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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주님만 따라가리
33: 12-16
12.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15.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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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돈이나 지식이나 경험, 배경을 더 의지하는 사람은 참 신앙인이 아닙니다. 성도는 언제 어디에서든지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이 능력이 되고 기쁨이 되고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고, 직분이 있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을 논 해선 안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특히 성도는 어려운 문제가 생길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와 접목시키기 때문에 사도 바울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 때문에 삽니까? 주님 때문입니다. 어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주님이 위로해 주시고 도와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이 모든 문제를 해결에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요새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 당하는 고난을 잘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신앙적으로 나약해 져서 교회를 등지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이 있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도는 근본적으로 이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힘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세에 믿음을 보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독교의 생명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좁을 길을 가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자기를 죽이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왜 기도합니까? 나는 죽고 하나님께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왜 참습니까? 나는 죽고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이유도, 찬송하는 이유도, 참는 이유도 다 하나님께 맡기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까? 자손들이 다 보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해결하시나?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해결하시나?' 말입니다. 보면서 그가 신앙이 있다, 없다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이웃들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믿는 사람인데 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고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고 있습니다. '배경으로 해결하려는가? 돈으로 해결하려는가? 내게 와서 해결하려는가?'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늘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삼손은 얼마나 하나님앞에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까? 그는 힘이 너무나 세서 많은 군대가 그를 당할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유혹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꾀임에 빠져 결국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나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주님만이 나를 지켜주시고 주님만이 내게 은혜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삼손의 어리석음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베소 교회를 보십시오. 주님께서 "내가 네 행위와 수고를 아노라 그러나 너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 그래서 네게 있는 촛대를 옮긴다"고 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앞에 많은 수고와 헌신과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에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일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일부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것은 처음사랑 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그것을 보십니다.
미국에 '챨리 보스웰' 은 눈이 멀었지만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골프 잘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박세리, 김미현이 유명세를 타더니 우리 대통령도 골프가 "대중"스포츠라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얘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맹인이었지만 골프를 잘 치는 챨리 보스웰이란 사람은 시각장애인 골프대회에서 13승이나 거두는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그 당시 골프를 제일 잘 치는 사람은 '벤 호간' 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얼마나 골프스타였는지 그의 이름을 딴 대회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벤호간 골프대회에서 보스웰이 우승하게 되어 벤호간은 보스웰에게 트로피를 선사하는데 보스웰이 얘기했습니다.
"벤 호간씨, 제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은 바로 당신과 골프를 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벤 호간은 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보스웰이 말했습니다.
" 고맙습니다. 그러면 한 홀당 1000달러 내기 골프를 하십시다"
벤 호간은 웃으면서 "내가 당신과 내기 시합을 한다면 사람들이 저를 뭐라고 하겠습니까?" 라고 대답했더니 보스웰이 정색을 하면서 내기시합을 하자고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벤 호간은 얘기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고집하니 내가 시합을 하겠소. 그러니 당신이 시간과 장소 모두 정하시오"
이에 보스웰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내가 우승한 이 곳에서 시합을 하고 시간은 오늘 밤 12시가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누가 이겼겠습니까? 우리 신앙인을 이런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것을 능력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자기의 힘으로 자기 마음대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재산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에도 있지 않습니까?
"내 힘만 의지 할때는 패할 수 밖에 없으나,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 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자 없으니, 반드시 이기리로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내 힘으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이 내 대신 싸워 주실 때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사막길을 걸어 시내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에 올라오라 하시고 하나님의 계명을 주시는데 40일이 걸렸습니다. 길다고 생각하면 길고 짧다고 생각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모세만을 바라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로는 그 40일이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내려 오지 않으니 혹시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자신들을 인도할 인도자가 없어졌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지켜주고 인도해 줄 신을 만들자고 합니다. 그런 뜻에서 사람들은 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금팔찌, 금반지, 금목걸이, 금귀걸이등 이것들을 녹여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금송아지를 보면서 아론이 외쳤습니다.
