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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요즘 코로나가 무서울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데, 정말 조심해야겠습니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생강의 효능만 10가지가 넘는답니다. 미국의 건강전문지 ‘웹엠디’에 소개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항균 2.구강건강 3.메스꺼움완화 4.근육통증완화 5.관절염완화 6.암세포성장억제 7.혈당낮춤 8.생리통완화 9.콜레스테롤 낮춤 10.소화불량완화
저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제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이미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하는 경리였고, 본처인 우리 엄마를 언니라고 불렀습니다. 친할머니와 큰고모는 엄마를 찾아와 ‘아들도 아닌데 낳지 마라. 아기는 다시 가지면 된다.’고 헛소리를 하다가 찬물을 뒤집어쓴 채 쫓겨났다고 합니다.
입맛이 없어진 엄마는 족발과 찐빵이 먹고 싶어서 집 앞에 있는 시장을 누볐답니다. 진통이 오자, 미리 싸놓은 짐을 들고 택시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홀로 저를 낳았습니다. 제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산부인과 옆 여관에 그 여자를 데려다 놓고 저를 보러왔습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열 개씩 다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선 아버지는, 다시 우리를 찾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엄마는 결국 이혼했습니다.
제가 4살 무렵, 아버지와 재혼한 그 여자가 엄마를 찾아왔습니다. 딸 하나를 낳고 아들을 임신 중이던 여자는 ‘기저귀 살 돈도 없다’면서 하소연했습니다. 그 말에, 엄마는 분유와 기저귀를 사다 주었습니다. 매일 돈을 버느라 바쁜 엄마는 저를 외할머니께 맡겼습니다. 외할머니는 아침마다 유치원 가는 제게 당부했습니다. “어디 가서 아비 없단 소리 듣지 않게 해야 한다.”
제 나이 27세 때, 한 번도 뵌 적 없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딸인데 장례식에는 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큰고모의 전화를 받고, 엄마와 함께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친할머니는 저를 끌어안고 통곡했습니다.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저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아이고, 내 새끼야!”할 때는 웃음이 새어나왔습니다. 10년 전에 이혼했다는 그 여자는 오지 않고, 그의 자식인 남매만 한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둘째고모부가 남매에게 저를 소개할 말을 찾지 못해서 헤매자, 저는 직접 입을 열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 엄마는 본처, 그리고 나는 본처의 자식’이라고. 이 한마디로, 저는 아버지 없이 자란 ‘평생의 한’을 풀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무덤에 성묘를 갔습니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습니다. ‘내게 무슨 아버지가 있냐?’는 말에, 엄마는 ‘떠난 사람에게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마라’고 했습니다. ‘덕분에 네가 존재하지 않냐?’며, ‘엄마에게 너를 주고 간 고마운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엄마의 뒤에 서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아빠!’하고 불러봤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어른이 된 듯했습니다.(출처; 좋은생각, 오륜영/경기 가평)
이 세상에는 ‘정말 기막히고 슬픈 사연을 가진 인생들’이 참 많습니다. 대부분은 남자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요즘에 와서는, 남녀 할 것 없이 ‘가엾은 인생’을 만들어내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낳아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낳기만 하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적잖다고 하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물맷돌)
[자기 아버지에게 “왜 나를 이 모양으로 낳았느냐?”고 항의하는 자식과, 자기 어머니에게 “왜 나를 낳았느냐?”고 원망하는 자식은 화가 있으리라(사45: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마19:9,쉬운성경)]
‘죽은 자’를 위한 나라
샬롬! 지난밤도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오늘도 아무 탈이 없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뉴스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지난 11일 중국 광저우시의 한 박람회장에서 코로나 의심환자 1명이 나왔다는 이유로, 관람객 5만 명을 건물에 가두고 PCR검사를 했답니다. 사람들은 3시간 30분 만에 검사를 다 마치고 풀려났는데, 모두 음성이었답니다. 참 대단한 국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국토종단, 땅끝마을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시작부터 느낀 건데, 국도변엔 무덤이 참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마치 공동묘지를 누비고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 땅에 무덤이 많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어도 이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예전에 세계여행을 함께 다녔던 영국인 친구와 시골길을 걷다가 그 친구가 놀라서 하던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저 양지바른 곳곳에 무덤들 좀 봐! 한국은 죽은 자를 위한 나라인 것 같아!”
그때 제 눈에는 그저 무덤도 자연의 일부로 보였는지, 아니면 많은 무덤이 익숙해서였는지, 그 친구가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분이 약간 언짢아져서 “너희 나라 사람들은 안 죽니?”라고 말했는데, 세계일주를 끝내고 우리나라를 돌아보니, 좀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 친구와 똑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많아도 정말 너무 많구나!”
