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제5주일 강론 : 포도나무의 비유(요한 15,1-8) >(4.28.일)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포도나무의 비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주님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청하며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1.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교회 추기경이셨던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은 2009년 2월 16일 오후 6시 12분에 선종하셨습니다. 1922년 5월 8일(음) 대구에서 태어나 온갖 역경을 디디며 사시다가, 88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추기경님이 돌아가시던 날, 저는 대구가톨릭대학교 하양캠퍼스에서 범어대성당 건립에 관해 사제연수 중이었는데, 갑작스러운 비보에 정신이 멍했습니다. 우리나라 천주교 성장과 발전뿐만 아니라, 군부독재에 맞서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서도 큰 역할을 하셨고, 가톨릭 신자들뿐만 타종교 신자들, 무신자들,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존경하고 사랑했던 분이었는데, 큰 어른이 서거하셨다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은데, 이제 어떤 분을 정신적 지주로 두고 살아가야 하나 생각하니까, 눈물만 흘러내렸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교우들도 그랬겠죠? 아무튼 김 추기경님을 추모하기 위해 전국 모든 성당에 영정사진을 모시고, 추기경님을 위한 연도를 바쳤습니다. 저도 첫 본당이었던 포항 문덕성당에서 교우들과 열심히 연도를 바쳤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온 추모객들이 김 추기경님의 선종을 애도했습니다. 바람 불고, 눈 내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밀려온 추모 인파로 명동성당과 그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 추기경님 시신을 참배하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렸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신자들과 함께 김 추기경님의 선종을 애도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장례미사를 추기경장으로 하는 게 맞고 그렇게 준비했지만,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특별한 배려 덕분에 교황장으로 거행했습니다. 교황님이 아닌 추기경을 교황장으로 봉헌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교황장으로 지낼 수 있을 만한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 김 추기경님이 생전에 소망하신 대로 각막이식을 하신 후에 장기기증이 이어졌습니다. 저도 그해 7월 3일에 대구가톨릭대학병원에서 뇌사, 사후, 조직 기증을 하겠다고 신청했고, 그 이후 장기기증 카드를 지갑에 늘 넣고 다닙니다. 제가 죽자마자 곧바로 필요한 장기를 꺼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김 추기경 효과”가 있었는데, 각 성당의 미사 참례자들과 예비신자들이 늘고, 쉬는 교우들이 회두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마더데레사 효과, 요한바오로 2세 교황 효과도 있었는데, 그 덕분에 그분들은 성인이 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효과가 일어나도록 애써야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상이 생기면 연도와 장례미사를 정성껏 해주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어렸을 때, 사제가 아니라 장사꾼이 되고 싶었답니다. 당신을 소중하게 키우신 모친께 보약과 인삼을 사드리고 싶어서였는데, 모친이 김 추기경님께 소신학교 가라고 해서 그 계획을 말씀 못 드리고, 순순히 소신학교에 들어가셨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사제서품 때, 제대 앞에 엎드려 이렇게 기도하셨답니다. “주님, 저는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저에게 이 길밖에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이 길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모르겠다고 투덜거리지만, 김 추기경님을 통해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못 듣겠다고 자주 불평하지만, 김 추기경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3. 오늘 복음은 그 유명한‘포도나무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그 가지입니다. 그 내용은 < 가톨릭 성가 35 >에 나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작은 열매도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그러하리라. 너희가 내 안에 생활하고 있으면 만족스럽게 추수할 것이나, 너희가 내 곁을 떠나면 모든 게 불가하리라.”
포도나무 가지 중에 아주 큰 가지였던 분이 김 추기경이셨습니다. 그분은 추기경 생활 40년간 하느님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고, 또 90세, 100세를 산다고 하더라도, 그 세월 동안 하느님을 모르고, 또 그분과 함께 살지 않으면 하루살이처럼 허무하고 쓸데없는 시간밖에 되지 못할 겁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임종 직전 때, 추기경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난 아침에 일어나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데, ‘오늘을 주셔서 감사드린다.’라는 기도입니다. ‘아픈 것만 안 주시면 더 좋겠는데, 그러다가 생각을 바꿔요. 아픈 것도 하느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통해 하느님은 나를 당신께로 더 가까이 이끄시느라고 이 고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의 고통이니까 고통도 감사해야 합니다.”
김 추기경님 이후에 다른 추기경이 2명(정진석, 염수정)이나 배출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김 추기경님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서울대교구에서는 김 추기경님의 시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김 추기경님의 말씀과 행동을 계속 배우고 실천하면서, 김 추기경님 같은 분이 우리나라에 탄생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아울러 김 추기경님, 성녀 마더데레사,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처럼, 하느님 은총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