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파크골프협회 경기이사 직분을 내려놓으면서.....
클럽장을 대표한 어느 분께서 경주시파크골프협회의 발전을 위해 체육전문가의 역량을 발휘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아 심사숙고 끝에 해보겠노라고 대답한 것이 올 초였다.
헌신적으로 봉사를 했다. 그 누구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그만한 성과를 달성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칭찬도 들었다.
그도그럴것이 경험해보지도 못한 교학상장 방식의 경기를 해보았고, 샷건 방식에서의 기존 백카운트 방법이 부당하다며, 경기를 마치는 홀이 누구나 동일하여 그 방법의 진정한 의미가 있도록 '오더 스타트'(OS 방식)의 경기, 그 다음 대회에서는 A, B 코스의 난이도 높은 다섯 개의 홀을 선정해서 동타 순위를 결정하는 보다 진일보시킨 샷건 방식을 채택한 대회까지도 치루어보았다. 스프레드시트에 의한 대회 결과 즉시 공지, 이름하여 "노 페이퍼 대회 성적 결과 발표" 운영의 성공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너무 앞서가려 한다는 일부의 비난 소리도 없지는 않았지만 칭송을 더 많이 들었다.
세 차례의 큰 대회를 치루고서도 경기이사가 청구하는 대회 운영 소요경비는 언제나 제로였다.
5월 25일 제5회 협회장기 대회 때의 일이다. 한 달 전 발표된 경기요강에는
홀 관리 담당 각 클럽에서 해당 홀 통과 선수들에 대한 심판을 그 소속 회원 중 능력이 되는 회원이 알아서 봉사해주기로 제안했고, 참신한 발상이라며 모두가 이구동성 찬성했었다.
실상은 기대와 달랐다. 성심껏 심판을 보아준 클럽이 있었던 반면에 협조는 커녕 훼방을 하다시피한 클럽이 있었다.
심판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뼈져리게 깨달아서 6월 15일 제1회 신입회원 환영대회 때는 공개 지원 즉, 역량이 충분한 1~2급 지도자분들 본인 스스로의 자발적 신청을 받아 소액이나마 수당을 지급해드리면서라도 경기 진행을 잘 해보기를 원했다. 이 제안 역시 즉시 수용되었다.
기대와 달리 결과는 딴판이었다. 오더 스타트가 아닌 샷건방식의 출발이므로 조 마다 출발 홀이 다르기에 해당되는 홀에서부터 기록을 적어나가지 않고, 기록지 맨 위 첫 칸에 선수별 타수 기록을 시작해놓아서 결국 엉망으로 만들은 것이 한 두 기록지가 아니었다. 어디 그뿐이던가? A8번 홀에서 시작된 기록지가 B코스 1번 홀에서는 뒷 장 맨 위의 B1번홀에 기록이 되어야 함은 초등 고학년 수준이면 알 수 있는 일을 같은 앞 면의 맨 윗 칸에 적어놓지를 않나....
어이 없어서 말을 못할 지경임에 더욱 가관인 것은 경기를 마친 홀 심판 마무리 조차도 제대로 합계 타수를 완결하지도 않은 기록지를 제출하여서 스프레드시트에 의한 선수 개인의 홀 타수를 본연의 합계 타수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런 수준인데 전국대회 치룰 수 있는 역량을 내 혼자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연말까지 뭔가 큰 역할을 하고 물러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슬픔이 밀려왔다.
힘겹다고 생각되니 힘이 빠진다.
시상식 후 집에 돌아와서 남, 여 부별 20위 이내의 선수 기록을 밴드에 공지했다. 급기야는 동타 백카운트 적용, 기록지 입력 오류로 자신이 7위 입상인데도 10위로 공지되었다는 어느 분의 하소연 성격의 전화를 받고는 더 이상 경기이사 직분을 수행하기가 싫었다.
무식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크고, 몰상식한 사람들의 숱한 비난들을 감수하며 굳건히 버티고 있었는데, 심판 요원들에 대한 사전 교육마저도 부실하였다는 자책감에 내가 왜 이런 마음고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자존심을 더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심판 관련 역할 담당은 딴 분이 하기로 협회장이 업무분장을 밴드에 대회 전 공지했었음에도 유능한 경기이사 얼마나 잘 하는지 두고보자 식으로 모든 일을 떠넘겨 받아서 책임 추궁의 빌미를 삼고자 한 상태)
직장에 근무하고 있는 처지, 내 할 일도 잘 해내기 벅찬 마당에 큰 단체의 경기이사 직분 봉사는 사치로 느껴졌다.
감투를 탐내고 있다는 일부 사람들의 말을 옳다고 믿게 만들어서는 아니 된다고 판단했다.
6월 16일 시골 농작물 살피고 돌아온 하루를 더 심사숙고한 끝에 6월 17일 사직서를 썼다.