국토종단을 끝내고 좀 더 알아보니, ‘죽은 자를 위한 나라’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묘지는 약 2천만 개. 국토의 1%이상이 묘지이고, 해마다 여의도만한 면적이 무덤으로 바뀌는데, 죽은 이를 위한 묘지부지가 생산을 위한 공장부지보다 훨씬 더 넓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산 사람의 생활공간이 1인당 4.3평인데 비하여, 묘지는 평균 15평이라니, 그야말로 ‘죽은 자를 위한 나라’라는 말을 들어도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직접 걸어보니, 이 묘지문제의 심각성을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된 것은 물론이고, 국토의 합리적인 이용이라는 점에서도 우리나라의 앞날이 걱정됩니다. 간척이나 개간을 해서 ‘없던 땅을 만들어’ 물려주지는 못할망정, 내 몸 하나 누워있자고 그 금쪽같은 15평을 ‘영원히’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도저히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출처;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오지여행가 한비야)
한비야 씨가 이 글을 쓴 것은 1999년입니다. 무려 20여 년 전에 쓴 글입니다. 그 후,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엄청나게 바뀌었습니다. 이제 매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 화장(火葬)해서 납골당에 모시고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도 화장해서 공원묘지에 모셨는데, 묘 하나에 여러 사람이 함께 묻힐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물맷돌)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것이 죄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시 살리신다는 것이 그렇게도 믿을 수 없는 일입니까?(행26:8,현대어) 죄 때문에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처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넘치는 은총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엡2:5,현대어)]
대체 불가능한 ‘친구’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오늘도 별 일이 없길 기원하면서 ‘아침편지’를 띄웁니다. 마늘껍질 섭취방법엔 마늘껍질 차, 마늘껍질 육수, 마늘껍질 가루, 마늘껍질 담금주가 있답니다. 마늘껍질 차는, 마늘껍질을 깨끗이 씻어 말린 후, 프라이팬에 마늘껍질의 수분이 날아갈 만큼 충분히 볶아준 다음, 그 마늘껍질을 물 1L당 약 15g정도의 비율로 우려내면 된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하고만 관계를 맺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어떤 식으로든 최대한 많은 관계를 맺어놓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씨앗은 1년 후에 꽃을 피울 수도 있고, 10년 후에 꽃을 피울 수도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도움을 주고받을 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단, 관계의 열매만 얻으려는 것은 상당히 미성숙한 태도인 고로 주의해야 합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에게 계속 우호적일 수는 없습니다. 취업이나 경력을 쌓는데 도움이 되는 친구에게만 중점을 두면, ‘공감 배려 이해’라는 정서적인 자원을 놓칠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정서적인 자원입니다. 취업정보를 주고받는 대상은 꼭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되는 ‘대체 가능한 인연’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면접에 떨어졌을 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주는 친구는 ‘대체 불가능한 인연’, 다시 말해서 ‘꼭 필요한 친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프레너미(Frienemy)’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친구(Friend)’와 ‘원수(Enemy,敵)’의 합성어로, 현대사회에서 맺어지는 친구의 본질을 잘 담고 있는 말입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으면 친구지만, 그것이 어긋나면 바로 돌아서는 우정이랄까, ‘맑게 갠 날에만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50%나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절반은 ‘가짜 우정’이라고 하지만, 저는 이러한 현상을 꼭 비극적으로만 보고 싶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어떻게 ‘만나는 모든 사람’과 ‘진심을 나누는 친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스치는 인연’이 있어야 ‘머무는 인연’한테도 더 잘할 수 있는 법입니다. 지금은 열심히 관계를 연습해야 할 때입니다.(출처;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정신과전문의 유은정 박사)
도움이 된다고 해서 친구이고, 도움이 안 된다고 해서 친구명단에서 빼버릴 수는 없을 겁니다. 도움이 되던지 안 되던지, 친구는 친구이겠지요. 그러나 진정 참된 친구라면, 친구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자신의 능력 안에서 적극 도와줄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아무튼, ‘스치는 인연’도 필요하겠고, ‘머무는 인연’도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아니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살다보면 이런 인연 저런 인연을 수없이 맺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물맷돌)
[사랑이 언제나 끊어지지 않는 것이 친구이고, 고난을 함께 나누도록 태어난 것이 혈육이다.(잠17:17,표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너희가 내 말을 지키면 너희는 내 친구다.(요15:13-14,현대어)]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불의(不義) 부정(不正)보다 더 위험하다!
샬롬! 지난밤 편히 잘 쉬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마늘보다 마늘껍질에 더 좋은 성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삼보다 더 좋다’는 겁니다. ‘마늘껍질에는 항암효과, 심혈관질환 예방, 내장지방 제거, 노화예방에도 좋은 효능이 있다’고 하는데, 내일부터는 그 섭취방법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법조인으로 일한 지 올해로 34년차입니다. 법과 관련한 직업 특성상, 불의와 부정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단법인 ‘크레도(신앙고백, 사도신경의 뜻이 있음)’는 성경적인 용어 대신에 세상의 보편적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지(知), 정(情), 의(意)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세상의 거센 흐름 앞에서 고민이 많지만, 주님께서 때마다 재정과 사람을 적절히 채우시는 것을 목격하곤 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불의와 부정에 대처하기 위하여 기독교인에게 필요한 자세는 ‘순종’과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자세만이 ‘나’ 그리고 ‘세상’에 스며든 ‘불의 부정’과 맞설 수 있습니다. ‘순종’은, 저의 무거운 멍에를 예수님의 가벼운 멍에로 바꾸고, 모든 두려움을 없애는 결단입니다. 특히, 100% 순종이 중요합니다. 마지막 하나까지 내려놓는 자세, 내 삶의 주권을 통째로 넘겨주는 ‘백기투항’말입니다.
조금 살아보니, 인생은 능동태(스스로)가 아닌 수동태(따라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불의 부정의 구조(틀) 속에서, 그리고 죄로 인한 절망 속에서도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율법과 은혜 사이에서 결국은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듯이, 해답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법의 뿌리도 사랑에 두어야 합니다. 사랑이 법의 완성입니다.
