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굴(대제 공소)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충청도 일원과 영남 각처에서 피난해 온 교우들과
간월의 교우들이 좀 더 안전한 곳을 찾다가 발견한 박해 시대의 공소
언양지방의 두 번째 공소
샤스탕 정신부와 다블뤼 안 신부가 1840년부터 1860년까지 사목을 담당했던 곳.
경신박해(1860년)때 최양업 신부도 3개월 동안 박해를 피해 은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들었지만 어찌어찌 찾다가 이 길로...
하루를 꼬박 잡아야 마음 먹고 갈 수 있다고 들었던 터라
하루를 잡아 출발
가장 짧은코스 4KM라고 되어 있는데...산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ㅠ.ㅠ
개인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는데 느끼는 건 개인별로 다른가 보다. ㅠ.ㅠ
울산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산76-1을 내비로 치고 가 본다.
누군가의 글에서 봤듯이 맞은편에 공터(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어디선가 누군가가 주차요금을 받으러 오신다.
어디서 본 기억이 나서 산길을 운행해 주는 트럭을 물으니 지금은 운행을 안하신다고 하신다.
이런 오르막을 끊임없이 계속 가야하는데
계속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길 닦인 등산길임을 개인적으로 실감
이 숫자에 마음을 다 잡아 보지만 ㅠ.ㅠ 산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길이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80대 노모를 모시고
순례 마치고 돌아가는 부부 가족을 뵙고는
힘들다는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는...
안내판을 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신부님 분위기의 형제님이 보이신다.
간단한 대화 중에 교우가 아님을 알아차린 우리에게 당신이 개신교 목사님이라고 밝히신다.
반대편 산길로 오셨다고 하신다.
반대편 산길은 완전히 눈길이었다고 ..
어쩐지 산행하시는 등산객들 차림이 겨울등반 차림이었다.
2월 산길이니 얼음 산길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겨울 성지 순례는 일기를 잘 보고 가야 할 듯~
이렇게 작아 보이는 입구로 들어가 본다.
굴 안에서 본 풍경
성지 도장은 굴 안에 위치해 있다.
굴 안은 성인이 설 수 있는 크기지만 100명이 모이기엔 넉넉한 공간은 아닌데
성지 책자를 인용하면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고 하니 그 정도의 인구가 모였던 것일까?
나에게만 이 길이 힘든 길이었나 싶은데...ㅠ.ㅠ
주차장으로 돌아와 노모 가족을 또 만났다.
우리에게 음료를 건네고도
먹을게 아주 많으시다며
우리의 호의는 받지 않으셨던 가족
https://youtu.be/kgLZailwV4I
병영장대(울산 병영)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가 있어 군사 훈련과 중죄인을 처형하던 곳.
병인박해(1866-1873년) 중 3인 순교자를 포함하여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순교터이다.
병인박해(1866년)는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가장 혹독했던 박해로 기록된다.
울산병영 장대에서 처형된 순교자들은 소위 군문효수(軍門梟首)의 형에 처해졌는데,
이는 참수된 이들의 머리를 장대 위에 매달아 두는 대단히 가혹한 처형 방법이었다.
경신박해 때 백지사형(白紙死刑)으로 순교한 오치문, 병인박해 때 경주 감옥에 갇혔던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 회장 등이 이곳에서 군문효수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