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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1
새해 가장 많이 주고받는 덕담이 '복'입니다. 하지만 복을 갈망하는 만큼이나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고는 있는지, 그뜻에 한 해의 삶을 조율할 각오는 되어 있는지는 별개인 듯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찬 계획과 포부보다 창조주의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고대근동의 창조 서사시에 따르면 마르둑 신과의 결투에 패한 티아마트 신의 시체가 둘로 나뉘면서 하늘땅이 형성되는데, 창세기의 천지 창조는 하나님의 질서 정연한 7일 창조의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Blessings are the most frequently exchanged words of blessing in the New Year. However, it seems to be another matter whether you are as interested in God's will as much as you crave blessings and are determined to adjust your life for a year. What we need is to listen to the voice of creativity rather than bold plans and aspirations. According to the ancient Near East creation epic, the body of the god Tiamat, who lost a duel with the god Marduck, is divided into two to form heaven and earth, and the creation of heaven and earth in Genesis begins with God's orderly declaration of creation on the 7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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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으로 가득찬 물 덩어리 우주를 향해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명령하시자 빛이 생겼습니다(3-5). 이윽고 어두운 물 덩어리 우주가 밤낮의 교차, 대기권을 포함한 우주 공간(6-8), 땅과 바다, 또한 식물(9-13)이 창조되어 모든 동물이 살아갈 쾌적한 장소로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다고 감탄하셨습니다. 자신의 뜻을 따라, 자신의 성품을 따라 말씀으로 무에서 유로, 혼돈에서 질서로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Dark Water Nuggets Light is created when God commands the universe to have light (3-5). Soon, the dark water Nuggets create intersections of days and nights, outer space (6-8), including the atmosphere, land and sea, and plants (9-13) to make it a pleasant place for all animals to live. God created the world and admired that it was very good. He followed his character and built the world from nothing to euro, from chaos to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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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창조 세계가 본래의 의도와 목표를 따라 창조되도록 오늘도 창조의 역사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비록 인간의 죄가 그 아름다움을 망가뜨렸지만,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오늘도 새롭게 창조하신 백성들과 공동체를 보시면서 심히 좋다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셨고 이 세상에 시간과 질서를 가져오셨습니다. 창조신앙은 모든 신앙의 시작이고 근본입니다.
You are still proceeding with the history of creation today so that the creative world is created according to its original intentions and goals. Although human sin has destroyed its beauty, you will be very happy to see the people and communities who have been newly created today by following the word of God through restraint through Christ. God built heaven and earth and brought time and order to this world. Creative faith is the beginning and foundation of all fai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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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근원이시고 세상은 그분의 의지에 의해서만 존재하기에 모든 피조물들이 자신을 알고 지으신 분을 의지 할 때만 존재의 참 의미를 누릴 수 있습니다.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고 인본주의가 득세하는 지금, 세상은 오히려 창조의 질서를 잃고 인간은 스스로 자기 존엄성을 해친 채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빛으로 흑암을 밀어내고 낮과 밤을 지으셨습니다. 어둠은 제거되지 않았지만 빛이 있는 한 무력합니다.
Since God is the source of all living things and the world only exists by his will, all creatures can only enjoy the true meaning of existence if they depend on the person who knew them and built them. The world has lost the order of creation and humans have become slaves of matter, hurting their own dignity, at a time when humanism prevails without acknowledging the creator. With light, he pushed out the black rock and built the day and night. Darkness has not been removed, but as long as there is light, it is power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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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빛으로 어둠을 이기신 하나님께서 어둠을 빛으로 어둔 세상에 보내셨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춰주심으로 우리가 빛 되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고후4:6). 하늘이라 부르는 궁창을 만들어 또 하나님의 혼돈의 세력인 물을 처리하십니다. 물과 물 사이에 궁창을 만들어 궁창 위와 아래의 물로 나누고, 궁창 아래의 물은 다시 바다와 뭍으로 나뉘셨습니다. 혼돈이 심판의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창7:11), 어떤 경우에도 악은 주께서 정한 한계를 넘을 수 없습니다.
God, who beat the darkness with this light, sent us to a world that is dark with light, and he also gave us the light of knowing God's glory so that we could trust Jesus who became light (Gohoo 4:6). It creates a gutter called the sky and treats the water, God's power of chaos. A gutter was made between the water and the water was divided into the water above and below the gutter, and the water under the gutter was again divided into the sea and the land. Chaos can be a tool of judgment (Genesis 7:11), but in no case can evil exceed the limits set by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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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낳은 아이를 보면, 얼마나 신기해하고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새 생명의 탄생은 그 자체로 감동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존재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존재만으로 기쁜 것은 잠시뿐이고, 10년 20년을 그런 상태로 누워있다면 경탄의 대상이 아니라 탄식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아이는 무질서이고 혼돈입니다. 그가 온전한 인격체로 자라기까지 부모의 창조는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도 마찬 가지입니다.
