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비행기 탑승객 155명 전원이 24분 만에 무사히 구조된
기적을 그린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와 거리를 두기 힘들었다. 우리네 사건과는 너무
다른 결과를 그리고 있기에 영화의 해피엔딩은 너무 허망하고 비 현실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155명이 생존한 기적을 이야기 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세월호로 인한 300명 남짓의 희생자들이 영향을 준 탄핵과 정권교체라는 촟불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많은 희생자를 내고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미해결 사건을 말하는 반면, 영화
속 사건은 누구의 희생도 없이 해결된 기적의 사건을 그린다. 두 사건을 나란히 생각하고 있자니 심정이 복잡하다.
내가 이 영화에
감동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저 현실적이다. 좀 잔인하기는 하지만, 세월호에
탄 학생들이 모두 구조되고 이 영화를 봤다면, 지금만큼 큰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모두 살 수도 있었는데 죽을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을 보고 있자니, 모두
죽을 수도 있었는데 살게 된 영화 속 현실이 나에게 더 큰 울림을 주는 것 같다.
기장 설리는 영화에서
나온 대사처럼 ‘필요한 자리에 있었던 필요한 사람’이었다. 155명이 무사히 구조됨에 있어 정확한 판단을 했던 영웅이었지만 그가 지속적으로 했던 말은 그 모든 대처는
당연히 했어야 할 본인의 ‘할 일’이라는 것이었다. 설리는 심지어 항공사와 보험사, 국가의 항공단체(?)로 부터 받는 불합리한 조사에 임하면서도 그것이 그들의 ‘할 일’임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다 잘 됐는데 왜 이러지, 훈장을 줘도 모자랄 판인데…”라고 동승했던 부기장이 투덜거린다. 보험사는 조금이나마 적은 보상금을 주고 싶었겠고, 항공사는 국가차원에서는
조종사의 헛점을 캐내 강속에 착륙한 경위를 정확하게 밝혀 내야 할 책임이 있었을 것이다. 비상착수를
했을 때 생존자가 거의 없었다는 선례를 뛰어넘어 탐승객들의 생명을 모두 살린 공을 차지했지만, 결국
그의 직감에 따른 판단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되는 조사를 받으며, 그의 행위가 얼마나 정당성이 있었는지에
대해 답변하게 된다. 사건 직후 영웅으로 여겨지던 설리가 적당선이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과 일대일 대결을
해야하는 상황은 무섭기까지 했다. 조종사로서 그의 40년
간의 경력이 부정당하고, 그가 취할 수 있었던 연금과 조종사 자격이 상실될 수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한 번도 영웅을 꿈꾼 적이 없고,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항공전문가들이
참여한 조사는 너무 가혹했다. 그들은 그 사건의 중심에 섰던 기장과 부기장의 헛점을 꼭 찾아내야만 하는
사람들같았는데, 설리는 한 번도 감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고, 조사를
받는 것에 대해 불만이 없어 보였다. 그저 그들도 조사관으로서의 ‘할
일’을 다 할 뿐 이라고 여기면서도, 사건 당시 자신의 내렸던
판단에 대해서는 확신했다.
설리가 영웅이라
불릴만큼 위대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은 당연히 공감한다. 하지만 여기서 영웅보다는 학습에 더 초첨이 맞춰보았다. 공청회의 초반에는 어쩐지 설리가 회항하지 않았던 것이 승객들을 더 위험에 빠뜨린 것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인접한 공항으로 회항하지 않고, 강속에 착륙한 경위를 밝혀야 했는데
조사관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들이대며 왼쪽으로 회항도 가능했고 오른쪽으로 회항도 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에 설리와 부기장은 컴퓨터 게임을 그만하라고 이야기하며 그 컴퓨터 시뮬레이션에는 인적요소가 빠져 있다고 말했다. 그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조종사들은 자신의 판단과 직감에 의지할 필요도 없으며,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할 필요도 없었지만, 설리는 실질적으로 155명의 승객을 태웠다고 말했다. 설리의 말대로 35초의 인간이
반응할 시간을 두니 비행기는 낮은 고도에서 반드시 추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여지없이 증명한다. 17번의
연습 후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비상착륙은 성공했으나, 실제상황에서 설리는 그와 같은 유사한 테스트를 해
본 경험도 없었기에 그 테스트의 결과와 설리가 보여준 결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역설했다.
