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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어디에서 오는가
김동원 시인·평론가
시詩
왜, 나는 시에 혹하는가. 천지만물이 나와 불이不二한 까닭이다. 병病은 생사의 면벽 수행이다. 하여, 이승과 저승 사이 낀 풍경은 ‘환幻’이다. 어릴 때 나는 집 앞 바다가 우는 소리를 가끔 들었다. 달빛에 스민 혼령인 듯, 그 천길 물속에서 우는 곡소리는 슬펐다. 생에서 죽음이 싹트는 엄혹한 사실 앞에서, 죽음에서 생이 열리는 영감을 느꼈다. 내 시는 병의 문을 열고 바라본 앞마당 가득 핀 꽃의 이야기요, 피의 이야기다. 수만 생을 윤회한 나의 또 다른 환생의 조각보다. 하여, 나는 늘 흔들렸다. 바람에 흔들렸고 외로워 흔들렸다. 놓쳐 버린 물의 무늬로 흔들렸고, 불 속 그림자로 흔들렸다. 밑도 끝도 없는 기미와 기척에 흔들렸고, 불안한 목소리에 흔들렸다. 언제나 서정은 ‘나와 타자와의 동일성의 시학’이자 꿈꾸기다. 나는 법고의 뼈와 살을 발라 먹고 창신의 새 길을 연다. 만물의 음양을 받아들여 시의 형과 상을 빚는다. 전통의 불신과 전복이 아니라 계승과 성찰을 통해, 시의 요체를 꿴다. 현실 공간인 몸과 시의 공간을 하나로 본다. 격물을 궁구하여 치지로 나아간다. 직유를 통해 사물의 극을 치받고, 은유를 통해 물아가 된다. 하여 밤낮없이 비극과 역설, 아이러니와 모호성, 풍자와 해학의 행간에 바장였다. 시의 급소, 그 사랑과 이별의 통증은 신명과 지극으로 풀었다. 소리를 쫓다 숲을 잃었고 언어를 쫓다 시를 들었다. ‘이름이 없는 천지의 처음, 무명無名’과 ‘이름이 있는 만물의 어미, 유명有名’(도덕경 1장) 사이를 헤맸다. 어둠에 손을 넣어 달을 만졌고, 바다에 머리를 넣어 해를 먹었다. 공을 뚫다 색을 얻었고, 색을 품다 공을 보았다. 하여, 시는 ‘천하에 천하를 감추는 작업’(약부장천하어천하若夫藏天下於天下(장자)’임을 알겠다. 하늘은 감추고 시인은 들춘다. 간절히 묻고 또 물었다. 세상을 향해 가장 아파하는 자만이, 가장 아름다운 시를 얻는다.
바다와 시니피앙
모든 형상은 형상이 아니며, 실재하는 것은 모두 허상이다. ‘나는 그렇게 들었다 如是我聞’『금강경』) 이상하게도 ‘바다’를 호명하는 순간, 이순(耳順)의 나의‘바다’는 사라지고 ‘아버지’가 보인다. 그럴 때면 생각의 주체는 언어가 아니라 항시‘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바다와 죽은 아버지는 소리의 이미지로서 시니피앙과 소리의 관념적 의미로서 시니피에가 겹쳐 일어난다. 하여 바다-아버지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는 중층적이다. 훗날,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소쉬르(1857~1913, 스위스 언어학자)의‘인간은 언어가 지배한다’는 글을 만났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한 번도‘언어’가 먼저 있고,‘세계’가 있다고 상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겐‘세계와 언어’가 한 몸이었다. 소쉬르의 등장은 말의 구조와 체계, 사물에 대한 관점,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혁명적으로 뒤바꿔 놓았다.‘마당의 개는 짖지만, 책 속의 개는 짖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했다. 이처럼‘사물과 언어는 필연적이지도 동일하지도 않은, 임의(자의)적 관계에 놓여 있다’는 그의 주장은 기존의 언어 문화를 전복시켰다. 또한‘무의식이 언어를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무의식을 불러낸다’는 라깡(1901~1981, 프랑스 정신과의사)의 말 역시, 동일성의 시학을 해체한 일대 사건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언어를‘시를 실어나르는 도구-뗏목’쯤으로 여겼다. 지금도 시의 본체는 언어 이전의 세계가 진짜이고, 언어 이후는 시가 걸친 옷 정도로 인식한다. 왜냐하면 시는, 언어의 눈동자 속으로 신(神)을 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언어를 통해 언어 이전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소쉬르의 말도 인정한다. 하여, 나는‘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사이, 그 어디쯤이라고 우긴다. 시「바다와 시니피앙」은, 언어로써 언어를 뛰어넘는‘시의 본질’을 꿰뚫은 나의 시도이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그는 계속해서 물속으로 들어간다.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아래로 아래로 헤엄쳐 내려간다. 물은 물의 은유다. 바다는 문門이 없고, 있다. 바다의 깊이는 질문이다. 오, 지우는 방식으로 채우는 바다여! 바다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바다는 생각을 생각하지 않는다. 바다는 노을을 버리고 주체가 된다. 바다는 바다일 때만 나비가 된다.
