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는 오복 중 하나이다.
옛 어른들이 왜 그런 말씸을 하셨을고?
주변의 벗들 둘러보면
특히 술 좋아하는 벗들은
터졌다 하면 7, 8개 기본
옥수수가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그렇지 않은 벗들도
유난히 잇몸이 약해서인지
벌써 틀니로 넘어간 벗도 있다.
나 태어나 등잔불에서 자랐고
호롱불에 책 보고
전등불에 진학했다.
방 한 칸보다 더 큰 컴퓨터 몇 차례 보고
프로그램 언어 배웠고
PC가 등장함에
Dos부터 윈도우에 이르기까지
이젠 인공지능 시대에 이르러
한치 앞의 돼지털 세상 내다 볼 수 없는
초고속의 시대에 진입했다.
덩달아 의술도 신의 영역을 넘보기 시작했으니
덕분에 환갑이면 잔치하던 시절
어느새 사라졌고
칠순잔치하는 모습도 거의 보기 힘들다.
팔순잔치는 하려나???
살아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생명이 있다는 것
이게 곧 바로 고통의 연속과 다를 바 없다.
여기 아파 치료 받고 나면
얼마 못 돼서 다른 곳이 터지고
그렇게 뜯어 고치고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면
파도와 함께 사라지기도 하고
파도를 타고 넘기도 한다.
사람의 건강기대수명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74세 좀 넘는다고 한다.
즉 아무리 오래 살아도
건강한 몸으로 사는 세월은 평균 74년이라는 얘기인데
세상 것 다 가져도
연명치료로 산다면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라면 산다고 할 수 있을까?
두 시간여 느낌으로는 한나절 같은 시간을
임플란트 제거수술에 고통을 받고 나니
지하철에 앉아 생각이 길어진다.
치과 진료의자에 앉아
내 치아의 X-Ray 사진을 바라보면
많이도 살았구나
내 진짜 이가 몇 개인지 한눈에 셀 수 있다.
삶의 큰 기대나 미련을 버린지 오래 되었지만
막상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누구라도 생각이 많아질 것이다.
요즈음
자동차도 전자제품도
고장이 나면
부품을 교환하지 고장난 부품을 수리하지 않는다.
허지만
사람 몸은 그럴 수 없다.
그러려면 넘의 것 떼어 와야
즉 넘의 삶의 일부를 빼앗아 오는 셈이다.
고장난 부분 대체해서 치료했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역시 수명을 다한다.
벗은 한참 시절 차사고로 허리를 다쳤고
척추에 철심을 박았다.
지금은 철심이 아닌 좋은 재료로 바꾸었지만
그 땐 그랬다.
그리곤 수 십년의 세월을 견뎌주었지만
한계에 이르곤
다시 제거수술에 신소재로 삽입했지만
결국 종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고
눕게 되었다.
임플란트 요것도 잇몸이 잘 버텨주어야 생명과 같이 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보수공사를 거듭 거듭하다간
결국엔 제거하고 재시술을 해야한다.
함께 근무했던 동료 둘 55년생이라고
나보다는 사정이 다르다고
뭔 소리 하는 겨?
어차피
5자로 시작하는 중생들은 다 같다고
50년생이나 59년생이나 모두 6학년 몇 반부터인데
누가 그 이력서 봐주지도 않는다.
아니 아예 지원자격조차 없다.
그 중 한 님
일찌감치 잇몸부실로
임플란트 세상에 입문하여
지금도 매주 토요일을 기본으로 순차적으로 시술받으러 간다.
내가 고민스럽다고 하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지 말란다...
모두 한바탕 웃음으로 넘기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다들 비슷한 처지이다.
어디고 한 두 군데씩 고전중이다.
이 잇몸 아픈게 뭔 대수냐?
죽음으로 이어지는 병이 허다한데...
그냥 잡생각 떨궈버리고
이 소박한 자연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
가슴 속 확 트이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자연
그냥 즐기며 걷자...
한주가 지났다.
입안은 평온하지만
한쪽이 비어서 허전한데
새벽부터 배낭에 물과 먹거리 챙겨서
광교산으로 향했다.
당초에는 대이작도로
바닷물에 몸을 좀 담궈보자
물 때 시간까지 살펴서 일정을 잡았는데
아니다.
기왕 참아온 것 조금만 더 참자
8월 12일 이차접종 받고 나서
움직이는 걸로 마음을 바꾸고
가까운 그러나 만만치 않은 광교산을
형제봉, 비로봉, 시루봉 모두 올라보자
평일이지만 금요일
정오가 다 되어서야 종루봉(비로봉) 정자에 올랐다.
