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일본군 포진지를 보러 갔다. 절벽으로 데크를 놓아 쉽게 갈 수 있게 했다. 주위를 몇 번 가봐서 잘 안다. 몇 달 전 봄에 개방했다니 시월 중순 해맑은 계절에 가족과 함께 갔다. 미역을 따 말린 적이 있다. 또 건져와야지 고등어가 오는 때니 낚시도 될까 하며 설레설레 나섰다. 가덕도 대항으로 노일전쟁 때 바닷가 절벽 중앙에 파놓은 기억할 유적지다.
쳐다만 봤지. 올라갈 수 없다. 그곳을 높게 다리를 만들어 수십 미터 터널 안을 다니며 볼 수 있게 했으니 강서구청에 감사한 일이다. 저 아래 바위에서 간간이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적한 곳에서 한가한 풍경이다. 단풍이 들어가는 산과 출렁출렁 반짝이는 바다가 어우러져 아름다움이 넘실댄다.
아들이 바다에 일렁이는 것을 보곤 ‘고기다’ 소리친다. 자세히 봐도 미역이 흔들리는 모양이다. 회오리치는 게 이상해서 다시 보니 거대한 무리 고기 떼이다. 절벽 굴에 포를 보러 왔는데 그건 뒷전이다. 일본군이 우리 어민을 끌어다가 암벽을 파내어 터널을 만들게 한 일이 가슴 아프다. 무거운 포신 쇠붙이를 절벽으로 끌어올린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총칼로 무슨 짓은 못하겠나. 남의 나라 어여쁜 산하에 구멍을 뚫어 엉성하게 만들어놨다.
술렁이다가 흩어지고 휘어져 오므렸다간 빙빙 돌면서 군무를 짓는 게 장관이다. 멸치인가 했는데 좀 굵은 잔잔한 것이 모두 정어리 떼거리다. 수천 아니 수만 마리다. 헤아릴 수 없이 지천으로 가마득하다. 뜰 것으로 퍼 올리면 이내 한 동이가 될 것이다. 모레와 눈이 바람결에 살랑살랑 맴돌 듯이 비단 치맛자락이 휘날리듯이 현란하게 돌아친다.
가까이 다가가도 놀라 도망가지 않고 주위를 한없이 휘감아 돈다. 물 위로 치오를 듯 솟다가 가라앉아 사라지는 쉼 없는 그들 놀이를 넋 놓고 바라본다. 바다로 나갔다간 이내 돌아오며 뭉쳐서 부딪힘 없이 다닌다. 넓은 곳으로 나가 마음껏 뒤척이지 않고 험한 바위와 미역 숲 사이에서만 노닥거린다.
그들을 노리는 고래와 상어, 바다표범, 펭귄, 갈매기가 싫어서기도 하다. 고래 여러 마리가 수 킬로 되는 무리를 휘몰아쳐 사냥한다. 모아 가운데를 뚫으면 벌린 입으로 가득 들어간다. 갈매기는 하늘에서 날개를 접고 내리꽂혀 함께 헤엄치며 쫓아다닌다. 상어와 표범, 펭귄까지 달려들어 견딜 수 없다. 우리가 그리 녹록한 먹이인가.
피하는 데는 이골이 났다. 먹이사슬을 멀리해야 하지만 플랑크톤이 많은 연안으로 다니며 몸을 키워야 한다. 마산과 진해만에서 산소 부족으로 1백여 톤 바다가 온통 하얗게 폐사했다니 아까워라. 다른 어종은 괜찮은데 하필 정어리만 골라 죽을까. 대한해협에 가까운 여긴 양팔로 껴안은 듯 반원의 둥근 항이어서 마음껏 뛰놀며 거리낌 없이 지난다.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가는 소스라쳐 돌아온다. 어린 게 뭘 어찌 알기나 할까. 복숭아 따던 채로 저걸 한번 뜰거나. 손이 근질근질하다. 마냥 보기만 해도 좋아라. 자잘한 달은 조약돌이 깔린 안쪽 바닷가는 더울 때 들어가 첨벙거리기 좋은 맑은 물이다. 감아 도는 산자락이 아늑하다. 졸졸 골짝 물에 몸 헹구기 좋다.
