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의 핵심사상을 이루는 이 말은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슬프고 짜증나는 일도, 한 생각 돌이키면 편안해 지는 법이다.
그러나 이 법구(法句)에는 논리적 결함도 있는 듯이 보인다.
즉 우리 마음이 저 뜰앞의 소나무를 만든 것은 아니잖는가?.
또 하늘의 흰구름을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마음이 만들었다"는 표현은 지나친 과장이 아닐까?.
분명히 우리들 마음이 이 세상의 객관대상을 만들어 낸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대상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마음에 달려 있다.
유식(唯識)에서는 일수사견이라는 비유를 든다.
같은 것을 동시에 바라보는 데에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
물을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마신다든지, 발을 담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옥의 중생들은 물을 피고름으로 본단다.
물고기는 그냥 사는 집일 따름이다.
즉 물이라는 객관적 형태를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천차만별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낙엽 지는 호숫가에서 첫사랑을 속삭였던 이는
물만 보면 다정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솟구친다.
즉 물에 대한 객관적이고 교과서적인 해석은 존재할 수 없다.
물은 결국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만약 지금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미움에 시달리는 이가 있다면,
옛 기억을 떠올려 보자.
죽을 것만 같았던 그 고통의 시간들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모두 부질없는 번뇌망상이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지금의 현실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따름이다.
문제는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 하는 상념의 차이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도 마찬가지이다.
신문 사회면으로만 본다면
이 세상은 저주와 불행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면으로 보면,
여전히 세상은 따스하다.
문제는 어느 쪽에 액센트를 두는가 하는 점이다.
시끄럽고 말 많은 세상을 보면서,
그래도 살만하다고 느끼게 하려면
우리가 마음먹기를 잘 해야 하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