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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지, 하나님
성경 천영대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사31:1~3)」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6:17,18)」
애굽의 도움을 구하는 자는 화있음
세상에 속한 자, 곧 주님을 믿지 않고 자기 생각을 따라 생활하는 자들은 세상에서 중히 여겨지는 것들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가운데서 그러한 것들을 의지하면서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거나, 무언가 안정을 누리거나, 행복한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것들, 곧 세상에서 중히 여겨지는 것들을 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고하고 애쓴다. 자신이 직접 그러한 것들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빌어서라도 목적하는 바를 이루려고 한다. 이사야 31장 1절에서는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라고 했다. 애굽으로 도움을 구하러 내려가는 자들은 화가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의 힘을 의지하면서도 주님은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애굽은 세상을 뜻한다. 즉, 주님을 앙망하거나 의지하지 않고 세상에 있는 힘을 의지해서 전쟁을 하거나 다른 무엇을 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고 했다. 이사야 30장 1,2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라고 했다. 세상의 힘을 의지하여 강해지려고 주님께 불순종하는 가운데서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즉, 세상에 있는 것들이나, 세상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강해져서 전쟁에서 이기려고 하거나, 자기 세력을 확대하려고 한다. 이러한 방법들에 처음에는 그 도모가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그 도모가 실패하거나, 오래가지 못하고 망하게 되고 만다. 그것은 세상 모든 것의 주관자는 우리 자신이 아니고 천지만물의 창조주이며, 주관자이며, 우리의 구속주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아니했다. 천지만물의 창조주와 주관자가 되시며 그들을 택한 주님을 의지하고 섬기는 삶을 살지 않고 세상으로 예표되는 애굽을 의지하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길, 죄악된 길을 갔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주님을 대적하는 가운데서 많은 고난과 고통과 징계를 받았다.
민수기 13장 31〜14장 5절에서는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고 했다.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로 말미암아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옛날에 생활했던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특별한 재앙을 내리고 이적을 행하심으로 그들을 종살이하는 가운데서 건져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종살이하던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믿고 거듭난 후에도 주님만 추구하고 앙망하는 가운데서 주님을 향하여 달리지 아니하고 여전히 옛날의 생활, 곧 육신이나, 세상을 사랑하는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고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38,39절에서는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했다. 우리는 일반적인 세상에 있어서도, 종교적인 세상에 있어서도 결코 뒤로 돌아가면 안된다. 주님을 믿고 거듭나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데서 돌이켜 옛날의 (종교적인) 세상 생활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이것은 하강하는 생활이며, 내려가는 생활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애굽에 도움을 청하러 가는 것에 대해 ‘애굽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우리는 내려가는 자가 아니고 올라가는, 전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누가복음 10장 30절에서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났다고 했다.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데로 가는 것에 대해 ‘예루살렘에서 내려간다’고 했다. 세상 모든 도시의 중심은 예루살렘이기 때문이다. 또, 예루살렘이 세상 모든 도시의 중심인 것은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옛날 조선시대에 서울을 떠나 다른 데로 가면 서울에서 내려간다고 했고, 다른 곳에서 서울로 가면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 나라를 대표하는 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도 왕중의 왕이신 주님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는 자가 아니라 그 주님 안에서 주님만 추구하며 달려가야 한다. 빌립보서 3장 10〜14절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상을 위해 달려가야 한다. 옛날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세상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말고 오직 주님만 관심하고 사랑하는 가운데서 그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우리는 전날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주님을 향해 올라가야 하고, 또 전진해야 한다.
