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받는 일은 고되고 까다롭다. 하늘이 내는 농사라 했다. 햇빛과 바람이 바닷물을 졸이고 말리는 걸 기다려 소금 거둘 때까지 염부의 신경과 시선은 소금밭에 갇힌다. 빗줄기 닥칠까 뿌연 먼지 날릴까 염부는 까맣게 타들어간다. 해서 소금은 염부의 조바심이 수확한 결정체다.
1990년대 염전 폐전 정책으로 서해안의 여러 갯벌이 죽어나갔지만 영광은 염부의 조바심과 소금밭의 서정을 날것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땅은 예부터 소금이 많이 났다. 물고기와 땔감과 곡식도 넉넉해 어염시초(魚鹽柴草) 풍족한 고장이었다. 물산 넘쳐 상인들이 법성포로 몰렸고 1890년대 '호불여영광(戶不如靈光)'이란 말까지 나돌았다. 집 숫자가 영광만 한 데가 없다던 그 땅은 여느 땅처럼 도시 산업화로 쇠락의 길을 밟았다. 그리고 이제 그 땅은 하얀 소금꽃과 서해 바다의 낙조로 여행객을 붙든다. 그 옛날 아득한 갯벌이었을 소금밭은 땡볕 견뎌 채염하는 손놀림으로 분주하고, 서해 갯벌 끼고 달리는 백수해안도로와 호젓한 법성포의 낙조는 아름답다.
■영백염전영광 서남쪽은 바둑판 모양의 염전이 서해 칠산바다에 닿아 있다. 염전 1칸은 대략 50~60평. 칸마다 바닷물 염도가 제각각이다. 바닷물이 소금꽃으로 피기까지는 네 단계 작업을 거친다. 결정 기간은 보름쯤. 우선 바닷물을 저수지에 담는다. 이어 제1증발지와 제2증발지로 차례로 이동한 바닷물은 제 몸을 더 짜게 졸여 마지막 칸인 결정지로 옮겨진다. 채염은 여기서 이뤄진다. 단계 밟을수록 염도는 수직 상승한다. 저수지 1~3%, 제1증발지 2~6%, 제2증발지 10~15% ,결정지 25~30%. 짜디 짠 바닷물도 염전에서는 가장 싱거운 녀석에 불과하다.
결정지에서 고무래로 밀고 삽으로 퍼 올린 소금은 소금창고에서 일정기간 보관된다. 간수를 빼기 위해서다. 간수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3년이 걸린단다. 쉬이 이뤄지지 않고 인고해야만 얻을 수 있는 소금은, 살아가는 법을 새삼 가르친다.
소금농사는 일년 내내 가능한 농사가 아니다. 3월부터 10월까지만 허락된 일이다. 송홧가루 날리는 오뉴월 소금을 최고로 친다. 이 소금이 송화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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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받는 일은 3∼10월 중에만 허락된 농사다. 채염하느라 고무래 미는 염부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사진은 전남 영광군 두우갯벌의 영백염전. 김병집 기자 bjk@ |
증발지 염전 바닥은 대개 갯벌이다. 그러나 결정지 바닥을 두고는 사정이 달라진다. 어떤 데는 도편 타일을, 또 다른 데는 장판을 깐다. 토판이나 황토판도 있었지만 지금은 드물다. 우리나라 염전업체의 95%가 장판 바닥이다. 장판은 소금 결정이 빠른 반면 유해물질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머지 5% 정도의 업체가 도편 타일을 쓴다. 타일이 자주 떨어져 손 많이 가고 밑바닥 갯벌이 무르면 곤란하다. 그러나 안전성과 신뢰도가 높다. 영백염전을 들른 이유가 여기 있다. 40년 전부터 결정지에 도편 타일을 사용해서다.
영백염전은 1973년 조성됐다. 염전 규모는 약 13만 평. 2011년 대한민국 염전 콘테스트에서 '친환경 대상'을 받았다. 영백염전 앞 갯벌은 서해안에서도 알아주는 두우갯벌이다. 소금밭으로 최적의 환경을 지녔다. "진흙과 모래가 적절히 배합된데다 일조량 많고 바람이 적당합니다." 영백염전 민동성 대표 말이다. 두우갯벌은 조수간만의 차가 분명하다. 물이 나갈 때 바다는 30리 뒤로 물러난다. 그때쯤 서해 먼바다에서 장관이 펼쳐진다. 수평선 있어야 할 자리에 하늘과 갯벌이 만나 지평선을 긋는다. 동해와 남해 바다에 익숙한 기자로선 도대체 가늠할 길이 없는 풍경이다. 하필 만조라 놓쳤다.
'수차를 밟는 염부/ 등을 뚫고 소금이 맺힐 때까지/ 염전은 자기 살을 태운다/ …/전라(全裸)인 바닷물이 여름 내내 땡볕에 피말려 소금을 만들어내는/ 아, 쓰라림의 환희.' 김중식 시인이 노래했던 수차는 용처를 거의 잃었다. 체험용 이벤트로 헛바퀴를 돌릴 뿐이다. 그러나 염전은 여전히 제 살 태워 소금을 내고 염부 등짝은 고된 노동으로 소금꽃이 맺힌다. 천일염은 염부의 눈물로 짜고, 소금 받아낸 환희로 달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가을 소금밭이 봄부터 그래왔듯 하얀 빛으로 들끓는다.