―김동원,「바다와 시니피앙」전문
그렇다. 네 살 때부터 내 무의식 속엔,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 자리로 인해 랑그(langue, 언어의 추상적 체계)가 거세된 파롤(parole, 개인적 발화), 혹은 시니피앙의 감각이 지배한다. 그리고 이 시에서 우리는 왜 불(남자/陽)의 서사보다, 물(여자/陰)의 서정을 추구해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주체의 욕망은 언제나‘비극과 결핍’의 상태로 흔적을 남기며,‘묘사’보단‘압축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시상(詩想)을 촉발한다. 아침마다 본 일출은 생생(生生)의 변(變)과 역(易)이 우주의 이치임을 안다. 어린 내게 물결은 늘 새롭고 낯선 리듬의 반복이었다. 순간순간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물안개는, 시적 모호성의 극치였다. 그 끝없는 반복과 변주의 바다는, 장자의“나비”처럼‘내가 바다’인지,‘바다가 나’인지 모를 환상을 심어주었다. 바다의 파토스는 사라진 것에 대한 내 서러움이나 그리움을 고통으로 잉태하였다. 하여 나는 라캉의 명제‘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를 지지한다.“바다는 노을을 버리고 주체가”될 때, 비로소 무(無)가 된다. 실재하는 대상은 이미지로도 언어로도 포착되지 않는다. 마치, 노자가『도덕경』1장에서“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를 도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으로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이용주『노자 도덕경』)라고 설파한 것처럼, 바다는 언어가 침묵할 때 그 순간 시가 된다. 내게 있어 시의 바다, 바다의 시는 언어 이전도 이후도 아닌, 현의 지점이다.“玄之又玄 衆妙之門 어둠에 이어지는 또다른 어둠, 그것이 존존재의 신비로 들어가는 문이다.”(이용주, 같은 책)
강구항
바다로 가는 길은, 언제나 내게 태초의 시원(始原)을 찾아가는 노정이다. 넘실대는 파도는 내 시의 운명 같다. 세파에 헛발질하다 깨지고 다치면, 나는 난파된 행간과 연을 꿰매러 바다로 간다. 바다를 보는 순간, 나는 막힌 기운(氣韻)이 뚫리고 생동한다. 동해안 7번 국도는 유년 시절 희비가 교차한 장소이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행복한 시간이자, 아버지의 부재를 확인하는 슬픈 내면 풍경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강구항을 찾을 때면, 고무 다라이를 인 어미와 어부 아비가 겹쳐 떠오른다. 어판장에서 대게와 고등어, 방어와 대구, 명태와 오징어가, 궤짝마다 줄지어 있는 광경을 보면 만감이 어린다. 까만 기차표 고무신을 신고 장사하던 엄마 따라 어판장 뒷골목에서, 도루묵찌개를 먹은 기억은 생생하다. 삶은 새끼 오징어가 나오고, 찐 가자미와 식혜가 나오고, 산초가 들어간 멸치젓갈로 버무린 파김치는, 맛이 기가 막혔다. 식당 미닫이문을 열자 비릿한 생선 비린내가 항구 쪽에서 풍겨왔다. 길 건너편 줄지어 선 다방 앞에는 완행버스가 서고, 고만고만한 어촌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소하, 금진, 하저, 대부, 창포 너머로 사라졌다. “오라이, 출발!” 버스 안내양이 외치던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어제인 양 떠오른다. 가난하여 모든 것이 풍족하였고, 적어서 행복했던 그 어린 시절, 갈 수만 있다면 거꾸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고 싶다. 죽은 어미가 살아나고, 죽은 아비가 살아나고, 죽은 형이 살아나고, 죽은 숙부와 숙모가 살아나고, 달을 안고 죽은 그 소녀가 살아나고, 그리고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인생 역사(驛舍)에 서서, 나는 또다시 내 바다를 본다. 스무 살 무렵 고향 친구들과 강구항 포장마차에서 술에 취해 바라본 야경은 잊히지 않는다. 서늘한 해풍에 일렁이던 물속 가로등 빛의 굴절은 형체도 없이 사라진 그리운 얼굴 같았다. 항구 건너편 붉으스름한 홍등가 니나노 집에서 흘러나오던, 술집「작부」의 노래와 실루엣은 쓸쓸해서 좋았다.