악을 도모하는 자도, 그를 돕는 자도 치심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이시며, 우리의 구속주이신 우리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공의의 주님이시기도 하다. 이러한 주님께서는 그를 대적하고 불순종하는 자는 징계도 하시고, 심판도 하신다. 물론, 주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데서 돌이켜 정상적인 길, 주님의 길로 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주님께서는 잘못된 일을 하는 자는 말할 것도 없고, 잘못된 일을 하는 자를 돕는 자도 다루신다. 이것은 잘못된 일을 하는 자를 돕기 때문에 그 사람이 악을 행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쌍방을 다 처벌하시는 것이다. 이사야 31장 1〜3절에서는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고 했다. 이 내용은 이스라엘이 주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순종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그 당시에 힘이 있고 강하다고 생각되는 애굽의 도움을 입으려고 애굽으로 가서 도움을 입게 되면, 곧 애굽이 이스라엘을 도움으로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게 되면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도운 애굽도 다루시겠다는 것이다. 악을 행한 이스라엘만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스라엘을 도운 애굽도 넘어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악한 일에 동참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거듭나 주님 안에 사는 자들, 곧 주님의 몸의 지체들로서 주님의 몸을 세우기 위해 주님 안에 사는 자들과 함께 해야지, 세상을 사랑하는 가운데서 육신을 좇아 주님을 대적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해서는 안된다. 이사야 30장 1〜5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그 방백들이 소안에 있고 그 사신들이 하네스에 이르렀으나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못하는 민족을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고 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세상을 따라 애굽의 도움 아래 강해지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그 도움이 도리어 수치가 되게 하겠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뢰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힘이 있다고 하는 자를 의뢰하며 주님을 대적하고 악한 길로 간다면 주님을 대적하고 악한 길로 가는 이스라엘을 다루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스라엘을 돕는 애굽의 도움도 유익이 되지 못하고 헛되게 하겠다고 했다. 악을 도모하는 이스라엘을 돕는 애굽도 주님께서 다루심으로 애굽의 도움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수치가 됨과 아울러 헛되고 무익하게 하겠다고 했다. 이사야 30장 6,7절에서는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 보물을 약대 제물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고 했다. 주님을 믿고 거듭나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사는 자들은 자신이 주님 안에서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죄를 짓는 데 함께 하는 자, 곧 죄를 범하도록 방조하는 자가 되어서도 안된다. 세상도 이러한 자들을 다루는데 주님과 관계된 자들은 얼마나 더하랴! 사무엘하 16장 20〜22절에서는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모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머물러 두어 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부친의 미워하는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고 했다. 아히도벨은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압살롬을 악한 계교로 도왔다. 이렇게 됨으로 압살롬은 죽임을 당했고, 그를 도왔던 아히도벨은 그 도모가 성사되지 아니함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무엘하 17장 23절에서는 “아히도벨이 자기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 아비 묘에 장사되니라”고 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악에 관계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끝까지 주님의 뜻을 이루는 길로만 가야 한다.
물질을 의지해서도 안됨
우리는 세상의 힘을 의지해서도 안되지만, 세상에서 중히 여겨지는 물질을 의지해서도 안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물질을 중히 여기는 가운데서 그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정치가도, 행정가도, 학자도, 예술가도, 체육인도, 농부도, 어부도 다 재물을 사랑하는 가운데서 그것을 취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재물은 일종의 우상이나, 신이 되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어떤 사람은 재물을 섬긴다는 것이다. 곧,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재물을 신과 같이 섬긴다는 것이다. 이만큼 물질의 위력은 대단하다. 여호수아 7장 19〜26절에서는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 여차히 행하였나이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를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취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놓으니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고 했다. 아간은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취해서는 안 될 물건들을 탐내어 숨김으로 종국에는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자녀들과 가축들 모두가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침과 불사름을 당함으로 멸망당했다. 재물 얼마를 탐내어 숨김으로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에 속한 것들이 비참한 죽임을 당했다. 시편 52편 6,7절에서는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저를 비웃어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의지해야 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먼지처럼 날아갈 재물을 의지하고, 자랑하고, 중히 여기는 가운데서 그것을 취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디모데전서 6장 7〜10절에서는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돈을 사모하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난다고 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은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지 부하려 하거나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히브리서 13장 5,6절에서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고 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고 했다. 주님이 만유이시므로 우리는 그 주님으로 만족해야지 세상의 물질로 만족해 하거나 행복을 누리려고 해서는 안된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서는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라고 했다. 말세 때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 중의 한 가지가 돈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돈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때도 말세의 때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는 가운데서 돈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믿음에서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으므로 우리는 돈을 사랑하는 데서 나와 주님을 사랑하고, 또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생을 의지해서도 안됨
우리는 물질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자가 아니고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물질을 의지해서도 안될 뿐만 아니라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해서도 안된다. 야고보서 4장 13,14절에서는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우리가 무엇이 대단하다고 큰 소리를 치거나, 누군가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마태복음 5장 33〜36절에서는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대단한 자가 아니고 머리털 한 가락도 희고 검게 할 수 없는 자다. 또, 마태복음 6장 27절에서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했다. 아무리 염려한다고 해도 그 키를 한 자도 더할 수 없는 자가 무엇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큰 소리를 치거나, 또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자를 의지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일반 사람들이 거드름을 피우는 가운데서 함부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자들이 아니다. 시편 146편 3,4절에서는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라고 했다. 인생은 도울 힘이 없다고 했고, 또 그 호흡이 끊어지면 계획했던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고 했다. 인간은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장 중에 있다. 이사야 51장 12절에서는 “가라사대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사람에 대해, 죽을 사람, 풀같이 될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 인간은 실제로 이러한 자들이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서는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했다. 모든 육체는 마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얼마 있지 아니하여 떨어지는 꽃과 같다고 했다. 고로 이러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레미야 17장 5절에서는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무릇 사람을 믿고 혈육으로 권력을 삼고, 의지하며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떠난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 이렇게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대신에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이사야 2장 22절에서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했다. 코에 호흡이 있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진정으로 의지할 가치와 자격이 있는 주님을 의지해야지, 호흡이 코에 있고, 안개나 풀과 같은 인생을 의지해서는 안된다.
