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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너크리'가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에
이번에야 말로 산중에서 꼼짝 없이 비를 만날 각오를 하며 우의를 챙겼지만
하늘에는 잿빛 구름이 검은 물감을 붓으로 당긴듯한 모양으로 뻗치어 있을 뿐.
바람 한점 불지않았다.
"잘하면 오늘은 비를 피해 갈 수있지 않나" 하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몇시간을 차에서 보내는 것은 지루한 일이기에
말동무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난 몇번의 산행으로 느꼈기에
인풍리에서 차에 오르는 선배의 부인 '김ㅈㅂ여사가 보이기에
"언니 여기 앉아"하며 불렀더니 웃으면서 옆자리에 앉았다.
동갑정도로 생각했는데, 나보다는 한살 더 많다고했다.
남자 못지 않은 술 실력에 걸걸한 성격이기에 '언니'라고 부르며 옆자리에 앉혀도
특별히 남들의 눈길을 끌지 않았다.
이번산행에는 이전의 3차례 산행 보다 새로운 얼굴이 많았다.
쌍달리의 부녀회장이라는 분과, 산악부대장이지만 처음 참가하는 김ㅎㅅ 씨,
장원리의 이ㄱㅎ씨 부부. 그리고 태성리의 신모씨가 소개 되었다
충북이 같은 충청도라도 우리나라의 교통이 남북으로는 쭉쭉 뻗어 있지만
동서로는 그렇지 못하기에 고속도로로 긴 거리를 우회하고 하고도
국도를 오래 타야 되는 길이었다.
고속도로를 거의 벗어 났을 무렵 창밖을 보니
바람이 일고 있었지만 세찬 것은 아니었다.
"제발 비는 오지 말고, 바람이나 시원하게 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더니
김ㅈㅂ여사가 "얼마나 좋겠느냐?"고 따라 웃었다.
여자들의 가장 큰 한은 역시 시집살이 인것 같다.
김여사는 이미 아들과 딸을 모두 출가 시켰고, 나이도 60을 한참 넘겼지만
아직도 시어머니가 건재하시다고 했다.
40년 가까이 한집에서 같이 살았기에 친정어머니처럼 스스럼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어머니라 남자들도 한두끼 정도는 끼니를 해결하는 현실에서도
아들이 손수 끼니를 해결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아내가 없으면 가끔은 밥을 해먹는 나도 아내에게는 부담을 느끼게 하는 것 같은데,
전답이 있고, 그것은 수입보다 일을 의미하는 것인데,
삼식을 시켜야 한다면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리라.
그래서 지루한 일상의 스트레스를 벗어나려고 이렇게 나들이를 하는것 것 같았다.
버스가 주차장에 들어서기 전 부터 길 아래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계곡을 떠나갈 듯한 아이들의 웃음 소리에도 웅덩이의 물은 흐렸고,
그래서 그 분위기도 흐린날씨처럼 느껴졌다.
버스에서 내리니 9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지금까지의 산행은 주차장을 떠나서 한참을 포장길을 걸었었는데,
이곳은 주차장 아래로 나무 계단이 놓인 곳을 건너고 나면 바로 등산로였다.
계곡을 따라서 길이 계속 되었는데,
형용하기 어려운 모습의 크고 작은 바위와 돌은 세찬 물세례를 견디는 흔적으로
때가 묻어 있지 않았지만 마른장마로 끝나버린 날씨로 바닥엔 물이흐르고 있지 았았다.
가끔씩 큰 바위 아래의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었지만 그것이 더 타는 목을 느끼게했다.
예년처럼 비가 내렸다면 산위에서 부터 흘러내리는 물 줄기가 바위를 때리고
거기서 일어나는 물안개로 온 계곡 안을 시원하게 했을 길일텐데......
오후 4시에 '칠보산장'이란 곳에 식사가 예약 되어 있기에 등산 중에
간단히 요기를 하려는 계획이어서 시간은 넉넉했다.
그래서 늘 선두에 섰던 산악대장 '이ㄱㅈ씨 대신 박과장이 선두에 섰고,
이대장은 늘 처지는 약한 사람들을 돌 봐 주려고 후미로 왔다.