술집 작부 치마폭에 쌓인 것 맨키로, 볼또그리 취한 강구항 밤 야경. 어판장 뒷골목마다 그 옛날 홍등에는 야화夜花가 피어 흥청망청했지. 속초로 울릉도로 고깃배 타다 뭍에 내리면, 낮부터 술판에 젓가락 장단에 홍도야를 불렀지. 작부년 지분 냄새에 불뚝불뚝 아랫도리 힘은 뻗쳐, 그 어부들 주장군主將軍 명태 대가리만 했네. 소주 막걸리에 떡이 되면, 영순 아버지 마누라 새끼들 까맣게 잊어먹고 곱사춤을 추었지. 연분홍 치마저고리 입은 작부 엉덩이는 얼마나 컸던지, 고랫등만 했네. 아니, 아니 밤바다 보름달만 했네. 그 겨울 폭설에 대구 명태 방어 잡아 번 돈, 구삥에 도리짓고땡에, 그년들 치마폭에 다 녹아들었지. 새벽 오줌 누러 나와 어둑어둑한 방파제 파도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면, 그때서야 동해에 밥 찾으러 나간 아비 기다리는, 올망졸망한 자식들 얼굴이 등댓불처럼 눈앞에 깜박깜박 비추는 거라.
―김동원,「작부酌婦」전문
시는 풍경이다. 시는 바다 안에도 있고 바다 밖에도 있다. 바다와 사는 일은 바닷속에서만 가능하다. 내가 언어를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은, 생생하면서도 살아있는 리듬의 바다와 그 기억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시「작부酌婦」는 6·70년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그 당시 강구항에는 풍어기만 되면, 동네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특히 여름부터 가을까지 오징어잡이 철에는, 출항한 어선마다 만선의 깃발이 휘날렸다. 깜깜한 동해에 집어등을 달고 불야성을 이룬 고깃배들은, 보기만 해도 장관이었다. 오징어는 낮에는 수심 아래에서 놀다가, 밤만 되면 불빛에 유혹되어 미끼를 물려고 환장을 한다. 잡혀 온 고기들은 어판장을 통해 대처로 부리나케 팔려나갔다. 오징어 배 따는 아주머니들은 돈벌이가 좋아 신바람이 났고, 간주를 탄 어부들은 호주머니가 두둑해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그 옛날 파시(波市) 때면 사내들 호리려고, 강구항 다방과 술집에는, 인근 도회지에서 모여든 이쁜 여자들로 시끌벅적 하였다. 노물리 달봉이 아제, 삼사리 병삼이 형, 남호리 학이 삼촌까지, 간주 받는 날은 대“낮부터 술판에 젓가락 장단에 홍도야를 불”러댔다. 거나하게 취하면 “분 냄새” 풍기는 “술집 작부 치마폭”에, 항구에 배들 듯, 쑥쑥 손모가지들을 잘도 넣었다. 한바탕 웃고 난리가 나면, 야한 코맹맹이 작부 년 소리에 하저리 박태기 형 “명태 대가리만”한 “주장군主將軍”을, 그년 엉덩이에 대고 “불뚝불뚝” 세웠다나 어쨌다나. 소주, 막걸리 주전자 통째로 돌면 “영순 아버지 마누라 새끼들 까맣게 잊어먹고 곱사춤을” 잘도 추었다. “연분홍 치마저고리 입은 작부 엉덩이는 얼마나 컸던지, 고래 등만”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 시절은 참으로 사내들 세상이었다. “구삥에 도리짓고땡에” 마음껏 술을 퍼마셔도, 집에 가면 도리어 큰소리를 탕탕 쳤다. 아이쿠! “새벽 오줌 누러 나와 어둑어둑한 방파제 파도 소리에, 번쩍 정신”든, 마흔의 내 아버지도 그 술판에 끼었으리라. 그리고 “동해에 밥 찾으러 나간 아비 기다리는” 새끼들 얼굴도 찬 해풍에 떠올랐겠다. 그런데 어쩐다? 울 아버지도 울 어머니도, 그 시절 강구항에 우글우글 모여들던 그 많던 군상들도, 모두 저승으로 배 타고 가버렸으니…. 시여, 죽고 사는 것이, 정말 유수(流水)같구나!
