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한 초시의 셋째 딸 지선이를
초선이라 불렀다.
어릴 때부터 지선이의 미모는 빼어났다.
이목구비 어느 한군데 모자람이 없어
사람들은 지선이를 경국지색(傾國之色) 미녀
초선에 빗대었다.
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아름다운 미인은
동탁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여포의 애첩, 초선만이 아니다.
은나라 주왕은 달기라는 미녀에 빠져 나라를 잃었고
, 항우와 마지막을 함께한 우미인,
오나라를 망하게 한 서시….
지선의 아버지 한 초시는
제 딸이 초선이라 불리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주막에서 이방과 술잔을 나누다
“셋째 딸년이 열다섯밖에 안됐는데
여기저기서 혼처가 들어오네그려”라며 슬쩍 떠봤다.
그러자 이방이
“그럴 테지,
신랑감이라면 초선이를 탐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면서
이방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실 탐나는 혼처가 세군데서 들어왔다.
대과를 준비 중인 권 대감댁 둘째 아들,
천석꾼 부자 황 진사네 맏아들,
저잣거리에 목 좋은 가게 열두개를 가지고 있는
배 부자의 외아들.
모두가 집안으로만 보면
한 초시네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한 초시의 유세통 속에는
절세미인 셋째 딸 지선이가 앉아 있는 것이다.
매파들이 한 초시네 집에 들락날락하지만
한 초시는 고개를 흔든다.
그의 가슴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 욕망이 세군데 혼처를 우습게 보는 것이다.
때는 연산군이
채홍사를 풀어 방방곡곡에서
미인들을 뽑아올리던 시절이라
이방은 무릎을 쳤고,
한 초시는 은근히 이방에게 훈수를 둔 것이다
. 한 초시는 진작에 소과인 초시에 합격해
뭇사람들이 곧 과거에 합격하리라 예상했건만
낙방 또 낙방,
대과 문턱을 넘지 못하고 초시에 머물며
사또의 부름에 달려가
상소문이나 써주는 신세가 됐다.
한 초시의 꿈은
셋째 딸 지선이가 왕궁으로 들어가
왕의 총애를 받게 되면
사또를 자기 앞에 꿇어앉혀
술잔을 올리게 하는 것이다.
마침내 이 고을에 채홍사가 왔다.
포졸들에 둘러싸여 마차에서 채홍사가 내리자
마중 나온 사또가 허리를 굽히는 걸
먼발치에서 한 초시가 보고 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방 손에 이끌려 채홍사 앞에 선 열다섯살 지선이는
겁을 잔뜩 먹고 바들바들 떨었다.
채홍사가 깜짝 놀랐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지선이를 내려다봤다.
세상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가,
바다에서 솟아오른 용왕의 딸인가!
채홍사는 지선이를 데리고 빈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겼다.
백옥 같은 살결,
봉긋 솟아오른 젖가슴,
가뭇가뭇 돋아나는 거웃,
쭉 뻗은 두다리!
채홍사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채홍사가 지선이 아버지 한 초시를 불러
상전 모시듯이 술잔을 올리자
사또도 덩달아 한 초시 앞에 앉아 잔을 올렸다.
이런 미모라면 지선이는 연산군의 애첩이 되고
한 초시에게는 권세가 돌아가리라는 걸
채홍사도 알고 사또도 알고
한 초시 자신도 알아챘다.
사또가 채홍사에게 귀띔을 하자
이방이 묵직한 전대를 들고 왔다.
채홍사가 그걸 받아 한 초시에게 건넸다.
이튿날 아침,
채홍사는 지선이를 마차에 태워 한양으로 향했고
‘어흠 어흠’ 한 초시의 헛기침 소리는
크게 울려 퍼졌다.
사또와 사또가 대필집사처럼 부려 먹던 한 초시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고,
맞잔을 부딪던 이방은
한 초시의 발가락 때가 되었다.
한 초시가 사랑방에 앉아
이 궁리 저 궁리하면서 생각했다.
‘여드레쯤 뒤면 우리 지선이가 한양 왕궁에 당도하겠지.
임금님께서 지선이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겠지.’
그때였다.
“초시 어른 계십니까요?”
짐꾼을 데리고 이방이 찾아왔다.
채홍사가 오기 전까지는
이방이 찾아오면 툇마루까지 나가 반갑게 맞았건만
이제는 장죽을 물고 문도 안 열고 대답한다.
“어인 일인가?”
“사또 나으리께서 고리짝을 보내셨습니다요.”
한 초시가 ‘어흠 어흠’ 하더니
“마당쇠야~ 사또가 보낸 거 받아봐라.”
이방이 가고 나서 고리짝을 열어봤더니
두자도 넘는 알밴 대구와 전복·해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채홍사와 지선을 태운 마차는
해가 저물어 주막에 닿았다.
“아씨, 피곤하시지요
. 내일이면 한양 도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주막에 들어간 채홍사는 털썩 주저앉았다.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이 옥좌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밤, 채홍사는
지선이를 발가벗겨 밤새도록 농락하고
새벽에 어디론가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