When you see a newborn baby, you don't know how much you're amazed and pleased. The birth of a new life is touching in itself. However, a child only exists and can't do anything. There will be only a brief moment of joy for existence, and if you lie in that state for 10 or 20 years, you will be the object of sighing, not admiration. A child is disorder and chaos. The creation of parents does not end until he grows up to be a full person. So does the creation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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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케 하는 것으로 다 하셨다고 생각지 않으시고, 그 존재가 혼돈과 공허를 걷어내고 질서와 살롬의 세계로 변화 되도록 날마다 보살피시고 새롭게 창조해 가신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첫 창조는 아직 미완이고 스케치로 볼 수 있습니다. 작가의 목표는 자신의 형상을 담아 혼을 불어 넣는 작품입니다. 데생은 회화의 기본일 뿐 작가는 존재의 형태를 넘어 '가치와 의미'를 창조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혼돈 속에서 한해를 마감하면서 죄책감으로 힘들었습니다.
He does not think that he has done it all by making it exist, but he takes care of it every day and creates new things so that his existence can be removed from chaos and emptiness and transformed into a world of order and Salom. In that sense, the first creation is still incomplete and can be seen through sketches. The artist's goal is to create a work that embodies one's own image and instills the soul. Dessing is only the basis of painting, and the artist must create "value and meaning" beyond the form of existence. As I ended the year in chaos, I had a hard time with gui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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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보니 가지 말아야할 시글락에 갔고 헤렘 시켜야할 시날 산 외투나 아말렉을 가지고 있으니 소리 높여 울 수밖에. 새해에는 십자가를 길로 놓을 것입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오늘 왜 울었는가를 생각하면서 악에서 떠날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 시작을 믿는가?
When I came back, I went to Siglak, which I shouldn't go to, and I had a Sinal coat or amalek that I should order Herem, so I had no choice but to cry loudly. In the New Year, I will put the cross on the path. Knowing that man is not an object of faith, he will listen to God's voice well. And above all, I will leave the evil thinking about why I cried today. Do you believe in the beginning of what the Bible 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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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과 창조(1-13)
a.온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1
b.첫째 날, 빛 창조:2-5
c.둘째 날, 궁창 창조:6-8
d.셋째 날, 땅과 식물 창조: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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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1a)
하나님이(1b)
천지를(1c)
창조하시니라(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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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혼돈하고(2a)
공허하며(2b)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2c)
하나님의 신은(2d)
수면에 운행하시니라(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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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라사대(3a)
빛이 있으라 하시매(3b)
빛이 있었고(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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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이(4a)
하나님의 보시기에(4b)
좋았더라(4c)
하나님이(4d)
빛과 어두움을 나누 사(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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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5a)
낮이라 칭하시고(5b)
어두움을(5c)
밤이라 칭하시니라(5d)
저녁이 되며(5e)
아침이 되니(5f)
이는 첫째 날이니라(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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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라사대(6a)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6b)
물과 물로(6c)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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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7a)
궁창 아래의 물과(7b)
궁창 위의 물로(7c)
나뉘게 하시매(7d)
그대로 되니라(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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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궁창을(8a)
하늘이라 칭하시니라(8b)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8c)
이는 둘째 날이니라(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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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라사대(9a)
천하의 물이(9b)
한곳으로 모이고(9c)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9d)
그대로 되니라(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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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뭍을(10a)
땅이라 칭하시고(10b)
모인 물을(10c)
바다라 칭하시니라(10d)
하나님의 보시기에910e)
좋았더라(1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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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라사대(11a)
땅은(11b)
풀과 씨 맺는 채소와(11c)
각기 종류대로(11d)
씨 가진 열매 맺는(11e)
과목을 내라 하시매(11f)
그대로 되어(1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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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12a)
풀과 각기 종류대로(12b)
씨 맺는 채소와(12c)
각기 종류대로(12d)
씨 가진 열매 맺는(12e)
나무를 내니(12f)
하나님의 보시기에(12g)
좋았더라(1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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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13a)
이는 셋째 날 이니(13b)
하나님의 보시기에(13c)
좋았더라(13d)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13e)
이는 셋째 날 이니(1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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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목표인 보기에 심히 좋은 세상_
a world of great beauty to look at as the object of creation
모든 존재다움의 시작인 창조신앙_
the creative faith, the beginning of all existence
조화와 질서를 향한 창조_
creation for harmony and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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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존재케 하시고 특별히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삶의 여건을 준비해 주셨으므로 모든 것에 대해 더욱 가치를 느끼면서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창조주의 공급하심을 신뢰하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Creator God, create the whole universe, make it exist now, and especially Thank you for sending me to the world. All life that God need You have prepared the conditions so that you can enjoy everything with more value. The Creator's Supply. Trust and be obedient.