리듬(가락)
소리와 의미로 이루어진 시는 작품 그 자체가 하나의 율려律呂이자, 음보音步다. 그 음의 걸음걸이에 있어 고대 중국에서의 상상은 실로 다채로웠다. 정재서에 의하면, 도교에서는 신선이 허공을 걷는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환상적인 경지를 ‘보허步虛’라는 음악과 시로 표현하였다. 그런가 하면, 우禹 임금이 황하의 홍수를 다스릴 때 과로해서 비틀비틀 걸었다고 하는 모습을 흉내 냈다고 하여 ‘우보禹步’라고 하는 특수한 걸음걸이도 있다. 시인들은 달빛 속에 거니는 것을 마치 달 위를 걷는 것처럼 ‘보월步月’이라는 신비롭고 낭만적인 어휘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시의 특별하고도 환상적인 걸음걸이가 곧 시의 리듬이다. 시 속의 리듬은 시어의 맛과 행lines과 연(聯, stanza)의 의미를 조화롭게 살려내기 위함에 있다. “시의 리듬은 정형시의 그것과 자유시의 그것과는 다르다. 정형시의 리듬은 압운과 율격을 기본으로 한다. 압운은 영시나 한시에서 볼 수 있는 바처럼, 시행의 시작 · 끝 · 중간에 유사한 소리를 내는 음절을 반복시키는 것이다. 그 반복은 단순한 소리의 반복이 아니라 엄격한 체계를 가진 소리의 반복이다. 그러나 우리 언어는 음절 의식이 약해서 소리의 반복이 음수 또는 음보 단위로 형성된다.”(오규원, 『현대시 작법』) 창작을 할 때 운율 형성의 방법은 ‘의성어·의태어의 반복’, ‘같거나 비슷한 문장 구조의 반복’, ‘일정한 음절의 수를 반복’, ‘품사의 반복’, ‘종결형의 반복’ 등으로 크게 세분화된다. 즉, 운율은 행과 연의 최적의 배치를 통해 시어의 리듬을 음악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우주도 알고 보면 모두 기의 리듬이다. 인간의 몸 역시 혈관의 흐름으로 신명의 가락을 타듯, 시 역시 표면에 뚜렷하게 규칙적으로 드러나는 정형시(외형률)와 일정한 규칙 없이 시어나 시구 속에 숨어 은근하게 느껴지는 자유시(내재율)로 율격을 만든다. 시「깍지」는 점층과 반복이 뒤섞인 내재율의 리듬이다.
내 손을 나꿔 챈 그녀에게 아내가 있어 안 된다고 했다. 곁에 벗은 예쁜 속옷은 유채 꽃빛이었다. 등 뒤에서 그녀가“오늘 밤만이라도 하늘 물속을 헤엄쳐, 저 샛별까지 갈 수 없냐”고 내 허리를 꽉 깍지로 껴안았지만, 나는 두 자식이 있어 진짜, 안 된다고 뿌리쳤다.
돌아보지 말걸, 꿈속 그녀는 알몸으로 초승달 위에 웅크려 울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나는 그 밤부터 꿈만 꾸면, 구름 위로 떠오르는 달에게 올라타는 연습을 한다. 제멋대로 엉켜버린 두 인연이 천년의 허공 속에 헛돌지라도, 미친 듯 미친 듯 그녀를 위해, 나는 밤마다 꿈속에서 달을 타는 연습을 한다.