저 끝 여에 앉아 낚시하면 등이 높아 이름 된 고등어가 막 잡힐 것이다. 입구는 바위와 굵은 돌들로 험해서 들어가기 어려웠는데 마루를 깔아놓아 저 안까지 쉬 갈 수 있다. 사람이 안 다닌 원시 바닷가로 내년 여름엔 가 봐야지 맘먹는다. 아니 내달에 가서 고기가 낚이면 무지근한 낚싯대를 안고 뒤로 넘어지는 아내를 보고 싶다.
청어와 밴댕이가 정어리와 함께 청어과이다. 10, 11월이 연안에 모여드는 제철로 검푸른 등에다 배는 은백색이다. 대부분 고기들이 그렇다. 그런데 정어리는 청어와 큰 멸치, 꽁치 구별이 쉬 안 된다. 아가미 옆에 검은 점 일곱 개가 보이고 비늘이 있다. 영어로는 이탈리아 사르데나 섬에 나타나서 붙여진 사르디네(sardine)이다.
정이 어린다는 정어리는 한자로 온어(鰮魚)다. 대개 어가 붙은 광어, 농어, 민어, 방어, 복어, 상어, 숭어, 연어, 전어이다. 아닌 것은 갈치, 멸치, 준치, 참치, 도루묵이, 망둥이, 전갱이, 대구, 고래, 돔, 명태, 조기 등 치나 이, 구, 래, 태, 기, 리로 끝말이 붙는다. 어가 제상에 오른다. 어여도 복어나 전어는 꺼리며 또 명태와 전갱이, 조기는 올라간다.
많이 잡힐 때는 수백만 톤이지만 안 잡힐 때는 감감무소식이다. 통조림을 하다가 망하는 사업이다. 일제 때 많이 잡혀서 군용기름으로도 사용했다. 초등학교 때 비릿한 이 기름을 먹였다. 못 먹고 살 때 영양 보충이고 구충용이었다. 뜸하다가 요즘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50년 주기라니 도대체 이것들이 어디로 싸다니다 오는가.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꽁치와 청어, 고등어가 그 자리를 메운다니 다행이다. 교대할 줄 안다. 바다 쌀로 조리법이 다양하다. 튀기거나 국을 끓이고 젓갈, 말림, 초밥, 햄버거나 스테이크로 먹는다. 양식장 물고기 사료로도 사용한다. 재난 때 갑자기 나타난다. 전쟁이나 질병으로 허덕일 때 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먹거리다.
요즘 등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등에 지고 들고 오는 게 있다. 유난히 올해 많이 쏟아지는 도토리다. 세상이 어려울 때 그리 많이 열린다. 칡뿌리도 붉은 물이 나오는 약용이지만 궁할 땐 흰 가루 나오는 암컷이 많아 칡국수를 먹게 해 준다. 세상이 전염병으로 어렵고 서구엔 전쟁이 나 야단이다. 들먹거려 살얼음을 걷는 미∙중과 남북관계이다. 그래선가 정어리가 갑자기 휘청거려 돌아오고 도토리가 일찌감치 다람쥐 주워가고 눈 덮이기 전에 하염없이 떨어진다.
몇 해 지나면 이곳이 천지개벽이고 상전벽해가 된다. 짓는다. 안된다. 하던 가덕공항이 들어서는 자리다. 좌우 산을 분질러 바다를 메워서 미끈하게 오르고 내리는 활주로가 휑하게 만들어질 곳이다. 동백나무로 뒤덮인 절벽이 한 폭의 근사한 그림 같다. 반들반들 매끄러운 몽돌 해변이 반짝인다. 포진지와 낚시할 여가 눈에 선하고 삼삼해서 어쩌나. 반갑다고 소용돌이치던 정어리 떼가 어디로 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