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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라면식탁에 평화를... 원문보기 글쓴이: 이 안드레아
이번 중남미 여행은 일 년 동안이나
배낭여행에 가까운 43일이냐 패키지여행 21일이냐를 놓고
고심을 하면서 늘 혼자 꿈을 가져 보았지만 결국 시일이 짧은 패키지여행을 선택하게 되었다.
오래도록 마음엔 볼리비아 우유니 가 포함된 남미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과감한 시도를 펼쳐 보이지도 못하고 접었다.
이번 여행일행은 인솔자 외, 13명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인원이라서 우선 행동하기가
좋을 것 같은 예감이다. 한살이라도 적어서 먼 곳부터 여행하자는 나의
신념이지만 중남미는 우리에겐 지구 반대편에 있는 머나먼 곳이어서 큰 환상이 가득한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책에서 보아온 "사라진 불가사의한 공중의 도시
" 마츄피추" 가 아시아에 있었다면 이렇듯 가슴
설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14번의 비행기를 갈아타는 티켓이
요즈음은 한 장으로 기록이 되어 손에 쥐게 되니 편리하다.
만약에 한장한장 분리되어 있다면 그것 또한 머리가 아플 텐데 육안으로 확인도 되고
티켓 없이도 여권만 내면 좌석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21일간의 긴 여행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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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간 비행 끝에 로스엔젤레스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5일날 오후 떠났지만 시차가 있어 LA는
5일 정오가 채 되지를 않았지만 우리는 중식 후
시내관광 허리우드 거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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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편 멀리 낮은 산에 HULLY WOOD
(허리우드)라고 흰 글씨가 유일하게 보이는 곳이라면서 가이드가
데려간 곳인데 멀리 작게 건물 사이로는 보였지만
워낙 멀어서 사진에서는 안 보인다.
좀 가까히 가면 좋으련만....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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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우드의 상징이자
로스엔젤레스에 상징이 되다시피 한 대형 글자판이다.
한 부동산 회사가 광고판으로 만든 것인데 토지 개발 이후 방치를 해놓아
그 후 1945년 지역 상공회의소가 양도받아 복구를 해 놓으니
허리우드를 빛내고 있고 매년 저명 인사들의
기부금으로 보수, 유지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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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린몬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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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즈 차이니즈 극장이다
현대적인 건물 사이에 양쪽 처마끝이
하늘로 솟아 춤을 추는듯하고 입구 건물엔 사자, 용으로
장식한 중국식의 향기가 배어 있는 듯 하다.
1900년대 초반만 해도 대부분
이곳에서 개봉 시사회 하게 되어 더욱 명소가 되었는데
허리우드의 명사들은 고향과도 같을 것이다.
거리에서 유명 배우들을 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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죤웨인의 프린팅(1907.5.26~1979.6.11)
허지만 건물 보다도 이곳이
관광객들의 명물이 된 것은 건물 앞 바닥에 유명 배우나 감독들의
손바닥과 발 바닥이 남은 흔적 때문일 것이다.
1927년 5월 17일 노마 텔머지와 메리 피그포드,
더글러스 페어 뱅크스 시니어를 초대해 정식 행사를 처음 시작 했는데
1927년 맨즈 차이니즈 극장 개관식 전날 배우가 넘어지면서
찍은 손도장이 유래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죤웨인의 손과 발은 유난히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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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광객들이 스타들의
프린팅을 살피느냐 정신을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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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극장 앞을 가로지르는
500여미터 블르버드를 따라가면 또 다른 허리우드의
보석 같은 별들을 만날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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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1958.8.29~2009.6.25)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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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즈 차이니즈 극장앞 거리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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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캐릭터 분장을 한
사람들이 사진을 함께 찍고는 머니를 받는다.
여행에서의 만족은 기대에
반 비레하고 그 희소성에 비례한다
즉 기대를 많이 할수록 실망하고 희소성이
높을수록 만족도는 높아진다.
올베라스트릿은 작은 멕시코라 할수있다.
