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2009년 클라이밍이란 운동을 시작한 이후 거의 주말마다 산으로 들로 나갔었는데, 그 좋아하던 스키를 뒤로 밀어내고 겨울 빙벽을 하기로 맘을 먹고 빙벽교실을 신청했다. 지난 겨울 딴산 빙장에서 체험 삼아 한번 해본 기억으로는 스포츠 클라이밍, 자연암벽과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았는데, 문제는 초기 투자 비용이었다. 마땅한 겨울 등반용 옷조차 없던 나는 묵혀 두었던 스키복을 이용하기로 하고 거금을 투자해 빙벽화와 크램폰을 구입하였고 다행히 아이스 바일은 MJ선배의 것을 빌려 쓸 수 있게 되었다.
빙벽교실 공고에 바로 신청했는데..이런 왠 일! 달랑 빙벽 신청자가 나 하나에 희망자 한 명이 더 있을 뿐이다. 신청자가 없으면 몰라도, 적다고 교실을 없앨 유선생님이 아니기에, 안 그래도 빡 센 교육스타일로 교실을 운영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터라, 내심 '아! 죽었구나'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돌이켜 보면, 그렇게 선생님 그리고 나, 재만 형님 위주의 소수 정예가 참여한 빙벽교실은 이 추운 겨울 주말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즐거움과 고난함의 연속이었다. 겨울이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언제 그렇게 추웠냐는 듯 따스한 햇살이 몇 일째 얼음을 녹이고 있다.
이 글은 지난 겨울 유석재 선생님, 전재만 선배님, 그리고 교육생인 내가 함께한 그 주말의 기록이며, 나 자신이 느낀 소회에 대한 기억의 끄적임이다.
실내 인공 빙장 사전 교육 (2010년 12월 02일 ~ 24일 4주간)
교육장 : 우이동 O2 빙벽장
빙벽교실 첫 째주 2010년 12월 2일 목요일
참여자 :
오전반 성우씨, 매직 현숙, 신똑 윤숙, 미도리 정희, 매쓰진 명성(?),
그리고 러블리 종신, JM 재만
오전반 분들의 빙벽체험과 함께 드디어 빙벽교실이 그 긴 서막을 열었다. 물론 이날의 교육은 더탑 스클 오전반 분들이 함께한 체험이기에 본격적인 빙벽교실은 아니었지만, 아주 기본적인 자세를 비롯해 얼음 벽과 친해지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미 작년에 빙벽교실을 들었던 재만 형님은 능숙한 솜씨로 장비를 착용하고 빙벽장으로 이동 몸을 풀고, 나를 비롯한 빙벽 초보들은 장비를 빌리랴 착용하랴 분주하기만 하다. 다들 장비를 착용하고 실내로 이동하니 아직 본격적인 겨울이 아닌지라 거의 텅 비어 있는 빙벽장은 더 탑만의 세상이다.
어색하기만 한 얼음 벽으로 둘러쳐져 있는 빙벽장내에서 선생님에게 간단한 설명을 듣고 우리는 둘씩 짝을 이뤄 어색한 몸짓으로 빙벽에 오른다.
내 장비이긴 하나 작년 딴산 빙장에서 체험 삼아 해본 이후 처음 착용하는 빙벽화와 크램폰이 어색하기만 하다. 그리고 선생님의 아주 간단한 설명과 잠깐의 시범으로는 짧은 8미터의 빙벽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벅차기만 하다. 그래도 암벽을 한지 일년이나 지났는데, 오전반 체험자들보다는 잘해야지..하고 힘차게 크램폰과 바일로 얼음을 타격해 가며 8미터 얼음 벽을 오르락 내리락 해본다.
오르는 높이도 짧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르락 내리락 했던 얼음벽이라 밟을 곳과 바일을 찍을 곳이 많아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오르는데 빌레이를 봐 주던 재만이 형님이 처음에 배울 때 자세를 잘 잡아야 한다며, 자세에 대해 계속 조언을 해주신다. 무작정 올라가지만 말고 자세에 신경 쓰라고, 하지만 거의 처음 해보는 나에게 조언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그다지 어렵지 않아서인지 힘이 넘쳐서 인지 그냥 올라가 진다.
몇 번을 교대로 재만이 형과 오름짓을 하고는 20미터 높이의 반대편 벽으로 이동해 참여한 다른 체험자 분들과 빙벽을 오른다.
20미터 벽은 또 다른 느낌이다. 힘으로만 끝까지 완등하는 것이 어렵다. 결국 나는 두 번인가를 텐션을 받아 쉬면서 다 오를 수 있었다. 선생님은 그 와중에 쉬지 않고 다섯 번을 연속으로 등반하신다.
그 와중에 영옥 선배님 일행도 빙장에 합류하여 운동을 시작하신다. 영옥 선배님의 친절한 설명과 시범으로 함께한 오전반 체험자들도 활기에 찬다.
