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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원생활자·귀농자가 할 수 있는 일 `산촌유학`(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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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우리나라 산골유학의 쟁점
귀농자와 전원생활자들에게 큰 역할 기대
농촌에서는 꼭 농사만 지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문화예술인들 중에도 시골에 사는 이들이 적지 않고, 전원생활을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런 이들이 산촌유학생을 받아서 생활교육 또는 도제교육을 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안사회를 꿈꾸는 이들 가운데 생태마을 만들기에 나서는 이들이 많습니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적극 지원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생태적인 삶은 바야흐로 이 땅에서도 하나의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간디학교나 변산공동체학교 같이 학교 만들기와 생태마을 만들기를 함께 풀어가려는 대안학교들도 적지 않습니다.
생태마을 만들기도 풀어가기에 따라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산청 간디학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생태마을의 경우 도시인들이 집단 이주해서 전원주택단지같이 형성되는 양상을 띠는 반면, 변산에서는 도시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생태마을과 공동체학교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홍성 홍동지역은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주민들이 기존 마을을 생태마을로 바꿔나가고 있고, 상주 화북, 괴산 솔뫼마을 같이 귀농자들이 기존 마을사람들과 함께 지역운동으로 풀어나가는 곳도 있습니다.
마을이 실제로 지속가능한 생태적인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농사법이나 생활 방식이 생태적으로 바뀌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방식으로 살림살이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야 하고, 마을에 생기가 돌아야 합니다. 마을에 생기가 돌려면 무엇보다 아이들이 있어야 하고, 그 아이들이 활기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농촌에는 아이들도 거의 없지만, 그나마 드물게 있는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 못지않게 학원을 뺑뺑이 돌고 있고, 밖에서 뛰어놀기보다 컴퓨터, 텔레비전이랑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은 실정입니다.
마을을 살리자면 무엇보다 아이들이 살아나야 합니다. 아이들 교육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농촌마을 살리기, 생태마을 만들기는 공염불입니다. 마을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당연히 교육문제를 생각할 것입니다. 마을에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지역 학교를 활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 학교를 살리는 방안으로 산촌유학은 주목할 만한 대안입니다. 게다가 산촌유학은 지역 학교를 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를 위해서도 도움이 됩니다.
생태마을은 산촌유학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조건이지만, 마을이 좋다고 해서 산촌유학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산골유학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한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아이들의 생활환경과 교육환경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는 숙식 여건, 아이들이 다니게 될 지역 작은 학교의 교육 여건이 받쳐주지 않으면 일부러 산골까지 아이를 보낼 부모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장기유학의 경우 이러한 조건은 필수입니다.
귀농과 산촌유학
지금 우리 농촌 실정으로 볼 때 산촌유학생을 일반 농가에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농가 구조의 문제도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생활교육을 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갖춘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되도록 지역에서 그런 어른을 찾아서 함께 할 수 있도록 풀어가야겠지만, 산촌유학을 조직적으로 풀어가려면 아무래도 귀농자들이 주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태적 삶과 교육에 대한 생각이 있는 귀농자들이 산촌유학의 취지를 이해하고 운동 차원에서 함께 풀어간다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산촌유학은 귀농자들에게 의미 있는 일거리이자, 경제적인 방편도 될 수 있습니다. 귀농을 생각하는 이들 중에는 농사만으로는 경제생활이 힘들 것 같아 망설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귀농에 성공해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경우 농사일만 하면서 살기에는 뭔가 허전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귀농한다고 해서 꼭 농사만 지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문화예술인들 중에도 시골에 사는 이들이 적지 않고, 나이 들어 귀농이라기보다 귀향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이들이 산촌유학생을 받아서 생활교육 또는 도제교육을 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을이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성공적인 귀농이라 해도 반쪽 성공도 못됩니다. 생태마을 만들기와 작은 학교 살리기, 귀농운동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산촌유학은 이 모두에 활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귀농운동본부에서는 여기에 관심을 갖고 운동 차원에서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는 중입니다. 귀농교육을 할 때도 교육문제와 더불어 산촌유학에 대한 안내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귀농자들이 집을 지을 경우 산촌유학생을 감안해서 구조를 설계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귀농 8년차인 상주의 이명학 씨는 이미 그런 준비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초기 귀농자의 경우 시골 생활에 적응이 안 되어 스스로도 힘들어 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결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생활터전과 산촌유학
일본에서 산촌유학이 지역 농가에서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농가가 도시 주택 못지않게 정갈하고 2층 구조이거나 규모가 큰 편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에 별 불편함이 없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초가삼간 식 우리 전통 농가는 아이들 두세 명이 며칠은 머물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유학은 힘듭니다. 새로 지은 집들도 대체로 핵가족용 아파트 구조와 비슷해서 아이들이 장기간 머물기는 서로가 불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평수가 좀 넓다면 아이들 두세 명이 한 달에 열흘 정도는 머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른과 아이들이 마음이 통하면 한 가족처럼 지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 농촌 실정으로 볼 때 산촌유학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아이들이 묵을 수 있는 독립된 센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자체의 지원을 얻어 산촌유학센터를 새로 짓는 것은 당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보다는 지역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건물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볼 일입니다. 마을마다 수억 예산을 들여 잘 지어놓고서 놀리고 있거나 창고처럼 쓰고 있는 공간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존 공간을 다른 목적으로 전용하는 것이 행정상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몇 년째 방치되다시피 한 공간을 마을을 살리는 일에 활용할 수 있도록 주민들과 지자체를 설득하는 일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촌유학센터는 단순히 도시아이들을 위한 공간이기보다 지역 아이들과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습니다.
