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에는 음식 맛이 좋은 식당들이 여러 곳이 있습니다.
저녁 무렵, 아내가 모처럼 두부 전골을 먹으러 가자는 제안을 하기에, 학원 수업을 마친 아이를 데리고 맛집으로 소문난 두부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세 식구가 조용히 저녁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시던
손님의 휴대폰 벨이 울렸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벨소리가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라는 찬양이었습니다.
노래 소리를 들으며 아내에게, “만일 저분이 술집에 갔을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면 대박이겠다.
나아가 다른 손님들이 저 찬양을 알아 들으면 서로 간에 무안하겠다.”며 웃었습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옆에서 식사하시던 여성분이 다가와서
대뜸 하시는 말이 “목사님이시라면서요?”라며 초면임에도
몇 년 동안 알았던 지인처럼 살갑게 다가오셨습니다.
잠시 후 식당 주인분께서 저희에게 오셔서 저희 밥값을
그분들이 계산하셨노라 귀뜸을 해 주셨습니다.
동시에 식대를 선불해 주신 두 분께서 저희 테이블로 오시더니
자신은 추곡에서 오순절 기도원을 운영하는 예장 합동 측의 목사이고,
1급 시각 장애자이며 옆에 있는 여성은 자신의 아내라며 소개를 하셨습니다.
얼떨결에 초면의 분들께 식사를 대접받은 터라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두 분은 어떻게 결혼하시게 되었습니까?“ 라 물었더니
사모님의 답변이 흥미로웠습니다.
여장부 스타일인 사모님은 남편 목사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차량 운전에서부터 시작해서 목회 전반의 일들을 사모가 담당한다며,
그럼에도 감사함과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표정과 온몸에서 전이되어 짐을 느꼈습니다.
원래 이 남자 목사님은 90년대 무렵, 신학교를 다니며
춘천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였다 합니다.
정상적인 몸으로도 홀로 개척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장애인의 몸으로
교회 개척을 시작하여 1년 정도 버거운 나날을 보내던 년 말의 어느 날,
원주에 있는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신년 금식기도회가 있다는 안내장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주최 측에 자신은 개척교회 목회자인데 대학생은 없고
신학생인 자신이 참석하면 되겠는가를 물었더니 참석을 허락받았답니다.
기도회 모임에서 찬양을 잘하는 여성분이 자신을 잘 돌봐주는 것이 고마워서
헤어지기 전에 그 아가씨의 집 주소를 받아내었다 합니다.
끈질기게 기도하며 편지왕래를 하던 어느 날 정식으로 청혼을 했더니,
이 아가씨 하는 말이, 한 달 간의 시간을 주면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주겠노라 하더랍니다.
한 달 간의 말미를 얻은 이 여성분이 하나님의 뜻을 기도하며
지내기를 한 달이 다 될 무렵, 자신의 내면 속에 이런 질문이 들더랍니다.
“너는 정상인이고 형제는 시각 장애우라고 망설이고 있지 않느냐?
눈에 보이는 형제의 장애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너의 모습은 얼마나 추한지를 깨달으라“ 는
내적 음성을 듣고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합니다.
사실 이 사모님은 원주에 소재한 상지대에서 ccc 간사로 활동할 정도로
외부적인 일들을 활발하게 하던 분이었기에,
세상의 기준으로는 한쪽으로 치우친 결혼이지만,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로 서로간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도록 돕는 배필로서의
가정을 허락하셨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외적으로 부족하고 모자란 자신이 정상인인 아가씨에게
용감하게 구애할 수 있었던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는
목사님의 고백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잠언 19;14)
슬기로운 아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서
용감하게 구애를 한 목사님과, 자신의 욕구보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내려놓은 사모님을 잠깐 동안 만나보며,
순백한 믿음으로 소명의 삶을 살아가는 귀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