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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1182 언약의 가정(말 2:10-16)
2024-12-1
부부는 한 분 하나님 앞에서 언약하여 하나가 되었으니 신실하게 서로 사랑합시다.
미혼이라는 말 대신 비혼이라는 말이 더 유행합니다. 결혼하고 자식 낳아 고생하는 것 보다 혼자 편하게 살겠다는 젊은이가 많아 지고 있습니다. 이혼이 점점 많아 집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결혼과 이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지금부터 2,500년쯤 전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때 문제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우상 숭배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 또 하나는 이혼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자세히 가르칩니다. 그 가르치는 가운데 결혼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결혼하지 않은 분이나 혼자된 분에게는 나와 관계없다고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니 함께 배웁시다. 또 우리 자녀를 가르치고 결혼한 성도를 돕기 위해 이렇게 배우는 것이 유익합니다.
부부는 한 분 하나님 앞에서 언약하여 하나가 되었으니 신실하게 서로 사랑합시다.
1. 부부가 배신하는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신하는 죄입니다(10-14절)
2. 부부가 배신하지 말고 결혼관계에 신실합시다(15,16절)
3. 하나이신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결혼에서 신실합시다
우리 성도님들은 부부가 한 분 하나님 앞에서 언약하여 하나가 되어 신실하게 서로 사랑하도록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기 소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단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1절에, “한 아버지, 한 하나님” 15절에 “하나를 만드심”을 두 번말합니다.
그리고 “거짓을 행한다”가 5번 나옵니다. “신실하지 않게 행한다, 배신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언약이 2번 나옵니다. 10절에 “조상들의 언약”, 14절에 “언약의 아내”
부부는 한 분 하나님 앞에서 언약하여 하나가 되어 있으므로 신실하게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1. 부부가 배신하는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신하는 죄입니다(1014절)
1) 한 분 하나님의 언약과 형제 사랑(10절)
이혼과 결혼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한 분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배신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10절이 말합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아버지가 되신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바로에게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새로운 백성으로 창조하여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 모두는 한 분 삼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서로 형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에 형제 자매들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무슨 뜻이라 했지요? 자기 형제에게 배신하는 것이라고 했지요. 여기서 형제는 구체적으로 “아내”를 말합니다. 특별히 그들은 이혼함으로써 아내를 배신했습니다. 형제를 배신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끼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더럽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었고, 또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한 다음에 시내산에서 언약 맺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으니 이제 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라고 하셨습니다. 언약의 말씀 10계명은 1-4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5-10계명은 이웃을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은 하나님과 관계를 말하기 때문에 거룩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과의 언약을 더럽혔습니다. 이혼함으로써 사람과의 언약을 저버린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더럽힌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11절에서 말하는 대로 “유다는 배신했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이혼하는 것 뿐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끼리 서로 신실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과 언약을 배신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신실하게 행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시다.
2) 이방신의 딸과 결혼하여 하나님을 배신한 자를 벡성에서 끊어 내심(11-12절)
11절에서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배신하였고 가증한 일을 행했습니다.
함께 11, 12을 함께 읽읍시다.
11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12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끊어 버리시리라
가증한 일이란 하나님이 미워하는 일을 말합니다. 우상숭배를 하는 일을 하나님은 미워하십니다. 이방신의 딸과 결혼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냥 이방인이 아니라 이방신의 딸과 결혼한 것이 문제입니다. 이방인 여성이라도 룻 처럼 전에 섬기던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이방여인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받아 들이지 않는데도, 그들과 결혼한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할 당시에 하나님의 백성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생활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이방인들은 생활이 넉넉하고 부유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이방여인들과 결혼했습니다. 이방인 아내를 따라서 우상숭배하는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상 숭배를 하지는 않아도 우상 숭배하는 여인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에 대해 11절은 말합니다.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성결은 “성전”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상숭배하는 여인과 살면서 하나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가진 거룩함을 욕되게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전을 욕되게 합니다.
12절에, 우상숭배하는 이방여인과 결혼해 살고 있는 사람은 야곱의 장막으로부터 끊어 버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로부터 잘라내 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방여인 아내와 결혼한 자는 적극적으로 깨어서 일깨우며 결혼하건, 소극적으로 응답하는 식으로 결혼하건 간에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고 하십니다.
-à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가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미워하십니다.
3) 배신한 자들의 제사를 받지 않으심(13-14절)
13, 14절을 읽읍시다.