경기도 양평의 오지인 명달리가 생태산촌 시범마을로 지정되면서 명달분교 터에 환경교육센터(명달리 숲속학교로 개칭)가 새로 들어서면서 그 운영을 ‘생명의 숲’ 산하 ‘생태산촌만들기모임’이 맡았는데, 그 모임에서 산촌유학에 관심을 갖고 센터 시설을 산촌유학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좋은 사례가 나오면 다른 지역에서도 참고해서 공간 문제를 풀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마땅한 공간이 없는 지역이라면 지자체의 지원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도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 먼저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면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전북 진안군에서는 행정 담당자 중에 산촌유학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이도 있습니다.
산촌유학이 성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산촌마을이 살아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은 교육 여건입니다. 생태마을은 마을 전체가 훌륭한 교육장 역할을 할 수 있고, 대안학교나 홈스쿨링 같은 대안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기존 학교를 살리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산촌유학을 시도해볼 일입니다.
결국 산촌유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맡아줄 사람과 생활공간, 학교. 이 조건들이 부모들이 안심할 정도의 수준이 되지 않으면 장기유학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조건은 산촌유학생을 위한 조건이기 이전에 지역 아이들을 위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산촌유학은 도시아이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그 지역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산촌유학을 통해 도시와 시골 아이들, 부모들이 서로를 살리는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글 | 현병호(글쓴이 현병호님은 격월간 ‘민들레’와 대안교육 연구모임인 ‘대안과실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셋째, 산촌유학 국내사례
캠프에서 교류학습 그리고 산촌유학까지
일본에서 하는 산촌유학 캠프를 보고온 뒤 우리나라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할 수 있을 만큼만 아주 작고 소박하게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산골유학이 무척 매력 있고 큰 품이 들지 않고 아무리 작게 시작해 볼 수 있다 해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2001년 일본 소다테루카이에서 연 겨울캠프(3월 26일~30일)에 약간의 체류비를 내고 보조교사로 참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연연구반 아이들 15여 명과 안내자 두 명, 그리고 호송 선생님(연세 지긋한 정년퇴임한 선생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호송 선생님은 자연공부로 처음 내 손을 잡아준 선생님입니다. 그 무렵 우리나라에서도 야생화 공부가 시작되고 있었는데 나는 그들이 산중에 숨어있는 꽃을 찾아다닌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호송 선생님의 자연공부는 좀 달랐습니다. 숲에서 빠른 걸음을 걸을 때와 천천히 걸을 때가 서로 달랐습니다.
어린 아이들과 200m 남짓한 거리를 두 시간 정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참으로 놀랍고 신선한 공부였습니다. 선생님의 경험과 지식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었고, 나무를 만져보고 그려보고 궁금한 점을 물어볼 시간을 주었습다. 아이들은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떨어진 가지와 잎을 만지고 대화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난 언어로는 의사소통이 되질 않았지만 측백나무와 복수초, 큰개불알풀, 머위 꽃대 같은 그림을 같이 그리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본 것 같은데 이름을 당장 알 수 없었던 꽃은 내 느낌대로 적고 그려 보았습니다.
하루에 반나절 정도는 야외관찰과 산행을 했고, 반나절 정도는 그날 본 것을 그리고 정리하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자연연구반은 자연신문을 만드는 게 주제였는데, 서너 장 되는 신문을 거뜬하게 만들어냈습니다.
캠프 운영도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200여 명이나 참가한 식구들이 복작거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일어나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 목욕하는 시간이 모둠별로 따로 정해져 있어 한 번에 50명 이상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들 중심으로 동선을 짰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알게 모르게 군대식으로 캠프를 운영하는 곳이 많습니다. 식사시간은 모두가 차례로 모여 줄을 서고, 모두 일어나서 체조를 하고, 어디를 가려면 모두 같이 구호를 붙이며 이동하게 합니다. 큰 틀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지도할 때도 남자안내자가 많아서 그런지 군대식 습관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을 대합니다. 그 캠프에 참여하고서야 우리나라의 캠프 운영의 잘못된 점을 깨달았습니다. 소다테루카이는 내게 무척 평화롭게 다가왔습니다
또 다르게 내가 눈여겨 본 것은 아이들입니다. 스스로 서는 아이들, 아이들이 스스로 제 할 일을 하고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는 아이로 키우자가 교육목표인데, 캠프에서 자연교육과 감성체험을 너머 스스로 서는 아이들로 키울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지만 소다테루카이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은 제 일을 적극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4박 5일 동안 엄마가 보고 싶어 의기소침해있거나 우는 아이는 한두 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캠프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부모와 떨어져 있는 시간도 아이 스스로 받아들이고 결정하게 해야 합니다.