큰키에 네모진 턱으로 강인해 보이지만 너글너글한 성격으로
믿음직하고 친근감이 드는 사람이었다.
이대장이야말로 정말 많은 산을 다닌 사람이고, 지치지 않는 체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컴과 인터넷도 누구보다도 익숙한 사람으로 인터넷에서 '홀대모'라고 검색해 보라고 했다.
"홀로 백두대간을 탐방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의미라고 했다.
그렇게 홀로 산을 탐방하려면 여러가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제일 중요한 것은 홀로 산으로 떠나는 남편을
기다려 줄 수 있는 아내들의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대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아내를 생각하고 슬그머니 웃음을 지었다.
짙은 그늘임에도 땅은 건조했고,그것이 더욱 무덥고 목마르게했고
산등성이에 이를 때까지는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을 감탄하게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범한 산길이었다.
발자욱을 뗄대마다 숨이 가쁘고 땀이 비오듯하는 길을 1시간 쯤 오르자
산등성이에는 먼저 오른 임ㄷㅇ이사장이 힘겹게 발을 올려딛는 총무강ㄷㅅ여사와
사무장 박ㅌㅅ여사를 하나 둘 소리치면서 격려를 했다. 막힌 계곡에서 등성이에 이르는 순간
쏴아하는 바람이 얼굴과 몸을 파고 들었다. 시원한 사이다의 맛이라고 해야 될까?
거기서 몇컷의 사진을 찍고는 100미터 정도의 산등성이를 오르자 나무로 된 계단이 나왔고
거기를 오르자 앞이 탁트인 전망대였다.
해발 714미터라고 하지만 그것은 숫자에 불과할뿐
평지 돌출로 솟아 있는 앞의 두 봉우리는 탑처럼 가파랐다.
여사님들에게 몇개의 사진을 찍어 주고 이대장에게 카메라를 넘겨 나도 한장을 찍었다.
거기서 합류한 일행중의 쌍달리의 부녀회장이 그런대로 버티어 오다가
오르막이 가파라지자 다리에 쥐가 난다고 했다. 이대장과 김부대장이 부축했다.
가장 후미를 지켰던 나는 강여사와 박여사와 함께 그들을 뒤로하고 정상을 향했다.
남을 도울 능력이 없는 내게 이대장이 더욱 믿음직한 생각이 들었고,
만약 내게도 어떤 일이 나더라도 괜찮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100미터 정도의 등성이에 올랐을 때. 갑자기 빗방울이 얼굴을 때렸다.
뒤이어 빗줄기가 다가 왔다. 급하게 우의를 꺼내 입었지만 비보다도
거센 바람이 우의를 찢어 버릴듯이 펄럭였다.
배낭까지를 덮는 우의를 입는 동안 일행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팀과는 다른 일행들과 섞이어 그 뒤를 따라서 가파른 계단의 정상 에 올랐지만
주위를 돌아 볼 사이도 없이 카메라를 적시지 않으려 우의를 여미는 데만 급급했다.
그래도 정상에는 김ㅇㅈ부회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펄럭이는 내 우의의 단추를 잠그어 주며
회원들이 간 곳을 손짓했다.
정상은 바위로 되어 있어서 나무로 계단을 만들고 바닥을 깔지 않았다면
등반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올라 갈수 없는 곳이었으리라
우의를 날리다 못해 내 몸을 통째로 날릴 것 같은 세찬 비바람에 전망을 둘러 볼 여유는 전혀 없었다.반대편으로 난 계단을 내려섰다. 70도 이상의 사다리 못지 않은 계단 이었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계단이 무서워져 왔다.
올라갈때는 그런대로 올라 가지만 내려 올때는 아래 계단과 위계단이 난시 때문인지
등거리로 보이기도 한다. 만약에 아래계단에 발을 디디려 한다면 바로안전사고로 연결 될 것이다.
왼손으로 스틱 두개를 들고, 바론 손으로 옆의 난간을 잡으며 내려갔다.
그 계단이 어찌 그리 긴지.30-40개 정도의 계단이 100개도 넘도록 많게 느껴졌다.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또 옆 정상을 우회하는 계단을 올라가야 된다.
