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 줄부도…때밀이는 운다
보증금 수억원 내고 이발·구두 등 취직→불황으로 업소 부도→돈 받을 길 ‘막막’
[조선일보]
지난 6월 17일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위치한 ‘S사우나’. 바닥은 온통 건축자재들로 뒤엉켜 흙먼지가 쌓여있고 러닝머신 위에는 비닐이 덮여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낯선 이를 경계하는 사나운 눈초리가 느껴졌다. 기자임을 밝히자 안쪽으로 안내했다.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열 명 남짓한 남녀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어제 주인 측에서 건장한 청년 7∼8명을 고용해 이곳에 쳐들어왔어요. 1명은 다쳐서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경찰에도 신고해봤지만 민사 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더군요.”
“괴롭습니다. 어디에 호소할 데도 없고.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사람들은 봇물 터지듯 말을 쏟아냈다. 빌딩 5, 6층을 합쳐 1000평 남짓한 이곳이 개업한 것은 3년 전. 성수기에는 평일 남탕 손님이 600∼700명, 주말에는 1000여명이 찾을 정도로 장사가 괜찮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5월 중순 갑자기 문을 닫았다. 업주가 맘대로 찜질방을 다른 업주에게 임대했고 새 업주는 내부수리를 하겠다며 가스를 끊어버린 것이었다.
졸지에 공중에 붕 떠버린 것은 이 찜질방에서 용역을 맡아 일하던 15명이었다. 때밀이, 식당, 스낵, 이발소, 스포츠마사지, 구두, 좌욕, 부황 등의 코너에서 일하던 이들이 맡긴 보증금만 해도 총 7억5000만원이었다.
“주인 바뀌면 하소연 할 곳도 없어”
1억원의 보증금이 걸린 스낵 용역 노상우(60)씨는 “법률자문을 구해봤더니 새로운 임대주가 내부수리를 마친 다음 유치권을 행사해서 경매로 넘길 수도 있다고 하더라”며 “우리는 모두 전 주인과 계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돈을 받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
“전 주인은 ‘내가 왜 책임지느냐’는 식이에요. 새 주인에게 내부수리를 마친 다음 우리를 다시 고용하겠다는 각서를 써달라고 해도 써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사를 못하도록 24시간 동안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겁니다. 우리 돈은 누구에게 찾아야 합니까. 저는 집을 담보로 대출받았기 때문에 이 돈을 못 받으면 집도 넘어가게 생겼습니다.”
여탕 때밀이 김연희(42)씨는 “대출 이자는 계속 나가고 한 달이 넘도록 돈도 못 벌고 있다”며 “사업자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받을 길도 없다”고 울먹였다. 이발사 이재림(49)씨는 “찜질방이 너무 많이 생겼다”며 “주인들이 자기 돈만 챙기고 일부러 부도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올 여름 비수기를 맞은 대형 찜질방의 부도가 속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 압구정동의 T파크, 구로동 T사우나, 경기도 인천 T불가마, 철산 K사우나, 분당의 H사우나 등 올해까지 서울과 수도권에서 쓰러진 곳만 30여곳에 이른다”고 말했다.
문제는 때밀이, 식당, 스낵, 경락마사지, 좌욕, 부황, 구두닦이, 아이스크림 등 20∼30개나 되는 각 코너를 임대 받은 ‘용역’들이다. 이들이 맡긴 보증금의 수준은 일반인의 상상을 훨씬 초월한다. 찜질방이 대형화되면서 각 용역별로 1억원, 2억원씩 보증금을 맡기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업주는 자기돈 3억∼4억원만 들여도 찜질방 하나를 짓습니다. 건물만 계약하고 용역 20명만 끌어들여서 1억∼2억원씩 받으면 그것으로 공사비를 충당하니까요. 어느 정도 공사가 되면 그것을 담보로 은행에서 30억∼40억원씩 대출을 받습니다. 이러다보니 찜질방을 오픈하기도 전에 몇 억원씩 남기는 업주도 생겨나는 겁니다.”
