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개(Sanghavarman)이 번역한 '위역(魏譯)'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곳에는 ""그리하여 선한 마음(善心)이 생겨난다. 선한 마음이란, 참(慚)과 괴(愧)라는 두 가지 법과, 무탐(無貪) 등의 세 가지 선근(善根)을 선의 자성(본질)으로 삼는다. 이것들과 상응하여 함께 일어나는 모든 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을 선한 마음이라고 부른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선한 마음은 선(善)이라는 본질적 성품을 지니며, '참(hri, 내면의 수치심이나 양심)'와 '괴(apatrapya, 타인에 대한 배려나 비난에 대한 두려움)'라는 두 가지 심소(心所)와 무탐(無貪) 등의 세 가지 선근(善根)을 포함합니다. 이들과 함께 일어나는 모든 마음의 상태와 그에 수반되는 심소들을 통틀어 '선한 마음'이라 부릅니다.
이 구절은 '참'과 '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참', 즉 내면의 수치심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심의 자각과 같은 것입니다. 양심적인 사람은 불선(不善)한 행위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행동은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능력은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참'라는 심소입니다. '괴', 즉 타인에 대한 배려는 세간의 비난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불선한 행동을 했을 때 타인으로부터 받게 되는 비판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여론의 제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을 두려워하여 악행을 삼갑니다. 이처럼 '참'과 '괴'는 각각 내면과 외면에서 비롯되지만, 모두 선하고 유익한 상태입니다. 반대로 '참'와 '괴'가 결여된 상태는 불선한 상태가 됩니다. '참'이 없다는 것은 양심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은 양심을 무시하고 감히 온갖 악행을 저지릅니다. 그들은 세간의 비판이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관심하며, 오히려 자신의 대담함을 영웅적 기질이나 용기 있는 정신의 표상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존재하며, 그 수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한쪽은 긍정적인 모범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고, 다른 한쪽은 부정적인 본보기를 통해 우리를 일깨우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악한 생각을 품지 않고 악한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맑은 양심을 지닌다면,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타인과 다투지 않고 세상에 그 무엇도 구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것은 "일을 하나 더 만들기보다는 하나를 줄이는 것이 낫고, 아예 아무 일도 없는 것이 더 낫다"는 옛말을 몸소 실천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인연의 흐름을 억지로 붙잡으려 하기보다는 그 흐름에 순응하며 따르는 것(수연·隨緣)을 가르칩니다.
출처: 『2012년 무량수경(無量壽經) 강설』 (제364회) | 2013년 7월 18일 | 홍콩 불교교육재단 | 파일 번호: 02-040-0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