1877년, LA 카운티의 첫 판사 어거스틴 올베라의 이름을
따 붙인 올베라 거리는 LA 시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이자 시의 탄생지다
어느 나라든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시장은 다 있고 그 시장의 야채는 거의 비슷하지만
잡화나 옷 가지는 그 나라 고유의 특색이 자동적으로 들어나 구경할만하다.
한낮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좁은 골목은 만원이다.
또한 멕시칸풍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장 앞에는 작은 공원이 있었는데
팀 별로 교대를 하면서 라틴 음악을 흥겹게 연주와
노래를 해주니 사람들은 춤도 추면서 즐거운 표정들로 시간을 보낸다.
거리를 지나는 남,여는 물론하고 작은 아이들도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며 행복해한다.
이런 광경들을 우리 일행은 그저
바라만보고 웃을 뿐 아무도 동참하는 사람은 없었다.
열정적인 남미의 음악과 파티가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이제부터 눈으로 확인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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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왼쪽은
시장 들어가는 입구고 오른쪽은 작은 공원과
란틴 음악이 연주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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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안 골목에는
붉은 꽃들이 화사하고 벤취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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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에서는 가죽제품과
카우보이 모자들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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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가 하늘을
뒤덮은 시장 안은 상가의 물건들도 돋보이게 하는
자유로운 푸르름이 참 멋스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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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란 사람에게
비타민같은 충전의 역활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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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에 흥은 없지만 바라만 봐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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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름 팀이 교체가 되어
라틴 음악은 계속 넘쳐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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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하게 뿌리를 내리며
공원의 그늘을 주는 큰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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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언 역은 암트랙 열차의 종착역.
우리나라 서울역과도 같은곳이란다
유니언역은 초기 스페인 스타일의 교회 양식으로 지어진 인상적인 건물로
1939년에 완공 되었다고 한다. 외벽에는 대리석을 사용하여 중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실내는
타일로 마감한 벽과, 상감 대리석 바닥, 창문과 현관의
장식까지 스페인 풍으로 통일되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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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성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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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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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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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도쿄
이곳은 일본 상가가 있는
작은곳인데 약간의 공사 중이었고 내 생각이지만
별 의미가 부여되지는 않았다.
물론 다운타운 안에는
차이나 타운도 있다지만 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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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출발 한채로 한 밤을
지내고 세수도 못 한채 LA에 내려 바로 다니니 피곤한 모습들이다
이른 저녁식사를 하곤 호텔로 들어 왔다.
LA에서 비행기와 버스로 칸쿤까지
온종일 이동 하느냐 모두들 지쳐 있는 모습이다.
고속도로의 주변엔 개발되지 않은 자연의 순수함이 보이는 광활한
잡목의 숲들은 미래의 개발로 별천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한것같다.
칸쿤은 멕시코 남 동부 칸타나로오 주에 있는 휴양도시로, 마야문명의 근원지인 유카탄 반도의 북동쪽
해안선에서 조금 떨어진 L 자형 모양의 섬, 모든 편의 시설이 밀집 되어 있는 다운 타운과
달리 이곳 휴양지 칸쿤은 호텔 구역으로 불리는데 둑길로 연결되어 있고
칸쿤 섬과 해안 지역에는 백사장, 야자나무 숲이다.
1970년까지는 100여 명의 마야인들이
낚시와 채집을 하며 지내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그러나 1970년 민간기업과 멕시코 정부가 공동으로 3년간 컴퓨터를
이용한 지정학적 조사를 한 결과, 칸쿤은 국제적인 휴양지로 개발할 만한 최적의 장소로 선정되었다.
개발이 시작된 후 세계 각지로부터 관광객들이 꾸준히 몰려 들었으며,
칸쿤 휴양지 개발계획은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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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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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들어 가기 전 칸쿤의 최대
휴양지인 카리브 해안가를 잠시 들렸는데
호화로운 호텔 건물들이 즐비하다. 날씨도 좋고 풍경도 좋고
지상낙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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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모래사장, 에머랄드 빛의 바다
잔잔한 물결, 눈이 시릴 만큼 푸르른 하늘, 늦가을에
접어들고 있지만 수영을 할 수 있는 기후가 관광객이 몰려드는
휴양지의 장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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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가 삼위일체를 이룬 최상의
휴양지인 이곳의 특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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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들어와 짐을 풀곤
뒷문으로 나오니 이렇게 멋진 해안가다.
