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아영중학교 설립
선배들은 인월까지 중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걸어다니기가 힘들어
중학교때부터 자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면에도 중학교를 만들어야 겠다는 일념으로 중학교 설립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는데
아버지께서도 추진 위원으로 동참 하셨다
도회지로 나가 사업적으로 성공하신 고향분들을 만나 설립기금을 만드는 일이 었는데
쉽지는 않았다고 그때 일을 회상 하신다
정규 중학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오산 재건 중학교에서 공부했다
우리마을에서 남이 누나 정화누나 정님이 누나가 세라복을입고 다녔다
1958년생 까지가 인월중학교를 자건거를 타고 다녔는데 항우형 철수형 장우형 때까지
인월중학교를 다녔으며 1959년생 부터는 아영중학교가 건립되어 아영중학교 에 다니게 되었다
1회 졸업생들은 더러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었다
우리 동네는유일하게 재섭이 형 만 중학교에 진학했다
누나들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나는 아영중학교 3회로 입학 했다
나만 중학교를 진학하게 되어 누나들에게 무척 미안하다
중학교 1학년때 아영면에도 드디어 전기가 들어왔다
동면은 우리면보다 1년 먼저 전기가 들어왔다
중학교때 너더리에 텔레비젼 있는 집들이 있어 방과후 집에가지 않고
델례비젼을 보기 위해 너더리를 방황했다
당시 프로레슬링은 인가가 많았다 프로레슬링 역도산 선수
박치기에 김일 선수 당수에 천기덕 선수 굴밤때리기 여건부 선수
두발차기 트로킥 장영철 선수 등이 인기 였고 타잔
수사반장 하면 최불암 형사콜롬보 이소룡 도 인기가 있었다
영화배우 남자 하면 신성일 신영균 박노식 이대엽 독고성 허장강 김희갑 트위스트김
여배우 하면 김지미 엄앵란 윤정희 최은희 문희 남정님 도금봉 등이 있고
코메디언 1세대 비실이 배삼룡 땅달이 이기동 벙글이 구봉서 살살이 서영춘 남철 남성남
후라이보이 곽규석 송해 여자는 배연정 백금녀 등이 생각난다
가수 하면 나훈아 와 남진이 라이벌 형태를 유지했다 하숙생 최희준 배호 등이 생각난다
여자가수에는 단연 이미자 하춘화 방주연 김상희
만담 원맨쇼 하면 남보원 백남봉 만담에 단연 장소팔 고춘자 였다
전우하면 나시찬 소대장을 보며 멋진 군인이 되고 싶었다
그 당시에 활약했던 연애인의 이름들을 잠시 생각 해봤다
텔래비젼 프로그램은 연속극 여로 꼬피는 팔도강산 명화극장 등을 주로 시청 했다
여름철에는 텔례비젼을 마루에 내놓고 멍석을 마당에다 깔아놓고 동네 사람들을 보도록했는데
우리마을에서는 정인호 교장선생님댁이 가장 먼저 산것 같고
그 후 경희네가 산것 같다
초등학생은 토요일 저녁 중학생은 일요일로 시청가능 시간을 정해 주었다
허고 헌날 텔례비전 본다고 매일 한방가득 이다 보니 텔레비젼 가진집도 무척 불편했을거라 생각된다
그 후에는 여러집에서 텔레비젼을 구매하여 각자집에서 문화 혜택을 누렸다
너더리에 만화방도 있었다 밭지내기 청계동 가는곳 야파리에도 있었던것 같다
여학생들은 가사 가정이라는 과목이 있었으며 남학생들은 농업 기술 이라는 과목이 있어
교실을 서로 바꾸어 가면서 수업을 했다
그 당시 만해도 남학생 여학생이 부끄러움이 많아 서로 잘 어울리지 못했었다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풋풋한 감정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요즘은 유치원생들도 여자 친구 남자 친구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는 데~
순진 무구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 시절에 순수하던 친구들이 보고싶다
중학교 때는 밀레 와 같은 화가가 되고 싶었다 만종이라는 그림이 생각난다
들판에서 두 부부가 기도하고있는 모습이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일명 이발소 그림이라고도 한다 이발소에 많이 걸려 있었다
특별활동 시간에 미술부로 활동하여 아그리파 비너스등 데생를 공부했다
당시 미술을 가리키던 정일웅 선생님은 유화를 즐겨 그리셨으며 그 때만 해도
학교 환경정리는 미술선생님 업무 였던것 같다
윤욱식 소순봉 김종필 김수봉 등이 미술부원 이었던것 같다
서용태 교장선생님이 욕심이 많으신 분으로 신생학교 시설 만큼은 도회지 학교보다 더 잘하고
싶었던 욕심이 지나쳤다
논바닥에다 학교를 지어 운동장이 질컥하니 흙탕길이라 학생들에게 모래을 파오라고 했으며
마을 별 로 돌 과 잔디를 배정하여 방가후에 가져오도록 했다
여름방학때도 마을별로 잔디 퇴비를 가져오라고 했다 학교 주변 환경정리를 많이했다
울타리 나무심기 화단 가꾸기 와 잔디 심기 우리가 심었던 희말라시이다 벗 꽃 수양버들 등이 많이 자라