13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즉, 배신하였도다)
이방 신을 섬기는 여인과 결혼한 자, 또 이혼한 자들이 그것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배신한 일을 계속 하면서 계속 성전에서 와서 제물을 바쳤습니다. 13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봉헌물(제물)을 돌아 보지도 않으십니다. 그 제물을 기꺼이 받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제물을 받지 않으시는 것을 어떻게 나타내셨는지 모르지만 분명히 그들이 알 수 있는 어떤 표시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렸습니다. 그냥 울면서 따지듯이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14절에 “어찌 됨이니이까?” “왜 그러십니까? 왜 우리 제사를 받지 않으십니까?”하고 따지듯이 말했습니다. 마치 가인이 하나님께서 자기 제사를 받지 않으시니까 화가 났던 것과 같습니다.
그들의 질문에 하나님께서 친절하게 답해 주십니다. 그들이 아내를 배신했기 때문이라고 답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아내의 소중함을 설명해 줍니다.
첫째, 14, 15절에 두 번이나 “어려서 맞이한 아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젊어서 맞이한 아내”라고 합니다. 젊어서 혼인하여 지금까지 함께 고생하며 살아 온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합니다. 아내가 젊고 예쁠 때는 사랑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외적인 아름다움이 사라지면 그 아내를 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고난 가운데 고생하며 함께 살아 온 아내는 육체적 아름다움이 사라 져도 계속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 “네 짝”이라고 합니다. “짝”이라는 이 말은 남자들 친구들에게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Ps. 119:63; Prov. 28:24; Song 1:7; 8:13; Isa. 1:23; Ezek. 37:16, av, rv; Dan. 2:17).. 그런데 여기서만 아내에게 사용합니다. 아내는 남편과 동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함께 이루어 가는 동지입니다. 그런 아내를 버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부름에서 벗어 나는 것입니다.
셋째, “서약한 아내”라고 합니다. 즉”언약의 아내”입니다. 14절에서 “너와 …네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다.” 구약 결혼 의식을 우리는 자세히 모르지만 하나님의 백성의 결혼에 하나님이 증인이십니다. 그래서 “서약한 아내”라고 합니다. “언약의 아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결혼할 때 그들 사이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두 사람이 서약할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약하였습니다. 이혼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는 일입니다. 아내를 배신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2. 부부가 배신하지 말고 결혼관계에 신실합시다(15,16절)
하나님은 아내를 배신하지 말고 결혼관계에 신실하라고 하십니다. 15, 16절 읽겠습니다.
15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부부가 배신하지 말고 결혼 관계에 신실해야 하는 이유를 15절에서 하나님의 창조하심에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있으셔서 아담 한 사람에게 여러 명의 아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남자를 위해 오직 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 이유는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경건한 자손”은 “하나님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하나님을 닮은 자가 번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어서 결혼한 아내를 배신하지 말라고 합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자기 영혼을 잘 지켜서 아내에게 신실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래 사람을 만드신 뜻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 결혼에 신실하여 하나님을 닮은 후손을 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 이혼입니다.
이혼하는 사람은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입니다. 원문대로 하면 “학대로 옷을 가리는 자”입니다. 옷 위에 학대가 있습니다. 옷 위에 폭력이 있습니다. 폭력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폭력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혼은 폭력으로 한 사람을 집으로부터 떠나 보내는 일입니다.
3. 하나이신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결혼에서 신실하자.
1) 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
오늘 본문에는 하나라는 말이 네 번 나옵니다. 1절에 한 아버지와 한 하나님, 15절에 하나의 아내에 대해 하나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같은 하나의 하나님만 참 신으로 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로 하나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성도는 서로의 관계에서 신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배신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형제들을 배신하여 조상과 맺은 언약을 더럽혔습니다(10절). 하나님의 백성이 배신하여 가증한 일을 성전에서 행했습니다(11절). 그들은 젊어서 취한 아내와 이혼함으로써 그들을 배신했습니다(14절). 하나님께서는 자기 영혼을 지켜 배신하지 말라(15, 16절)고 말씀했습니다. 그들이 이방신의 여인과 결혼하여 우상을 섬기면서 성전을 더럽힌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젊어서 취한 언약의 아내와 이혼하는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는 것입니다.
2) 불신자와 결혼을 금하심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가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미워하십니다. 고린도후서 6:14 (신약 291)는 말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멍에를 메는 것은 성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뜻합니다(레위기 19:19 “네 가축을 다른 종류 와 교미시키지(헤테로-지고) 말며”). 또 고린도전서 7:39(신약 271)는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과만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거룩한 성전인 몸을 더럽히는 일입니다. 불신자와 결혼하면 불신자의 영향으로 신자의 믿음 생활에 방해가 됩니다. 더구나 경건한 자녀를 얻으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어굿납니다. 자신을 위험에 던지면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3) 이혼을 금하심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십니다. 마태복음 19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4-6절(신약 31쪽)입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그리고 설명하셨습니다.
