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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부터 영혼까지
시 121: 1~8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편 121:1-8)
시편 121편은 작자 미상의 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에 예배하러 올라 갈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르며 올라갔습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800미터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정치, 문화, 종교 중심지였습니다. 그 당시 성전의 위치는 예루살렘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성전으로 가려면 계속 올라가야 했습니다.
올라가는 사람들 눈에는 언덕이 보이고, 산이 보이고, 건물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산이나 언덕이나 건물이 자신들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이 시편 121편의 서두인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사회학자들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 뜻은 사회생활, 사회관습, 사회적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처음엔 아담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여기신 하나님께서 배필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하와를 만드신 방법을 주목해야 합니다. 아담을 만드실 때처럼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다 생기를 불어넣어 여자가 되게 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을 잠들게 하신 후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셨습니다(2:24). 아담은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하와를 가리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칭하리라”고 했습니다. 한 몸을 이루라,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한 몸이기 때문에 함께 살아야 합니다.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기 때문에 헤어지면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함께 사는 사회적 존재, 관계적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마이클 거리언이 쓴 글에 의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그들의 뇌는 차츰 사랑에 빠져들도록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고 체취를 맡게되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강하게 분비되어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년쯤 지나면 호르몬과 뇌의 화학작용이 변하기 시작하여 상대방의 결점을 알아내고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스러워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혼해 애 낳고, 나이 들고, 웃고, 울고, 다투고, 헤어지고, 히히덕 거리고, 소리지르며 살아가는 것이 부부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싫고 아내가 싫어 헤어졌다하더라도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싫고 사람이 싫어 수녀가 된 여인이 있었습니다. 수녀원에 들어가면 사람 만나지 않고 고요한 묵상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들어갔습니다만 그러나 거기도 사람이 있었고 문제가 있었습니다. 절에 가도, 수녀원에 가도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존재입니다.
어떤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병으로 교포여자와 결혼해 뉴욕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딸은 결혼 후 남편따라 지방도시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50세 후반을 넘어서자 외롭고 쓸쓸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재혼할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개를 한 마리 키워보라고 권유해 개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약간 귀찮은 점은 있었지만 키우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놀아주고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뛰어오르며 반겨주고. 어느날 저녁 식사 후 9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곁에 앉아있던 개가 눈을 감고 졸고 있었습니다. 순간 문득 “내가 개 바라보고 개한테 위로를 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그렇다면 나는 개친구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자기 모습이 처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뒤 3년쯤 키우다가 병으로 개가 주인곁을 떠났습니다. 얼마나 섭섭하고 불쌍하고 아쉬운지 엉엉 울었습니다. 100만원 드려 오동나무 관을 사고 전문업체에 맡겨 장례식을 치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죽은 개가 불쌍하기도 하고 밉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개가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사람을 의지하고 살아야지 말도 못하는 개를 의지하고 살았구나라는 반성과 함께 생활태도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열심히 교회나오고, 여전도회 참석하고, 교회봉사하고, 고아원 찾아가고, 교도소 찾아가고, 장애자시설 찾아가고. 그러면서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사람하고 놀고, 이야기하고, 친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과 주고 받는 우정, 교제, 사랑은 허실하고, 허약합니다. 쉽게 금가고, 쉽게 깨집니다. 그래서 시편 121편의 시인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도움을 청하고 교제하겠노라”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 지으신 여호와 나의 하나님 영원 무궁히 지키시리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 지으신 여호와 나의 왕이여 영원 무궁히 지키시리로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도움을 청하고 교제를 구해야 하는 지 본문 속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겠습니다.
1.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지키신다는 것은 우리를 해하고 넘어뜨리려는 원수와 위험과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인도, 태국을 휩쓴 지진과 해일참사는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뉴스를 보던 사람이 혀를 차며 “거긴 예보도 없었나요.”라고 했습니다. 예보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연구소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국방부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땅이 갈라지고 바닷물이 밀려오는데 누가 그것을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본문 3∼8절 사이에 “지키신다”는 단어가 여섯 번이나 반복됩니다. “너를 지키시는 자”가 “너를 지켜주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지키시느냐입니다.
1) 3절을 보면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실족이란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실패나 실수를 일부러 즐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실패가 있고 돌이키기 힘든 실수도 있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31∼32절을 보면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고 하셨습니다. 마귀가 베드로를 뒤흔들어 넘어뜨리고 실족하게 하려하지만 주님께서 친히 기도하시고 붙들어 주심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심으면 주변에 버팀목을 세워 나무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줍니다. 그래야 나무가 제대로 부리를 박고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버팀목입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내 인생의 뿌리가 흔들려 뽑히지 않도록 붙들어주십니다.