“용역 돈 끌어다 대출 안고 업소 지어”
찜질방 용역전문인 서광컨설팅 신옥화 대표는 “IMF 직후 명예퇴직을 한 중년남성들 중에서 퇴직금을 모두 쏟아부은 이들이 많았는데, 이들 중에서 피해자가 많다”고 했다.
1억500만원의 보증금을 날릴 위기에 처한 구두닦이 배기봉(54)씨는 “장사가 잘되면 상관없지만 장사가 안되면 업주가 의도적으로 부도를 내버리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배씨는 지난해 4월부터 서울 인사동 ‘A 남성전용 사우나’에서 2년 계약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이 업소도 얼마 전 문을 닫았다. 배씨는 “주인이 수리해서 오픈하겠다고 했지만 다른 주인에게 업소를 팔아버렸고 매매된 지 일주일 만에 경매절차가 진행됐다”며 “전 주인과 현 주인은 한통속”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지난해 말부터 손님이 줄어들었고, 이 때문에 주인이 의도적으로 문을 닫으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황당하게도 배씨는 이런 사건이 벌써 두 번째다. 그는 몇 년 전 ‘S사우나’에서도 똑같은 일을 당했다. 당시에는 땅주인과 건물주인이 서로 달라 둘 사이에 소송이 붙었고 땅주인이 승소하자 건물주와 계약한 그는 돈 한푼 못받고 쫓겨날 뻔했다. 영업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이었다. 결국 민사소송까지 진행해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건물주는 돈이 없다며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당했으니. 집에서는 아예 왕따입니다. 집사람 앞에서 한숨도 못쉬어요. 낮에는 한강둔치에 갔다가 밤만 되면 술 한잔 먹고 집에 들어와요. 일이라도 해보려고 여러 군데 가봤지만 나이가 많아 써주지도 않습니다. 오죽하면 술에 취해 사장을 찔러 죽이겠다고 찾아갔겠어요.”
배씨는 “찜질방 내부라도 탕은 101호, 스낵실은 102호 이런식으로 해서 확정일자를 받을 수 있게끔 법률적인 근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탕 때밀이 정병선(52)씨도 이곳에 3000만원(월세 50만원)의 보증금이 걸려 있다. 29년 동안 때밀이를 했다는 정씨는 “예전에는 보증금이 몇 백만원이었지만 최근 너무 많이 올랐다”며 “자식들 앞에서 떳떳이 내세울 수도 없는 직업이었고, 나이 먹어서 남들한테 무시받는 것도 서러운데 보증금까지 떼먹힐 처지니 억울해서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1억7000만원이라는 거액의 보증금을 저당잡힌 이발사 곽세곤(60)씨의 처지 또한 막막하다. 곽씨의 경우 지난 3월 17일에 계약기간이 끝났음에도 전 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다른 이에게 가게를 팔아버렸다. 변호사를 선임해 현재 보증금 반환청구소송을 하고 있지만 주인의 채무가 많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40년 넘게 이 일만 했어요. 나이 먹어서 다른 일도 못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합니다. 평생 모은 1억2000만원에다 사채 5000만원을 끌어다 몽땅 여기에 쏟아부었습니다. 집사람과 저는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눈물을 흘립니다.”
같은 방법에 두 번씩 당한 사람도
전국의 찜질방은 대략 2000여개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규모는 500평대부터 5000평대까지 다양하다. 1998년부터 수도권에서 찜질방이 생겨나기 시작해 1999∼2000년 사이에 최대로 늘어났다. 문제는 정부 어디에도 찜질방 관련 주무부처가 없다는 사실이다. 찜질방, 산후조리원, 고시원, 단식원, 콜라텍 등 8개 종목은 행정기관의 인ㆍ허가를 받지 않고 세무서 등록만으로 영업을 할 수 있는 신종 자유업종이다.
