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천사
권혁웅
1
입국심사장 앞에서 줄을 서면 지은 죄 없이도
조마조마하다
안 받아들여지면 어쩌지?
심지어 입국인데도
내가 태어날 때도 까다로웠을 것이다
넌 아이우에오밖에 할 줄 모르니 옆 나라로 가라
넌 조사나 어미를 쓰는 데 서투르니 반대편 나라로 가라
고 하면 어쩌지?
다행히 태어나서는 모두 한목소리로 운다
옆에서 울면 따라 운다 한목소리로 묻어간다
2
세상에 서른여섯 명의 의인이 있으니 이들을 라미드 우프닉스(Lamed Wufniks)라 부른다 이들은 늘 신 앞에서 인간과 세상을 변호하고 있다 신이 불로도 물로도 세상을 다시 심판하지 않는 것은 이들 덕분이다 그러나 자신이 서른여섯 명 가운데 하나라는 걸 안 순간 이들은 죽고, 이들을 대신할 다른 이들이 어디선가 태어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천사가 아니다
천사였다고 해도 그 말을 하는 순간
급사할 것이다
3
어깨뼈(scapula)는 어깨 부위에서 빗장뼈와 함께 위팔을 몸통뼈대에 연결한다 등 쪽에 나 있어 날개뼈라고도 부른다 그렇다, 그것은 사람에게 한때 날개가 돋았다는 걸 증명하는 흔적기관이다 타락천사는 인간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지상으로 떨어질 때
그에게도 초당 9.8m/sec의 가속도가 붙었을 것이다
4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 가브리엘의 말투는
의사의 그것이 아니었을까
축하합니다, 8주 되었습니다
뱃속의 아기가 아주 씩씩하네요
5
엔제리너스(Angelinus) 매장에는 노키즈 존이 없다
영등포점에 잠깐 있었는데 다시 없어졌다
우리가 사랑하는 천사들은 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니고
커피와 코코아를 엎지르고
화상을 입고 운다
조금 더 크면 악플을 달 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