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사유] <11-152>
소는 밭을 갈고 수행자는 정진하고
농촌에서 요즘이야 트랙터로 농사를 짓지만, 농기계가 나오기 전이나 상용화 되기 전에는 농부에게는 소가 필수가축이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농사일을 돕는 짐승으로 부와 재산, 힘을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농가의 재산 목록 1호였으며, 친근하면서도 ‘풍요, 부, 길조, 의로움, 자애, 여유’ 등의 의미들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순박과 우직함, 근면의 대명사로 비록 느리지만 인내력과 성실성이 돋보이는 동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능 외에도 소의 부속물인 뿔, 가죽, 기름, 고기 등은 실생활의 주요 재료로 폭넓게 사용되어 왔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쓰임에 ‘소는 하품 밖에 버릴게 없다’는 말로 함축되기도 하였는데...
이런 소중한 소는 불교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태자 때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인데 성(姓)에 해당하는 ‘고타마’의 뜻은 ‘가장 좋은 소’, ‘거룩한 소’란 의미로 부처님 당시 농경(農耕) 중심의 가치가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대부분의 사찰에서 만날 수 있는 법당 벽화 심우도(尋牛圖)에서도 소는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불가에서 소는 ‘인간의 본래 자리’를 의미합니다. 이 때문에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비유한 심우도를 그려 벽화로 사용하고 있으며, 소를 길들이는 과정의 벽화는 분별ㆍ집착심을 버리는 수행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진 예로 중국 당나라 때 남악회양 선사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좌선만 하고 있는 마조도일 선사에게 “소가 수레를 끄는데 만약 수레가 가지 않는다면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소를 때려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여기서 소는 마음을, 수레는 육신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소를 찾는다’라는 뜻을 가진 ‘심우도송(尋牛圖頌)’의 본래 명칭은 ‘소를 길들인다’라는 의미의 ‘목우도송(牧牛圖頌)입니다. 열 단계로 나누어 그려졌기에 ’십우도송(十牛圖頌)‘이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모든 중생이 지닌 본래의 자성(自性)은 아무것에도 물들지 않고 청정하다고 보는 불교 교리에 입각할 때, 순박하고 평화로운 천성을 지닌 소가 이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소의 할 일은 밭을 가는 일입니다. 인구어(印歐語), 인도-유럽 어족계통의 언어에서는 밭을 경작하는 것과 인간의 정신을 계발하는 것이 같은 단어로 표현된다고 합니다. 정신 계발은 마음을 닦는 일과 같은 뜻이므로 소가 밭을 간다는 말은 수행자의 정진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의 임무는 밭을 가는 것이고, 수행자의 임무는 정진하는 것입니다. 밭을 갈지 않는 소가 갈 곳은 그 살을 필요로 하는 도살장 뿐이고, 정진하지 않는 수행자를 필요로 하는 것은 마라의 굶주린 입 뿐입니다.
2565.11.14 종진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