― 김동원「깍지」전문
시「깍지」는 꿈과 리듬의 시학이다. 달의 변화는 그 자체가 리듬이자 춤이다.「깍지」(4시집『깍지』, 그루 2016)는 스물 무렵 어떤 여인이 등 뒤에서 나를 꽉 깍지로 껴안은 사건이, 수십 년 기억 속에 묻혀있다 불현듯 떠오른 작품이다. 이 시는 꿈의 무의식이 몸의 의식을 뚫고 나와 꿈속 허무와 재결합 된다. 그 강렬한‘깍지’의 잔상은 행간 속에 껴안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껴안고 싶은 충동 사이에 끼인다. 몸의 각인은 모든 경계를 초월해〈하늘 물속을 헤엄쳐, 저 샛별까지〉닿아 있다. 감각이 리듬이라면 깍지는 영원의 끈이다. 하여, 나는 그녀가 허리를 꽉 깍지로 껴안았지만, 두 자식이 있어 진짜, 안 된다고 뿌리친다. 이 시행은 얼마나 모순 형용인가. 하여,〈제멋대로 엉켜버린 두 인연이 천년의 허공 속에 헛돌지라도〉그녀에 대한 나의 기억은〈밤이면 밤마다 꿈속에서 달을 타는 연습〉을 가능케 한다. 이런 내재율의 흐름은, 꿈을 낳고 사랑을 낳고 역설의 리듬을 낳는다. 허무가 아름다운 것은, 꿈속 이미지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깍지를 풀려고 하면 할 수록 더 조여드는 느낌은, 행간을 타고 넘는 리듬 탓이다. 그것은 나의 금기 위반〈돌아보지 말걸〉이나, 그녀의 웅크린 자세에서 찾아진다. 특히〈알몸으로 초승달 위에 웅크려 울고 있〉는 그녀는, 허무의 은유이다.「깍지」는 꿈속의 꿈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알고 보면, 우주는‘깍지’와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자와 남자, 해와 달, 물과 불, 바람과 구름, 하늘과 땅, 이 모든 중력은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있는‘깍지’이자 리듬이다. 표층의 의미는 몽환적 시적 상황이 주제이지만, 심층엔‘시의 애내欸乃와 이별의 흐느낌’이 어룽져 들린다. 그 소리는 마치 물결과 달빛 사이 깊고 웅숭한 바닷속의 슬픈 곡조처럼, 여인의 울음으로 환유된다. 그래서 깍지의 비밀은 영혼의 깊은 늪 속에 잠들어 있는 우리들의 금지된 장난인‘에로티시즘’을 한순간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깍지」는 이유선 시낭송가의 목소리로 예술기획〈진진아트〉에서 영상시로 제작해 유튜브에 올려졌다. 구름 위에 전라全裸로 춤을 추는 시속 여인의 몸의 리듬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화면 가득 유채 꽃밭이 펼쳐지고, 남자의 허리를 깍지로 꼭 껴안은 시 속 여인의 심경은, 영상 미학이 아니면 못 볼 리얼리티의 극점에 놓인다. 특히, 초승달 위에 알몸으로 웅크린, 사랑을 잃은 여인의 고뇌는 참으로 고혹적이다.
황진이
율문 형식은 모든 시의 바탕 자질이다. 그 속에서 시는 살아 있고, 살아 있으므로 더욱 완벽한 형식을 꿈꾼다. 이는 시의 본디 성격이 구속과 기율, 그리고 자기통제에 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모든 시 형식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하나의 전형을 지향하기 마련인데, 그것은 대개 정형시의 모습으로 수렴된다. 그런 관점에서 정형시는 시 형식 진화의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다. 어느 나라건 오랜 역사를 가진 시는 예외 없이 정형의 틀을 갖추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정형시의 미학에는 그 민족의 기질과 습속은 물론, 그 언어의 호흡과 생리까지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우리 시문학사의 맥락에서 역사의 엄존성을 담지한 정형 미학의 실현은 시조가 유일하다. 그러므로 시조는 즈믄 해를 이어온 시이자, 이 땅 오늘의 시로 엄연하다. ― 박기섭「시조, 그 낯익고 낯선 풍경의 안과 밖」중에서
그녀는 페미니스트이다. 조선의 남성 위주의 사회를 풍자한다. 그녀는 여성의 평등과 차이를 자각한 최초의 기녀였다. 그녀의 시는 사랑의 불길에 타오르는 절규가 들린다. 시편마다 체와體 용用을 무화시킨다. 정격을 치받아 파격이 된다. ‘빔’과 ‘창조’는 그녀 시가 추구한 율려이자 여백이다. 놀라운 비약과 함의로 시의 묘처를 얻었다. 그녀의 행간은 무위하다. 굳은 성리학 체제에 신선한 자유의 시풍을 불어넣는다. 그녀는 시대를 박차고 뚫고 나온 파천황이다. 하여, 나는 늘 황진이(黃眞伊, 조선 중기 1506~1567년 추정)의, 그 서늘한 비극적 시의 인식을 흠모하였다. 양반놈들의 가면을 벗겨내 치마 속에 휘잡아 들인, 그 희롱과 무희舞姬의 멋을 찬양하였다. 사랑의 불길에 휘감긴 그 열렬함에 매료되었다. 그녀가 6년간 계약 동거한 이사종과의 사랑을 읊은「동짓날 기나긴 밤」은, 조선 시조 미학의 절창이다.