오직 주님만 의지함
많은 사람들이 의지하거나 신뢰할 가치가 없는, 허망한 것을 의지함으로 주님께서 주신 귀한 시간이나, 물질이나, 에너지를 엉뚱한 데 소모하고 있다. 이것은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죄를 범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아닌 그 어떤 것도 의지하거나 신뢰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것들이 세상에서 아무리 중요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에 불과하다. 우리 주님만이 창조주와 그 만물의 주관자와 우리의 구속주로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유일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주님만 믿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 이사야 26장 3,4절에서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라고 했다. 주님을 영원히 의뢰하라고 했다. 세상에 있는 허탄한 어떤 것들을 의뢰하지 말고 영원한 반석이신 주님, 견고하신 주님을 영원히 의뢰하라고 했다. 시편 118편 6∼9절에서는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라고 했다. 우리는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해야 한다. 예레미야 17장 5∼7절에서는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사람을 믿고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난 자는 저주를 받지만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 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의뢰함으로 복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시편 146편 5∼10절에서는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라고 했다. 주님으로 도움을 삼고 그 주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마땅히 믿고 신뢰해야 할 분을 믿고 섬겨야지 그렇지 아니하고 아무나 믿고 섬기면 종국에는 그것이 화가 된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와 그것들의 주관자와 모든 최고 것의 소유자로서 그의 창조물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섬기며, 모든 소망을 두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가 이러한 분만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도록 역사하신다. 세상에 있는 다른 어떤 것, 주님께서 창조하신 어떤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주님만 믿고 의뢰하도록 역사하신다. 고린도후서 1장 5∼9절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대단한 자로 생각하고 의뢰하는 데서 나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주님만 의뢰함으로 허탄한 삶이나, 주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지 않고 그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디모데전서 6장 15,16절에서는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이라고 했다. 우리는 별것 아닌 것을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가 아니라 마땅히 믿어야 하고 의지해야 할 자격이 있고, 가치가 있는 분을 의지하고 소망해야 하는데 그 분은 다름 아닌 우리 주님이시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며, 전지전능하신 주님, 우리의 구속주이신 주님이시다. 우리는 이 주님만을 믿고 신뢰하고 의지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6장 17∼19절에서는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했다.
주님은 진정으로 믿고 의지해야 할 주님만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 그것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기 원하신다. 이사야 3장 1∼3절에서는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 하실 것이며”라고 했다. 주님은 우리가 허탄한 것을 믿거나 의뢰하지 않고 진정으로 믿고 의뢰해야 할 주님 자신만을 믿고 의뢰하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신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뜻을 바로 알고 믿음과 신뢰의 진정한 대상이신 주님만을 믿고 신뢰하고 따름으로 그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진정한 믿음의 대상이며 신뢰해야 할 주님을 믿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고 주님 외의 다른 어떤 것(자)들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기 싫기 때문이다.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은 그 자신을 부인하고 그를 따라야 하지만, 주님 외의 어떤 것을 의지하는 것은 자신 마음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로 어렵지가 않다. 주님을 신뢰하는 자는 주님께 종이 되어 주님을 섬겨야 하지만, 다른 것들을 의지하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을 믿거나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들을 의뢰하는 자들이 많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은 멸망의 자식이며, 저주를 받을 자들이다. 우리는 아무나 믿고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자격과 가치가 있는 유일한 분이신 주님만 믿고 신뢰하고 따름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