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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라면식탁에 평화를... 원문보기 글쓴이: 이 안드레아
이번 중남미 여행은 일 년 동안이나
배낭여행에 가까운 43일이냐 패키지여행 21일이냐를 놓고
고심을 하면서 늘 혼자 꿈을 가져 보았지만 결국 시일이 짧은 패키지여행을 선택하게 되었다.
오래도록 마음엔 볼리비아 우유니 가 포함된 남미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과감한 시도를 펼쳐 보이지도 못하고 접었다.
이번 여행일행은 인솔자 외, 13명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인원이라서 우선 행동하기가
좋을 것 같은 예감이다. 한살이라도 적어서 먼 곳부터 여행하자는 나의
신념이지만 중남미는 우리에겐 지구 반대편에 있는 머나먼 곳이어서 큰 환상이 가득한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책에서 보아온 "사라진 불가사의한 공중의 도시
" 마츄피추" 가 아시아에 있었다면 이렇듯 가슴
설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14번의 비행기를 갈아타는 티켓이
요즈음은 한 장으로 기록이 되어 손에 쥐게 되니 편리하다.
만약에 한장한장 분리되어 있다면 그것 또한 머리가 아플 텐데 육안으로 확인도 되고
티켓 없이도 여권만 내면 좌석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21일간의 긴 여행길에 오른다.
올베라스트릿은 작은 멕시코라 할수있다.
1877년, LA 카운티의 첫 판사 어거스틴 올베라의 이름을
따 붙인 올베라 거리는 LA 시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이자 시의 탄생지다
어느 나라든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시장은 다 있고 그 시장의 야채는 거의 비슷하지만
잡화나 옷 가지는 그 나라 고유의 특색이 자동적으로 들어나 구경할만하다.
한낮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좁은 골목은 만원이다.
또한 멕시칸풍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장 앞에는 작은 공원이 있었는데
팀 별로 교대를 하면서 라틴 음악을 흥겹게 연주와
노래를 해주니 사람들은 춤도 추면서 즐거운 표정들로 시간을 보낸다.
거리를 지나는 남,여는 물론하고 작은 아이들도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며 행복해한다.
이런 광경들을 우리 일행은 그저
바라만보고 웃을 뿐 아무도 동참하는 사람은 없었다.
열정적인 남미의 음악과 파티가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이제부터 눈으로 확인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LA에서 비행기와 버스로 칸쿤까지
온종일 이동 하느냐 모두들 지쳐 있는 모습이다.
고속도로의 주변엔 개발되지 않은 자연의 순수함이 보이는 광활한
잡목의 숲들은 미래의 개발로 별천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한것같다.
칸쿤은 멕시코 남 동부 칸타나로오 주에 있는 휴양도시로, 마야문명의 근원지인 유카탄 반도의 북동쪽
해안선에서 조금 떨어진 L 자형 모양의 섬, 모든 편의 시설이 밀집 되어 있는 다운 타운과
달리 이곳 휴양지 칸쿤은 호텔 구역으로 불리는데 둑길로 연결되어 있고
칸쿤 섬과 해안 지역에는 백사장, 야자나무 숲이다.
1970년까지는 100여 명의 마야인들이
낚시와 채집을 하며 지내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그러나 1970년 민간기업과 멕시코 정부가 공동으로 3년간 컴퓨터를
이용한 지정학적 조사를 한 결과, 칸쿤은 국제적인 휴양지로 개발할 만한 최적의 장소로 선정되었다.
개발이 시작된 후 세계 각지로부터 관광객들이 꾸준히 몰려 들었으며,
칸쿤 휴양지 개발계획은 성공을 거두었다.
도로 좌우에는 100년전 1,000명이
넘는 농업이민 애니깽의 고통이 느껴지는 수난현장이
끝없이 펼처진다. 3시간 30분 가량을 달려 마야의 유적지에 다달았다.
그 깊은 밀림속에 있다니 신기롭기만 하다.
마야문명과 아메리칸 인디오의
찬란한 토착문명에 스페인 식민통치를 통해
유입된 서구문명이 더해진 나라 멕시코. 멕시코는 국토의 절반
이상이 고지대다. 중심부는 해발 평균 2600m,
북부는 평균 1200m에 달한다.
중남미의 신혼부부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허니문 여행지로 10년 넘게
1위를 지키고 있는 카브리해의 낙원 도시, 칸쿤에서 205km 떨어진
유카탄 반도 중앙에서 '치첸이사(Chichen Itza)'를 만날 수 있다. 치첸이사는 마야
최대의 유적지. 메인 피라미드인 24m 높이의 엘 가스띠요는
마야인의 천문학 기술을 보여준다.
피라미드 옆에 있는 볼 경기장은
개인적으로 흥미가 진진했고 인상이 깊었던 경기장이다.
이런 경기장은 거의 전 콜롬비아 유적지에서 발견 된다고 하며 치첸이사에 있는
사진에서 보는 이 경기장은 길이 약150미터, 폭은
40미터로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경기는 석벽 중앙에 약 7미터
높이에 있는 "링" 모양에 골에 고무공을 넣는
것인데 경기 방식은 고무공을 팔꿈치, 무릎, 엉덩이 등 극히 제한된
신체 부위만을 사용하며 7명이 한 팀이 되어
경기를 벌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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