사진을 담으며 가벼운 산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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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서서히 내린다
석양빛을 받으며 하얀 의자에 기대여
데낄라를 마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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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먼지를 맛 본 사람은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그러한 평안을 얻지 못한다."
(멕시코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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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안에서의 거리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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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었던 호텔
도로 좌우에는 100년전 1,000명이
넘는 농업이민 애니깽의 고통이 느껴지는 수난현장이
끝없이 펼처진다. 3시간 30분 가량을 달려 마야의 유적지에 다달았다.
그 깊은 밀림속에 있다니 신기롭기만 하다.
마야문명과 아메리칸 인디오의
찬란한 토착문명에 스페인 식민통치를 통해
유입된 서구문명이 더해진 나라 멕시코. 멕시코는 국토의 절반
이상이 고지대다. 중심부는 해발 평균 2600m,
북부는 평균 1200m에 달한다.
중남미의 신혼부부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허니문 여행지로 10년 넘게
1위를 지키고 있는 카브리해의 낙원 도시, 칸쿤에서 205km 떨어진
유카탄 반도 중앙에서 '치첸이사(Chichen Itza)'를 만날 수 있다. 치첸이사는 마야
최대의 유적지. 메인 피라미드인 24m 높이의 엘 가스띠요는
마야인의 천문학 기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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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들어가는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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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표를 검사 하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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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양쪽에는 남미의
형상이 들어나는 나무 인형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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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첸이사의 마야유적 태양 신전
기원전 3세기경부터 중앙아메리카의
밀림에서는 마야 문명이 발생하여 번영했다고한다.
마야 문명의 중심지인 멕시코의 치첸이사는 6세기경에 조성된
마야문명터라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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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가면 엘 카스티요라고
불리는 쿠쿠르칸(원어로는 '깃털 달린뱀')의
피라미드가 있다. 이 아름다운 피라미드는 고대적인 매력이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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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쌓인 9층 건축물로
높이가 30미터, 밑변이 각각 55.3미터에 달한다.
중심축은 춘분과 추분, 즉 태양이 정확히 정동쪽에서 뜨고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은 날에 맞추어지도록
의도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추분날 오후 5시 30분 경이 되면
7개의 삼각형에 의해 거대한 어둠의 그림자 고리가
일곱 개 만들어짐으로써 꿈틀거리는 뱀의 모습이 온전하게 드러난다.
10분도 안되어 그늘진 부분이 완전히 채워지고 환영은 사라진다. 피라미드의 사방으로
경사가 심한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들은 각각 91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가장 위에 있는 1단을 더하면 1년 간의
일수와 일치한다.
☞ 91단×4+1단=365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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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1년 간의 일수를 나타내는 수로
우리에게 아주 친숙할 뿐 아니라 아주 중요한 수로 여겨지고 있다.
이 365라는 수를 단위로 해서 해가 바뀌고 우리의 생활도 이를 주기로 하여 변화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러한 주기의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365는 수 자체만을 놓고 따져 보아도 아주
재미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365는 다음과 같이 여러 식으로 분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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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100+121+144=10²+11²+12² - 차례로 이어진 세 자연수 제곱의 합
365=169+196=13²+14²
365=71+72+73+74+75
365=(121+122+123)-1
365=91×4+1=(1+2+3+4+5+6+…+12+13)×4+1
365=22+42+62+82+102+122+1
365=73×5=(72+1)×5=(8×9+1)×5
365=(2³×3²+1)×(2+3) - 1, 2, 3의 세 수로 나타내며 지수 3과 2의 밑은 순서를 바꾼 2와 3
이런 사실들을 눈여겨보면
365라는 수는 과연 특별한 의미를 지닌 신비한
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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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앞에서는 사람마다
박수를 치기에 무슨 일인가 궁금 했는데
우리의 가이드 역시 이곳에 서면 무조건 박수를 쳐야 한단다.