제 경험상 분명한 것은,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세’는 ‘불의하고 부정한 세상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간혹, 본인(그 자신)이 불의와 부정 속에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타인을 정죄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설령 본인이 정의롭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처럼, ‘사랑 없는 정의’는 폭력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부정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대신, ‘공동체(교회)도 이에 대한 일단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랑의 십자가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출처; 빛과 소금, 이은경/법무법인 ‘산지’대표 변호사, 사단법인 ‘크레도’ 대표이사)
아시다시피, 인간의 죄에 대한 최종 심판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신도 동일한 잘못을 행하면서 누구를 심판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최근, 저는 ‘저에 대하여 모함한 사람들’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분노하고 있던 중, ‘그 누군가는 나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더 이상 ‘보복과 정죄’가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져봅니다.(물맷돌)
[그러므로 악인들이 심판 날에 무사하지 못하고, 죄인들이 의로운 자들 가운데 서지 못할 것이다. 의로운 사람의 길은 여호와께서 지키시나, 악인의 길은 파멸에 이를 것이다.(시1:5-6,현대인) 혹시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일을 저지를 때는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지만, 여러분이 저지를 때는 눈감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롬2:3,현대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 것은 핫팩처럼 따뜻한 사랑이었습니다.
샬롬! 어저께 주일은 어떻게 잘 보내셨습니까? 제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담임목사님과 교인 한 분이 양성으로 판명되는 바람에 온라인으로만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가 그닥 튼튼치 못한 상태라서 ‘코로나 확산이 잦아들 때까지 온라인예배를 드리겠노라’고 연락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제가 목사님 대신 예배를 인도해야 했습니다. 아무튼, 조심 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보세요. 저기, 아파트가 아니고 작은 주택인데…… 혹시 여기도 청소해줄 수 있나요?” 목소리가 쌩쌩한 할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칠순이 다 되어서야 처음으로 집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오래된 집이라, 오염이 심하다’면서 조심스레 청소를 부탁했습니다. 자신이 없었지만, ‘처음으로 구입한 집으로 이사한다.’는 사연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추운겨울이었습니다. 저는 직원들과 함께 할아버지 댁으로 향했습니다. 상태는 예상보다 좋지 않았습니다. 지저분한 것을 떠나, 부엌 상부 장이 내려앉아 ‘과연 이런 데서 요리는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습니다. 수리가 꼭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제 손에 핫팩을 쥐어주시며 말씀했습니다. “가스연결도 못했습니다. 이거라도 주머니에 넣고 청소하면 덜 추울 겁니다.” 상냥하면서 미안함이 묻어나는 말투였습니다.
‘이런 추운겨울에 가스연결은 기본인데, 이 일을 어쩐다.’ 쌩쌩 부는 칼바람에 울고 싶었지만, 제법 따뜻한 핫 팩 덕분에 견딜 만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들의 허리가 좋지 않아 청소를 못한다.’면서, 우리가 일하는 내내 ‘너무 더러운데 불러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어렵사리 청소를 마치고, 아기 같은 미소를 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손을 잡고 집안으로 들어온 순간, 불편했던 저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살 수도 없는 집을 샀다고, 우리 영감 많이 혼냈는데, 청소하고 나니 이렇게 예뻐졌네요.”
할아버지는 평생 고생만 했답니다. 아내가 젊은 날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고, ‘함께 노점장사를 하느라 이렇게 나이 든 줄도 몰랐다’고, 노부부는 그간의 고생을 손녀딸에게 전하듯, 집을 산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껄껄 웃었습니다. 생애 첫 집을 만끽하는 어르신들의 웃음을 보니, 저도 무척 행복했습니다. “할아버지, 그런데 여기저기 보수할 곳이 많은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요. 이제 내 집이니, 하나하나 고쳐가면서 살면 돼요.”
퇴근하는 우리 손을 꼭 잡고 “아유, 정말 고마워요.”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할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출처; 좋은생각, 박혜경/빠꼬미 청소 대표)
글쓴이는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 것은 고급주택도, 호화로운 인테리어도 아니었습니다. 미소와 도와주는 마음, 핫팩처럼 따뜻한 사랑이었습니다.’라고 글을 맺었습니다. 위의 글을 읽다보니, 다음 찬송이 생각났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렇습니다. 비록 삼간누옥일지라도 주님과 함께 하는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요?(물맷돌)
[전능하신 여호와여, 주의 제단 곁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습니다. 주의 성전에 살면서 항상 주께 찬송하는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시84:3-4) 우리는 땅에 있는 우리 육체의 집이 무너지면,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의 영원한 집을 소유하게 될 것을 압니다.(고후5:1)]
제 인생의 주인은 바로 저자신입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3월의 두 번째 주말인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잘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코로나 이후, 가장 많이 팔린 약품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타이레놀’일 겁니다. 그런데, 이 타이레놀이 ‘정서적 고통(마음이 힘들 때)을 줄여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심리적인 압박감’을 줄여줄 수 있다고 합니다.