시간이 많이 훌렀슴을 알수있다 중학교 시절 그림 그린다고 공부를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
중 2 때 다 미술부로 남원 군대회 남원농고에서 사생대회가 있었는데 수채화 부분에서 입선했던적도 있었다
좀더 연습하여 도 대회에 출전 하자고 하셨던 미술선생님깨서 임실 지사중학교로 전근가셨기에 도
대회 출전은 좌절 되었다 어린 마음에 충격이 컷던 것이다
황영 체육선생님 계실 당시 학교 뒷 편 화장실옆 수석원이라고 하여 각종 암석를
학습용으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수리부엉이 새끼두마리 를 길렸는데 부엉이 당번이라는것이 있어
부엉이 먹이를 조별로 잡아 오는것이 었다
살아있는 개구리 나 생쥐등 잡아 오는것이 었는데 한 1년 정도를 기른것 같다
부엉이 우리에서는 여름에는 비릿한 냼새가 많이 났다
우리에 간식 비오는 날에는 사카린을 넣고 흰 콩 이나 보리을 볶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먹었다
라면 끓여 먹는일 간식으로는 라면 땅 손오공 자야 등이 있었다
우리고장 성내 건지리 일대가 백제시대 토기 장경호 등 유물이 많이 발굴 되었는데
중학교 교무실앞에 출토한 유물을 많이 전시하고 있었다 문화제급 유물도 많았다
황영 체육선생님을 2005년 총동문회에서 만났는데 서용태 교장선생님과의 갈등에 대해 말씀하신적이 있었다
교장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시면서 문화제 보존가치가 있는것을 모두 가지고 가셨다고
부도덕성을 성토 하셨다
그 소유가 아영중학교에 있다고 주장 하셨는데 학생들과 산에 가서 어렵게 발굴한 문화재 이기에
학교로 반환 받거나 소송을 해서라도 찾아 와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 일리가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학생들에게 무척 엄하셨던 서용태 교장선생님이 생각난다 업어져! 이말을 유독 많아 쓰셨다
우리동네 친구들은 어느날 아침 조회시간 후에 남아 교장선생님으로 부터 혼이 났다
신지내기 친구들만 남아 기압을 받았는데 방가후에 모여서 공부는 하지 않고 하투 친다는것이 었는데
종수아버지가 학교가서 교장선생님께 제보를 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한다는 것이 민 화투 나 뻥이 었다 ㅎ ㅎ ㅎ 웃음이 난다
3학년이 되어서는 독서부로 특별활동을 옮겼는데 전입 오신 미술선생님께서 찾아오셨다
원광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시고 첫 부임하신 전경희 선생님이 셨는데 체격이 자그만하니 무척 예쁘셨다
다시 미술부를 하였으나 3학년이 되자 그림을 포기하고 야자학습이 이루어져 고입에 대비했다
집에 늦게가는 일이 많았다
나를 그림을 가르쳐 주시던 정신적 지주였던 정일웅 선생님께서는 전주문화 예술고등학교 교장선생님 재직을
끝으로 교육계에서 은퇴 하시고 전주 어느성당에서 성가대를 지휘하신다고 소식을 들은것 같다
미술계통으로 공부를 계속 했더라면 지금 쯤 나는 미술교사가 되었거나 화가라는 소리를 듣고 있을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있다
누나 2 분이 서울 뚝섬에서 대도섬유라는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내준 돈으로
중학교를 다닐수 있었다 성기 성주 두 남동생은 나를 엄청따라 다녔다
친구들과 놀려 나가려면 따라 나서서 친구들이 쪼까 보내기도했는데 둘이 싸우기도 많이 했다
싸움에 발단은 성기가 성주를 건디리기 때문에 일어 났는데 성주는 막내라 욕심이 많았다
나는 중학시절 미술선생님을 도와 학교 환경정리를 많이 했다
2 학년 시절 가정과목 탁은숙 선생님 반 환경정리를 방가후에 도와 주었는데
사탕 몇개를 나에게 건네 주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시절 좀더 열심히 공부하여야 했는데 이제와서 생각하니 아쉬움이 많다
그 시절 교실 뒷편 책장에 꿈 많던 시절 계몽출판사에서 발간된 책 전집이 있었는데 모두 읽었던것 같다
장발장 돈기호태 해저 이만리 톰소여의 모험 아라비안나이트 80일간의 세계여행 등이 생각난다
만화 무협지도 많이도 읽었다 당시 아버지는 마을 이장을 하셨다
가정형편이 좋치않은 탓으로 일지 감치 인문계 진학은 포기하고 실업계로 진학 을 결정 했다
전기에 전주상고에 응시하였는데 낙방했다
중 3시절 중동바람이 거세게 불어 사우디 등에서 건설인력들이 대거 진출하였는데
가정형편이 좋치않은 탓으려 후기로 공고 나오면 취직이 잘된다 하여
전주 공고 야간학부 기계과에 지원 하기로 했다
다행히 합격 하였는데 다닐것인지 재수할것인지 많이 망설였다
부모님 뜻을 거슬릴수가 없어 진학하기로 하고 전주로 유학길에 올랐다
아름다운 첼로 연주곡(11곡)
중학교 졸업때 촬영한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