피라미드 앞에선 박수 소리의 메아리도 기이하다. 다른 곳에선 박수 소리가
공명하지 않는데 유독 계단의 정면에서 친 박수는 메아리 쳐 되돌아온다. 계단을 타고 오른
소리가 꼭대기 제단에서 메아리 쳐 되돌아
오는데 딱 새소리를 닮았다.
가이드는 마야의 왕들이 그 깃털로
머리 장식을 길게 늘어뜨렸던 귀하고 예쁜 새
쿠에찰(quetzal)의 소리라고 했다. 공명까지도 계산된 건축물이다.
피라미드 위에서 이야기를 하면 아래에서 아주 잘 들리고
아래서 이야기한 소리는 위에서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컴퓨터는커녕 쇠로 된 연장도
없던 시절, 돌도끼로 다듬고 사람 손으로 들어 올려 만든
피라미드가 빚어낸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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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인들은 천문학과 기하학에
뛰어난 지식을 지녀 태양이 뜨고 지는, 미세한 변화를
정확히 계산해 냈다. 260일을 기준으로 하는 종교력과 365일을 기본으로
하는 태양력을 동시에 사용했다.
지금까지의 역법 중 가장
정확했다는 게 마야의 태양력이다.
마야의 달력을 근거로 2012년 지구의 멸망을 예언하는
영화 '2012'가 최근 개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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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신전
재규어 한마리가 기둥 사이를 지키고
있는 신전은 볼경기장의 입구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활을
하는듯하다. 기둥에 새겨진 각종 신들의 얼굴, 존경과 굴복을 표현한 듯한 인물상,
그리고 그것을 받치고 있는 조상, 안족 작은벽에 남아있는 붉은색의
염료, 그리고 지붕에 새겨진 마야문자 등...경기장에
들어가는 선수들과 관중들의 마음을 다잡는
기도의 장소는 아니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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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재규어의 제단
촘판틀리옆에 위치한 이
신전은 용도 또한 촘판틀리의 그것과 비슷했다.
마야인들에게 있어서 재규어는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사방으로 깃털달린 뱀의 머리가 조각 되어있고 벽면에는 재규어와 독수리가
발톱으로 인간의 심장을 물어채는 모습등 상당히 과격한 그림이 새겨져있다. 제단위에 놓인
인간제물의 심장 혹은 사체는 신이 사자라고 여겨졌던
독수리가 먹어치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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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신전
낮은 단으로 4면에는 이를
들어내는 해골들이 조각되어있다.
이 단에는 제물로 바쳐졌던 희생자들의 머리가
놓여졌을거라 추측된다.
마야인들은 신에게 심장을
바칠 인신제물을 구기 경기장에서 구했단다
신에게 바쳐질 인물은 가장 힘 센자게 되어야 했기에 제물을 선정
하기위해 구기 경기를 벌였고 이긴팀의 주장이 신에게 받쳐진다. 주장을 전사의 신전으로
데리고와서 주술사가 의식을 치룬다음 그의 가슴에서 심장을 꺼내 뜨거운
심장을 "차끄 몰"이라고 부르는 제상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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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신전 주위에는
1,000개의 돌 기둥들이 열을 지어 서 있다.
신전 옆으로도 수많은 돌기둥이 있는데, 예전에는 이위에
지붕을 덮어서 제례에 참여한 사람들의 거처로 삼았다고한다. 신전 꼭대기에 보면
작은 석상이 보이는데 그것이 "차끄 몰"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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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내일을 열기 위해 날마다
밤과 싸워야 했다. 지친 태양에게 힘을 주기 위해선
사람의 심장과 피를 계속해 바쳐야 했다. 태양을 향한 절대 숭배, 그것이
만들어 낸 마야의 슬픈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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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의 기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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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http://cafe.daum.net/maylove520/9ftF/40
피라미드 옆에 있는 볼 경기장은
개인적으로 흥미가 진진했고 인상이 깊었던 경기장이다.