저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준 독자가 있었습니다. ‘한비야 씨 책에는 좌절하는 모습이 한 번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굉장히 운이 좋거나 좌절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사람인가 봅니다. 저는 지금 좌절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분 말대로, 저는 운이 좋았는지도 모릅니다. 별로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제까지 ‘좌절’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 만한 사건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하루아침에 동네제일의 부잣집 딸이 끼니걱정을 하게 된 것, 누구도 합격을 의심치 않았던 대학입시에 보기좋게 낙방했던 것, 돈 때문에 곧바로 진학하지 못한 것, 대학을 가지 않고 5년 간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으로 지냈던 시절, 미국유학초기 위염에 걸려 몸은 아프고 공부는 진전이 없고 동료들에게 이유 없이 왕따를 당했던 일. 힘들기는 했지만, 이런 것들이 저를 좌절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여고시절, 친구들이 모두 부잣집 딸들이었지만, 저는 친구들에게 “우리 집에 놀러올 땐 각자 먹을 라면 가지고 와야 돼!”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떨어진 것이 물론 속상하고 분했지만, 기회는 또 있고, ‘설사 대학에 영영 못 간다고 한들, 그게 무슨 하늘이 무너질 만큼 큰일이냐?’고 생각했습니다. ‘입학금이 문제라면, 스스로 마련할 수 있을 때까지 맘만 변치 않고 기다리면 되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고졸 민간인’으로서 한창 불붙은 ‘민주화운동’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해서 방관하고 있는 저 자신을 볼 땐 몹시 힘들었으나, 그때도 좌절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후에도 지금처럼 제가 운이 좋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제 인생에도 제 몫의 어려움과 절망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때가 온다 해도, 쉽사리 좌절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음처럼 생각할 게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이거, 꽤 힘이 드네. 그러나 이런 것쯤에 무릎 꿇을 수는 없지.’ 좌절이란 무엇입니까? ‘꺾여 주저앉는다.’는 말인데, 누구에게 꺾인다는 것이고, 무엇이 저를 주저앉힌다는 말입니까? 제 인생의 주인은 바로 저자신인데 말입니다.(출처;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오지 여행가 한비야)
제가 요즘에 와서 부쩍 물건을 잘 놓칩니다. 조심한다고 하지만, 저도 모르게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놓치곤 합니다. 아내도 그런 일이 자주 있는 가 봅니다. 어제께는, 냉장고에 음식그릇을 넣다가 그만 떨어뜨렸다는 겁니다. 꽤나 낙심이 되었던지, 출근하면서 “어쩌면 좋으냐?”고 저에게 푸념을 늘어놨습니다. 그러는 아내가 퍽 안쓰러웠으나, 저로서는 “나이 들면 다 그런 거지 뭐!”라고 할 뿐, 마땅히 해줄 말이 달리 없었습니다.(물맷돌)
[우리가 모든 일에 괴로움을 당해도 꺾이지 않으며, 난처한 일을 당해도 실망하지 않고, 핍박을 받아도 버림을 당하지 않으며, 맞아서 쓰러져도 죽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항상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소 체험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고후4:8-10,현대인)]
‘오, 내 영혼아! 어찌하여 슬퍼하는가?’
샬롬! 지난밤 편히 잘 쉬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나태주 시인의 시(詩) 한편을 소개함으로써 ‘아침편지’를 열어갈까 합니다. 제목은 ‘걱정’입니다. ‘만날 때마다 / 몸이 아픈 건 아니냐고 / 얼굴이 틀렸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고 // 만날 때마다 / 무슨 좋은 일 있냐고 /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 누가 정말 나를 / 생각해주는 사람일까?(출처; 샘터, 나태주)’
우울증이 잘 생기는 특별한 성격을 하나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는 짚고 넘어가야겠기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울 증상으로 내원한 분들에게 ‘성격이 어떠하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격 좋지요. 남한테 잘하고요. 아주 정확하고 사람 좋다는 평가를 듣습니다.” “싫은 소리 하는 것도 싫어하고, 싫은 소리 듣는 것도 싫어하고, 딱 그렇습니다.” “누가 뭐라고 한마디 하면, 오래오래 곱씹고 상처를 잘 받아요.” “계획한 일이 내 뜻대로 안 되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이런 분들에게 “혹시 약간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으신 건가요?”하고 물으면, ‘자기는 절대로 완벽하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양상을 보면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안 되거나, 특히 자기가 한 일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견디지 못합니다. 분하고 억울해하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꾸 자기 탓이 아니라고 먼저 변명을 하거나, 다른 사람 탓이라면서 떠넘깁니다. 이런 사람의 윗사람은 일이 잘 처리되니 좋겠지만, 그 아랫사람이나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들은 곧 피곤을 느끼고, 그를 가까이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들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며, 끊임없이 자기 의(義)로써 자신의 모든 평가를 좋게 하고, 자기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계획대로 안 되거나 누가 싫은 소리를 하면, 못 견디고 화를 내면서 억울해 하는 것입니다.
또, 그런 분들은 타인에게 모르는 것을 묻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이런 행동을, 마치 ‘자기가 못나 보이거나 무능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혹은 ‘상대에게 부담을 주어 자기를 싫어하게 될까?’ 염려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하려고 부단히 애를 씁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부탁을 받았을 때 거절하지 못하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다가 결국 한계에 부딪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다 내려놓고 포기하려고 합니다. 예컨대, 관계를 끊는다거나, 직장을 그만둔다거나, 심지어는 ‘그만 둔다’는 말을 못해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결국, 드러나는 양상은 ‘우울증’입니다.(출처; 우울한 마음을 안아드립니다, 신수미/정신과전문의)
얼마 전, 넥슨 창업주 김정주 씨가 작고했습니다. 세계 500대 기업에 한국인이 네 명 포함되어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인 그의 재산은 ‘10조’랍니다. 그의 나이 현재 54세. 하건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다. 그동안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고 합니다. ‘당신의 영혼은 안녕하십니까?’ 제가 쓴 책 중엔 이런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정신건강이 의심된다싶으면 속히 전문가를 찾도록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여겨집니다.(물맷돌)
[오, 내 영혼아! 어찌하여 슬퍼하는가? 왜 그렇게 속상해하는가? 하나님께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를 구원하신 분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마땅히 찬양해야 할 것이 아닌가?(시42:11,쉬운성경) 사랑하는 자여, 그대의 영혼이 건강한 것처럼, 그대의 모든 일이 잘 되고 몸도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요삼1:2,현대인)]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한 가지는 잘하는 게 있다!”