넘들 한 두 시간에 오를 거리 서 너 시간에 올랐으니
그저 그렇지만 사방을 둘러보니
속이 뻥 뚫린다.
좋긴 좋다 올라오느라 고생한 보람이 있네
잠시 쉬면서 찬찬히 살펴보니
7, 8년 추억속의 모습과 달라진 것이 없다.
산천은 변함이 없는데
이 몸만 사그러들었구나....
조금 치장을 더한 것이라곤 무선통신기지국뿐
주렁 주렁 통신사들의 중계기들이 달려있는 것
핸폰 하나 잘 터지니 인터넷과 통신은 역시 세계 제일이다.
요기도 하고 한참을 쉬었지만
집중력이 되살아나질 않는다.
허긴 옛날 광교산 즐겨 찾을 때에도
한 봉 오르고 하산하면서 이곳 저곳 즐겼는데
오늘처럼 한번에 세봉을 오르려니
봉 하나마다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하는 봉
어차피 올라왔던 코스론 내려가기 싫고
마저 시루봉 광교산 정산에 오르자...
여기도 변함이 없다.
한 가족과 몇분들 열심히 인증샷 중이지만
별 흥미없고
산에 못 오르는 대전 벗에게
얼마전 함께 근무하다 이천 배수펌프장에 홀로 근무중인 님에게
한 컷 날렸다.
홀로 지구촌을 거닐려면 늘 자신의 위치를 알려야 한다.
해외 오지에서도 간간히 내 위치를 가까운 벗들에겐 알렸다.
한치 앞을 어찌 알리요?
금새 답이 왔다.
대전 벗이 콧물 나오니 그 사진 다른데 올리지 말라고
ㅎ ㅎ ㅎ
몸이 힘들긴 힘들었구나!
하산하는 길
동천동으로 아주 길게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
중간에 분기점
송전탑 주위
용인 광교산 산너울길 중간지점이다.
다들 산너울길 조광조선생 묘소에서 출발하여 천년약수터에서 되돌아간다.
허지만 너울길의 종점은 손골성지이다.
안내판에도 5시간 소요
여기서부터 분기하여 손골성지로 그리 멀지 않고
앞으로 광교산 정상보다는 이 코스를 애용할 생각이라
집에서 더 멀리 손골성지로 하산하였다.
몇 년 전 걸었을 때와 사뭇 달라졌다.
사람의 손이 제대로 닿았다.
좁은 산길이지만 성지까지 가는 길이 제대로 보였고
작은 골짜기를 따라 가니 시원하게 땀도 닦아내고
종점이자 동천동 출발점이 손골성지 십자가의 길로 이어지니
아무래도 사람의 출입이 덜하게 되었는데
아직 빛바랜 용인 산너울길 간판은 건재하게 버티고 있었고
몇 년전에 달아놓았던 나무 명찰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앞으로 한동안 산책할 하루의 코스가 정해졌다.
조광조 묘소에서 천년약수터를 거쳐 송전탑으로 그리곤 내쳐 손골성지로
내 걸음으론 6시간 넘게 걸리고
되돌아오는 길은 가깝고 편한 터널을 지나 성북고 옆에서 시작되는 성북천을 따라
집으로 간다.
조금 위험하지만 터널을 지나 성북고로 향하는 대로변
저 앞에 나보다 강산 하나는 족히 더 넘으신 어르신
세발로 좀 불편하게 걸어가신다.
조금만 더 걸으면 하천따라 산책길로 편케 걸을 수 있다.
다시 앞을 내다보니
지팡이 뒤로 감추고 곳곳하게 걸으신다.
뭔 일이냐?
ㅋ ㅋ ㅋ
저 앞에 한 무리 여인네들 나타났다.
늙어도 남자는 남자
나도 뻔데기 앞에서 한 번 더 주름을 잡는다.
배낭 다시 추스르고
어깨 힘주어 활짝 펴고
허리도 곳곳하게
첫댓글 소소한일상과 나이듦에 대한 소묘를 나의일처럼 읽어내려갑니다
사진이 힐링입니다
성복동으로 이사를 와서 첫 광교산에 오르려고 나섰다가 길을 잘 몰라 가던 길 모르겠고 빨리 하산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내려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아직도 산행을 즐기시니 건강을 덤으로 받으셨네요.
항상 잔잔한 글로 삶의 여백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