일어나기와 잠자리 정돈하기, 자기물건 정리하기, 이런 일들 또한 평소에 훈련된 것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했습니다. 자기 신변을 알아서 잘 정돈하고 필요한 것은 주위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아이들은 배우고 터득하고 성장했습니다.
저녁에는 모둠별로 모여서 그날그날 활동내용을 정돈하고, 그날 일어난 일에 대한 아이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주방 담당과 전체 운영을 맡은 분은 다음날 일정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세심하게 점검했습니다.
주방 시스템도 조금 달랐습니다. 주방 일을 보는 분은 정직원 5명 정도에 나처럼 보조교사 형태로 온 친구들이 열 명 정도 같이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척척 손발이 맞는 시스템이 무척 궁금해서 특별히 부탁을 해서 주방에서 반나절을 보내며 관찰해 보았습니다.
음식 준비는 철저한 계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식단을 꾸리면 그 식단에 맞게 반찬의 양을 적당하게 계산했습니다. 접시공양 방식인데, 아이들이 먹을 것을 받아오는 게 아니라 도시락을 받은 것처럼 식탁에 모둠별로 차려서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란조림이 나오면 한 아이당 두 개에 전체 아이들과 어른의 수를 곱해서 필요한 토란을 준비합니다. 저녁 식사준비와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아침에 점심도시락을 준비해서 식당 팀이 점심나절에 조금 쉴 수 있는 여유를 주었습니다. 참 좋은 배려였습니다. 아쉬운 점은 점심 도시락과 젓가락이 일회용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산골유학을 시작하며
일본에서 하는 이 산촌유학 캠프를 보고온 뒤 우리나라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작고 소박하게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산골유학이 무척 매력 있고 큰 품을 들이지 않고 작게 시작할 수 수 있다 해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먼저 함께할 부모님을 찾는 게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작은 소그룹 캠프를 운영하면서 내안의 평화를 유지하며 아이들 마음속에 일어나는 자연에 대한 느낌과 감상, 아이들끼리 일어나는 갈등을 바라볼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자연놀이를 먼저 시작했는데, 계절별로 여름 들살이와 겨울 들살이를 하면서 내 스스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프로그램에서는 인위적으로 보이는 것은 되도록 줄였습니다. 그리고 전체흐름을 방해한다는 느낌이 드는 프로그램과 내 자신이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은 과감히 없앴습니다. 자연물을 이용한 만들기, 여치집 만들기, 물레방아 만들기, 액자 만들기 같은 자연을 재료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꾸렸습니다. 대신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낸 놀이를 하게 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놀이터 만들기 같은 놀이는 하자고 안 해도 자기네들끼리 몰려다니며 노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생겨나길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환경교육 하는 선생님과 나누었더니 굉장히 앞서가는 프로그램이라는 이야기를 해 한동안 우쭐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연놀이를 꾸준히 해온 선생님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프로그램은 부모님에게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지리산 자락 햇살네 집인 우리 집에서 하는 자연놀이 프로그램을 널리 알려 원하는 부모님들이 연락하면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면서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미리 해 줍니다. 또 아이들이 우리 집으로 오기 전에 남편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오면 햇살과 바람, 구름, 들살림이 허락하는 대로 하루 전, 또는 그 날 일정을 짜서 움직입니다. 먹을 것을 아이들과 같이 마련하고 같이 걸으며, 두 손으로 마음껏 자연 엄마가 준 보물들을 만져보고 먹어봅니다. 또 눈으로, 마음으로 가득 담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물론 햇살네 들살림과 집살림 일도 거들어야 합니다. 농사일을 하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자연놀이다. 해질 무렵이면 흙 묻은 옷은 잘 털어 내일 입을 수 있도록 하고, 손발을 씻고, 놀던 자리를 정돈합니다. 간단한 식사준비도 같이 하고 음식을 먹은 뒤에는 설거지도 스스로 해 봅니다. 그리고 일기를 쓰는 것으로 긴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부모님이 잘 챙겨주어서 그럴까? 어린 아이들은 자기 소지품을 잘 모르곤 했습니다. 짐을 쌀 때 아이들과 같이 싸달라고 부탁하지만 1학년, 2학년 아이들은 부모님이 싸준 짐을 그대로 들고 오는 일이 많아 돌아갈 때는 우리 집에 그냥 두고 가는 살림이 제법됩니다.
어쨌든 요즘은 교류학습을 생각하고 캠프에 참가하는 아이들이 1/3 정도 됩니다. 교류학습은 도시아이들이 일정기간 시골에 머물며 시골학교에 다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바로 오기보다는 햇살네집 분위기와 자연스러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아이가 결정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캠프를 운영합니다. 짧은 들살이에서 교류학습으로, 교류학습에서 더 나아가 산골유학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중입니다.