"이 금송아지가 너희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다"
그러자 백성들이 환호하면서 춤을 추고 먹고 마시는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때 산 위에서 그 모습을 본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모세야! 애굽에서 인도해 낸 백성에게로 돌아가라. 저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니 내가 저들은 진멸하겠다"
하나님께서 백성을 진멸하겠다고 하니 모세는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산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와 보니 설마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도 자신 대신 지도를 맡겼던 아론으로부터 발단이 되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이 좋다고 춤추는 모습을 본 모세는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을 시켜 그 가운데 3000명을 죽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금 송아지를 만든 이들을 보고 진노하시고 진멸하시겠다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잔인하신 분이십니까? 왜 그렇게 화가 나셨을까요? 모세의 말대로 그렇게 죽이신다면 왜 출애굽 시키셨을까요? 누군가 보고는 "꼴 좋다! 그렇게 죽으려고 애굽에서 나왔구나"라고 조롱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고 화를 내리지 않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 본문 33장에 보면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같이 가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사자를 인도자로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자가 천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사자는 안 된다고 합니다. 끝까지 하나님만 같이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같이 가지 않으신다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이 곧은 백성" 이므로 중도에 하나님이 진멸하실까 해서 였습니다. 목이 곧다는 말은 순종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불순종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신앙이 좋다는 것은 무엇으로 얘기합니까? 성경 많이 읽고, 교회오래 다니고, 직분 받는 것은 어느 정도는 맞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사랑하면 순종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순종할줄 아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들든지 안 들든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은 어떤 것입니까?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우상의 주인은 바로 자신입니다. 우상은 내 소원만 들어줄 뿐입니다. 그래서 엡6장에 보면 탐심은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무엇으로 어떤 모양을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 아래 있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상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알라딘의 마술램프와도 같습니다. 알라딘이 램프를 문지르니 큰 마왕이 나타나서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라고 하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그 마왕이 아무리 힘이 세도 알라딘이 말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우상과도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자세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땅에서 열 가지 재앙을 주고 이들을 구원해 내시고 홍해를 건넌후 광야생활을 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24장에 이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니 하나님께서는 25장부터 31장가지 각종 제사 규례를 말씀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금 송아지를 만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약속을 해 놓고 그 명령대로 살기는 싫다라는 것입니다. 누구의 명령대로 살기 싫고 내 마음대로 살겠다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겠다" 고 약속하신 후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아브라함만 아니라 온 집안 식구들을 포함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지만 할례라는 것은 남자의 생식기 끝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 상징적인 의미는 나는 생식기가 없으니 그것은 바랄수 없는 중에 바란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 백세가 되어 자식을 낳았습니다.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낳았습니다. 할례하고 하는 의미, 세례하고 하는 의미는 "나는 죽고 하나님의 힘으로 살겠습니다"라는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문제는 구원을 어떻게 받았느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힘으로 살것인가, 아니면 내 힘으로 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겠는가, 아니면 내 뜻으로, 내 힘으로 살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신앙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충만하기 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되는 것도 내 힘으로,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외부로부터 오는 힘에 의지해서 하는 것입니다. 구세주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이고 그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목표는 하나님으로 거룩해 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세가 끈질기게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꼭 하나님께서 함께 해 달라는 것으로 말입니다. 주의 사자는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은 어느 것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모세의 간구입니다.
1.모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모세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된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진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자유함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창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지 않습니까? 그리고 가나안 땅에 왔습니다. 그러나 가뭄이 드니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인 팔아먹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마음 편히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이 누구에게 나타나 누구를 혼내주었습니까? 아브라함입니까? 애굽의 바로입니까? 바로였습니다.
