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에서 시와 그림은 뗄 수 없다. 개중에는 처음부터 시의 뜻을 가지고 그린 것도 있다. 이런 그림을 묶어서 시의도(詩意圖)라고 한다. 시의도는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했다. 당시 많은 이름난 화가들이 잘 알려진 시를 테마로 그림을 그렸다. 한시가 조금 낯설기는 하지만 시를 통해 보는 옛 그림은 색다르다. 옛 그림의 새로운 이해를 위해 시와 그림을 함께 감상하는 코너를 소개한다. 한시는 김규선 선문대 교수가 번역과 풀이를 맡아주셨다.
김홍도(金弘道) <남산한담(南山閑談)>
전원생활이 유행이다. 콘크리트 도시를 탈출해 자연에 둘러싸여 산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매력적이다. 새소리에 잠을 깨고 나뭇잎 소리를 담아 차를 마시는 생활. 이런 바람은 비단 현대인만의 꿈은 아니다.
전원생활이 유행이다. 콘크리트 도시를 탈출해 자연에 둘러싸여 산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매력적이다. 새소리에 잠을 깨고 나뭇잎 소리를 담아 차를 마시는 생활. 이런 바람은 비단 현대인만의 꿈은 아니다.
옛 사람들도 이 같은 전원생활을 꿈꿨다. 문 밖만 나서면 보이는 모두가 산이고 들이었을 텐데도 그랬다. 옛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수화는 이를 말해준다.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띠풀 지붕 집이나 물가에 세워진 누각 등 산수화 속 정경은 옛사람들이 꿈꾼 전원생활의 이상향이랄 수 있다.
중국시인 가운데 당나라 때 왕유(王維, 701-761)는 특히 전원생활을 예찬한 시인으로 이름 높다. 그의 시에는 불교적 색채가 강한데 그것이 불교와도 어떤 연관이 있는 듯하다. 그의 신앙은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모친의 영향이다. 이름의 유자와 자의 마힐(摩詰)은 『유마경』의 주인공 유마힐에서 땄다고 한다. 어쨌든 그는 전성기 당나라 때의 고급관료를 지냈으며 그의 관직은 오늘날로 말하면 행정부의 부총리급까지 올랐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박식하고 시는 물론 음악, 글씨, 그림에도 재주가 뛰어났다. 그 위에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와는 우애가 깊었다. 또 아내와의 사랑도 지극 정성이었다. 30살에 부인이 죽자 나머지 30년은 혼자 살았다. 일찍 아내를 잃은 일을 제외하면 그는 거의 완전한 모범 인간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의 한 고전학자는 이런 모범생다운 태도가 거슬렸는지 격정의 시인이나 우국의 시인으로 손꼽히는 이백이나 두보와는 달리 그를 평가절하한 적도 있었다.
왕유가 전원생활을 실천한 것은 아내의 죽음과 관련이 깊다. 그는 아내가 죽은 뒤 장안 동남쪽 망천(輞川)이란 곳에 별장을 짓고 들어가 살았다. 다시 불려나와 벼슬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망천장을 떠나지 않고 드나들었다. 전원시인으로 그의 이름을 드높인 시에 「종남별업(宗南別業)」이 있다. 종남은 망천장이 있는 종남산을 가리키고 별업이란 별장이란 말이다. 시의 내용은 이렇다.
中歲頗好道 晚家南山陲 중세파호도 만가남산수
興來每獨往 勝事空自知 흥래매독왕 승사공자지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
偶然值林叟 談笑無還期 우연치임수 담소무환기
중년에 도를 참 좋아해
만년에 종남산 기슭에 집을 마련했네.
흥이 일면 홀로 길을 걷고
좋은 일은 그저 나만 알 뿐.
물길 시작되는 곳까지 걸어가 보며
구름 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네.
어쩌다 산골 노옹을 만나면
이야기 나누다 돌아갈 일 잊는다네.
시에서 도(道)는 불교의 참선을 가리킨다. 이 시는 왕유가 중년 이후에 불교, 특히 참선에 심취한 것을 읊은 시라 할 수 있다. 그는 선을 매개로 자연과 자신이 하나가 된 찰나의 순간을 시로 묘사해 내는데 아주 뛰어났다. 이러한 그의 시풍을 설리시(說理詩)라고도 한다.
아무튼 전원의 유유자적한 생활을 읊은 왕유의 이 시는 중국은 물론 조선에서도 대유행했다. 천재화가인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도 이 시에 몰두했다. 알다시피 김홍도는 18세기를 대표하는 화원 화가로 정조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그런 만큼 그는 도화서나 궁중을 떠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다 산골 노옹을 만나면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갈 일을 잊는다네’라는 한가로운 전원생활이 더욱더 달콤하게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평소 이런 생각은 술 한 잔 걸치면 더욱 간절했을 터. 그의 그림에 <남산한담도(南山閑談圖)>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아무리 보아도 한잔 걸친 뒤에 그린 것 같아 보인다.
김홍도(金弘道) <남산한담(南山閑談)> 지본담채 42.0x29.4cm 개인
호젓한 산 언덕 위에 두 노인이 마주보고 앉아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림 한 복판으로 볼거리를 집중시키고 주변에 여백을 넓게 잡아놓는 구도. 산의 윤곽선을 따라 붓을 눕혀 먹물 점을 척척 찍으면서 산 주름을 묘사해낸 능숙한 솜씨 등. 중년 이후의 원숙한 기량이 엿보이는 그림이다.
기량과 달리 이 그림은 특이하다. 잘 쓰지 않는 단옹(檀翁)이란 호를 썼다. 그리고 왼쪽 여백에 쓰여 있는 시는 더욱 이상하다. 우선 첫 연의 제2귀의 수(陲)자가 잘못 됐다. 남산수의 수(陲) 자는 근처라는 뜻인데 술에 취해 졸리기라도 했는지 잘 수(睡)자를 써놓았다. 시 뒤쪽에 뻘쭘하게 혼자 써 있는 수(陲)자는 ‘아차’ 하고 새로 고친 것이다.
그 외에 술이 어지간했으리라고 추측케 하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셋째 연과 넷째 연을 통째로 바꾼 것이다. ‘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앞에 떡 허니 ‘우연치임수 담소무환기(偶然值林叟 談笑無還期)’를 먼저 썼다. 산 노인을 먼저 만난들 뭐가 문제인가 하는 마음이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