에 가시어 무덤에 계시던 ‘성 토요일’은,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세상에 남아 우리 자녀들을 돌보아 주신 날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오랜 전통은 토요일 성모님께 봉헌된 축일을 지냈으며 그 중 첫 번째 토요일은 ‘주님의 날’을 위한 안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구세주의 탄생을 예비하신 것처럼 주님의 부활을 준비토록 하십니다. 그래서 토요일은 주요 전통이 마리아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서, ‘환희의 신비’에 대한 묵상을 바치도록 합니다.(교서, 38항 참조)
요일 신비 선포에 대한 제안
교회가 요일의 주요한 특성과 결부시켜 신비들을 배분하였다면, 교회의 권고에 따라 다음과 같은 방식의 묵주기도 신비에 대한 묵상을 제안해 봅니다. 매일 5단 정도의 묵주기도를 바친다면 해당 요일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묵주기도를 바치면 되겠지만, 5단 이상의 묵주기도를 바칠 경우 묵주기도를 ‘그날의 신비’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일 배분은 단순히 요일을 구분하여 바치도록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날 하루를 그날의 신비 안에 머물도록 초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단을 바치든지, 20단을 바치든지, 그 이상을 바친다 할지라도 바로 ‘묵주기도 신비 묵상을 그날의 신비부터 시작’한다면, 우리의 요일은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이 아닌 ‘환희의 신비’를 사는 월요일과 토요일, ‘고통의 신비’를 사는 화요일과 금요일, ‘영광의 신비’를 사는 수요일과 주일, ‘빛의 신비’를 사는 목요일이 됩니다. 그럴 때, 묵주기도는 전례적 의미와 부합되고, 매일의 날들이 그리스도의 일생에 대한 충실한 묵상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 협의회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 평신도 희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9,5)하고 말씀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마태 5,14)이라고 선포하십니다.
레지오 단원 모두가 매일의 묵주기도가 그 빛을 드러내는 은총의 기도임을 잊지 말고, 교회가 권하는 신비 묵상을 통해 하루하루를 성화시키는 ‘희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
+ 묵주기도의 신비 선포에 대한 요일은, 요일마다 영적인 ‘색깔’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배분됩니다.
+ 묵주기도는 전례에 내적으로 충만히 참여하게 하고, 일상생활에서 그 열매를 거두게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1월호, 박상운 토마스 신부(전주교구 여산성지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