우리가 가르치는
지식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만 사용되는 지식은 아닐까? 설리의 직감과 그에 따른 대처 능력은 도대체
어떻게 길러지는 것인지 찾고 싶었다. 난 교과서로 하는 공부는 늘 자신있었고 노력하면 된다고 믿었는데, 세상에 나와보니 지식이 지식으로만 남아있구나 하는 비참한 경험을 많이 했다.
실제 그 지식이 적용되어야 할 상황에 적용되지 못했고, 메뉴얼이 없으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지 당황할 때도 많았다. 설리가 메뉴얼대로 상황에 대처했다면 희생자가 많았을 것이다. 설리도 말했다. 양쪽 엔진이 추진력을 잃었기 때문에 보조동력 장치를
켰던것은 지침상 15번 째 하게 되었던 일이라고, 규칙대로
했다면 모두 죽었을 것이라고.
설리는 기체를
잘 알았다. 유사한 사건으로 사망한 조종사들의 음성기록도 많이 들어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고 조사에 대한 경험도 풍부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그러한 판단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 유사한 상황을 많이 보아온 경험은 그의 직감을 100% 끌어냈다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직감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직감은 그가 비행과 조종에 가진 철학과 태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가 매뉴얼이 아닌 직감으로 그러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한 경험, 그가 배운것이 아닌 그가 경험하는동안, 또 배우는동안 정립했던 나름의 철칙과 역량(?)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질문은… 그러면 그 직감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 가르칠 수는 있는 것인가?
사실 학습한 것
대로 했다면 설리는 큰 사고를 당했을 것 같다. 직감이 학습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학습이나 경험, 지식의 습득이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결정적인 판단은 이미 학습한 것을 잊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수천번의 비행 경험 중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강 활주로는 말 그대로 상상의 장소였다. 그의
조종사로서 쌓았던 경험과 조종사가 되기 위해 쌓았던 모든 지식들을 상상에나 존재할 법한 강위의 활주로에서 적용시켜야 했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중에서 인적 요소가 빠진 시스템의 헛점을 찌르기 위해서 그 화면 안의 조종사가 되어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어야 한다. 이처럼 그는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또 그의 역할에 잘 대처했다. 그래서 나는 교육에서 지식이 활용되기 위해서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가지고 자신의 자리를 유동적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상상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는다.
그가 해야했던
판단과 결정이 시간을 두고 해도 되는 것이었다면, 설리의 영웅적 면모는 덜 ‘영웅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갑작스러운 예상치못한 상황에서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할 때, 우리는 어떻게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경중의 차이는 있겠으나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영화 속 “bird strike”를 자주 만나게 된다.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그 비행기 속의 상황처럼 하루나 이틀의 생각할 시간도 없고, 누군가의 조언을 받을 시간, 메뉴얼을 볼 시간도 없다면… 나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직관에서 온다고 생각하고 그 직관은 한 사람이 삶을 그리고 사건을 바라보는 접근법과 각도(?)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 접근법과 각도, 상황에 대한 인식이 바르지
못하면, 그가 보여주는 대처법도 잘못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리가 조종을 배울 때 그의 스승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파일럿은 절때 공부를 멈춰서는 안되고, 실수를 통해 배워야 한다. 비행을 하는 도중 무슨일이 생겨도 비행을
멈춰서도 않된다.” 이 영화에 그려진 설리가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공부를 멈추지 말아야 하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리가 영화에서 자주 했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은 이러한 측면에서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설리는 자신이 했던 판단과 대처 능력으로 영웅으로 여겨졌지만, 사실 그것은 조종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