冬至 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春風 니불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시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기나긴 밤”의 한 허리를 베어낸다는 언어 감각은 심플하다. ‘버혀’낸다는 그 언어의 재단 방식은 진이만의 독창적 예술이다. 그 긴 시간의 길이는,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는 외로움의 통로이다. 그녀 시의 행과 행 사이, 장章과 장章 사이엔 만단정회萬端情懷가 비친다. 그녀는 사물과 몸을 언제나 동일시 한다. 고독한 겨울밤을 봄날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너헛다가”, 임이 오시는 날 “구뷔구뷔” 펴겠다는 그 애틋함은, 왠지 서늘하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임의 부재를 예견한 것처럼, ‘접다’와 ‘펴다’의 반복은 애절하다. 진이의 시어는 바람의 언어다. 관능을 넘어선 초월의 세계가 보인다. 모호하나 잡히고, 외로우나 넘어선, 그 접接의 미학이 깊다. 그녀의 시는 아픈 멍울이 잡힌다. 이별 속에 잠깐 스쳐 간 사대부 놈들은, 모두 페르소나(가면)이다. 진이는 불혹의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유언대로 개성 어느 길가에 묻혔다. 훗날 임제(조선 1549 ~ 1587)가 평안도 평사(評事; 정6품의 무관)로 부임해 가는 길에,그녀 무덤에 술잔을 올린다.
靑草 우거진 골에 자ᄂᆞᆫ다 누엇 ᄂᆞᆫ다
紅顔을 어듸 두고 白骨만 무쳣 ᄂᆞᆫ이
盞 잡고 勸ᄒᆞ 리 업스리 그를 슬허 ᄒᆞ노라
임제의 풍류가 없었다면, 조선의 멋은 참 초라할 뻔했다.「청초 우거진 골에」는 생의 허무가 짙다. “자ᄂᆞᆫ다 누엇 ᄂᆞᆫ다” 고어의 의문형 어미는 리힐리즘의 극치다. 들풀 속에 묻힌 진이의 백골은 무상하다. “청초”와 “홍안”, “백골”의 색체 이미지는 비현실적이다. 임제는 부임에 도착하자마자 이 시를 지은 죄로 파직되었다. 그 사건은 성리학 체제의 허실虛失을 여실히 증거 한다.
나는 늘 진이에게 시의 빚을 느꼈다. 때가 되면 멋진 풍류로 그녀와 술상을 마주하고, 한바탕 신명을 풀겠다고 다짐하였다. 그 봄날 비슬산 대견봉(1,083m) 능선에서 30만 평의 진달래 분홍을 보자마자, 홀연히「황진이」에 접신 된다.
진이,
그대는 가야금 침향무를 뜯게
나는 그대의
치마폭 위에 분홍 진달래꽃을 치겠네
노을로 번진 눈물을 치겠네
흔들리는 그 바람의 무늬를 치겠네
중모리 중중모리 휘모리로
피어 노는
저 비슬산 꽃의 한 생生 다 떨어지기 전,
진이,
그대는 침향무를 뜯게
나는 엉망진창 술에 취해
대견봉 그 둥근 달빛에 붓을 적셔
그대 치마폭 위에
분홍, 분홍, 분홍, 분홍, 그렇게 번지겠네
―김동원,「황진이」전문
갑자기 치고 나온 시가 나는 좋았다. 대견봉 팔각정에서 내려다본 그 진달래 꽃빛은, 진이의 치마폭 같았다. 그녀는 “가야금 침향무를” 뜯고, 나는 그 “치마폭 위에 분홍 진달래꽃”을 쳤다. 노을 속에 번진 그 바람의 무늬를 쳤다. “중모리 중중모리 휘모리로 / 피어 노는” 꽃들이 다 떨어질 때까지, 비슬산 보름달 아래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 “엉망진창 술에 취해” 붓을 들고, 진이의 치마폭에 “분홍, 분홍, 분홍, 분홍” 그렇게 번지고 싶었다.시「황진이」는 훗날, 낭송가 이지희의 유니크한 목소리로 예술기획〈진진아트〉에서 영상시로 제작돼 유튜브에 올려졌다. 수천만 개의 꽃잎이 바람에 날려가는 장면은 압권이다. 가야금과 대금 국악에 맞춰, 이지희의 젖은 목소리는 흐드러진다. 꽃길과 능선 사이, 바람과 구름 사이, 황진이와 어우러져 노는 도포 차림의 그 풍류객의 부채춤은 멋지다.