샬롬! 밤새 안녕하셨는지요? 어느 독자께서 전해오기를 ‘온가족이 모두 오미크론에 걸려서 격리 중’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온가족이 함께 걸린 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기간에 함께 끝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제 주변에도 몇몇 사람이 이미 치렀거나 지금 치르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한 번쯤은 치러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호랑이눈썹 최화복 선생님을 만난 것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장애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일반학교에서 재활원학교로 자진해서 옮겨오신 분이었습니다. 포마드를 발라 깔끔하게 넘긴 머리에 항상 단정한 차림의 선생님은 제가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습니다. 저는 4학년 때 6학년으로 월반했습니다. 선생님의 추천이었습니다.
“아, 선생님 눈썹 곤두섰어. 조심해!” 우리가 예의가 없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선생님은 무섭게 혼내셨습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봐주시는 것이 없었습니다. 엄격했지만, 절대로 때리지는 않으셨습니다. 수업내용을 못 알아들으면 열 번이라도 처음 하듯이 다시 설명해주셨습니다.
“자, 긴장을 풀고 입을 크게 벌려요!” 선생님은 직접 오르간을 연주하면서 우리에게 노래를 지도하셨습니다. 장애로 말이 어눌한 아이들도 노래를 하면 잘 따라 불렀습니다. 합주부도 지도하셨습니다. 저는 하모니카를 불었습니다. 우리 합주부는 전국대회에 나가 1등을 했습니다. 선생님한테서 배운 서예솜씨로, 저는 붓글씨 대회에 나가 국무총리 상을 탔습니다.
선생님은 공립학교에 계실 때부터 유명한 교사였습니다. 그분 밑에서 공부하면 ‘좋은 상급학교에 갈 수 있다’는 소문이 나서 과외지도를 받기 위하여 순번대기표를 뽑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실려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입시지도만 하는 일반학교보다는 전인교육이 가능한 재활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더 자랑스럽고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한 가지는 잘하는 게 있다. 너희도 마찬가지다. 네가 뭘 잘하는지 그걸 한 번 찾아보자!” 앞날에 대한 아무런 소망이 없는 우리에게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꿈을 심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인강아, 너는 일반중학교로 진학해서 끝까지 공부해야 한다.”
선생님은 일반학교에서 보는 중간고사, 학기말고사 문제지를 가져다가 저로 하여금 풀게 하셨습니다. 교학사의 문제집도 주셨습니다. 국사교과서의 주요단어들을 검은 사인펜으로 다 지우게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외우게 하셨습니다.(출처; 기쁨공식, 김인강/고등과학원 교수)
제 생각엔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큰 축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다른 것은 거의 다 잊어버렸습니다만, 초등시절 담임의 성함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심재준(1,여) 강인숙(2,남) 김현주(3,남) 박성수(4) 엄익호(5) 김용현(6) 그런데,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책을 통하여 김형석 교수를 알게 된 것이, 저로서는 아주 큰 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저에게 위대한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물맷돌)
[스승이 하시는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걸, 내가 왜 일찍이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그분이 일일이 가르쳐주실 때, 왜 내가 딴전을 피우면서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가!(잠5:13,현대어) 제자가 어떻게 그의 선생보다 아는 것이 더 많겠는가? 그러나 그가 열심히 공부하면 선생이 아는 것만큼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눅6:40,현대어)]
말씀을 대하는 자세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 후 재단을 만들 때 후원자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재단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재단의 단 한 가지 규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에게 셀카 요청을 하지 말아주십시오.”
오바마 대통령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자신의 눈을 보며 악수를 청하지 않고 그저 핸드폰을 들이밀며 사진을 요청하고는 바로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미국 UC 산타크루즈 연구팀은 비슷한 주제로 실험을 했는데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은 그룹과 사진을 찍지 않고 눈으로만 본 그룹을 두고 몇 주 뒤 본 풍경을 묘사하게 했는데 사진을 찍지 않은 그룹이 훨씬 더 정확하게 묘사했다고 합니다.
또한 사진을 찍은 그룹도 ‘스냅 챗’처럼 몇 시간 뒤 사라질 SNS에 올릴 사진을 찍은 사람보다는 일부러 지우지 않는 이상 유지되는 일반적인 SNS에 올릴 사진을 찍은 사람이 더 오래 기억했으며, 또한 자신만 볼 수 있는 비밀 계정에 올린 사람은 더 오래 기억을 했습니다.
우리 뇌는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위해 기억할 때, 또 금방 듣고 사라질 추억으로 대하는 것보다는 두고두고 보려고 마음을 먹을 때 기억을 더 잘합니다. 매일 묵상하는 말씀, 매주 받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한 주간 살아갈 양식으로, 내 인생을 변화시킬 절호의 말씀으로 간절히 받으십시오. 아멘!!
주님! 말씀이 내 삶의 힘과 능력이 되도록 역사해주소서.
