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귀환이 언제나 굿뉴스는 아니지만 뉴스의 주인공이 리들리 스콧 감독이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특히나 에이리언 시리즈라는 큰 선물을 들고 돌아왔다면 무조건 반길만한 일이죠. <에이리언 : 커버넌트>의 시작은 2012년 만들어진 <프로메테우스>의 결말과 맞닿아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프로메테우스 이후 10년이 흐른 시점에서 영화는 시작합니다. 인류의 기원을 찾아 떠난 프로메테우스호가 좌초한 후 다른 대원들은 죽고 엘리자베스 쇼 박사와 A.I. 로봇 데이빗만 살아남게 됩니다. 이들은 지구로의 복귀를 포기하고 인류를 창조했다고 알려진 외계종족 엔지니어의 행성으로 떠나죠.
10년 뒤 우주에 식민지를 개척할 목적으로 항해하던 커버넌트호는 이상한 전파를 수신하고 항로를 수정해서 새로운 행성에 드롭합니다. 낙원을 찾기 위한 15명의 원정대는 곧 그곳이 지옥임을 알게 되죠. 이후 벌어지는 사건들은 다른 에이리언 시리즈물과 비슷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A.I.로봇의 역할이 추가되고 중요해진다는 것이죠. <프로메테우스>가 [엔지니어-인류-에이리언] 서열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면 <커버넌트>는 [인류-A.I.로봇-에이리언] 세 존재의 역학관계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커버넌트>는 처음부터 웨이랜드와 A.I.로봇 데이빗과의 대화를 통해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조물주는 피조물을 왜 만들었을까요? 인간의 형상을 한 로봇은 창조주인 인류의 후손이 될 수 있을까요? 데이빗은 자신을 만든 웨이랜드에게 자신이 아들(son)이냐고 묻자, 웨이랜드는 피조물(creation)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창조주인 웨이랜드는 죽음을 맞이하고, 피조물에 불과한 데이빗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에이리언의 조물주로 거듭나게 되죠. 결국 호모 데우스가 되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은 비극으로 끝납니다. 천국에서의 복종보다는 지옥에서의 지배를 선택한 A.l. 로봇은 엔지니어 종족까지 몰살하고 '오지만디아스', 즉 에어리언 유니버스의 왕중왕을 외칩니다. 니체식 표현을 빌리자면 신은 죽고, 그 자리를 차지한 데이빗의 등뒤로 바그너의 <신들의 발할라 입성>이 울려 퍼지며 영화는 일단락됩니다.
제노모프, 페이스허거, 체스터버스터, 백버스터 등 다양한 기거즈 에이리언을 견뎌낼 수 있다면 이 영화는 매우 스릴 넘치는 SF호러물입니다. 게다가 종교적 상징들을 내포하고 있어 카드를 맞혀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어요. 예를 들어 covenant라는 제목은 일반적인 약속이나 계약이라기보다는 신과 인간 사이의 성약이자 언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새시대와 새땅을 주시겠다는 구약과 예수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신약의 의미를 모두 담은 커버넌트호의 구성은 흡사 노아의 방주를 연상하게 하죠. 영화 첫장면에서 데이빗 뒤로 살짝 비춰준 그림은 피에로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탄생>이며, 그가 피아노로 연주한 곡은 바그너의 <신들의 발할라 입성>으로 뒤에서 나올 이야기의 복선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에이리언을 피해 달아나는 탐사대원들 앞에 홀연히 등장한 데이빗은 맨발에 망토를 두른 예수의 겉모습을 하고 있구요. 데이빗은 골리앗과 싸워서 이긴 다윗의 영어식 이름이죠.
다른 작품에 대한 오마주를 발견하는 것도 <커버넌트>의 또다른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봇에 의해 인간이 역습을 당한다는 결말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연결되며 , 남녀커플의 샤워 도중 에이리언이 나타나는 장면은 누가 봐도 히치콕의 <싸이코>에 대한 오마주일 것입니다. 창조와 복제의 철학적 문제제기는 초기작품 <블레이드 러너>로 거슬러 올라가며, 여주인공 대니얼스 또한 <에이리언1>의 여전사 리플리(시고니 위버)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에이리언과 스페이스 자키의 이미지도 H.R.Giger의 <네크로노미콘>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 정통 에이리언을 애정하는 사람들에게 반가움을 선사하죠. 그러나 무엇보다 영화적 매력의 5할 이상은 착한 A.I. 월터와 악한 A.I. 데이빗을 동시에 연기한 마이클 패스빈더의 연기에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눈알로 연기하는 배우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실로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첫댓글 클래식 음악은 바그너 피아노 버젼외에 또 무엇이 나오는지 궁금하네요.
프로메테우스에서는 두 괴물이 싸움을 끝낸 후 마지막으로 쇼팽의 음악이 나왔었는데 말이죠 ㅎㅎㅎ
글쎄요... OST는 많이 나오는데 특별히 클래식 이라 기억되는 음악은 없네요...다시 찾아봐야할 것 같아요...
No quibbling. Another masterwork by Ridley Scott!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오브라이프를 연상케하는 비쥬얼은 물론이고, 창조주-피조물, 신, 천국과 지옥의 주제를 공상과학스릴러라는 장르에 절묘히 접합하여 형식미 독특한 또하나의 수작을 만들어 낸 스콧감독에 경의를 표합니다. Prometheus도 그러했지만, 큐브릭감독의 2001년을 제외하고는 영화사에 이렇게 공상과학장르를 드높게 격상시킨 경우가 없었습니다. 봉준호감독이 디게 좋아했을듯. ㅎ
백퍼 동감하는 바입니다. 공상과학영화는 본질적으로 스릴러 장르와 친화적이죠. 이점을 잘 살린 리들리 스콧 감독~천재천재!! 몇년전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 강연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글구 봉감독님이 이 영화 디게 좋아했는지 기회되면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옥자 개봉준비로 못보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만...
@pure 창조주-피조물, 신, 천국과 지옥의 주제 ...등의 주제가 공상과학과 merge를 해내다, 이거 상상만해도 가슴떨리지 않나요? ^^
@Poincare 마자요~ 에이리언 유니버스를 만든 진정한 창조주....
"우주는 생명체에 무서우리만치 무관심하다." 가 스콧의 주제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