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노력 없이 아무 성공도 없데이" | ||||||
성철 스님 딸 '불필 스님' 회고록 <영원에서 영원으로> 출간 | ||||||
| ||||||
| ||||||
성철 스님 탄신100주년을 맞아 스님의 친딸 불필 스님의 회고록 <영원에서 영원으로>(김영사)가 오는 17일 출간될 예정이다.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되는 기라. 노력 없이는 아무 성공도 없데이.” 성철 스님이 불필 스님에게 늘 강조하던 말이었다. 불필 스님은 ‘비구니의 대모’ 인홍 스님을 은사로 태백산 홍제암에서 출가해 1961년 3월 통도사에서 비구니계를 받았다. 이후 불필 스님은 성철 스님의 상좌 백졸 스님과 본격적인 운수납자의 길을 나섰다. 문경 대승사 묘적암, 합천 해인사 국일암, 지리산 도솔암 등 제방을 두루 다녔던 스님은 성철 스님의 지시에 따라 1969년 은사 인홍 스님이 있는 석남사로 돌아왔다. 그 후 불필 스님은 석남산 심검당에서 3년 결사를 했다. 매일 새벽 300배로 정진을 시작했던 결사에는 인홍ㆍ장일ㆍ성우ㆍ혜관 등 큰스님들과 법희ㆍ법용ㆍ백졸ㆍ혜주 등 젊은 비구니스님들이 참여했다. 300배를 하는데 노스님들이 젊은 스님들보다 빨랐다. 세대 간의 차이랄까. 노스님들은 젊은 스님들에게 “맞춰서 절을 빨리하라”고 채근했다. 불필ㆍ혜주ㆍ법용 스님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하루는 짜고서 절을 더 느리게 했다. 노스님들이 가만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은사였던 인홍 스님이 세 스님을 불렀다. 그리고는 옥류동으로 산책을 가자고 했다. 인홍 스님은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앞장섰다. 그때였다. 은홍 스님은 갑자기 돌아서면서 지팡이로 사정없이 스님들을 내리쳤다. 성철 스님의 매질을 피해 도망을 다니는데 이골이 났던 불필 스님은 재빨리 지팡이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스님들은 대나무 지팡이를 맞았다. 3년 결사가 끝나갈 무렵, 100일간 용맹정진을 했다. 불필 스님은 “밤에 졸리면 밖에 나가 산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전등도 없던 시절이라 사방이 캄캄한데 산길을 혼자 걷다보면 바로 옆에 큰 짐승이 지나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때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칠흑 같은 암흑 속 머리칼이 쭈뼛해질 정도로 무서운 밤길이었지만 졸음보다 무섭지는 않았다. 불필 스님은 큰 짐승이 곁을 지나며 무서움이 들 때면 “내가 너를 해치지 않았는데, 네가 나를 해칠 까닭이 뭐가 있고, 또 무엇이 그리 무서울 것인가”하는 마음으로 견뎠다. 불필 스님은 1972년 가을 3년 결사를 무사히 회향했다. 석남사 결사의 리더였던 인홍 스님은 고희(古稀)를 맞아 주지 소임을 법희 스님에게 넘겼다. 그리고는 본인은 다시 정처 없는 운수납자의 길을 가겠다며 칠불암으로 떠났다. 은사스님이 떠난 절이지만 불필 스님은 석남사에 남았다. 아버지 성철 스님의 가르침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석남사에 남은 불필 스님은 청조 스님 등 7명의 스님들과 함께 심검당에서 100일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시작했다. 불필 스님은 당시 심검당에 2그루의 보리수나무를 심었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한 그루가 크게 자라 봄이면 꽃향기를 가득 내뿜고 여름이면 무성한 나뭇가지로 더위를 식혀주고 있다. 그 나무는 가을이면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는 석남사 대중의 손에 꿰여 아름다운 보리수 염주가 된다. 불필 스님은 석남사 보리수를 볼 때 마다 당시 함께 정진하던 스님들이 그립다고 말한다. 아버지였던 가야산 호랑이의 가르침도 함께. |
|
첫댓글 항상 건강하시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
..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필요없다하여 불필이라 했는데 이렇게 중생구제위해 애를 쓰시니 큰스님의 법음이 들려옵니다.
행복하세요.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