교류학습을 진행하며
2003년도 교류학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준비도 제일 많이 했고, 교류학습을 알렸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아이들이었습니다. 해모수, 아인이, 혜진이, 지수, 도중하차한 수아, 이렇게 다섯 명입니다. 해모수와 아인이는 형제이니 부모님 네 분과 준비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어찌나 개구쟁이들인지 몰랐습니다. 남의 닭장에 가서 달걀을 꺼내오지 않나, 멀쩡한 남의 집 땡감을 작대기로 꺾어놓고 오질 않나, 밭에 가자하면 힘들까봐 안 간다고 하고,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일주일이 다 되어갈 땐 다들 어떻게 하면 집에 갈까 연구한 흔적을 일기장에 남겨놓기도 했습니다.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미리 돌려보내고 싶었던 아이는 남았고, 엉뚱하게도 수아가 부모님을 졸라 중간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2주 교류학습은 2006년 봄까지 해서 모두 4차례 진행했는데, 학교 교장선생님들이 교류학습의 취지를 잘 알고 계셔서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교류학습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라서 3박 4일 특별행사인 들살이보다는 내 시간이 많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아이들 챙겨서 학교 보내고, 집안일하면서 좀 쉬고, 아이들이 돌아올 무렵에는 간식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어떤 날은 같이 간식을 만들어 먹고, 들살림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필요한 집안일을 했습니다. 아이들과 2주를 함께 지내는 동안 역시 부모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하는 아이들의 감정적인 독립문제가 제일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3박 4일은 오는 날과 가는 날, 머무는 날은 이틀뿐이니 호흡이 짧지만 1주일도 아니고 2주는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섭니다. 처음에 자신 만만하게 왔던 아이도 3박 4일이 되면 그리움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차마 말은 못하고 몸으로 아팠던 아이도 있었고, 학교에서 하루 종일 우는 바람에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교류학습으로 일어나는 변화는 아이들의 변화, 가족의 변화입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일은 아이가 스스로 해 나가야 할 삶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의젓해져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학교에서 남자아이들이 놀려서 힘들었다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쌓여서 더 큰 변화에 적응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적절한 들살이와 밭에서 거둔 먹을거리로 적절하게 균형을 찾은 듯 돌아간 아이들도 있고, 집보다 입에 맞는 음식이 많아 살이 조금 찐 아이도 있었습니다. 부모님들도 편식하던 아이, 텔레비전을 유난히 많이 보던 아이들이 생활을 잘 해나가는 것을 보고 가정생활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는 부모님도 있습니다.
글|김일복(글쓴이 김일복님은 지리산 자락에 있는 경남 함양에서 ‘햇살네집’이란 이름으로 4년째 교류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햇살네집(http://blog.naver.com/hieri))
넷째, 산촌유학 국내사례
상주 웃늘티에서 시작하는‘산골유학'
산촌유학이 정착되면 도시의 아이들은 생태적인 삶과 품성이 길러져서 좋고, 제 또래 아이가 없어서 심심했던 산골아이들에겐 친구가 생겨서 좋을 것입니다. 또한 활력을 잃어가는 농촌지역도 살리며 농가에게 할 일을 만들어주어 살림에도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금 농촌마을은 노인 분들만 외롭게 남아 있습니다. 우리 가족처럼 도시에서 살다가 귀농해서 마을을 위해 무엇을 시작하려고 해도 같이 할 사람들이 없어 막막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농촌을 살리자고 다들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농촌을 살릴 사람은 농촌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다. 나날이 농촌은 늙어가고 비어만 갑니다.
이런 때에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시골마을에 장기간 머물면서 시골학교를 다닐 수 있는 산촌유학은 농촌마을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작은 시골학교를 살릴 수 있는 길입니다. 비어가는 농촌에 사람들이 드나든다는 것만으로도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일단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농촌을 먼저 살릴 것인지, 시골학교를 살릴 것인지 의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머물 곳과 일자리도 걱정이지만 결국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고민하다 포기하는 걸 여러 차례 지켜보았습니다. 지금 농촌은 사람들의 온기가 그립습니다.
산촌유학으로 도시 아이들이 내려오면 아이들이 줄어드는 시골학교에서는 정원수가 늘어나고, 농가나 센터에서 머물게 되면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부모들이 마을로 찾아와 바쁜 일손을 돕거나 농산물을 사 주면 지역 경제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상주 화북지역에서는 귀농한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산촌유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상주를 넘어 문경과 괴산 같이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왜 아이들은 시골에서 자라야 하는지, 생태적인 삶이 왜 좋은지, 지역마다 특색 있는 교육은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를 함께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 산촌유학이 정착되면 도시의 아이들은 생태적인 삶과 품성이 길러져서 좋고, 제 또래 아이가 없어서 심심했던 산골아이들에겐 친구가 생겨서 좋을 것입니다. 또 활력을 잃어가는 농촌지역도 살려 생기를 얻게 할 것이며 농가에게 할 일을 만들어 주어 살림에도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필자가 꿈꾸고 있는 산촌유학의 목표와 기대효과가 있어 소개합니다.
