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바위 둘레길 걷기
◇ 개운사(開運寺) : 성북구 안암동 5가 157번지
- 조선 초의 무학대사가 세운 영도사를 조선 후기에 개운사로 개칭
안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개운사(開運寺)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한국 불교 개혁의 근원지이고, 불교 교육의 근본 도량〔道場〕인 중앙승가대학이 있다.
이 절이 세워진 것은 조선 초 태조 5년(1396)에 왕사(王師)인 무학대사가 동대문 밖 5리의 안암산 기슭, 현재 고려대학교 이공대학 부근에 절을 짓고, 영도사(永導寺)라고 불렸다고 알려져 있다.
그 후 정조 3년(1779) 5월에 정조의 후궁 원빈(元嬪)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영도사 자리에 묘소를 정하고, 명인원(明仁園)을 세우게 되었다. 이에 인파당(人波堂) 축홍(竺洪) 스님이 영도사를 동쪽으로 몇 리 떨어진 현재 자리에 절을 옮겨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기(寺記)라는 문헌에는 영조 6년(1730)에 영도사가 이전한 것으로 나타나며. 영도사가 개운사로 이름을 바꾼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말 고종 10년(1873)에는 이 절에 명부전이 세워지고, 7년 후인 1880년에는 이벽송(李碧松) 대사가 대웅전을 중건하는 등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개운사는 20세기 이후에 한국 교육 불사와 불교의 진보적인 운동을 주도해 왔다. 1926년 근대 불교의 대석학이었던 박한영 스님이 머물렀고, 이 절의 암자인 대원암에 탄허(呑虛) 스님이 머물면서 역경(譯經) 사업에 종사하였다.
이 절은 최근까지 태고종에 속해 1955년에 대처승 주최 전국포교사대회(全國布敎師大會)를 이 절에서 개최하기도 하였다.
최근에 조계종에서 이 절을 인수한 뒤 1981년에 중앙승가대학을 세워 이곳을 교육 도량으로 삼았다. 현재 대웅전, 대각루, 칠성각, 범종각, 독성전 등의 건물과 삼층 석탑이 경내에 들어서 있지만 대대적인 중건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으며, 경내에는 현대식 건물로 지은 지상 5층의 중앙승가대학 건물이 세워져 있다.
이 절의 암자로서 대원암(大圓庵)과 보타사(普陀寺)가 이 절 동쪽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보타사 대웅전 뒤의 암벽에 5미터 크기의 마애백불(磨崖白佛)이 발견되었으므로 서울시 유형문화유산 제89호로 지정되었다.
◇ 대원암(大圓庵) : 성북구 안암동 5가 8번지
- 조선말에 창건한 개운사의 암자
대원암(大圓庵)은 개운사의 암자로 1845년(헌종 11년) 지봉 우기 스님이 창건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근대 불교의 대강백 영호 정호와 석전 박한영 스님이 머물면서, 불교 전문 강원을 운영해 불교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이 암자에는 법당과 향적실이 있으며, 뜰에 석가모니 불상과 비로자나불상이 있다. 근처 보타사와 함께 문화재로 알려진 마애불상이 있으며, 불경 번역 사업지로도 유명하다.
◇ 보타사(普陀寺) : 성북구 안암동 5가 7번지(서울시 유형문화유산 제89호)
-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보타사 마애불
개운사의 암자(칠성암)인 보타사(普陀寺)가 있다. 보타사 대웅전 뒤쪽 화강암 암벽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보타사 마애불(普陀寺磨崖佛)이 있다.
이 불상은 1992년 6월에 서울문화사학회 정기 답사 때 발견되었다. 이에 학회에서는 이 불상을 서울시와 문화재관리국에 각각 문화재로 지정할 것을 공식으로 요청하자,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한 결과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높이 5미터, 폭 4.3 미터 되는 거대한 이 보살상은 머리에는 좌우 옆으로 뿔이 있는 관을 쓰고 뿔 끝에는 복잡하게 장식된 타원형 느리개(垂飾)가 늘어져 있다. 얼굴 생김새가 토실토실하며, 어깨가 넓고 장대(壯大)한 형상은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는 없고 비교적 자연스럽고 미감(美感)이 풍부한 표정에 옷은 통견(通肩)으로 표현되어 있다. 최근에 온몸을 흰색으로 색칠하여 백불(白佛)의 인상을 풍기는 중에 입술은 붉은색, 눈과 눈썹 윤곽은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한편, 마애불 어깨 좌우에 홈이 패여 있는 것으로 보아 전일에는 전각이 꾸며졌던 듯하다. 또 마애불 오른쪽 아래에는 제작 당시에 새겨진 문구가 있다.
