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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답변에 대한 댓글에 올리셨던 질문을 다시 올리셨기에, 이곳에 답을 달겠습니다.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다만 소소계라고 하기엔 너무 크지 않을까요. 물론 어디까지가 소소계인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겠지만요. 하지만 출가를 금하는 조건인 차법가운데 황문 혹은 이근자를 금하는 것만큼 엄한것은 없습니다. 다른 차법들은 설사 속이고 들어왔더라도 수계는 인정이 되지만 황문이나 이근자는 수계가 무효가 되지요. 물론 말씀하신대로 동성연얘자들은 포함되지 않습니다만 실제로 상좌부 불교 승가에서는 동성연얘자도 금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연얘자들의 비행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동성연얘자들은 차치하더라도 그 외에는 차라리 그들이 재가자로써 수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또한 성적소수자들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습니다. 보통사람은 상상하지 힘든 사례도 있구요. 결국 모든사람들을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들은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그런식으로 평등이나 정의가 실현이 될까요?
승가가 바뀌길 기다리면서 번뇌를 버리지 못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어요. 진리는 결국 형식이 아니라 스스로의 해탈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 그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개인적인 성적지향은 얼마든지 추구할 자유가 있지만 승가에서 그들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그리고 구사론에 관한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으셨어요. 구사론을 우리가 불편하지 않은것들만 사용하고 인용해야 하는 걸까요?
답변입니다.
위의 질문에서 물음표가 달린 질문은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정리됩니다. 인용하면서 답하겠습니다.
(1) 동성연얘자들은 차치하더라도 그 외에는 차라리 그들이 재가자로써 수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물론 동성연애자가 재가자로서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동성연애 성향을 가진 분이라고 해도 출가 구도의 길을 가고자 할 때 구족계를 받고서 스님이 되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출가 후에는 철저하게 음행을 하지 않아야 하며, 여성 역할을 하는 호모 성향 동성연애자가 비구 스님이 되었을 때, 혹시 성적인 문제를 일으킬 경우 즉각 응분의 처벌을 하면 문제 될 것이 없겠습니다. 즉, 항문이나 입으로 동성과 직접적 성교를 할 경우, 승가에서 추방하며 재 출가를 금하면 됩니다. 이는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모든 출가자에게 해당하는 계율입니다.
(2) 또한 성적소수자들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습니다. 보통사람은 상상하지 힘든 사례도 있구요. 결국 모든사람들을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들은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그런식으로 평등이나 정의가 실현이 될까요?
이 질문은 왜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출가에서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지만, 출가 후 동성에 대해서든 이성에 대해서든, 성기를 이용하든 항문을 이용하든 구강을 이용하든 성적인 탐닉을 버리지 못했다면 즉각 스님의 자격을 반납케 하고 재출가 역시 금하면 됩니다. 출가자가 성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꼭 성적 소수자에게만 해당하는 규범이 아닙니다.
(3) 승가가 바뀌길 기다리면서 번뇌를 버리지 못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어요. 진리는 결국 형식이 아니라 스스로의 해탈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 그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승가가 바뀌길 기다리면서 번뇌를 버리지 못하는 분'이 어떤 분을 의미하는 건지요? 스님으로서 동성애 등의 성행위를 하는 분이 계시다는 건지요? 혹시 그런 분이 계신다면 동성애든 이성애든 즉각 승복을 벗고 속인의 삶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는 앞으로도 영원히 변치 않을 승단의 규범입니다.
그리고 '형식이 아니라 스스로의 해탈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 그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하셨는데, 성생활을 하는 한 궁극적 해탈의 경지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즉, 아라한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음욕을 끊지 못하고 성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예류과라고 번역하는 수다원의 경지에는 오를 수 있을 겁니다. 탐욕, 분노, 교만, 무명, 의심, 유신견, 변집견, 사견, 견취, 계금취의 10가지 번뇌 가운데 '유신견, 의심, 계금취'의 3가지 번뇌만 제거하면 수다원이기 때문입니다. 드물긴 하지만 일래과라고 번역하는 사다함의 경지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일래는 내생에 한 번은 욕계에 태어난 후 그 다음 생에 색계 이상에 태어나 반열반 하는 성자를 의미하는데, 내생에 한 번 욕계에 태어난다는 것은 음욕을 완전히 끊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내생에 1회만 태어나면 그 다음 생에 색계 이상으로 올라가 반열반하기에, 사다함은 음욕과 같은 동물적 욕망이 많이 희박해 진 분입니다.