■ 산촌유학의 목표
1. 행사 치르기 식의 짧은 자연생태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실제 생활 전반에 걸쳐 넉넉한 시간을 가지며 이해하게 하고 피부로 느끼게 한다.
2. 농촌을 교육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지역과 학교와 농가가 결합하여 미래의 농업, 농촌을 준비한다.
3. 지역학교의 인원감소로 폐교에 대한 불안함을 고민하기보다는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여 앞으로 농촌지역의 작은 학교를 유지하면서 지역과 함께하는 방향으로 보다 희망적인 자세로 대처해 나간다.
■ 기대 효과
1. 농촌의 이농현상으로 아이들이 함께 할 또래가 없어 어려운 실정에 함께 할 친구들을 도시에서 받아들여 장기적인 시간 속에 도시와 농촌 아이들이 다함께 배우며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2. 자녀교육 때문에 귀농을 포기하는 이들에게 ‘교육을 일구어 내는 교육주체로써, 귀농’의 한 형태로써 귀농자 유치를 끌어낼 수 있다.
3. 고령화와 이농의 확대로 젊은이의 유입이 없는 상황 속에서 지역에 활력을 불어 넣어 지역 살리기에 기여한다.
4. 산촌유학을 통한 지역연구와 생태적 가치의 조사가 축적되고, 지속적인 관찰과 보호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그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 홍보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5. 산골유학에 대한 지자체의 지원과 적극적인 대응은 도시민에게 지역에 대한 이미지가 재창출을 되며, 지역 간의 비교를 통하여 각 지역 지자체의 농업, 농촌에 대한 활발한 움직임을 끌어낼 수 있다. 또한 산골유학을 수행하는 농가들의 수입을 안정적으로 제공한다.
산골유학은 하루아침에, 몇 달 안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시골마을에 아이들이 몇 주나 몇 달 동안 머물면서 지역 사람들과 만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야 지역 어른들은 왜 아이들이 이곳에 올까를 궁금해 할 것입니다. 그제야 산골유학이 뭔지를 생각할 것입니다.
또한 그 아이들이 도시로 돌아가서 훌쩍 자라서 직업을 갖고 어떤 삶을 사는지 본 뒤에야 도시 부모들은 산골유학이 아이의 정서에 좋은 영향을 미쳤구나 되새기게 될 것입니다.
한편 시골 아이들도 더 높은 학교를 진학하거나 도시에서 보금자리를 틀고서야 어릴 적에 만났던 도시 친구의 행동과 문화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시골학교와 지자체 역시 시골마을이 북적거리면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을 확신하고서야 지원을 약속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입니다. 그래서 산골유학을 시작하려는 지금 우리에겐 희망이 필요하고 공동체가 필요하고, 대안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육은 미래입니다. 지금 우리가 시작하려는 산골유학은 이 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좀 더디 가더라도 찬찬히, 땅을 다지고 주춧돌을 잘 쌓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좋은 기둥과 대들보를 세우고 지붕을 얹어야 합니다. 이 더디고 힘든 일에 뜻있는 좋은 분들이 함께 손잡아 주기를 기다립니다.
글|이명학(글쓴이 이명학 님은 여덟 해 전 경북 상주시 화북면 웃늘티 고향마을로 귀농해서 살고 있습니다. 상주와 문경, 괴산 지역을 중심으로 교육에 관심 있는 귀농자들과 함께 산골유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일본 산촌유학 현황과 의의
30년 역사, 지금은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변화
시대에 맞는 산촌유학을 위해 전용시설을 만들어 장기산촌유학생과 단기산촌유학도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도시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아이들이 함께 다양한 자연체험활동이나 집단생활체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실천하는 자치단체나 민간단체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초중학생이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부모 곁을 떠나 시골에 살면서 그 지역 학교에 다니고, 또 그 곳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고, 다양한 생활체험과 문화체험을 경험하는 것을 일본에서 ‘산촌유학’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산촌유학 시작은 1968년이라 하겠습니다. 도쿄 공립학교 교사였다가 지금은 소다테루카이 이사장인 아오키(靑木孝安)씨가 도시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연체험이나 시골 생활체험이라는 것을 통감하고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교직을 그만 두고 사회교육단체를 설립한 것이 그 시작이라 하겠습니다.