우리 일행이 보이지 않아 다른 길로 들어서지 않았는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을 때,
김ㅅㅅ여사가 맞은편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최대한 달렸으나 금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일행과 섞이어 밧줄을 잡고 바위 위를 내려가야 되는 곳을 지나자
7-8명의 일행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가 맞아 주었다.
다행이 비는 멎었다. 선두 그룹은 거기서 식사를 하던 중 비를 만나서 황겁히 내려 갔다고 했다.
우의를 벗자 박ㅌㅅ여사가 옆자리를 내어 주었다.
거기까지 오는 도중 박여사는 몇 번 쓰지도 않은 등산모를 날려 버렸다고 했다.
끈을 단단히 했기에 내 모자는 날리지 않았지만 챙이 들려서 나뭇잎처럼 까불렸다.
찬찬히 둘러보니 강여사와 김ㅅㅅ여사 김ㅈㅂ여사가 보이고
김ㅇㅈ부회장과 그 부인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모두 비에 젖고 바람에 머리칼이 날리어 폭격에 살아 남은 모습 같았다.
그래도 배가 고프니 도시락을 꺼내었다. 나는 마늘고등을 조린것과
쇠고기볶음을 싸갔는데 누군가가 가져 온 열무김치가 밥을 먹게했다.
그곳이 높은 곳이라 바람이 더 세찼겠지만 평지의 그런 바람이라면
흙을 날리어 도시락을 꺼낼 염도 못했을 것이다.
손자 선유를 데리고 식사를 하는 부산함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밥이 입에 들어 가는지 코에 들어 가는지 모를 정도의 정신 없는 식사였지만
그래도 집에 있을 때 늘 따라 다니던 울울한 기분은 없었다.
식사 중에 김ㅅㅅ여사가 "이 악천후에 이 높고 험한 곳을 밟아 보았다는 것만도 행복하다"고 했다.
다른 회원과는 다른 장애를 지닌 여인으로서
순전히 정신력 하나로 올랐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으랴!
산악회에 상을 정해서 준다고 하면 공로상은 물론 박ㅌㅅ여사와 강ㄷㅅ여사에게 주어야 겠지만
감투상을 준다면 김ㅅㅅ여사에게 주어야할 것 같다. 시간을 보니 1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식사를 한 곳은 정상을 내려 오는 길목의 중간쯤인 것 같았다.
거기서는 한개 정도의 나무 계단을 지난 것 같고,
밧줄을 매어 놓은 바위길과 난간을 잡고 내려와야 하는 길이었다.
그런 길을 누군가 하라고 해서 가야 된다면 그 명령(?)을 들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올라 가는 것보다 더 위험한 내리막길을 진땀을 흘리며 내려오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범한 산길이 었다.
내려 오면서 누군가 발가락이 아프다고 하자 김부회장의 부인이
"등산화 끈을 모두 매면 발가락이 운동화 끝에 까지 닿지 않아 아프지 않다"고 했다.
남편을 따라 산에 자주 다니면서 다른 사람보다는 많은 노하우를 얻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처음으로 김부회장의 부인 인줄 알았지만
다른 시골 부인과 똑 같이 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는 사람 이었다.
김부회장은 쟁쟁한 곳의 소장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사람인데,
부모를 모시러 귀향한 사람이었다.
부인이 협조해 주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 어떤 여인인가 궁금하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평범한 비탈길을 내로 오자 가끔씩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운에 뜨이는 평평한 길이었다.
그런데 다른 곳과는 달리 산에 오를 때 보았던 바위도 그렇고
내려 오던 길에 보이는 바위에도 굴러내리지 말라는듯이
작대기 만한 10여개의 나무로 떠괴어 놓은 듯 바위와 땅사이에 박아 놓은 것이 보였다.
어떤 미신의 주술이 아니고 등산객의 장난이라면 취미가 괴이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었다. 가끔씩 사진을 찍어 가면서 600-70미터를 내려 오자
일행의 본류가 냇물속의 바위에서 쉬고 있었다.