9절에서 예수님께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이렇게 성경은 배우자 중 한 편이 음행을 한 경우에 이혼을 허락합니다(마 5:32, 19:9). 혹은 불신자인 배우자가 헤어지기를 계속 고집하면 이혼할 수 있습니다 (고전 7:12-15). 그러나 그 외에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한쪽이 잘못한 경우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받아 주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15, 16절에 두 번이나 “네 심령을 삼가 지켜라” 즉 영혼을 지키고 배신하지 말라고 합니다. 결혼과 이혼은 하나님 앞에 자기 영혼을 지키는 문제입니다.
4) 부부가 신실하게 언약의 가정을 이루기
언약의 가정의 결혼생활은 에베소서 5장에서 잘 가르칩니다. 5:21(신약 315) 함께 찾아 봅시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는 각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남편과 아내의 중간에 계셔서 두 사람 붙잡고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하나되는 것과는 다른 영적 차원이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믿는 그리스도께서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들고 있습니다.
부부는 각각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서로에게 복종합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합니다. 주 예수님께 복종하듯이 남편에게 복종합니다. 남편도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아내를 사랑합니다. 아내를 사랑해도 되고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함으로 아내에게 복종합니다.
남편과 아내 관계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연결시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구원하듯이, 남편이 아내에게 구원의 은혜를 전달하는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22은 말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주심”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셔서 죽기까지 사랑한 것을 말합니다. 남편은 그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머리”라는 말을 들으면 지배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고대시대에는 “머리”가 온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는 것도 다스리고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합니다.
에베소서 5:26-27절에서 말합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런 교회로 세우사” 그리스도께서 교회인 우리를 깨끗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남편을 통해 아내에게 이런 은혜를 공급합니다.
첫째, 남편은 아내를 깨끗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며 아내의 죄를 용서하고 깨끗하게 합니다. 죄용서의 은혜를 아내에게 공급합니다. 아내를 무조건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에 앞서야 합니다. 땀흘려 깨끗한 물질을 공급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성적인 깨끗함을 공급해야 합니다. 긍정적이고 밝은 정서를 아내에게 공급해야 합니다.
둘째, 남편은 말씀을 통해 아내를 거룩하게 만들어 갑니다. 딤전 2:8은 남자들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합니다. 가정에서 남편이 말씀을 읽고 가르치고 기도하면서 아내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돕습니다.
셋째, 남편은 아내가 영광스럽게 변화되도록 돕습니다. 아내를 계속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할 때, 아내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모습으로 점점 변화되어 갑니다.
이런 남편에게 아내는 복종해야 합니다. 복종할 때 남편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가 옵니다. 남편이 부족해도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냥 수동적인 복종이 아니라 적극적인 복종을 해야 합니다. 창세기에서 아내에 대해 “남편을 돕는 배필”(창 2:18,20)이라고 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전쟁에서 우리 편이 질 때에 도와주러 오는 군대에 대해 쓴 말입니다. 또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해 쓰는 표현입니다. 시편 70:5(구약 852)는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요 건지는 자시니, 여호와여” 여기 돕는 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도우시듯이, 아내가 남편을 돕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남편을 도우실 때 아내를 통해 도와 주십니다. “주님 도와 주소서” 이렇게 남편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 여기 네 아내가 있다. 네 아내가 나를 대신해서 너를 돕는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필요한 도움을 아내를 통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구원의 은혜를 공급하기 위해 아내를 사랑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공급하기 위해 순종해야 합니다. 부부는 두 사람 다 배우자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하는 일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부가 언약에 신실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삼위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고,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부부를 서로 언약관계에 있게 합니다.
5) 자녀를 언약의 백성으로 양육하기
부부가 먼저 하나님의 언약관계에서 서로 사랑하고 그리스도께 복종할 때 자녀들도 언약의 백성으로 양육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정결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하듯이, 부부는 함께 힘을 합쳐 자녀를 깨끗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만들어 갑니다.
에베소서 6:4(신약 316)는 말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주님의 교훈과 훈계는 바로 말씀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가정에서 가급적 매일 아이들과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보통 일상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죄용서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라고 가르치시면서 우리와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리스도인 부부도 서로와 언약관계에 있습니다. 삼위 일체 한 분 하나님을 같이 섬기기 때문에 부부도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불신자와 결혼함으로써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이혼함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하나됨을 배신하지 맙시다. 오히려 우리 모두의 구원주 되신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함으로써 부부가 피차 복종함으로써 하나됨을 지켜 갑시다. 쓸데 없는 자존심은 내려 놓읍시다. 아니 자존심을 굽히면서까지 서로 복종합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은혜를 서로에게 공급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서로에게 공급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