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행-
전생과 윤회 -2
원과 업
인연과 자성
중력과 업력
원과 업
원(願)은 바램이다. 아, 쉬고 싶다. 나 그곳에 가고 싶다. 나 그 여자애 갖고 싶다, 나 그 남자품에 안기고 싶다, 나 그거 먹고 싶다 등등이 모두 원이다. 그런데 이런 원을 얻기 위해 하는 노력이 행여 순수하게 자신만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자신의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 하고 그런 원은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결과에 관계없이 모두 영계에 영향을 끼치고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대구 팔공산 바위를 갈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든지,
함안 무슨 절에 가서 원을 하면 푸대자루 단위로 돈이 생긴다든지 하는 것등 효험을 보는 원도 있는데, 이런 일을 하나 하나 부처님이니 하느님이니 하는 누군가가 일일이 챙겨서 된 것은 아니고 본인의 원이 너무 강렬하다든지, 가족이나 친지들의 원이 뭉쳐져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긴 하는데, 그 역시 영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이루어진 원은 동시에 업(業)을 만드는데,
그 업은 당연히 다시 본인의 영혼에 작용하고 그 작용 결과는 다시 영계의 총장부에 기재된다. 원을 세운다고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이 반드시 업이 따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원이 전체 영계에 그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자신만의 원이라고 해서 함부로 원해서는 안된다는 소리인 모양이다. 즉, 원을 잘 세워야 그에 따르는 업이 감당이 된다는 소리이다. 이만큼 원하면, 저만큼 빚을 지게 되는데 그거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당 못한다면?
그렇다면 그게 연이 되어 내세에 그걸 갚아야 한다는 거지. 지금 힘든 것도 당연히 전생에 업을 그만큼 갚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자신을 설득하라는 소리인 것이다. 그런 일종의 외상인 업을 줄이고 싶다면? 그렇다면 이승에서 원을 줄이거나 이타심으로 시종하라는 거지, 수만 가지 원들을 자비와 이타라는 쓰레기 봉지에 모두 담아서 봉지 하나로 만들면, 버리기도 쉽지 않는가? 하는 거라.
우리들의 쓰레기 봉투 -
미어 터지도록 원하는 것도 많더라. 우리의 원은...
그 쓰레기 봉지는 어디에 버릴까?
모두 모아 신부나 목사나 스님에게 좀 버려달라고 하면 빰맞것지? 내가 쓰레기 차냐고? 그들이 쓰레기 차는 아니지? 그럼 어떻게 하지? 지가 지 지성으로 그 쓰레기를 담아야지, 지성으로 담다보면 보일 거라고 한다. 그 쓰레기 봉지 버릴 곳이..
세상에는 악이 있을까?
그는 없다고 한다. 물론 선도 없다고 하고. 그래서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뭐 나서서 상주고 벌 줄 일은 없다고 한다. 앞으로 교회 가거나 성당 가거나 절에 가서 빌면서 자기네들 들먹이지 말라는 소리다. 꿈자리 사납다고..염라대왕이니 악마니 하는 것들도 모두 꽝이라고 하고. 그러면, 우리가 보는 악이나 선은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그런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자신의 구별심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지 그게 있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산이나 들에 놀러가서도 쓰레기 보는 대로 줍고,
이제까지 한 평생 쌓아온 원들일랑도 지성으로 줏어 모아 쓰레기 담기 운동을 하자. 이제부터라도 아무 것도 원하지 말기 하자. 아니지 조금만, 조금씩만 원하고 바래자. 원하기 전에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이거 정말 내가 원하는 건지 한번 더 생각해 보고..
그래서 죽을 때 그 쓰레기 누가 가져가는 지 함 보자. 그 쓰레기 어디에 폐품으로 팔아 묵는지도 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