찜질방협회 창립 준비위원인 이영주(49) 이사는 “주무부처가 없자 이들 신종 자유업종이 대부분 탈선하기 시작했다”며 “찜질방도 사우나를 갖춘 복합시설, 멀티플렉스화, 대형화하면서 과밀경쟁으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반경 100㎞도 안 되는 거리에서 1000평, 2000평 규모의 대형 찜질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제살 깎아먹기식 출혈 경쟁이 이뤄진 것이다.
서광컨설팅 신옥화 대표는 “업주는 시공업체와 짜고 평당 시설비를 뻥튀기, 분양회사와 짜고 분양가를 뻥튀기 하는 수법으로 은행 융자를 80∼90%까지 받아낸다”며 “은행에서도 실적 때문에 불법대출을 많이 해주는 바람에 서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찜질방이 대형화되면서 몇 백만원이던 용역 보증금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수억원대가 됐다.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불법 소개업자의 농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신축 상가 건물을 지으면 각 소개업자들이 주인에게 몰려가서 ‘용역보증금 15억원을 받아주겠다’ ‘18억원을 받아주겠다’고 합니다. 주인 입장에서는 손해볼 게 없죠. 용역들만 죽어나는 겁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보증금을 내는 거죠. 목이 좋은 곳은 들어올 사람이 줄을 서 있으니까 소개소에서 부르는 게 값입니다.”(노상우씨ㆍ오류동)
때밀이 보증금 최고 4억5000만원
부산의 S소개소 주인 김모씨는 “신축 빌딩이 지어졌다는 소문이 돌면 서로 따내기 위해 찜질방 주인, 건설 책임자 등에게 커미션을 준다. 때문에 소개비 수수료도 같이 오른다. 대개 20만∼50만원이 적정 요금인데, 100만원 이상 소개비를 받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부산경남 일반노조 이승섭 위원장은 “부산의 소개소 한 곳은 1500만원을 보증금으로 줬는데 소개소에서 그걸 가로챈 웃지못할 일이 생기기도 했다”며 “악덕 소개업자들이 이 직업이 법적ㆍ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악용한다”고 밝혔다.
“3000∼4000평 규모의 대형 찜질방에는 때밀이 용역 보증금이 최고 4억5000만원까지 할 때도 있어요. 돈 많은 이들 중에는 목욕탕 업주에게 용역권을 몇 개 사서 다시 하청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고리대금처럼 매일 5만∼6만원씩 이자를 받아가는 겁니다. 1억원 투자해서 은행 이자의 6배인 600만원을 가져가는 사람도 있습니다.”(월드사우나교육원 성열수 원장)
이들 업종은 목욕탕에 달린 부대서비스이기 때문에 80%가 사업자등록증이 없다. 설사 사업자등록증이 있어도 업주가 악의적으로 부도를 내면 현실적으로 보상받을 길이 없어 막막하다.
분당의 H사우나가 최근 영업중지되면서 졸지에 피해자 신세가 된 이모(45ㆍ스낵 보증금 2억원)씨도 그 경우다. 이곳은 용역 13명이 총 14억6000만원의 보증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H사우나는 지난해 8월 문을 연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았다.
악덕 소개업자가 보증금 부풀려
이씨는 “13명이 사장 집에 쳐들어가서 8일 동안 진을 치다 왔다”며 “고급 외제 인테리어와 살림살이를 갖춘 분당의 7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주가 살고 있는 70평대 아파트와 또 다른 50평대 아파트는 이미 다른 사람의 명의로 해놓았다고 한다.
“저희는 임대의 재임대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법적 효력이 없대요. 경매를 낙찰받은 새주인이 저희의 돈을 얼마나 고려해줄지 모르겠어요. 정말 그 돈에 온 가족 목숨이 달린 사람들도 있는데….”
이씨는 “포천의 온천 매점에서도 주인이 1억2000만원의 보증금을 빼주지 않아 고생했는데 이번에 또 이런 황당한 일을 겪는다”고 억울해했다.