이런 경기장은 거의 전 콜롬비아 유적지에서 발견 된다고 하며 치첸이사에 있는
사진에서 보는 이 경기장은 길이 약150미터, 폭은
40미터로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경기는 석벽 중앙에 약 7미터
높이에 있는 "링" 모양에 골에 고무공을 넣는
것인데 경기 방식은 고무공을 팔꿈치, 무릎, 엉덩이 등 극히 제한된
신체 부위만을 사용하며 7명이 한 팀이 되어
경기를 벌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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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게임은 마야 문명에서는
어디서나 즐겼던 종교의식이자 스포츠 오락이었다.
벽 양쪽이 4도씩 기울어져 있어 소리가 흩어지지 않고 한쪽에서 박수를 치면
반대편에서 에코가 울린다. 말 소리가 끝에서
끝까지 잘 드리는 구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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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왕가에 관람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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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가시지를 않는다..
정말 이곳에 고무공을 넣을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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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에서 이긴 팀의
승리자가 칼에 찔려 죽는 모습을 생생하게
벽화에 새겨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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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를 죽이는 이해 할 수 없는 의식?
이는 태양을 신성시 하는 마야인들의 우주관과 관련이 깊다.
가장 힘센 사람의 뜨거운 심장을 바치고자 볼 게임의 승자를 택하였다는 것이다.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영광 스럽게 신에게 가는 길이라고
믿어 기쁘게 목숨을 바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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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그동안 바친 사람의 피와
심장만으로 성이 차지 않은 걸까. 아니면 너무
과식을 한 걸까. 후기 마야 시대 가장 큰 세력을 구축했던 치첸이사는
1500년께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쇠멸했다. 유적을
그대로 놔둔 채 이곳을 떠나 버린
마야인들, 왜 그랬을까...
가이드는 "아마도 오랜 가뭄에 수확량이
줄자 하층민이 더 이상 세 부담을 못 참고 반란을 일으켜
귀족 계급을 다 죽인 뒤 이곳을 떠난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고 했다.
마야의 눈부신 천체 기하의 지식이 전승되지 않고
함께 사라진 게 그 이유일 것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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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복원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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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무덤
신전 맞은편 죽은 시신을
두는 곳에는 해골 모양의 조각이 벽을 따라
가득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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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의 샘
반경 60m 깊이 30여 미터의 연못인데
맑은 물이 사시사철 솟아나는 성지다. 층층을 이룬
주위 흰 바위는 유달리 파란 우물과 어울려 신비한 모습이다
물이 파란 것은 석회석 성분이 많아서일까
마야인들은 가뭄이 들거나
흉년이 지면 기우제를 겸하여 비의 신
차크에게 처녀나 어린이를 연못에 던지는 인신 공양을 하였다
1924년 고고학자 에릭 톰슨이 연못을 발굴한 결과 10대 어린이들의 유골과 차크신상
모형 금은 장신구가 쏟아져 나왔다. 강력한 통치 술이나 문명은
사람을 죽여 신에게 바치는 데서
절정을 이루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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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아나
마야인들의 주식 중에 하나였는데
느릿 느릿한 행동을 볼 때 잡혀 먹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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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식 식사를 하러간 식당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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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칸쿤으로 돌아와
호텔 안에서 창 밖을 내다보니
저녁은 바다가 보이는 밖에서 멕시코 전통의 간단한
음악과 춤이 있을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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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과 현란한 춤을
카메라에 담기는 역 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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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을 보려고 마음먹고
일찍 나왔는데 어제저녁 카메라 iso를 올려 놓고는
그데로 일출을 담아 노이즈가 심하다.
이렇게 멍청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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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앞의 건널목을 건너가
보았는데 호수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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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의 가로수는 모두가 야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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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씨앗 같았는데 길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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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게 피어있는 노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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