영옥 선배님은 몸을 푸신 후 가벼운 몸짓으로 20 미터 벽을 세 번을 연속해서 오르락 내리락 하시는데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으시다. 옆에서 등반하던 재만이 형과 나를 향해 말씀하신다.
'열심히 배우고 운동해서, 토왕폭에 가야지!'... 내가 속으로 '헉...토왕폭이라니...'라고 되뇌는 데, 그 말을 들은 재만이 형이 대답한다. '예 가야지요...'
'음...장난 아니군!!'
역시 등반이라는 것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내려와 다른 분들 빌레이를 몇 번 보고, 재만이 형의 조언에 신경 쓰며 다시 빙벽에 붙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언제 제대로 자세에 대해 교육을 받았던가. 달랑 시작 전 선생님이 오분 남짓 보여준 시범이 다인 듯 한데, 나는 연신 쓸데없이 강한 힘으로 얼음을 바일과 발로 깨뜨려 가며 올라간다. 그리곤 전완근에 오는 펌핑으로 인해 더 이상 등반이 힘들어 지쳐서 내려 달라한다.
오후 세시 반 쯤 모든 등반을 종료하고 암장 근처 정육식당으로 이동 가벼운 뒤풀이 후 해산.
빙벽교실 둘째 주 12월 10일 금요일
지난주 체험교실과 함께한 빙벽실습과는 달리 오늘의 빙벽교실이 교육생만을 대상으로 한 실제적인 빙벽교육 첫째 날이다. 빙벽교실 교육생은 나 그리고 도초강 강세원 쌤이 함께 하기로 했으며, 1기 교육생이었던 재만 형님도 도우미(?)로 참여하시기로 하셨다.
빙벽장에 도착 후 장비 착용 후 빙장 안으로 이동 교육시작
교육생이 적은 이점으로 선생님의 친절하지만(?) 짧은 교육이 시작되었다. '자 잘봐... 기본적으로 빙벽을 오르는 것은 바일과 크램폰을 이용해 홀드를 만들어 가면서 오르는 거야..' 즉 잡을 곳과 밟을 곳이 확실한 거지.. 그리고 자세는 기본적인 X바디 자세를 만들어 가면서 발로 딛고 일어서서 바일을 다시 찍고 .. 이렇게' 그러면서 시범을 보여 주신다. 탁탁 탁탁 툭툭 발길질과 바일질을 할 때마다 경쾌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이제 교육생들의 실습이다. 자일을 묶고 얼음에 붙어 선생님의 시범대로 바일을 머리위 얼음에 콱! 콱! 찍고 발을 들어 얼음을 찍고는 일어서는 데 벌써 팔이 아프다. 바일과 크램폰의 아직 믿지 못하는 나는 일어서는 것이 두렵다. 그러니 바일을 쥔 손에 무리한 힘을 줄 수 밖에...
이렇게 빙벽으로의 첫걸음을 때고 밖혀 있던 바일을 하나씩 빼서는 더 높은 곳의 얼음을 찾아 바일을 찍는다. 콱! 콱! 찍힌 바일이 못미더워 아주 여러 번 꽉 박힐 때까지 콱!콱!콱! 그리곤 발차기도 콱!콱!콱!.. 선생님이 보시더니 한 말씀하신다. '야 러블리... 살살 한번씩만 찍어도 돼.. 안 빠져...그리고 파인 곳이 많으니 거기에 살짝 걸기만 하면 돼...'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바일을 얼음에 걸다니...얼음도 결국은 물 아닌가...어찌 얼음에 걸려있는 바일이 내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단 말인가... 크램폰이 박혀 있는 발도 마찬가지다.. 머리 속이 복잡하다. 빠지면 어쩌지란 불안함 때문인지 나의 바일질과 발길질은 더욱 거칠어 지고 힘도 더 들어간다. 결국 중간 오버행 구간에서 전완근에 펌핑이 오길 시작하고, 힘만 잔뜩 들어간 무식한 몸짓으로 한 십오미터를 오른 후 하강을 외친다.
암장운동을 꾸준히 해왔던 나도 이렇게 힘든데, 암장운동과는 담을 쌓고 산 도초강님은 2 3미터를 오르다 벌써 펌핑이 온다고 더 이상 오르지를 못한다. 선생님은 인상을 찌푸리며 나와 도초강님에게 또 일갈하신다... '아니 그걸 왜 못가...힘으로 가는게 아니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 발로 일어서야지...' 누가 그걸 모르나...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조금 늦게 합류한 재만이 형과 나는 자일 파트너가 되어... 번갈아 가며 20미터 수직벽을 오르락 내리락 한다. 재만이 형은 몸에 기억되어 있는 작년의 기억을 되살려 내기 위해 그리고 나는 선생님의 설명 대로 경쾌한 바일질과 발길질을 익히기 위해...
신기하게도 얼음에 박혀 있는 발끝과 바일 끝이 나의 몸무게를 견고하게 지탱해 주는 것을 깨닫는다. X바디 자세가 어렴풋이 무엇인지 알게 될 즈음.. 이미 자세는 엉망으로 망가져 있음을 재만이 형님이 지적해 주신다. 역시나 몸으로 익히는 것은 쉬우면서도(?) 한편 어렵다.