“송파나 강남보다 분당에 찜질방이 더 많은 것 같아요. 2000평씩이나 되는 대형 찜질방들이죠. 건물주에게 양해를 얻어 한 달 동안 운영해보니 600∼700평 규모도 도시가스, 인건비, 물세 등을 합치면 경비가 7000만원이나 되더라고요. 경기가 나빠 손님이 계속 줄어들면 앞으로 부도나는 찜질방이 속출할 것 같아요. 피해자는 더 늘어나겠죠.”
사정은 지방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국노총 부산경남일반노조 이승섭 위원장은 “부산에도 여러 군데에서 비슷한 사건이 터졌거나 현재 진행 중”이라며 “수많은 용역 피해자, 저임금에 퇴직금도 없이 일하는 찜질방 보일러 기사 등은 비정규직 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은행에서도 최근 찜질방을 대출억제 업종으로 분류하고 신용도가 아주 높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대출을 자제한다고 밝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 대출 연체비율 평균이 3.4∼3.5% 정도인데, 목욕업은 3.9%선으로 높은 편”이라며 “2001년 1% 내외의 수준임을 감안하면 무척 높아졌다”고 말했다.
은행 대출 축소·담보 강화 등 대응책
“담보비율 또한 최대 80%까지 인정해주던 것을 60%밖에 인정해주지 않는 선으로 강화됐습니다. 이전에는 지점장이 대출을 전결했는데, 담보력만 보고 상환력은 보지 않은 바람에 경기가 갑자기 침체되면서 찜질방 부실이 심해졌어요. 지난해 상반기부터 본점에서 심사를 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주변 목욕탕 개수, 상환능력 등도 모두 꼼꼼히 따지고 있습니다.”
대책은 없을까. 이영주 이사는 “현재로선 법적인 해결책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주인이 자기 건물인지, 임대를 받아서 하는지를 파악해서 자기 건물이면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과도하게 많은 용역을 유치하는 찜질방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아요. 솔직히 답이 없습니다. 들어간 시점부터 1년 안에 최대한 많이 벌어서 나오는 게 차라리 현명하다고 할까요?”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의 반응은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요즘 담배판매업소 등 모든 업소의 거리제한도 없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찜질방에만 거리제한을 하기는 사실상 힘들다”면서 “공중위생을 담당하기 때문에 찜질방 부도나 그에 따른 용역들의 피해보상 문제는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현재 찜질방을 목욕장업에 포함되도록 하는 입법예고안을 규제개혁위원회에 상정해놓은 상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목욕장업에 포함되면 찜질방의 영업을 밤 10시까지로 제한하고 월 2회 휴일을 의무화하는 등 관리를 통해 이용객들에게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이들에 대한 아무런 법적ㆍ제도적 보호장치를 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이승섭 위원장은 “관공서며 국회의원, 청와대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얘기해봤지만 ‘때밀이?’ 하고 픽 웃기만 할 뿐 아무도 진지하게 이 문제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며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어려움을 더이상 방치해 둬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제발 억울한 우리 사정 좀 세상에 알려주세요!”
분명한 것은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더이상 묻혀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이승섭 한국노총 부산경남일반노조 위원장
“정식 계약서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이승섭 한국노총 부산경남일반노조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목욕관리사(일명 때밀이)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난해 무예타이대회를 열기 위해 태국에서 선수들을 초빙, 이들의 몸을 풀어주기 위해 마사지학원을 찾았을 때였다. 그 곳에서 찜질방의 부도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때밀이들이 많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는 그 길로 피해자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왜 이 일을 시작했나.
“예전에는 때밀이가 하류 직업으로 여겨졌지만 요즘은 하나의 전문직이다. 전국에 목욕관리사만 해도 10만명이 넘는다. 이 직업은 신용불량자도 일할 수 있는, 서민들이 자립하기에 가장 좋은 직업이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직업이자 상품이고 발전 가능성도 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법의 허점을 악용해 이들을 이용하는 사람들만 늘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제대로 된 계약서가 없다는 것이다. 소송을 해도 민사밖에 되지 않는다. 용역 보증금이 수억원까지 치솟았지만 이들 업계 종사자들의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 업주가 악의적으로 부도내버리면 집을 담보잡히거나 빚을 내서 용역으로 들어간 서민들은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된다. 한 가정이 통째로 부서진다. 아내는 도망가고 아이는 고아원에 보내고 노숙자가 된 비참한 경우까지 있다.”