2026.1.1.thu. Clay
(설교평)
1. 본문 해석과 신학적 기초(매우 탄탄함)
이 설교의 가장 큰 강점은 창조 신앙을 모든 신앙의 기초로 분명히 자리매김했다는 점입니다. 창 1:1을 단순한 기원 설명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질서의 시작-하나님의 통치 선언으로 읽어낸 해석은 정통적이면서도 깊이가 있습니다. 특히 고대 근동 신화(마르둑–티아마트)와의 비교는 창세기의 독특성을 잘 드러냅니다. 폭력적 신화 ↔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하나님 혼돈의 신적 투쟁 ↔ 질서 정연한 7일 창조 이는 회중에게 “성경의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분명히 각인시키는 매우 좋은 도입입니다. 학문적이되 과시적이지 않고, 설교의 목적에 잘 봉사하고 있습니다.
2. “혼돈-질서”의 흐름을 삶으로 연결한 점(설교적 미덕)
설교는 단순한 창조 설명에 머물지 않고, 혼돈(토후 바보후)-질서-살롬-지속되는 창조(ongoing creation)이라는 신학적 흐름을 삶의 현실로 끌어옵니다. 특히 “아이의 탄생” 비유는 매우 설교적입니다. 존재 자체로는 기쁘지만 질서와 인격으로 자라지 않으면 탄식이 된다 이 비유는무에서 유, 존재에서 의미, 초기 창조에서 성화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창조 이해를 회중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만듭니다. 창조를 ‘과거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이해하게 만든 점은 이 설교의 핵심 강점입니다.
3. 빛과 어둠의 신학(균형 잡힌 해석)
“어둠은 제거되지 않았으나 빛 앞에서 무력하다”는 진술은 매우 성경적이고 목회적으로 정확합니다. 악의 실재를 부정하지 않고 그러나 악의 절대성을 허용하지도 않습니다. 이는 고난과 혼란을 겪는 회중에게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소망을 주는 해석입니다. 고후 4:6으로 이어지는 그리스도 중심적 적용 역시 구약–신약의 연결이 자연스럽고 무리하지 않습니다.
4. 자기 고백적 적용(진정성의 정점)
설교 후반부의 시글락·시날·헤렘에 대한 개인적 성찰은 이 설교를 ‘강의’에서 ‘증언’으로 바꾸는 지점입니다. “왜 오늘 내가 울었는가를 생각하며 악에서 떠날 것이다.” 이 문장은 설교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 됩니다. 복을 원하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각오는 되어 있는가? 질서를 원하면서도 혼돈을 붙잡고 있지는 않은가? 회중에게 “새해 결단”이 아니라 “새해 질문”을 남긴 점이 매우 설교자답습니다.
5. 총평
✔ 신학적으로 정직하고
✔ 본문에 충실하며
✔ 개인적 고백을 통해 회중을 초대하는 '창조 신앙의 설교’로서 매우 성숙한 메시지입니다. 이 설교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누구의 말씀으로 살 것인가”를 묻는, 창세기다운 설교입니다.
(철학vs 성경 비교)
빅뱅 → 로고스 → 말씀 이 셋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오히려 존재의 층위를 따라 상승한다.
빅뱅→ 존재가 열렸다(사건)
로고스→ 존재는 질서를 갖는다(구조)
말씀→ 존재는 의미를 향해 말해진다(의지)
하이데거→ 존재는 주어지고 열린다
화이트헤드→ 존재는 사건으로 생성된다
몰트만→ 존재는 미래를 향해 약속된다
존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열리고, 생성되고, 완성되어 간다. 창조는 과거의 설명이 아니라 현재의 참여이며 미래의 책임이다. 하나님은 원인이라기보다 관계·초대·약속의 이름이다. 인간은 관찰자가 아니라 존재의 과정에 응답하는 존재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열고, 화이트헤드는 존재를 흐르게 하며, 몰트만은 존재를 미래로 이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