출가자로서 승복을 입고서 음행을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음욕을 버리지 못한 분은 재가자로 살면서 수행을 하여 수다원과나 사다함과의 성취를 지향하면 되겠습니다.
(4) 개인적인 성적지향은 얼마든지 추구할 자유가 있지만 승가에서 그들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출가 전에 개인적인 성적 지향이 어떠했든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즉 출가 전 성적 지향이 어떠했든 구도의 발심으로 출가를 다짐하는 분들은 승가에서 모두 받아들입니다. 다만 이렇게 구족계를 받고서 출가하여 삭발, 염의한 상태에서 혹시 동성애든 이성애든 성행위를 한다면, 승가에서는 즉각 추방하면 됩니다. 출가 후에도 성행위를 하는 분을 승가에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이는 변치 않습니다.
(5) 그리고 구사론에 관한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으셨어요. 구사론을 우리가 불편하지 않은것들만 사용하고 인용해야 하는 걸까요?
구사론과 관련하여 "구사론에서는 선체는 복덕을 쌓는 일은 가능해도 수행에 장해가 있다고 쓰여져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것이 증명이나 혹은 반증이 가능할까?"라고만 질문을 써 놓으셨는데, 질문이 명확해야 답변도 쉽게 달 수 있습니다. 앞의 질문과 같은 성격의 것이려니 생각하고서, 앞의 답변에서 이미 답을 했기에 다시 답을 달지 않았는데, 이 질문을 별도의 소재로 삼아서 답을 해 보겠습니다.
먼저 말씀 드릴 것은, 제가 모든 불전에 실린 낱낱의 경문들을 암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질문이 올라와도 질문의 근거가 명확해야 답을 달기 쉽습니다. 그런데 막연하게 "선체는 복덕을 쌓는 일은 가능해도 수행에 장해가 있다고 쓰여져 있다"고 하셨는데 그런 문장은 구사론 어디에도 없습니다. 앞으로 혹시 질문을 올리실 때에는 그 근거가 되는 경문이나 사례를 제가 알기 쉽도록 적시하시기 바랍니다.
선체(扇搋))는 범어 ṣuṇdha의 음사어로 추정되며 고자를 의미하는 황문(黃門)과 동의어입니다. 진제 스님은 황문이라고 번역하고 현장스님은 선체라고 번역했습니다. 선체와 관련한 구사론의 경문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어떤 이는 설하기를, “이것(여근ㆍ남근)은 염오함과 청정함 두 가지에 대해 증상력이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일이라고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태어나면서부터 그러하든지[本性] 후천적으로 손괴(損壞)되었든지 간에 선체(扇搋)와 반택(半擇, 반탁가)과 이형인(二形人)에게는 불율의(不律儀:즉 惡戒를 말함)나 무간업(無間業)이나 선근을 끊는 온갖 잡염법(雜染法)이 없으며, 역시 또한 율의(律儀)도 득과(得果)도 이염(離染)의 온갖 청정법(淸淨法)도 없기 때문이다.