아오키의 교육이념에 뜻을 같이하는 교사나 부모의 협력으로 초중학생들이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같은 학교 장기휴가 기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자연체험활동이나 농가생활체험활동을 실시했는데 이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해마다 참가자가 증가해 5년 뒤에는 연간 1천명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 주일이나 2 주일이 아니라 좀 더 길게 산촌에서 살아보고 싶어요’라는 목소리가 참가한 아이들에게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가노현 야사카마을과 지자체, 학교에 부탁해 1976년 4월부터 산촌유학이라는 시도가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유학생은 한달에서 반은 소다테루카이 센터와 홈스테이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소다테루카이 이사장은 도시와 시골의 학교 교사를 각각 경험했습니다. 이렇듯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교육 실천을 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자연체험이나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체험이 필수 요소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생활환경이나 주변 여건이 다른 생활을 하며 서로 다른 나이의 아이들이 숙식을 함께하는 생활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라 여겼습니다. 또 풍부한 정보량과 적극적인 표현 욕구를 가진 도시 아이들과 소박하고 말없이 그저 실행에 옮기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산촌 아이들이 함께 배운다면 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주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산촌유학이라 하면 즉효약으로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 기대에 반드시 부응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사회인이 되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그 사람의 숨겨진 원동력이 될 거름이나 기름진 토양을 만들어준다고 생각으로 산촌유학일을 해왔으며 그것이 소다테루카이의 교육철학입니다.
전국 각지로 퍼져나간 산촌유학
이처럼 산촌의 자연이나 생활을 활용한 아이들의 교육을 이념으로 시작한 산촌유학은 적은 학생수, 복식학급, 더 나아가 학교 존속의 위기라는 문제에 직면한 지자체나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크게 주목하면서 소외지역 활성화대책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산촌유학을 시작하고 10년이 지난 1986년에는 산촌유학을 실시하는 학교가 18개교에 이르렀습니다. 참가한 아이들은 144명, 20년 뒤 1996년 에는 127개교, 646명이 참가했습니다. 또 30년 뒤인 2006년에는 187개교가 실시하고 참가자는 808명이나 됩니다.
그러나 해마다 늘어나던 산촌유학 실시 학교와 참가자 수가 최근에는 거의 수평상태를 보입니다. 산촌유학 실시 학교를 살펴볼 때 1개교 평균 참여자수는 감소경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산촌유학생을 받으려고 했지만 ‘참가자가 없다’, ‘유학생을 받을 홈스테이 가정의 확보가 곤란하다’, ‘운영비가 나오지 않는다’, ‘지역 아이들이 줄어들어서 휴교나 폐교됐다’라는 이유로 산촌유학을 그만 두는 곳들이 점점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1976년에서 2006년까지 산촌유학을 해본 학교는 전국에서 300개교를 헤아리지만 현재 실시하고 있는 학교는 187개교입니다. 그 가운데 참가자가 없는 학교가 37개교나 됩니다.
일본에서는 행정구역통폐합이 진행되고 있어 작은 학교를 존속시키거나 산촌유학생이라는 도시에서 온 몇 명의 아이들을 위해 예산을 쓰기가 어려워진 곳들은 사업 자체를 이어가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처럼 산촌유학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의 변화 속에서 산촌유학에 대한 개념을 교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기존의 ‘고향과 자연과 문화를 활용한 사람 만들기’ 라는 역할을 충실히 해 과소지역 활성화를 꾀하는 것과 함께 다양한 숙박체험 교류활동이 가능한 전용시설을 만들어 장기(1년)산촌유학생과 방학을 활용한 단기 산촌유학도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도시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아이들이 함께 다양한 자연체험활동이나 집단생활체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실천하는 자치단체나 민간단체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운영단체와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형태
산촌유학 운영단체는 아주 다양합니다. 운영단체를 크게 나누면 행정주체, 주민주체, 민간주체로 나눌 수 있습니다.
행정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곳은 약 20%, 지역주민이나 학교가 주체인 곳은 60%, 민간단체가 주체인 경우는 20%로 주민이나 학교 교직원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곳이 많습니다.
행정이 주체가 된 곳은 기숙사를 설치해 유학생은 1년 동안은 기숙사에서 집단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자치단체의 부담이 크고,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정해진 유학생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설로 몇 안 되는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사업이 되다보니 행정단위가 통합되거나 하면 그걸 계기로 시설을 폐쇄하는 곳들이 눈에 띕니다.
주민주체인 곳은 자치단체의 재정 지원이 적은 곳들이 대부분을 차지해 지역주민이 산촌부모가 되는 등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사업 추진에 힘을 쏟는 편입니다. 그러나 산촌부모의 고령화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수가 감소함에 따라 학교 자체가 폐교가 되기도 하고 중지하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 아이들이 있는 동안은 지역주민들의 마음을 의지하는 곳으로서의 학교이기 때문에 학교 문을 닫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민간단체가 주체로 지자체가 도와주지 않는 곳에서는 소규모의 기숙사를 만들어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곳도 있지만 장기간에 걸쳐 산촌유학을 실시하기가 무척 곤란한 상황입니다. 소다테루카이에서는 자치단체에서 지원금이나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30년 동안 산촌유학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마을의 부담금과 보호자의 부담금
산촌유학 운영단체에 대한 자치단체 부담금이나 지원금을 살펴보면 299만 엔(약 연 2천400만원) 이하가 60%, 300만~999만 엔이 20%, 1000만 엔 이상이 20% 정도 됩니다. 산촌부모 형태나 가족형태인 단체는 99만 엔 이하가 많고, 기숙사형태는 1천만 엔 이상인 곳이 약 반수(53%)를 차지합니다. 소다테루카이에서 실시하는 기숙사와 산촌부모 병용형태는 500만 엔~999만 엔인 곳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보호자가 1년 동안 부담하는 금액은 연간 49만 엔(약 400만원)이하가 75%에 이릅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반수는 50만 엔~69만 엔입니다. 기숙사와 산촌부모 집 양쪽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80만 엔 이상이 됩니다.