어쩌면 현대시는 시각적 언어 예술을 벗어날 때, 새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시낭송은 청각 예술이다. 시가 시인의 오감을 통해 인간의 생로병사를 언어로 길어 올린 장르라면, 시낭송은 시낭송가의 목소리를 통해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소리 예술이다. 시는 원래 가락에 맞춘 노래여서 시와 낭송은 불가분의 관계다. 한 편의 시로 천 갈래의 시낭송이 가능하다. 각양각색 시낭송가의 목소리는 듣는 관객을 매료시킨다. 낭독(朗소리낼 랑, 讀읽을 독)이란 텍스트에 얽매여 전달하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지만, 낭송(朗소리낼 랑, 誦욀 송)은 시 작품을 자기화하여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임무이며, 제2의 시 창작 행위이다. 시가 직관을 통해 영감을 포착한다면, 낭송은 소리 파동을 통해 청자에게 시를 감동 에너지로 전환한다. 즉, 시 속에 들어앉은 시인의 영혼을 불러내어 관객들의 심장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 시낭송의 본질이다. 시가 문자 매체로 영원성 · 연속성을 띤다면, 시낭송은 음성 매체로 순간성 · 현장성을 띤다. 시의 의미 함축이 때때로 독자로 하여금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 때, 시낭송은 소리와 감정으로 그 의미를 풀어내어 쉽게 전달한다. 시인이 시 창작자라면, 시낭송가는 시 전파자이다. 시인과 시낭송가는 이란성 쌍둥이 역할로 새로운 시 문화 예술을 발전시킬 동반자다. 시낭송의 궁극적 목적은 시 작품 속 다채롭게 채색된 언어 감정을 관객들에게 직접 전달해, 관객으로 하여금 마음속 엉긴 상처를 현장에서 씻어주는 정화 작용에 있다. 아무리 훌륭한 시가 있어도, 세상에 걸어 나와 사람과 소통하지 않으면 무덤 속 진주에 지나지 않는다. 영상 미학이야말로, 21세기 새로운 시 예술을 획기적으로 전환할 문화인지도 모른다.
이 시인 놈아
“하늘은 장차 큰 임무를 이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 근육과 뼈를 힘들게 하고 그 몸을 굶주리게 하며, 그 몸이 행하는 것을 궁핍하게 하고, 그 하는 일마다 안 되게 하여 어지럽게 하나니, 그 까닭은 그 마음을 두드려 참을성을 생기게 하여, 그동안 할 수 없었던 것도 할 수 있게 함이니라. ―맹자「고자편구」
시인은 이름을 남기는 자가 아니라, 시를 남기는 사람이다. 역사의 길 위에서 현실의 욕망을 반추하는 거울이다. 그 욕망의 끝에서 상처를 돌아보고, 어떻게 이 세계를 인식할 것인지를, 묻는 자가 시인이다. 하여 시는 너무 달면 행간이 썩는다. 행이 연에 아부하면 둘 다 죽는다. 홀연히 들리는 것이 시인의 귀다. 시력詩歷이 높아질수록 시마가 깊어진다. 시의 기세가 막히는 명치끝이, 시가 뚫리는 장소다. 불가능할수록 시의 몸을 뒤집어라. 비명을 지를 때까지 말을 찔러라. 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야 칼을 빼들고 덤빈다. 뒤태가 고울수록 앞이 산다. 명시는 척 보면 누구나 다 안다. 귀신처럼 연과 연 사이를 속여야 좋은 시다. 억지로 막은 행간의 감정은 터진다. 밤하늘 빽빽이 펼쳐져 있는 별의 수만큼이나 땅에는 시어들로 깔려있다. 형과 상들이 저마다의 상징과 은유로 이름을 불러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시인은 굳이 본체를 보려고 애걸복걸할 필요가 없다. 흔들리는 사물의 그림자만 잘 보아도 그것의 기미와 기척을 낚아챌 수가 있다. 하여, 나만의 언어 감옥에 갇혀 살지 말고 꼿꼿이 면벽한 채 수행하라. 집착은 종종 시인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해학humor과 풍자의 다리를 넘나들 때 시적 상상력은 폭발한다. 말을 비틀면 화자는 희화된다. 꿈과 현실의 괴리는 낭만적 아이러니Romantic Irony를 낳았다. 특히 시에서 욕설은“나, 제발, 욕이라도 먹게 해서, 정신 차리게 좀 해줘”(김열규)라고 발버둥치는, 병든 개인이나 부조리한 사회의 구조 신호다.