■백수해안도로 그리고 법성포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2013년 '드라이브코스 베스트 10'. 백수해안도로는 이미 적잖은 명성을 다졌다. 총 연장 16.8㎞. 백수읍 대전리에서 노을전시관 거쳐 길용리까지를 이른다. 영광의 드넓은 갯벌과 황금 들녘과 정겨운 포구를 두루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봄이면 해당화 향기로운 삼십리 꽃길로 변한다.
노을전시관에서 바라본 칠산바다는 고요하다. 노을이 속수무책의 정적을 깬다. 갯벌 깊숙이 붉은 빛 내려앉고 저 멀리 명멸하는 빛들이 눈부시다.
백수해안도로의 백미는 노을길이다. 노을전시관에서 제6주차장까지 3㎞ 남짓의 해안길이다. 제주 올레길을 닮아 있다. 목재덱(deck)길 끊긴 자리에 몽돌과 바위길이 이어지고 바닷가 숲엔 갯바람이 머문다. 어렴풋이 비린 갯바람은 소금밭 일구는 그 실바람이지 싶다. 물 빠진 서해에 실핏줄 같은 고랑이 패였다. 서해 물결의 잔적이다. 땅과 바다의 경계가 뒤엉킨 갯벌이 바다를 밀어내고 제 영토를 넓힐 즈음, 영원할 것 같은 저 갯벌에 속아 무작정 걷다 방향 잃는 이가 적지 않다. 서화주 문화해설사의 귀띔이다. 부풀린 얘길 테지만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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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낙조 조망지 중 한 곳인 노을전시관 옆 목재덱길. 김병집 기자 |
백수해안도로를 지나 법성포로 길을 잡았다. 법성포 시내 초입부터 온통 굴비집이다. 영광내 굴비 판매처 500곳 중 400곳이 여기에 진을 쳤다. 하긴 법성포는 굴비마을이 아니던가.
법성포는 고려시대 이래 서해안에서 가장 번창한 포구였다. 칠산바다 조깃배가 들어오는 날은 파시로 떠들썩했다. '매년 봄 서울 저자와 같이 떠드는 소리가 가득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그렇게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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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진 숲쟁이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법성포 전경. 김병집 기자 |
세곡 보관 창고인 조창도 꽤 컸다. 조선시대 전국 12개 조창 중 최대 물동량을 자랑했고 한때 28개 군현의 세곡을 받아냈다. 그 시절 법성포의 단오 무렵은 불야성이었다. 파시 끝나고 한양 갔던 세곡 운반선 회선한 때였으니 돈과 사람이 흥청거렸다. 법성진 숲쟁이에선 질펀한 난장이 벌어졌다. 법성진 숲쟁이는 법성포에서 홍농읍으로 넘어가는 고개마루 좌우 능선에 조성된 방풍림이다. 모든 게 번성했던 시절의 일이다. 지금은 토사 쌓여 항구 역할 제대로 못하고, 삼태기로 건질 만큼 떼 지어왔던 조기도 예전 같지 않다.
법성진 숲쟁이 근처 공원 전망대에 오른다. 법성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가 뭍을 파고들어 내해를 이룬 포구는 호수 같다. 물결 잔잔한 포구에 정박한 고깃배가 한갓지다. 한 폭 풍경화로 하루를 접는 법성포의 낙조는 어제와 다름없이 아름답다. 그러나 옛 정취 잃은 법성포의 가을은 어쩐지 처량하고 허망하다. 임태섭 기자 tslim@busan.com
TIP
■둘러볼 곳
백제불교최초도래지(061-350-5999)는 법성포 언덕배기 위치. 인도승 마라난타가 384년 백제 입국 때 최초로 법성포에 발 디딘 것을 기념해 2006년 조성. 간다라 양식 건축물과 진품 유물 전시. 간다라는 마라난타의 고향이다. 불갑사(061-353-8258)는 불갑산 기슭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 마라난타가 지은 불법 도량으로 전해진다. 대웅전과 만세루, 일광당은 찬찬히 둘러볼 만하다.영백염전(061-352-9301~2)은 사전 예약하면 누구나 방문 가능. 아이들과 꼭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찾아가는 법
자가용: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대덕JC)~고창담양고속도로(고창JC)~서해안고속도로(영광IC)~영광군청. 3시간 40분. 영광군청~법성포 20분 안팎, 영광군청~영백염전 50분 안팎.
대중교통:부산에서 영광가는 버스는 없다. 광주에서 영광 법성포행 시외버스를 갈아탄다. 당일 여행은 사실상 힘들다.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1577-8301)에서 광주종합버스터미널(062-360-8800)까지 3시간 10분 걸림. 오전 6시 10분~오후 9시 30분 출발, 40분~1시간 30분 간격, 요금 2만 2천300원. 영광 법성포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오후 10시 5분 출발, 30분 간격, 요금 6천600원, 1시간 20분 걸림. 영광 내 교통 문의는 영광교통 061-352-1303.
■먹을 곳
한성식당(061-352-7067, 6253)은 백수읍사무소 앞에 있다. 백반과 백합죽을 판다. 반찬은 그날 재료따라 다르다. 홍어무침, 새우매운탕, 조기, 편육 등 상차림 푸짐. 식당 외관 허름해도 음식은 알차다. 가격 대비 만족도 높다. 예약하는 게 좋다. 1인당 백반 7천 원, 백합죽 1만 2천 원. 임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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