산촌유학생의 보호자 부담액은 생활비와 시설사용료로 충당되고 활동가나 시설을 관리하는 분들의 인건비는 자치단체 지원금이나 시설을 활용해 나오는 수익금으로 충당하는 편입니다. 따라서 자치단체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곳은 아이들의 산촌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돌봐주는 형태로 산촌유학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산촌유학생을 받아들이는 시스템 만들기
산촌유학을 실시하려는 경우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형태는 서로 달라도 다음과 같은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 어떤 목적으로 산촌유학을 행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하고, 참가하는 도시 부모와 아이들, 받아들이는 지역의 부모와 아이들을 비롯해 주민, 학교, 마을에 어떤 장점과 문제점이 있는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자치단체에서 경제적 지원이 없어도 행정 측의 이해를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위원회에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절차를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지역주민에게 산촌유학을 충분히 알리는 것은 물론 다양한 센터 활동이나 도시주민과의 교류활동에 대한 지원조직이 필요합니다. 행정, 의회, 지역주민, 학교 부모회, 운영자 들이 산촌유학추진협의회 조직을 만들거나 연수회 같은 것을 열어 공통의 이해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개인 차원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것으로 실시하지 않으면 장기간 지속적으로 운영해나가기 곤란합니다.
- 학교 교직원의 이해와 협력은 빠질 수 없습니다. 참가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받아들이는 쪽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 산촌유학생을 보내는 아이 부모와의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름방학 등을 활용한 단기 산촌유학을 실시해 산촌유학의 기본적인 생각이나 방향을 이해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산촌유학센터 시설과 운영에 대해
일본에서는 30년 전부터 산촌유학을 해왔습니다만 학교나 지역 활성화 대책으로 산촌유학을 실시한 곳들은 최근 다양한 문제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산촌유학을 '다음 세대를 이끌어 나갈 청소년들의 성장' '농산어촌의 자연이나 환경, 삶을 깊이 이해하는 도시 주민과의 네트워크 넓히기' 라는 시점에서 실천해간다면 거점이 되는 시설(센터)이 필요합니다.
센터 시설은 1년 동안 다녀가는 산촌유학생뿐 아니라 단기 산촌유학생이나 지역주민, 도시주민을 받아들일 수도 있는 다목적 시설로 설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설을 설치할 때 염두에 뒀으면 하는 사항을 정리해봅니다.
- 50명 이상 숙박이 가능할 것
- 학교에서 걸어서 30분 이상 거리가 확보될 것
-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둘러싸인 곳
- 주위에 농가나 밭, 논이 있을 것
- 옛 문화나 생활을 재현할 기능을 갖춘 곳
- 대가족생활이 가능한 큰 방을 둘 것
- 지역 노인들이 마음 편히 찾고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둘 것
시설 운영에서 염두에 뒀으면 하는 것들도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 신토불이를 염두에 둔다.