예배 때마다 들은 말씀을 적고 또 실천사항을 기록할 노트를 준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말의 지혜
어느 병원 로비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개에 물려 다친 사람은 반나절 만에 치료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뱀에 물려 다친 사람은 3일 만에 치료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言)에 다친 사람은 아직도 입원 중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5살 때부터 가르치는 조기교육 ‘토라’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말에 대한 7계명’입니다.
1. 항상 연장자에게 발언권을 먼저 준다.
2. 다른 사람 이야기 도중에는 절대 끼어들지 않는다.
3. 말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한다.
4. 대답은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여유있게 한다.
5. 질문과 대답은 간결하게 한다.
6. 처음 할 이야기와 나중에 할 이야기를 구별한다.
7. 잘 알지 못하고 말했거나 잘못 말한 것은 솔직하게 인정한다.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말을 한다면 얼마나 곤란한 상황이 많아지고 서로 상처를 주게 될까요?
말은 쓰임에 따라서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열고 영혼을 위로하는 지혜로운 말을 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아멘!!
주님! 복음을 전하고, 마음을 위로하고, 사람을 세우는 말을 하게 하소서.
말의 실수가 없도록 매사에 3초 이상 생각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과학과 성경
뉴욕 록펠러대학의 마크 스토클 교수와 스위스 바젤대학의 데이빗 세일러 교수는 함께 인류진화학을 연구했습니다.
두 교수는 미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유전자은행의 자료를 바탕으로 10만 종이 넘는 DNA를 분석한 결과 동물과 인간이 거의 같은 시기에 출현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90%가 넘는 종들이 유전학적으로 거의 같은 시기에 출현했다는 사실은 단세포가 오랜 시간 점진적으로 진화하며 다양한 동물이 되었다는 기존의 진화론을 반박하는 이론입니다.
연구한 두 교수도 당황해 자세히 자료를 검토했지만 오히려 진화론의 증거 중 하나인 중간 종마저도 거의 없다는 사실만 추가로 밝혀졌습니다.
대부분의 생물이 갑자기 비슷한 시기에 나타났다는 두 박사의 연구는 진화를 다루는 전문 학술지 ‘저널 오브 휴먼에볼루션’에 게재됐습니다.
이 연구결과가 세상에 알려지자 연구의 신뢰도와 다양한 과학적 사실들을 들어 또 다시 반박하는 내용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과학적인 사실로 복음의 진리를 판별하려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은 시대의 기술과 패러다임에 따라 참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지만 성경은 진리이며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은 영원한 진리임을 기억하십시오. 아멘!!
주님! 세상의 잘못된 지식과 관념들로 신앙이 흔들리지 않게 지켜주소서.
예수님을 통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만을 100% 확신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십자가의 표식
‘기독교대학교의 하버드’라고 불리는 미국 시카고의 명문 휘튼대학교는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감리교 목사님들이 세웠습니다.
이 학교의 중앙 홀 2층에는 휘튼대학교가 배출한 선교사들의 명단과 사진이 붙어있는데 이중 몇몇 사진에는 십자가 표시가 있습니다. 이는 말씀을 전하러 떠난 이억만리 사역지에서 순교를 당한 선교사들의 표시입니다.
남미 에콰도르의 아오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목숨을 잃은 이야기로 유명한 짐 엘리엇도 이 학교 출신입니다. 짐 엘리엇은 학교를 다닐 때 큐티를 하며 묵상한 내용을 노트에 적곤 했는데 그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리고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세상엔 끝까지 붙들 수 없는 것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오히려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을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한다. 젊음도 지나가고, 명성과 쾌락도 결국은 지나가고, 아무리 많은 물질도 결국은 마지막까지 들고 있을 수 없다. 이런 헛된 것을 버리고 포기하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주님,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제 삶이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저를 불태워 주옵소서.”
하나님을 위한 고난은 괴롭고 힘들어도 영광의 길입니다. 주님이 주신 십자가라면 기쁘게 감당하십시오. 아멘!!
주님! 부족한 제 인생에 하나님을 위한 흔적을 남기게 도우소서.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라도 거부하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언제나 희망은 있다
국내에는 발간되지 않았지만 리처드 브릭너의 소설 ‘부서진 세월(The broken year)’에는 사고를 당해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청년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자신을 돌봐주는 간병인에게 청년은 초점없는 눈으로 “나에게도 미래가 존재할까요?”라고 묻자 간병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육상선수로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충분히 있을 거예요.”
휠체어펜싱 국가대표 김모씨는 원래 스튜어디스를 꿈꾸던 소녀였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때 안타까운 사고로 다리를 잃고 평생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했고 꿈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희망을 잃은 듯 했으나 통원치료를 하면서 뜻하지 않게 비슷한 처지의 휠체어펜싱 선수를 만나면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안타까운 사고였지만 사고 후 새로운 희망을 만난 김모씨는 국내 1인자가 되어 아시안게임 은메달, 월드컵대회 동메달, 국내 휠체어펜싱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에 참가하는 등 화려한 성적을 쌓으며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그리고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희망은 존재합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늘을 바라보며 주님이 이루어주실 새로운 소망을 꿈꾸십시오. 아멘!!
주님! 나를 포기하지 않는 주님으로 인해 절대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성패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실 소망을 바랍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마음을 움직이는 법
미국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마감시간 무렵에 2명의 손님이 들어와 급하게 음식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원으로 보이는 한 손님이 감자튀김을 들고 프론트로 가서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이 감자튀김이 엉망진창인게 안 보입니까? 이걸 사람이 먹으라고 준 겁니까?”
