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고장 강릉(江陵)
4. 성산면(城山面)<1>
강릉시 성산면(城山面)은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 산간지방으로 평창군 도암면(道巖面)과 경계에 대관령(大關嶺)이 있으며, 서쪽으로 선자령(仙子嶺 1,157m), 제왕산(帝王山 839m), 대궁산(大弓山 1,008m)이 막아서 있고, 남쪽으로는 나지막한 오봉산(五峰山 542m)도 있다.
성산면은 산골짜기 오지이기는 하지만 영동고속도로와 서울-강릉간 KTX 열차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교통의 요지로 예전에는 걸어서 넘어 다니던 작은 오솔길인 ‘대관령 옛길’도 아직 남아있다.
성산면의 행정구역을 보면 구산리(邱山里), 관음리(觀音里), 금산리(金山里), 위촌리(渭村里), 송암리(松岩里), 보광리(普光里), 어흘리(於屹里), 오봉리(五峰里), 산북리(山北里) 등 9개의 리(里)가 있고, 인구는 약 3,400명 정도이다.
보현사(普賢寺) / 석조 아미타삼존불 좌상 / 복장(腹藏)유물 / 낭원대사 사리탑 / 낭원대사오진탑비(悟眞塔碑)
선자령(仙子嶺) 밑 만월산(滿月山) 기슭의 보광리(普光里)에 있는 보현사(普賢寺)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古刹)이다. 보현사는 신라 진덕여왕(眞德女王 4년, AD 650년) 때 자장율사(慈裝律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가 고려 초 낭원대사(朗圓大師)가 중창하여 지장선원(地藏禪院)이라 불렸는데 조선 후기에 현 건물이 지어지면서 보현사(普賢寺)가 되었다. 보현사 대웅전에는 석조 아미타삼존불 좌상(石造阿彌陀三尊佛坐像)이 모셔져 있는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7호로 지정되었다.
이 삼존불(三尊佛)은 가운데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시고 양쪽으로 협시보살(挾侍菩薩)인 관음보살(觀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있는데 후일 가슴속에 간직되었던 복장유물(腹藏遺物)의 기록으로 보아 1691년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절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산속에는 낭원대사(朗圓大師)의 사리탑인 낭원대사오진탑(朗圓大師悟眞塔, 보물 제191호)과 낭원대사오진탑비(朗圓大師悟眞塔碑, 보물 제192호)가 있다. 탑비(塔碑)에는 낭원대사의 출생부터 입적(入寂)까지, 그리고 범일국사(梵日國師)의 제자이며 신라의 국사(國師)로 모셔진 내력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낭원대사는 이곳 보현사에서 96세를 일기로 입적(入寂)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대공(大公) 산성 / 임경당(臨鏡堂) / 오봉서원(五峯書院) / 관음리 오층석탑
대궁산(大弓山) 인근에는 높이 2m, 둘레 4km에 이르는 대공산성(大公山城, 지방기념물 제28호)이 있는데 고증은 되지 않았지만, 백제의 온조왕이나 발해의 왕이 축조했다고 알려진 산성(山城)이다.
오봉리(五峰里)에 있는 오봉서원(五峰書院)은 유형문화재 45호로, 금산리(金山里)의 임경당(臨鏡堂)은 조선(朝鮮)시대의 거유(巨儒) 임경당(臨鏡堂) 김열(金說)의 후손들이 조상의 덕을 기리고자 지은 별당인데 임경당(臨鏡堂)은 유형문화재 46호, 상임경당(上臨鏡堂)은 55호로 지정되었다.
관음리(觀音里)에는 산기슭에 관음리오층석탑(觀音里五層石塔, 유형문화재 112호)이 있는데 주변에는 주춧돌 흔적만 있지만 고려 시대 사찰 안국사(安國寺) 절터로 밝혀졌다고 한다.
대관령 밑 산속 작은 마을 어흘리(於屹里)에 있는 대관령박물관(大關嶺博物館)에는 청동기시대의 유물(遺物) 등 이 지방에서 출토된 1,000여 점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밖에도 강릉 일원에는 유물유적은 물론, 보물과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수도 없이 많다.
금산(金山)은 강릉김씨 집성촌으로, 조선 중종 때 김광헌(金光軒)이 세운 마을이라 하여 건금리(建金里)라 하였는데 한말(韓末), 주변 마을과 합하여 금산(金山)이 되었다.
우리 어머니는 이곳을 ‘겡금’이라고 불렀는데 바로 건금(建金)을 이르는 강릉말(사투리)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