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부인 제 2 회
공이 서둘러 작별한 후에 며느리를 데리고 그 산 입구에 내려오니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져 주점을 찾아 쉴 즈음 그대서야 신부의 용모를 본즉, 얽은 얼굴에 거칠고 더러운 때가 줄줄이 맺혀 얽은 구멍에 가득하며, 눈은 달팽이 구멍처럼 휑하였고, 코는 심산유곡(深山幽谷)의 험악한 바위와 같고, 이마는 너무 벗겨져 마치 태상노군(太上老君)의 이마와 같고, 키는 너무 커서 팔척장신(八尺長身)이요, 팔은 저절로 늘어진 듯하고, 한 쪽 다리는 저는 것 같으니 그 용모는 차마 눈뜨고 못 볼 것이었다.
공과 시백이 한 번 보고 정신이 아찔하여 다시는 쳐다볼 마음이 없어 부자(父子)가 서로 입을 다물었으나 할 일없이 그럭저럭 날이 밝으니 길을 서둘러 수일만에 서울에 다다랐다. 집에 들어가니 일가친척이 신부를 구경하려고 모두 모였는데 신부가 가마에서 내려 곁방으로 들어가 얼굴을 가리웠던 나삼을 벗어 놓으니 그 몰골은 가히 일대가관지물(一大可觀之物)이었다.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다 보고 ‘이런 구경은 정말 처음하는 구경이다’하며 서로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그날부터 빈정거림이 날개 돋친 듯하였다.
비록 경사(慶事)이지만 그 상황은 오히려 걱정이 쌓인 집 같았다.
상하노소(上下老小)가 다 경황이 없어 하는 가운데 부인은 공을 원망하며 말하였다.
“서울에는 아리따운 숙녀도 많거늘 하필이면 산 속에 들어가 남의 웃음거리를 사시나이까?”
공이 이를 꾸짖어 말하기를,
“제아무리 절세가인을 구하여 며느리를 삼는다 해도 여자로서의 행실이 바르지 않으면 인륜(人倫)이 패망하여 짐안을 보전치 못할 것이요, 이 비록 추한 모습이라도 덕행이 잇으면 한 집안이 다행이며 복록을 누리거늘 무슨 말씀을 그와 같이 하시오 지금 며느리 얼굴은 비록 추하나 태임태사(太任太姒)의 덕행이 있으니 하늘이 도와 저와 같은 현부를 얻어 왔거늘 어찌 부인은 식견 없는 말을 하시오?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이에 부인이 대답하되,
“대감의 말씀이 지당하오나 자식에게 부부사이의 화락(和樂)이 없을가 걱정 되나이다.”
공이 대답하되
“자식의 화락 여부는 우리 집안의 가문(家門) 흥망이 있거늘 무엇을 그리 근심하시오? 하지만 부인도 항상 조심하여 구박하지 마시오, 부모가 사랑하는데 자식이 어찌 사랑하지 않으리오.”
하며 경계하여 마지 않았다.
이때 시백이 박씨(朴氏)의 추한 모습을 보고 한 편으로는 미워도 하며 쳐다보지 아니하니 종들도 또한 같이 미워하며 밤낮으로 규방에만 홀로 있어 잠자기만 일삼고 있었다. 이를 보고 시백이 더욱 마음이 놓이지 않아 쫒아 내보내고자 하였지만 부친이 두려워 감히 뜻대로 못하는지라 고이 그 눈치를 채고 새백을 불러 크게 꾸짖어 말하였다.
“사람의 덕행을 모른 채 아름다운 용모에만 신경을 쓰면 모든 일이 집안을 망하게 하는 근원이 되느니라. 내가 듣자하니 너의 부부 사이에 화락함이 없다는데 그리하여 어찌수신제가(修身齊家)를 하겠다는 말이냐?”하고
“옛날 제갈공명의 아내 황(黃) 발 부인은 인물은 추하였으나 재덕이 있었기로 공명(孔明)의 도덕이 삼국(三國)에 제일이요,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는데, 그것이 다 부인의 교훈이라 만액 경망하게 버렸던들 바람과 구름을 일으키고 변화시키는 재주를 누구에게 배워 영웅호걸이 되었으랴? 너의 아내도 비;록 용모는 없으나 월출한 졸행(節行)과 법상치 아니한 재질이 있을 터인즉 부디 가볍게 알지 말라.”하고,
“부모가 개와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사랑하면 자식이 또한 그것을 따라 사랑하는 것이 그 부모에게 효도함이라.” 하고,
“하물며 내가 총애하는 사람을 구박하면 이는 불효니 어찌 부모를 섬기는 도리리요? 그러므로 인륜이 패망하는 것이니 부디 마음을 새겨 조심하여 옛 법도를 어기지 말라.” 하시므로, 시백이 듣기를 마친 후 머리를 땅에 닿도록 엎드려 용서를 빌며 말하였다.
“사람을 모르고 인륜을 어겼으니 만 번 죽어 마땅하나이다. 이후로 어찌 아버님의 교훈을 버리오리까?”
그러자 공이 이르되,
“네가 그렇게 안다면 오늘부터 부부간에 호락함이 있을 것이냐?”하므로
시백이 명을 받아들여 부명(父命)을 거역치 못하고 멊는 정을 이쓴 체하고 마음을 귿게 먹고 내당에 들어가 본즉 부친의 훈계는 아랑곳없이 박씨가 미워지는 마음이 전보다 더하였다. 등잔 뒤에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밤을 지새다가 이윽고 닭울음 소리가 나자 곧장 나와 부모께 인사를 올리니 상공이야 어찌 이런 줄을 알 것인가? 상공이 도 하루는 노복 등을 불러놓고 꾸짖어 말하기를,
“내가 듣자하니 너희들이 어진 상전을 몰라보고 무례를 범한다 하니 차후에 만일 다시 그런 일이 있다면 너희들은 엄히 다스리리라.” 하시니 노복등이 황공사죄(惶恐謝罪)하였다.
첫댓글 어진 부친이군요
사람의 용모를 가지고 인품을
평하는것은 좋은것이 아니지요
내 자식이 못생기고 추하게
생겼다고 생각해볼진대
어떤 마음이 들런지?
그리고 못생긴것이 어찌 본인
탓이겠어요?
예나 지금이나 미모를 찾는 것은 어쩔수 없나 봅니다.
이 이야기는 조선 인조때
흘러나온 얘기로 방송도 했었지요. 김세윤 홍세미 주연의 별당아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