그러나 점원은 이미 마감시간이 임박해 기계의 전원을 껐기 때문에 다시 만들기가 불가능하다며 딱딱한 대답만을 반복했습니다. 회사원이 체념하고 자리로 돌아오자 이번엔 다른 자리의 대학생이 전단지를 들고 점원을 찾아갔습니다.
“늦은 시간 수고하십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학교 앞에서 이 전단지를 받았는데 여기에는 분명 언제든 신선한 음식을 보장한다고 적혀 있거든요. 어딜 찾아봐도 마감시간에 임박해서는 보장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지 않아서요. 저는 신선한 감자튀김을 먹으려고 꽤 먼 거리를 걸어왔습니다.”
점원은 전단지를 유심히 살펴보고는 정중하게 사과를 했습니다.
“정말 그렇네요. 죄송합니다. 금방 기계를 다시 켜서 신선한 감자튀김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화를 내고 잘못을 지적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사람의 마음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상대의 기준에 맞추는 온유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전도에 활용하십시오. 아멘!!
주님! 상대방의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해하게 하소서.
믿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으로 먼저 다가갑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잘못된 기준
거짓말 탐지기를 발명한 존 라슨 박사는 2만 5천 명의 일반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한 뒤에 “사람은 대부분 정직하지 못하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결론은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거짓말 탐지기는 오류 발생률이 많이 높아서 현대에서는 법정 증거자료로도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로베스 피에르는 프랑스 혁명 때 탐관오리들을 처단하기 위해서 단두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피에르 자신이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했습니다. 피에르는 단두대가 탐관오리를 처형하기 위해서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그 범주에 들어간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기준을 잘못 잡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축구가 들어온 것은 1904년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규칙을 적용한 축구를 한 것은 1920년대입니다. 16년간은 사람들 마음대로 골키퍼를 3,4명이서 보기도 하고 손으로 공을 던지기도 하면서 동네마다 다른 룰이 있었습니다. 이 역시 규칙이라는 제대로 된 기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성경이란 명확한 기준을 성령님을 통해 이 땅에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바탕으로 모든 삶의 기준을 바로잡으십시오. 아멘!!
주님!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말씀을 진실로 내 삶의 기준이자 매뉴얼로 삼읍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고민 해결 공식
에어컨을 발명한 윌리스 캐리어 박사는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의 이론을 통해 다음의 이른바 ‘3단계 고민해결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 1단계: 사실을 파악하라
- 2단계: 사실을 분석하라
- 3단계: 결정하고 실행하라
사람들은 뻔한 답을 놓고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것이 캐리어 박사의 생각이었습니다.
쓸데없는 고민이 많아 걱정이었던 미국의 사업가 허버트 혹스는 캐리어의 이 고민해결 공식을 보고는 삶에 적극 적용했습니다. 허버트는 공식을 적용한 뒤 바뀐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고민의 원인은 혼란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오로지 그 문제에 대한 사실과 원인만 분석하면 문제는 곧 해결됩니다. 우물쭈물할 필요도 없고 골치아플 필요도 없습니다. 이 방법으로 나는 고민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됐습니다.”
모든 문제에는 해결할 수 있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요셉처럼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찾아오는 모든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아멘!!
주님! 문제가 있을 때 고민보다는 기도, 계속 기도, 끝까지 기도하게 하소서.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문제에 대해 기도하면서 해결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우상
컴퓨터 알고리즘과 빅데이터가 새로운 우상으로 등장했습니다. 숭배자들은 알고리즘을 ‘신’으로 비유하고 데이터를 ‘말씀’으로 비유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유튜브로 여러 번 검색해 시청했더니 이후에는 온통 자연 전원 혼자살기 등의 영상이 추천됩니다. 알고리즘이 저를 그쪽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죠.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는 건강한 두 가슴을 절단했습니다. 유전자 조사 결과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라는 데이터의 조언에 근거해 미리 수술한 것입니다. 데이터를 무한 신뢰하는 단적인 예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내가 클릭한 ‘좋아요’ 70개면 친구보다 나를 더 잘 알 수 있고, 300개면 배우자보다도 나를 더 잘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앞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데이터에 의존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쯤 되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 같습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이 발달해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문혁 목사(좋은나무교회)
부자가 되고 싶은 청년
개척 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한 청년이 ‘잘 살고 싶다’며 찾아왔습니다. 그가 말하길 가정이 행복하고 안정된 친구는 모두 예수님을 믿고 있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싶어 교회에 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강한 헌신을 요구했습니다. 주일은 철저히 지키고 영원한 것을 위해 헌신하라고 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 차량 안내, 성가대 봉사를 권면하고, ‘물질’에 대해 철저히 구별해야 한다고 알려줬습니다. 술, 담배도 끊게 했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길을 가르쳤습니다. 청년도 말씀대로 살려고 끝없이 노력했습니다. 마침내 이 친구는 그가 꿈꾸던 것을 이뤘습니다.