「이 시인 놈아」는 화자‘아내’의 방백aside을 통해‘시인’의 무능을 까발린 작품이다. 문청 시절 나는 시인이 되면 나라에서 월급을 주는 줄 알았다. 이 글을 쓰는 아침 나는, 청상과부로 살다 저승에 가신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 결혼 후 어느 날 아내가 쌀독에 쌀이 떨어졌다고 했다. 순간 나는 ‘왜, 쌀이 떨어졌지?’라고 반문하며 아내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무능의 극치를 용서해주길 바란다, 사랑하는 아내여! 병病이 깊이 들고서야 나는, 두 여자가 철없는 나를 위해 얼마나 고행하였는지를 깨달았다. 아내는 어린 남매를 들춰 메고 압력밥솥처럼 팽글팽글 평생 힘겹게 돌았다. 희한하게도 그녀는 내게 한 번도 “시를 그만 두세요”라고 “빈말”이라도 말한 적이 없다. 하여「이 시인 놈아」는 ‘아내’가 그 말을 하기 전, 먼저 ‘나’를 꾸짖음으로써 남은 생을 비껴가고자 한다. 곰곰이 내 삶의 뒤쪽을 쪼개 봐도, 아무도 내게 “닥쳐요”라고 명령하지 않았고, 누구도 “입금 좀 제때” 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 늘 나의 몸은 내게 있어 주체와 객체 사이에 놓인 환상이었다. 시인은 그 자체가 은유이자 알레고리Allegory이며 이미지이다. 하여 “집세”를 제때 내기 위해서 “노을”이 될 필요는 없다. 가족이 밤마다 배가 고파 “보름달”을 뜯어먹어도, “장미 년, 모란 년, 매화 년”을 “끌어안고, 행간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아야 시인이다.「이 시인 놈아」속에는 현실 공간과 꿈의 공간이 역설로 재배치된다. 아무리 아내가 “빈말이라도, 돈 좀 줘 봐라, / 이 시인 놈아!” 하고 외쳐도, 이번 생에선 나는 ‘못 들은 척’ 시로만 살 것이다.
닥쳐요, 잊히면 좀 어때요.
진짜 시인이라면 구름에게 명령해요.
입금 좀 제때 하라고요.
집세가 없어요, 여보!
제발 노을에게 부탁이라도 해 봐요, 우리.
넷이서 밤마다 보름달만 뜯어먹을 순 없잖아요.
달무리라도 덮고 실컷 울고 싶어요.
당신이야 장미 년, 모란 년, 매화 년
끌어안고, 행간 속에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시인의 아내는 뭐예요.
그만, 그만, 내일 바람이 송금한다는
허황한 그딴 소린, 집어치워요. 제발!
빈말이라도, 돈 좀 줘 봐라,
이 시인 놈아!
―김동원,「이 시인 놈아」전문
결국「이 시인 놈아」는 밥과 예술과의 관계, 시의 형식과 내용의 문제를 동시에 역설로 묻는다.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시를 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에 이 물음이 포괄하고 있는 원주가 바로 시에 있어서의 형식과 내용의 문제와 동심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를 쓴다는 것―즉 노래―이 시의 형식으로서의 예술성과 동의어가 되고, 시를 논한다는 것이 시의 내용으로서의 현실성과 동의어가 된다는 것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깃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모깃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그것을…….”(김수영,「詩여, 침을 뱉어라―힘으로서의 詩의 存在」에서)
그렇다. 시는 현실을 뚫고 나가는 시인의 관觀이다. 시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언어 예술이다. 궁극적으로 미완성의 노정이다. 끊임없이 산꼭대기에서 굴려야만 하는 시지프스의 고뇌의 바위다. 오직 이 순간만을 파고드는 집중이야말로 ‘미완성’의 길이다. 머무는 곳마다, 서 있는 자리마다, 시가 태어나는 곳임을 자각해야 한다. 하여 시는, 궁하면 변하고窮則變, 변하면 통하고變則通, 통하면 오래간다通則久’는, 주역의 그 미완성의 극極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짐 히크메트(터키 출생. 1902~1963)는 이렇게 노래하였는지도 모른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이상 알 수 없을 때 /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시,「진정한 여행」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