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역
마 4:23-25
예수님께서 공생애에 중점적으로 펼치셨던 주된 사역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일입니다. 복음전도, 케리그마 사역입니다. 그리고 병든 자를 고치시는, 디아코니아, 봉사 사역입니다. 그리고 남은 한 가지는 무엇인가? 가르치는 사역입니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참 교회입니다. 어떤 교회가 교회다운 참 교회입니까? 예수님께서 위탁한 사역을 잘 받들어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어부들을 제자로 선택하시고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공생애 사역을 하셨습니다.
우리교회가 예수님의 사역을 잘 배워 실천하는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한해를 주님을 위해 일해보기를 바랍니다.
첫째 : 말씀을 가르치신 일입니다(교육, Teaching).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23절)
예수님께서는 주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회당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생활기반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회당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은 기도하고 성경보고 강연하고 재판도 하는 등 다목적 선터였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동사무소요, 주민 자치선터요, 문화선터요, 결혼식장과 같은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유대인들의 회당을 다니시면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도바울 역시 회당을 이용해서 복음을 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행18:4, 행19:8).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아마 구약성경을 강해하셨을 겁니다. 두루마리로 된 구약성경을 펴셔서 한 구절, 한 구절 강해하시면서 하늘나라와 메시야 예언에 관한 말씀을 가르쳐주셨을 겁니다.
이때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세 있는 말씀에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듣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듣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막1:21,22)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특히 공생애 3년을 12제자를 가르치며, 훈련하는데 쏟으셨습니다.
그 결과 훈련받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 받아서 초대교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세계선교의 초석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훗날 12사도들도 예수님의 가르치심의 사역을 본 받아서 초대교회에서도 열심히 성도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성도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잘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우리도 먼저 말씀의 가르침을 잘 받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럴 때 주님의 제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말씀을 잘 배울 것을 권면 하였습니다.
(딤후 3:14~17)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말씀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성경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둘째 : 천국 복음(福音)을 전파하신 일입니다(傳道, preaching).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23절)
예수님의 초기 전도구역은 갈릴리 주변지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니시면서 축호전도도 하시고 노방전도도 하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가르치는 사역’과 ‘복음을 전파하시는 사역’은 어떻게 다를까요?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말씀을 읽고 해석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의 뜻과 의미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겁니다.
여기에 비해서 전파하는 사역은 가르침을 받아 확신하고 있는 진리를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가르침을 통해 얻어진 결론을 사람들 앞에 선포하는 겁니다. 가르치는 것은 쌍방통행으로 토론도 있고 질의, 응답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파하는 것은 일방통행으로 질의, 응답 없이 선포할 뿐입니다. 그만큼 영적 권위가 더 있는 겁니다.
왕의 어명을 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시화본부가 역전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이 설교는 가르치는 사역일까요? 전파하는 사역일까요?
설교는 말씀을 선포하는 겁니다. 질문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습니다. 설교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전파하신 복음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했습니다.
‘천국복음’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가 신구약 성경의 주인공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 신약은 ‘오신 예수’, 요한계시록은 ‘다시 오실 예수’를 증거 합니다.
그래서 모든 설교의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만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전도를 위해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막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눅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전도하여 구원하시려고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낮은 곳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도 당연히 전도를 위해서입니다(마4:19). 예수님은 지상명령으로 복음전파를 명령하셨습니다.
(마28:18,19)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셋째 : 모든 병든 자를 치료하시는 일입니다(봉사, Healing).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23절)
예수님께서는 종말론적 구원이 최종 목표였지만 현세적 구원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혼구원뿐만 아니라, 병든 육체와 마음을 치료하는 전인적(全人的)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의 치유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성취의 일환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인 성취가 치유사역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시키고 질병을 가져다주는 악한 세력을 추방하셨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하늘 나라가 임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단과 질병을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한 하늘나라가 여러분 안에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질병과 흑암의 권세 아래 있던 사람이 자유와 빛 가운데 거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15:26)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우리는 신유의 능력을 믿고 병들었을 때에 죄를 서로 고하며, 기도하므로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약5:14,15)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 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 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예수님이 치유사역을 하실 때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졌습니다. 갈릴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좋아하셨을까요?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좋아서 왔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기적이나 병 고침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말씀보다 이적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조금만 고난을 당하면 다 도망갑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고 무엇을 주나 손만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에게는 기적의 능력이 있습니다. 병도 고쳐주시고 축복도 주십니다. 그러나 기적보다, 축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병 고침과 이적은 예수 사역의 목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