회사 근무를 마치고 귀가해서 저녁을 먹으며 동반자와 상의한 끝에 협회장님 자택을 찾아가 사직서를 곧바로 전하기로 했다. 회원관리이사 직분을 수행하고 있던 내자와의 동반 사직이다. 협회장은 알 수 없는 미묘한 태도를 1시간 가량이나 보여주고는 헤어졌다.
이런 행동 이면에는 더 큰 이유들이 있었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아쉬웠던 일은 함께 마음을 모아야 할 큰일을 앞두고, 6월 11일 임원회의에서 협회 불신의 장본인으로 경기이사가 여러 번 지칭되었다.
신입환영 대회를 토요일 오전에 하겠다고 공지했다가 참가 인원수가 많음에 하는 수없이 오후 경기로 결정함에는 결코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초안 검토에서는 전체 이사회 토의를 거쳤고, 참가신청 선수가 많음에 대한 대책회의에서는 협회장, 전무이사, 기획이사 4인 모임 협의 결과였음에도 마치 경기이사 임의가 반영되어 협회장 승인도 받지 못한 대회요강을 전무이사가 협회 밴드에 발표하였다는 비난들이 있었다.
감당함에 버거웠든지 같이 의논해서 결정했던 협회장 본인조차도 오후 개최 검토 및 승인 사실을 부인하기에 이르게 되자 본인과 전무이사의 참담한 심정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그 결과는 궁리를 함께 하며 힘을 합해야 할 협회 임원(이사)마저도 비난 대열에 동참했다.
무소속 회원들을 보다 많이 가입, 대회에 참여시키고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들을 이해하려 들기보다는 경기이사가 너무 잘난체 해서 자신들이 무시당했다는 마음을 부추겼는가?
아니면 자신보다 앞서 가는 사람을 그냥 보지 못한다는 세간의 평판이 허언이 아닌가 보았다.
간신히 수모를 이겨내고 2시간에 가까운 긴급 이사 회의를 마치고는 집에 돌아와서 회의 결과를 대회요강에 신속히 반영,변경 공지했었고, 심의 안건들의 결론(임원회의 회의록)을 간략히 정리해서 보내드렸다.
기대와 달리 녹음된 2시간 회의 내용을 모두 정리해달라는 당부가 있었다.
녹음 내용을 들어보았더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서 도저히 작성할 수 없었다.
6월 12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무거운 마음으로 천리 길을 달려 13~14일 화천 전국 부부대회 결선경기에 임했다.
경기 결과는 예선 성적과 정반대였다.(총 4회 중 3회 차 예선경기였던 6월 4일 예선 150 부부경기에서 53타로 1위, 이름하여 데일리 베스트 플레이 부부로 선정, 화천군체육회홈페이지 게시글 확인 입증, 많은 분들 축하와 기대를 받고 출전함)
불현 듯 숙제가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세월의 노래들을 기록하며 사는 자유 영혼의 수필가로 조용히 살고 싶다.
경기이사 직책을 수행하면서 마저 해보고 싶은 것들이 남아있기는 했다.
너무 자신들의 클럽에만 연연해 하는 현상을 극복하고 싶어서 몇 개 클럽을 묶어서 그룹 대항 토너먼트 경기와 경주시파크골프협회 주관 최초의 '부부대회' 였다.
그리고, 신입회원 환영대회에 대응해서 75세 이상의 원로 회원님들만의 대회를 격년제로 가지면 모양새가 좋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오는 8월에 경주시 대표선수 3차 선발전에는 보다 진일보한 교학상장 방식의 예선대회를 치루는 것이었다.
희망하는 회원 누구든지 참가 신청받아서 공인 기록 순으로 W자 원리 적용 조편성 공지해주면 조별 리그전을 자율적으로 1차전처럼 갖되, 그 때는 4명 조원 모두가 동시에 경기를 해야하는 규정에 서로 경기시간 조율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리그 순서에 따른 당사자 두 명만의 27홀 홀 매치 승부를 편한 시간에 갖는 방법이다.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 한 달간 넉넉히 주어서 조 1,2위선수가 결정되면 8월 말에 결선경기를 갖는 방식을 적용해보고 싶었다. 두 사람 간의 승패가 동률일 경우에는 연장자 우승을 적용하는 미풍의 로컬 룰로 ....
그렇게 하기 싫다는 회원들이 분명 있을텐데 그것 또한 감내하기가 두렵다.
먼 훗날 회원 수준이 지금보다 많이 향상되면 그 어느 경기이사가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문득 '바람은 알고 있다'는 노랫가사가 생각나면서 내 마음을 위로해준다.
스프레드시트 앱을 널리 이용햔 줄 알도록 노력했기에 새로운 세상 있음을 눈 뜨게한 잊지 못할 사람으로 기억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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