빙벽교실 셋째 주 2010년 12월 17일 금요일
암장에 모여 오전 11시에 출발하기로 하였으나, 시간이 늦어져 빙벽장에서 합류하기로 전화를 드리고 전철을 타고 이동.
시계가 12시를 지나니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러블리... 어디야? 빨리와' '네...다 왔어요.. 이제 수유역이니 내려서 버스타면 금방 아닌가요..' '야..이제 거기야..빨리와..' 하고 탁 전화를 끊어버리는 선생님. 재만이 형님도 조금 늦으신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전철역을 빠져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부리나케 O2빙벽장으로 향한다. 빙벽장에 도착할 즈음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제법 눈발이 굵은 것이 이제 겨울의 한가운데로 계절이 접어들었음을 실감한다.
선생님의 아주 짧은 설명과 시범으로 N바디 자세를 가르쳐 주신다.
'자 이번에는 N바디야.. 완전한 직벽이나 오버행 구간을 오르려면 N바디로 올라야 편한데, N바디는 암장의 아웃사이드 자세와 같은 거야... 한쪽 발 바깥쪽으로 얼음을 차 몸무게를 싣고 다른 한쪽 발은 높이 올려 얼음에 가볍게 기대 균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일어서면서 반대편 손을 뻗어 바일을 타격하는 거야.. 이때 몸을 지탱하고 있는 반대편 손은 힘을 꽉주어 잡고 있는게 아니라 홀드에 매달리듯이 팔을 쭉 펴주고...'
X바디와 비교해 N바디는 폼도 나고 속도도 빠르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얼음에 붙지만, 그게 잘 될 리가 없다. 여전히 팔엔 힘이 잔뜩 들어가고 몸무게를 지탱하는 한발을 믿을 수도 없다. 결국 자세는 N바디도 아니고 X바디도 아닌 엉망의 자세로 얼음에 어정쩡하게 붙어 나의 팔 힘에 의지해 올라간다.
20미터의 수직 벽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고 몸은 녹초가 된다. 재만이 형은 몸의 기억이 되 살아 나는지 오를수록 더욱 가벼워 보인다.
하면 할수록 쉬는 시간이 늘어만 가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힘을 써서 그런지 몸이 너무 지치고 허기가 진다. 그리고 시간은 벌써 4시를 향해 가고 있다.
선생님은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쉬지 않고 다섯 번을 더 하시더니.. 나는 오늘 끝이라고 말씀하신다.
'빙벽교실 셋째 날도 이제 끝이군!'이란 안도의 혼자 말과 함께 장비를 잽싸게 해체하곤 O2를 나서는데, 내리던 눈은 그치고 뒤로 보이는 북한산이 하얀 옷을 입어 너무나도 아름답다.
빙벽교실 넷째 주 2010년 12월 24일 금요일
벌써 네 번째 빙벽 교육이다. 다음주면 자연폭포와 실외 인공암장으로 본격적인 빙벽을 하러 나가기에 실내에서 행해지는 마지막 교육이기도 하다. 나와 재만이 형은 번갈아 가며 20미터 빙벽을 오르내리면서 자세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아직도 몸이 얼음에 바짝 달라붙고 팔에도 과도한 힘이 들어감을 느낀다. 몸이 얼음에 바짝 붙으니 발차기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바로 선생님의 지적을 받는다. '러블리 너무 몸이 붙으니까 발차기 각이 제대로 안 나오잖아. 상체를 띄우고 가볍게 벽을 향해 직각방향으로 크램폰을 찍어야지!'
벌써 네 번째 실전이지만, 쉽지가 않고 한번 무너진 자세는 바로 잡히질 않는다. 사실 무너질 자세라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재만이 형과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한발 한발 내딛는다.
오늘의 빙벽장은 다른 팀들이 꽤 많이 와서 붐빈다. 그 팀들 중에서도 다 다음주에 있을 청송 대회를 준비하러 온 듯 보이는 팀의 속도경기 연습 모습이 낯설다. 아직은 빙벽 초보인 나는 '아니 왜 저런 대회가 있고 저런 연습을 하지라는 ..' 의문이 든다.(나중에 TV 중계로 그 대회를 시청했는데 역시나 그때도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어찌 되었든 여기서 운동하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모습에서 '실외에서 하는 실전 빙벽에 대한 기대감을 읽어낼 수 있었다.
...............다음글에 이어서 계속
첫댓글 ㅋㅋ잘 읽었다. 2편이 기대 되는데~^^
고생 많이 하셨구만요~ ^^
그 끄적임에 대하여..... 짝짝짝..... ^^ (손뻑치는소리임)
와 정말글 잘쓰신다...마치 현장에 있는듯한 기분..빙벽은 꿈도 못꾸겠어요
잘 하실텐데 왜 꿈도 못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