이미 어느 정도의 술잔이 돌았였는지 상당히 거나한 느낌이었다.
거기서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고 천천히 주차장까지 걸어 내려 오니 3시가 겨우 넘어 있었다.
예약된 시간 전에는 들일 수 없다고 하기에 식당 앞의 냇 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그늘 밑에서 잡담을 하기도 했다.
나도 몇장의 사진을 찍고 짧은 동영상 두어개를 찍었지만
산악회 까페지기 전ㅁㅎ양은 이곳 저곳을 사진을 찍느라고 쉴새가 없었다.
남의 사진을 찍느라고 정작 자신의 사진은 한장도 보이지 않는 전양에게
줌을 써서 몰래 카메라로라도 잡는다고 농담을 했었고,
두어장을 건지기는 했지만 까페에 올리자 마자 완강한 항의를 견딜른지 모르겠다.
예쁜 얼굴을 왜그리 찍히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칠보산산장'이란 그 식당에서 식사를 끝나니 5시가 넘었고,
구름 낀 산골의 날은 어둠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이미 거나해진 분위기가 그대로 갈리가 없었다.
노래방 메뉴가 돌려 지고 노래 한곡조를 뽑기 시장했지만 미륵산에서의 전과(?) 때문에
나는 노래를 시키지 않았다.
박ㅌㅅ여사가 배려해서 그런 것이지만 한곡조 시켜도
먼저 보다는 잘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대부분 지난번 노래방의 재판이었지만 거의 끝에 이번에 처음 참석한
이 ㄱㅎ씨가 노래를 부른 것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예전에 보았을 때 보다 좀 나이가 든 모습이지만 훨씬 날씬해진 예쁜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편 옆에서 박수를 치며 응원하는 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내 둘째 동생의 동기생인 줄 몰랐다면서 앞으로는 "말을 놓으라"는 말이
어른 노릇을 할 능력이 별로 없는 내게 짐스러면서도 흐뭇한 기분 들었다.
헤어지기전 영광식당 앞에 자리를 펴고 남은 수박을 썰었다.
산악회를 위해 박ㅌㅅ여사가 손수 재배한 복수박이었다.
잘라먹지 않고, 깎아 먹는 다는 복수박은 무척 달았고,
아이스박스에서 금방 나온지라 차가웠다.
두어조각을 먹고서 거기서 멀지 않은 집으로 간다고 인사를 하자 한덩이를 들려주었다.
박여사가 예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여자의 아름다움이 외모에만 있지 않고,
부드러운 태도와 남을 배려하는 고운 마음씨에 있는 것이고,
그런 관점에서 박여사와 강여사는 는 아름다운 여인들인 것 같다.
언제까지 산악회를 따라 다닐지 모르지만 두 여인의 헌신이 따듯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김ㅅㅅ여사는 산정상을 밟아 본것 만으로 행복하다고 했지만
나는 모든 사람으로 부터 멀어지고 잊혀져 갈 이방인 같은 존재로서
받아 들여 주고, 갚을 수 없는 친절함을 베풀어 주는 사람들 속으로
뭍혀 들어 가는 것이 행복한 것 같다.
뿌듯한 마음으로 수박을 안고 집을 향했다.
잘 봤습니다.
잘봤어요
감사합니다
7가지 보물이 숨겨져 있어 칠보산이라죠? 처녀시절 추억이 깃든 곳이에요 ^^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 참 부럽네요
일 그만두면 나도 일원이 되고싶네요
바윗돌이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ㄳ
잘봤습니다
꼭 가보고 싶네요~
좋은산행정보와 사진잘감상하고갑니다 ~~
사진잘보고갑니다
나도 가보고 싶어요
풍경을 보니 등산이 하고 싶어지네요...
무더운 날씨가 계속 되니 녹음이 우거진 계곡에서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나마 이 견디기 어려운 여름을 피하고 싶네요.
휴가철이 되어 도로마다 교통 체증이 심해지고 있겠네요?
떠나기 전의 기대와 돌아올 때의 즐거움이 도로에서 겪는 짜증으로 지워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올여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꼭가보고싶네요~
덤으로 산행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산 넘나 아름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