그는 명절날 고향을 방문했습니다. 작은아버지는 그를 보며 “네가…?”라는 말과 함께 깊은 여운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나셨다고 합니다. ‘집안에서 가장 나약한 네가 어떻게 우리 가정에서 가장 큰 축복을 받았지?’라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최고의 가치를 드렸던 청년에게 주님은 하늘의 부자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
요셉의 겉옷이 주는 메시지
디에고 벨라스케스라는 화가가 있습니다. 에스파냐 출신의 17세기 회화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 ‘요셉의 겉옷’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림은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노예상에게 팔아넘긴 뒤 아버지에게 요셉이 짐승에게 희생됐다고 거짓말하는 내용을 사실적으로 그렸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림 속에 개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미술 평론가 패트릭 데 링크는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개가 형제들을 향해 사납게 짖고 있다. 사람이 아닌 피 냄새를 맡았기 때문인데 아무도 개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글을 보면서 화가는 요셉 형들의 불의를 개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희망이 있는 건 누군가 사회 구석구석에서 불의에 편승하지 않고 불의를 꾸짖는 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도 그들과 힘을 합해 의의 파이를 키우고 불의의 파이를 줄이는 그 길에 서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졸업, 새로운 시작
졸업 시즌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졸업식도 온전히 진행하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졸업은 중요합니다. 한 단계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전환점이기 때문입니다. ‘졸업(卒業)’은 학업을 마친다는 뜻입니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commencement’라는 단어를 많이 씁니다. 미국 대학들 졸업식마다 행해지는 저명인사들의 연설은 ‘commencement speech’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commencement’가 갖는 핵심적인 의미는 ‘시작’입니다. 졸업은 마치는 것보다는 시작하는 의미가 강하다는 것이지요. 졸업식은 못 해도 모든 졸업생이 삶의 새로운 단계로 새 꿈을 품고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2월도 막바지입니다. 2월을 뜻하는 ‘February’는 로마 시대에 2월이 되면 겨우내 묵었던 때를 벗겨내기 위해 보름달 아래에서 불을 피우고 거행한 ‘Februa’라는 정결 예식에서 유래합니다. 묵은 때를 태워버리는 것이었겠죠. 불을 뜻하는 ‘fire’도 이 단어에서 파생됐다고 합니다. 졸업 시즌인 2월을 넘어 봄이 오는 3월로 가기 전에 Februa와 같은 정결 예식을 통해 악습과 오미크론을 말끔히 털어버리고 새봄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기대합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몸을 내밀면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온 힘을 다해 경주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 스케이트 선수가 마지막 순간에 발을 내밀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은 얼마나 짜릿합니까. 메달을 못 따도 끝까지 완주하는 선수들의 열정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열심히 준비한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올림픽 정신의 알짬일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빌 3:13~14·새번역) 아마 사도 중에서도 바울만큼 큰일을 이루어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바울이야말로 사도 중의 사도지요. 그런데 바울은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만 푯대를 향하여 온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자도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라고 했지요. 공을 이루되 거기 머물지 않는다는군요. 내가 이루었다고 자만하는 사람, 그는 성숙한 신앙인이 아니군요.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친절한 도둑씨
도둑맞은 소식을 들으면서 크게 웃었습니다. 저만 웃은 게 아닙니다. 남편 가게에 도둑이 들어와 많은 것을 잃은 권사님이 웃으면서 소식을 전했습니다. 신고를 받은 뉴욕 경찰도 신속하게 출동했는데 굳이 힘들게 수사할 필요가 없었답니다. 도둑이 물건을 많이 훔쳐 가면서 정신이 없었는지 자신의 스마트폰을 현장에 떨어뜨리고 갔기 때문입니다. 아, 가련하고 친절한 도둑씨.
그런데 그 도둑의 죄만이 아닙니다. 그 누구의, 그 어떤 죄도 끝까지 감출 수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죄의 흔적을 여기저기 남깁니다.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 10:26)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그 도둑 이야기를 듣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죗값을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나를 좀 보세요. 세상에 완전 범죄는 없다니까요.” 그 도둑의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말하는 듯합니다. 아, 가련하고 친절한 도둑씨.
김성국 목사(미국 뉴욕 퀸즈장로교회)
속도 확인
아내가 투병 중입니다. 온종일 수액을 맞고 있는데 수액 표면에 이런 안내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하는 속도 확인, 수액이 빨리 들어가면 담당 간호사에게 알려주세요.’ 빠르다는 것이 신속한 면에서는 좋지만 본질을 놓칠 위험이 큽니다.
로버트 멍어의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은혜받은 주인공이 학교 가기 전 매일 거실에서 기도하기로 결심합니다. 처음에는 빠짐없이 매일 기도하면서 주님과의 교제가 깊어집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못하게 됩니다. 늦잠을 자거나 꾸물거리다가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등교하기 바빠지면서 기도를 건너뜁니다. 초반에는 미안했지만 하루 이틀 계속되다 보니 그런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그날도 늦잠 자고 허겁지겁 학교에 가려는데 거실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너무 미안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언제부터 기다리셨어요.”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늘 이 시간에 기다렸지. 나는 네가 기도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나는 너를 꼭 만나고 학교에 보내고 싶다.” 분주함을 핑계로 주님과의 시간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요.
문혁 목사(좋은나무교회)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
전도사 시절, 아이들이 많은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심방 대원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더운 여름날 아이들을 돌보는 집사님을 보면서 “고생이 많으시죠”라고 말씀드렸더니, 집사님이 “전도사님,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겨울보다 여름이 좋아요”라고 답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가난한 성도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전도사였던 저도 당시엔 가난한 상태였습니다. 아이의 분유가 떨어지는 날도 있고, 추운 겨울에 기름이 떨어져 아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아이를 품고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습니다. 전 그때마다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주님은 연약한 전도사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 역시 가진 것이 없는 사람, 겨울보다 여름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가난이라는 불편함을 이기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기도로 말입니다. 최근 신도시에 예배당 부지를 사들이면서 많은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기도였습니다. 기도는 추운 겨울을 봄으로 만드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