불법 소개업자들이 기승하는 바람에 보증금이 계속 높아진다고 하던데.
“소개업자들은 협정 요금도 없다. 부르는 게 값이다. 심지어 악덕 소개업자는 장사가 잘 안되는 찜질방도 잘 된다고 속이기까지 한다.”
이승섭 위원장은 “소개소뿐만 아니라 목욕관리사학원들도 180만∼200만원의 비싼 학원비를 받거나 자격증을 돈으로 팔기도 한다”며 “처음 때밀이를 하려는 이들은 대부분 학원에 가는데 그보다는 되도록 찜질방에 직접 가서 실습을 하는 방향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안은 뭔가.
“일차적으로 종사자들은 이제 전문직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종사자들이 뭉쳐서 조직적으로 대항하지 않으면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다. 정부에서도 이들을 제도권 안으로 흡수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종사자들도 정식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세금내는 것이 소개소나 업주한테 뜯기는 것보다 낫다.”
◆찜질방협회 창립준비위원 이영주 이사
“주인이 직영하는 업소를 찾아라”
찜질방 창업 컨설팅을 맡고 있는 이영주 이사는 “올 4∼5월에는 하루 건너 하나씩 무너졌다는 소문이 들려온다”며 “부도난 건수가 20∼30건이고 분양을 받은 후 공사 시작했다가 자금 조달이 안돼서 중지된 곳도 20∼30건 정도 된다”고 말했다.
찜질방의 과밀 경쟁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맞다. 한 업소가 오픈하면 전단지를 뿌리는데 처음에는 1000원 할인하다가 한 달 지나면 50% 할인, 요즘에는 ‘1000원만 받습니다’라고 쓰여있다. 물론 고객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니 유리하다. 하지만 수십억원씩 투자한 사업자 입장에서는 모든 게 부담이다.”
최근 업주가 악의적으로 부도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한탕주의가 팽배했다. 지난해부터 2000평 규모의 찜질방이 유행했는데 업주는 2억원만 갖고도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 20∼30개 용역으로 20억원을 만들 수 있고 공간만 확보되면 옷장 등 실내 투자는 계약금의 10%만 주고도 후결제가 가능하다. 이러니 계획단계에서부터 불순한 의도가 개입한다. 용역이 많을수록 그런 리스크가 크다. 반면 90%는 주인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성실한 사업자로 부도 위험이 없다.”
용역들이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공증을 받든지 확정일자를 받든지 스스로 잘 챙겨야 한다. 달리 방법이 없다. 최소한 찜질방 업주 자신의 건물인지, 임대인지는 확인하고 과도한 용역을 유치하는 곳에는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2년 지난 찜질방은 안정됐다고 봐도 될 것이다. 솔직히 때밀이 1억원, 매점 2억원, 이렇게 비싸게 보증금을 내고 얼마나 수익을 얻을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보건복지부에서 찜질방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법안을 제출했는데.
“말도 안된다. 과도한 카드 발급으로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듯이 경기활성화ㆍ고용촉진을 위해 찜질방을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규제하겠다는 것은 정책의 실패를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다. 찜질방은 목욕탕과 달리 열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영업스위치를 내리고 다음날 다시 영업하려면 최소 3∼4시간 전에 스위치를 올려야 목적 온도에 도달한다. 실질적인 연료절감 효과는 별로 없다.”
이영주 이사는 “찜질방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은 업계 스스로 자정노력을 해나갈 것”이라며 “지금까지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던 정부가 갑자기 규제한다면 건실한 업주들 다수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