- 아비달마구사론 15권 -
이는 구사론 제15권에 실린 경문으로, 선체는 남, 녀의 성기가 없는 자, 반택은 성불구자, 이형인은 남녀의 성기를 모두 가진 자를 가리킵니다. 이 분들에게는 극악을 행하게 하는 잡염법도 없고, 계율을 지켜며 성자를 지향하며 구도하게 하는 청정법도 없다는 설명입니다. 즉 이런 분들의 경우 음욕이 강렬하지 않기에 음욕을 위한 악의 오염도 없지만, 뼈를 깎는 금욕의 청정함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구사론의 설명이기에 실제로 이 분들의 성품이 그런지 저는 모릅니다. 어쨌든 이런 통찰에 근거하여 출가를 금한다고 보면 되는데 구사론 제17권에서는 다시 이런 분들의 선, 악 율의(선행을 하겠다는 다짐이나 악행을 하겠다는 마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어떠한 유정에게 선ㆍ악의 율의가 존재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악계는 인간에게만 있으니, 북구로주와
두 가지 황문(黃門)과 이형자(二形者)는 제외되며
율의는 역시 천취(天趣)에도 있지만
오로지 인간만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惡戒人除北 二黃門二形
律儀亦在天 唯人具三種
욕계의 천과 색계에 태어나면
정려생율의가 존재하며
무루율의는 무색계와 함께하니
중간정과 무상정은 제외된다.
生欲天色界 有靜慮律儀
無漏幷無色 除中定無想
논하여 말하겠다. 불율의는 오로지 인취(人趣)에만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북구로주를 제외한 세 주(남섬부주ㆍ동승신주ㆍ서우화주)에만 존재하며, 세 주 중에서도 다시 선체(扇搋)나 반택가(半擇迦) 이형(二形)을 갖춘 자는 제외된다.
나아가 율의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니, 이를테면 인취 중에서는 앞에서 제외한 것을 제외하며, 아울러 천취 중에도 역시 존재한다. 따라서 율의는 두 취(趣)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다시 어떠한 이유에서 선체 등이 소유한 상속신은 율의의 근거가 되지 않음을 아는 것인가?
경과 율에서 진실로 논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대명(大名)에게 고하기를, “존재하는 모든 재가의 백의(白衣)의 남자로서 남근을 성취한 자가 불(佛)ㆍ법(法)ㆍ승(僧)에 귀의하여 크나큰 청정심을 일으켜 진실의 말을 발하여 ‘나는 바로 오파색가(우바새)이니 원컨대 존자께서 기억하시어 자비로써 호념(護念)하소서’라고 스스로 일컬으면, 이 같은 이를 다 같이 오파색가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또한 비나야(毘奈耶) 중에서도 역시 “그대는 마땅히 이 같은 색(즉 선체 등)의 종류의 사람을 제외해야 한다”고 설하였다. 그래서 율의가 그러한 종류의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다시 어떠한 이유에서 그들에게는 율의가 없는 것인가?
두 가지 소의(즉 남ㆍ여)를 근거로 하여 일어난 번뇌가 하나의 상속에서 함께 증상(增上)하기 때문이며, 올바른 사택을 감당할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며, 극중의 참괴심(慚愧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째서 불율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들은 악계에 대해서도 마음이 결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 이들에게 선의 율의가 존재한다면 악의 율의도 역시 그들에게 존재할 것이니, 이러한 두 종류는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 아비달마구사론 17권 -
요컨대 성불구자의 경우 음욕이 없기에 음욕에서 비롯되는 극악함도 없지만, 거꾸로 음욕을 억제하는 금욕의 청정함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구사론의 독특한 설명일 뿐이고, 성불구자의 출가를 금하는 계기가 된 십송율의 경문 한 가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였다. 발난타 석자가 불능남(不能男)의 출가를 허락하였다. 이 사람이 야밤에 여러 비구를 더듬었으므로((捫摸, 문모 - 어루만질 문, 더듬을 모) 여러 비구가 그를 승방에서 쫓아내었다. 비구니 곁이나 식차마니 곁이나 사미ㆍ사미니 곁에 가서도 늘 그 몸을 더듬었으므로 여러 비구니와 학계니(學戒尼), 여러 사미와 사미니가 모두들 그를 쫓아내었다. 여러 거사가 승방 안에 들어와 기숙할 때 역시 여러 거사를 더듬자 여러 거사가 말하였다.“사문 석자 가운데에는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불능남도 있구나.”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말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말하여 나쁜 소문이 왕사성에 널리 퍼졌다. 욕심을 줄이고 자족하며 두타를 실천하던 여러 비구가 이 일을 전해 듣고 그 마음이 부끄러워 이 일을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이 인연으로 스님들을 모으셨다. 스님들이 모이자 부처님께서는 아시면서 짐짓 발난타에게 물으셨다.