- 모든 활동은 식사 지도에서 시작
- 생활지도에 힘을 쏟을 것
- 환경을 배려한 시설 운영에 마음을 기울일 것
- 준비에서 정리까지 참가자 전원이 스스로 하기를 기본
- 주역주민을 활용
- 상근활동가 배치
- 단순히 노는 프로그램은 가능한 배제
- 지역주민은 물론 도시주민에게도 열린 센터로 자리매김
학교와 지역 주민의 성과와 고민
산촌유학생을 받아들이는 지역에서 중요한 것은 한 달에 10일에서 15일 정도 산촌유학생을 받아줄 산촌부모의 존재여부입니다. 훌륭한 시설이 있어도 지역주민과의 깊은 교류나 농산촌의 문화를 만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달에 10일 이상 산촌부모 집에서 생활할 필요가 있습니다. 산촌부모는 육아가 끝난 분으로 겸업농가라도 상관없지만 신세를 질 아이가 1차 산업을 접할 수 있는 가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산촌유학생을 받았을 때 산촌부모들이 얻는다는 여겨지는 성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산촌유학생이 성장해서 돌아갔을 때의 보람
- 아는 사람이 늘어서 지역 아이들에게 자극
- 아이들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지역이 밝아짐
- 유학생이나 보호자들의 참가로 지역 행사 활성화
- 산촌유학을 계기로 도시주민과 지속적인 교류가 가능
산촌유학생을 받아서 생기는 고민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 산촌부모 확보의 어려움
- 공적 지원이 적어서 운영이 힘듬
- 유능한 상근활동가를 확보할 수 없음
산촌유학생을 받아들이는 학교로 바람직한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 1학년 20명 이하인 작은 학교가 좋으며 조금 아이들 수가 많더라도 한 학년 2학급 이내일 것
- 자연이 풍부한 곳에 자리 잡은 학교
- 학교 수업에 지역의 자연이나 문화를 받아들인 학교
- 지역주민이 학교 운영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곳
- 산촌유학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따뜻한 분위기가 있는 곳
- 학교 교직원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곳
산촌유학생을 받아들일 때 지자체나 마을, 학교가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성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사람 수가 늘어 학교나 학습이 활성화
- 고정화된 인간관계가 개선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
- 지역의 자연이나 생활의 좋은 점이 잔촌유학을 통해 재인식
- 표현력이 뛰어나고 적극적인 도시 아이들에게서 자극
- 체육이나 클럽활동 등 집단 활동이 가능
산촌유학생을 받아서 생기는 고민은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 산촌유학 관련 일이 너무 많아서 학교 교직원의 부담
- 개성이 강한 아이들을 상대하느라 힘듬
- 고교 진로지도가 부담
- 산촌유학의 본질을 오해한 부모들을 대응하는데 힘듬
한국의 산촌유학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에서 산촌유학을 실시하는 단체는 여럿 있습니다. 자체단체가 시설을 설치해 직원을 배치해 운영하거나 외부단체나 지역주민조직에게 운영을 위탁하거나, 기숙사에서 아이들을 받는 곳, 지역주민이 산촌부모가 되고 학교 교직원과 하나가 되어 받는 곳, 자치단체나 지역주민이 주택을 준비하고 가족단위로 아이들이 있는 가족을 환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나아가 농지나 가축을 준비해 영주 귀농하는 가족을 환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민간 교육단체가 자체단체나 지역주민과 연대해 자연체험활동 시설을 운영하고, 1년 동안의 산촌유학뿐 아니라 방학이나 주말을 활용한 농산어촌교류체험을 실천하고 있는 단체도 있습니다.
전문 활동가를 배치한 일부 시설에서는 청소년자연체험사업을 나라에서 지원받아 지역 아이들을 포함한 집단생활체험, 통학합숙, 자연체험 같은 활동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전해온 시도들도 있고, 몇 명 남지 않은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함께 배울 친구들을 받아 활기 넘치는 학교로 만들려는 절실함으로 분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휘도는 ‘고향’을 지역주민의 안식처인 '학교'를 언제나 지키고 싶어 하는 바람을 가진 분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의 다양한 생각이 ‘산촌유학’으로 오늘날 전국에 퍼져나가 808명의 아이들이 참가해 자연 속에서 뛰어놀고 농산어촌의 생활과 만나고 그 지역 학교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산촌유학 사업은 지역마다 사정이 있고 목적도 달라서 여러 가지 시도방식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산촌유학을 희망하는 아이들이나 부모도 다양한 동기나 목적을 갖습니다.
받는 쪽은 정해진 예산으로 그 지역에 남아있는 자연이나 문화, 인정을 활용해 정성스레 받아들일 시스템을 구축하고 산촌유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산촌유학생을 모집했지만 참가자가 없는 곳들이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자치단체 예산으로 기숙시설을 설치하고 직원을 고용해 운영하지만 참가자가 감소해 공적비용 부담이 커져서 다음해부터는 유학생을 받지 않겠습니다’, ‘행정단위 통폐합으로 산촌유학 예산이 점점 줄어들어 운영이 곤란해졌습니다', ‘행정단위 통폐합으로 학교 통합을 피하기 힘듭니다’라는 문제에 직면한 곳들도 적지 않습니다. 일본의 산촌유학을 둘러싼 환경은 점점 힘들어져갑니다.
한편 자치단체 차원에서 산촌유학 사업을 해보려는 곳도 조금씩 늘었습니다. 해마다 참가 희망자가 많아 산촌유학을 희망하는 아이들 모두를 받을 수 없다는 곳도 있습니다. 행정단위 통폐합을 역으로 산촌유학을 계속해가면서 합병한 자치단체 읍내지역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자연체험이나 집단숙박체험을 실시해 산촌유학사업을 행정구역 내 아이들을 포함한 사회교육사업으로 추진하는 곳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도시사회의 폐해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금은 농산어촌 아이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자연체험이나 공동체체험은 점점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산촌유학을 실천해보려는 한국에서는 그 목적을 작은 학교를 살리는 대책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농산어촌의 자연과 문화를 활용한 인간교육과 지역 간 교류 사업으로 관민이 함께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 | 야먀모토(글쓴이는 소다테루카이 오사카 산촌유학센터 사무국장으로, 30년 동안 일본 산촌유학을 이끌어 왔습니다. 올해 초 우리나라에서 산촌유학에 대해 강연을 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