책망 들어야 할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로를 혼내셨습니다. 그리고는 바로에게 명령하여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는데 그냥 빈손이 아니라 은금과 육축이 풍성하게 해서 가도록 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깨닫는 것입니다. '야 하나님은 이렇게 좋은 분이시구나, 내가 잘 못했는데도 나를 혼내지 않고 축복해 주시는 구나'
여러분, 여러분이 잘나서 하나님이 은혜주신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수고한 것이 없는데, 내가 잘 난것이 없는데 이렇게 만들어 주신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 용감해 지고 자유해지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창13장에 보니 자신의 조카와 자신의 종들끼리 다툼이 생겼습니다.
이유는 어느 땅이 더 좋으냐 하는 풀과 물 때문에 다툼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감히 삼촌의 것을 건드리나 싶어 야단을 칠 수 있겠습니다만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데려다가 얘기합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조카가 좋은 땅을 차지해도 하나도 원망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내게 주어진 것이 이렇게 거친 산인데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애굽땅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승리할 줄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에 그러한 것이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자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조카가 소돔과 고모라성에 사는데 북방에 사는 다손 왕이 와서 재산을 뺏고 조카를 포로 잡아 갑니다. 아브라함에 마음속에 '그래 네가 나를 버리고 가더니 꼴 좋다' 라고 하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일군들 318명을 데리고 가서 싸웁니다. 그쪽은 전쟁을 위해 훈련받은 군사로서 전쟁에 있어서는 프로입니다. 훈련받은 병사들과 대항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그 318명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도 함께 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전쟁에 승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자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 자유함이 없으면 돈 문제 때문에 속상해 합니다. 권력 때문에 속상해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무엇을 버려야 하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줄 아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바로 그런 입장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것,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유함이 있습니다.
민12장에 보면 모세의 형 아론과 누나 미리암이 모세를 비난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왜냐하면 동생 모세가 결혼을 잘 못했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스 여인은 얼굴이 까맣습니다. 그런데 애굽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들을 천시 여겼기에 그런 부인을 얻은 모세를 비난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미리암에게 문둥병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주의 종을 비난해서 문둥병에 걸렸습니까? 그렇게도 해석할 수는 있습니다만 다른 면으로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쓰실 때 어떤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셨습니까?
자기 능력이 있다고 할때, 자신의 동족들을 위해 솔선하며 나섰을때 그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이 80세가 되어 아무것도 아니었을때,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로 가며 이스라엘 에게로 가리이까 라고 하나님께 되물었을때 하나님을 모세를 쓰셨습니다. 그러므로 미리암이 모세를 비난하는 것은 모세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저런 사람을 데려다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약한자를 들어서 강하게 하시고 어리석은 자를 들어 지식있는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신앙인들은 지도자를 비난합니다. 물론 맞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실때 그 사람은 진정한 지도자가 되고 하나님이 역사하실때 그 사람을 하나님이 귀하게 쓰실줄로 믿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모세는 하나님께 함께 하시를 원한 것입니다.
2.모세는 무엇이 복인지 알았습니다.
시편1편에 복있는 사람을 돈 많은 사람이고 출세한 사람이고 대통령된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복있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입니다. 죄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죄라고 하면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거룩해야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수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내가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능력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꿈을 꿨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싶어서 꿨습니까? 저 같은 경우는 정말 꿈을 꾸지 못하는 타입입니다. 여러분은 꿈을 꾸고자 하면 꿈이 꿔지십니까? 꿈도 하나님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실 줄로 믿는 믿음으로 가지고 있으니 노예로 팔려가도, 가옥에 갇혀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써 주신다는 그 믿음으로 기다린 것이 복이었습니다. 내가 거룩한 백성이 되고 하나님과 함께 할때 이것이 승리이고 복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주님과 함께 하겠다는 이 곳, 이곳이 오늘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고 우리로 참된 기쁨을 갖게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찬송을 부르면서 오늘 설교를 맺겠습니다. 찬송가 455장입니다.
1.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2.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3.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4.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 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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