이 마애불은 서대문구 홍은동 8번지 홍제천 변의 보도각 백불(서울시 유형문화유산 제17호)과 형태와 조각 솜씨가 유사하다.
◇ 개운산(開運山 : 해발 134m) : 안암동 5가 157번지 뒷산
- 안암산(일명 진석산)으로 칭하다가 개운사 사찰이 있어서 불려진 산 이름
개운산(開運山)은 서울 성북구 안암동과 종암동, 돈암동 경계에 있는 낮은 산으로, 개운사라는 사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 산은 안암동 자락의 고려대학교와 가까워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으며,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산은 안암동5가와 안암역 근처에서 쉽게 오를 수 있으며, 무장애 숲길과 순환산책로가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 주변에 성신여대와 고려대가 인접해 도시 속의 휴식처로 인기가 있다.
이 산에는 조선 태조 5년(1396년) 무학대사가 창건한 개운사가 있으며, 보타사와 대원암 등 사찰이 산재해 있다. 개운산은 지난날 안암산(安岩山) 또는 진석산(陳石山)으로 불렸으며, 바위와 유적(마애불좌상 등)이 문화재로 남아 있다.
◇ 마로니에 마당 : 성북구 돈암동 산 6-23 (개운산 근린공원).
- 개운산 정상에 마로니에 나무를 심어 놓은 휴식 공간
‘마로니에 마당’은 개운산 정상의 작은 광장 겸 운동·휴식 공간으로, 개운산 순환산책로의 중요한 지점이다. 성북구 안암동·종암동·길음동·돈암동에 걸친 개운산 북쪽 정상부 근처에 조성된 공간으로, 산책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넓은 공터 형태의 마당을 만나게 된다.
‘마로니에 마당’ 주변에 마로니에 나무를 심어 놓은 데서 ‘마로니에 마당’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사계절 나무와 화초류가 어우러지는 소규모 숲·정원처럼 조성되어 있다.
이 마당은 소나무, 산수유 등 개운산의 기존 수목과 어우러져 도심 속에서 비교적 그늘이 많고, 조용한 휴식 공간이 된다. 넓은 흙·잔디 공터와 함께 맨발 황톳길, 철봉 등 간단한 운동시설, 벤치 등이 설치되어 있어 가벼운 체력 단련에 많이 이용된다.
◇ 문화공간 이육사(李陸史) : 성북구 종암로 21가길 36-1로
-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이육사(李陸史)의 삶과 문학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살던 곳에 세운 복합문화공간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이육사(李陸史 : 1904~1944)의 삶과 문학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살던 곳에 복합문화공간을 세웠다.
원래 성북구 종암동 62번지는 이육사가 1939년부터 거주하며, 「청포도」를 발표한 역사적 장소이다. 2019년 12월 17일, 그가 살던 인근에 ‘문화공간 이육사’를 개관했다.
이육사는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저항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본명은 이원록(李源祿)이다. 경북 안동 도산면에서 태어나 퇴계 이황의 13대손 가계에서 성장하였다.
이육사는 1920년대부터 의열단에 가입해 무장·폭력투쟁 계열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여러 번 체포·투옥을 겪었다. 짧은 생애 동안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른 인물로, 1943년 베이징에서 비밀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일본 영사관이나 헌병대 감옥에 수감되었고, 1944년 1월 16일 베이징에서 옥사하였다.
그는 1930년대부터 신문·잡지에 시와 산문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고, 동인지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했다. 항일투쟁과 옥중 경험을 바탕으로 강한 민족의식과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시를 남겼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광야」, 「청포도」, 「절정」, 「교목」 등이 꼽히며, 식민지 현실 속 민족의 비극과 해방 의지를 상징적·비유적 언어로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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