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지는 18세기 중엽 권철신(權哲身)을 중심성지으로 한 남인계 소장학자들은 이익(李瀷)의 서학을 이어받아 독특한 학풍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경기도 광주와 여주 등지의 사찰에서 강학(講學)을 가졌다. 이 강학 장소 중의 하나가 바로 천진암이다.
강학의 내용은 주로 유교경전에 대한 연구를 위주로 하였으나 당시 전래된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도 집중적으로 검토되어 결국 천주신앙으로 전개되었다. 천주교에 관계하였던 인물들 중 이곳을 자주 방문하였던 인물로 이벽(李檗)과 정약용(丁若鏞)이 대표적이다.
정약용의『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는 천진암과 관련된 시문이 여러 편 보인다. 그 때 벌써 퇴락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천진암은 그 뒤 폐허가 되었으나 1962년에 남상철(南相喆)에 의하여 절터가 확인되었으며, 1979∼1981년 사이에 이벽·정약종(丁若鍾)·권철신·권일신(權日身)·이승훈(李承薰) 등 한국천주교회 초기 인물들의 묘소가 이 곳으로 이장되었다.
천주교 수원교구가 중심이 되어 이 일대 개발이 추진되어 현재 신도들의 순례에 필요한 각종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고, 가르멜수도원이 세워져 있다.
필자는 여러번 방문하여 100년 성지사업에 건축헌금을 내는 사연은 순수한 헌금으로 탑을 쌓는 정신으로 건립한다는 의의가 감명이 깊어 뜻을 보탰다
천진암 성지 <김 민>
두물머리 능내리 다산[茶山] 생가에서
팔당 건너 앵자 봉 알을 품어 상서롭다
생명을 마다하고 모여들 육신을 바쳤고
님 기려 살아온 여기 일백년 역사 이뤄
남북 시원이 양수리에 합쳤고 하늘정신
발상 아리수 주신 음수사원[飮水思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