“그대가 그랬다는 것이 사실인가?”
이에 발난타가 대답했다.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갖가지 인연을 들어 발난타를 꾸짖으셨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불능남의 출가를 허락했단 말인가?”
부처님께서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여러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불능남에게는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만약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도록 허락한다면 돌길라죄가 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의 불능남이 있으니, 무엇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생불능남(生不能男)이고, 둘째는 반월불능남(半月不能男)이고, 셋째는 투불능남(妬不能男)이고, 넷째는 정불능남(精不能男)이고, 다섯째는 병불능남(病不能男)이다. 무엇이 생불능남인가? 태어나면서부터 음사(婬事)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생불능남이다. 무엇이 반월불능남인가? 보름 동안은 음사를 행할 수 있고 보름 동안은 음사를 행할 수 없는 사람이 반월불능남이다. 무엇이 투불능남인가? 남이 음사를 행하는 것을 보아야만 그 몸이 일부 기능을 발휘하는 사람이 투불능남이다. 무엇이 정불능남인가? 타인의 음란한 몸과 접촉해야만 그 몸이 일부 기능을 발휘하는 사람이 정불능남이다. 무엇이 병불능남인가? 그 남근이 썩어 버렸거나 잘렸거나 벌레나 뱀에게 먹힌 사람이 병불능남이다. 이를 다섯 가지 불능남(不能男)이라 한다. 생불능남ㆍ반월불능남ㆍ투불능남ㆍ정불능남 이 네 불능남에게는 출가하여 구족계 받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만약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도록 허락했다면 준 것을 없애고 내쳐야만 한다. 무엇 때문인가? 불능남에게는 여래의 선법인 비니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병불능남이 낙상하거나, 벌레나 뱀에 물리거나, 스스로 거동하여 안거를 보낼 수가 없을 때나, 또는 거동할 수 없다 하여 그 구족계를 반납하고 난 다음 다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할 때에도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 출가하여 구족계 받도록 허락했다면 마땅히 준 것을 없애고 내쳐야 한다. 무엇 때문인가? 병불능남에게는 여래의 선법인 비니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적으로 불구인 출가자가 비구, 비구니, 사미, 거사 등의 몸을 더듬었기에 그를 쫓아낸 후 부처님께 말씀드리자, 부처님께서는 성적 불구인 사람에게는 여래의 선법 비니(Vinaya, 律)가 생기지 않기에 출가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여래의 선법 비니가 생기지 않는' 이유는, "이런 분들이 성적 불구이기에 음욕이 강렬하지 않아서, 남의 몸을 더듬고도 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이런 분들의 경우 계를 지키는 금욕의 '맑은 고통' 역시 있을 수 없기에 아라한과 같은 성과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 당시, 성적 소수자의 성향에 대한 경험적 통찰이 출가를 금하는 율을 제정했던 이유일 것 같습니다.
성적 불구자와 관련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출가 구도의 길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것은 '계율'이라는 점입니다. 즉, 욕망 덩어리인 세속의 육신을 '금욕의 맑은 고통을 딛고 선 청정한' 법체(法體)로 전환시키는 수행이 출가 구도의 본질이라는 점입니다. 성적 욕망이 강하지 않은 사람에게 금욕의 맑은 고통 역시 있을 수 없습니다. 불교의 지식이나 지혜를 얻는 것은 2차적입니다.
이상 답변을 마칩니다.
첫댓글 이상 '무우수'님의 질문들(앞의 질문, 지금의 질문 등)에 답하는 데 거의 반 나절이 걸렸습니다. 앞으로 1주일 정도 아무도 질문 올리지 않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다른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밀려 있는데, 또다시 질문이 올라올 경우 시간을 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교수님 송구스럽습니다. 답변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