2) 졸지 않고 지키십니다
3절을 보면 “졸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했고 4절에서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졸고 자는 것은 생리현상입니다. 피곤하면 졸고 때가 되면 잠이 오는 것입니다. 물론 습관적으로 조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는 졸립니다.
여기는 교회다 고로 나는 졸립니다. “설교는 졸립다. 지금은 설교시간이다. 고로 나는 졸고 있다.”라는 자기 암시에 걸린 사람들은 그 시간만 되면 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졸 때와 깰 때 잠잘 때와 일할 때를 구별짓지 못하는 사람은 성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파수꾼이 졸면 전선이 무너집니다. 골키퍼가 졸면 그 팀이 패합니다. 기도의 불침번을 서야 할 사람들이 졸면 사단의 군대가 쳐들어옵니다.
마태복음 13:24이하를 보면 일꾼들이 어느 날 밭에 나가 씨를 뿌렸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나가 보았더니 곡식과 함께 가라지(잡초)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원수가 와서 사람들이 잠자는 틈을 타 가라지 씨를 덧뿌리고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조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성경 멀리 하는 것, 기도 멀리 하는 것, 교회 봉사 멀리 하는 것 모두 다 영적으로 잠자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피곤에 지치면 쉬어야 하고 졸리면 주무셔야 하는 나약한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시편 46:1에서 시인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힘, 큰 도움이라”고 했고 91:2에서는 “나의 피난처, 요새”라고 했습니다.
1970년대 미국 하버드 대학 의학박사였던 알렉산더 리프(Alexander Leaf)는 건강장수의 비결을 찾기 위해 러시아 남부, 파키스탄 북수, 에콰도르의 안데스 산맥 등을 찾아다녔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 90세 이상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리프박사가 발견한 것은 그들이 젊게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훈련하고 나이를 먹는 다는 사실을 부정적으로 받아드리지 않는 생활 태도가 그들에게 건강장수의 원인이 됐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하나님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나를 지키신다는 신앙이 있습니다. 그 신앙만 있다면 넘지 못할 산이 있겠으며 건너지 못할 강이 있겠으며 오르지 못할 언덕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신뢰합시다. 모든 것을 맡깁시다.
2.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얼마동안은 사람도 나를 지켜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는 못합니다. 그런데 7절을 보면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라고 했고 8절을 보면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내 육체도, 소유도, 건강도 생명도 영혼도 모든 것을 다 지키십니다. 언제까지 지키십니까?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십니다. 어떻게 지켜주십니까?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켜주십니다. 낮의 뜨거운 해도 밤의 추운 달도 해하지 못하도록 자연재해까지 지켜주십니다.
여행 안내자를 가이드라고 하고 경호원을 보디가드 세큐리티가드라고 합니다. 대통령 경호실이 하는 일은 철통같이 대통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2∼3주전부터 일정과 장소를 점검하고 지키는 것이 경호팀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허점이 있습니다. 영원히 지킬 수는 없습니다. 천재지변 인재도 다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경호자이십니다. 내 영혼도 지키시고, 내 소유도 지키시고 내 생명도, 가정도, 자녀도, 내 꿈도 가는 길도 지켜주십니다.
낮에도 밤에도, 동에서도 서에서도,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집에서도 집밖에서도, 등성이에서도 골짜기에서도 지키십니다.
지금부터 영원히 영원히. 아멘.
출처: 여호와닛시 글쓴이: 주님의숲
(2) 내 인생의 불침번
(시 121: 1~8)
여러분, 불침번을 아십니까? 아마 군대 갔다 오신 남자 분들은 다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외부의 공격이나 위험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히 잘 수 있도록 잠을 안 자고 지켜주는 사람(Watchman)을 가리킵니다. 대개 취침 시간부터 1시간씩 교대로 불침번을 섭니다. 그래서 제일 편한 경우는 첫번이나 말번으로 불침번을 서는 것입니다. 첫번은 취침시간보다 1시간만 늦게 자면 됩니다. 그리고 말번은 기상 시간보다 1시간만 먼저 일어나면 됩니다. 중간에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으니까 아주 좋죠. 한참 잠을 자다가 도중에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가서 보초를 서려고 하면 정말 귀찮습니다. 특히 한 겨울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안전과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이게 바로 불침번입니다.
그런데 군대에서만 불침번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도 불침번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불침번이 꼭 필요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불침번이 되어 주심을 증거합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부디 내 인생의 불침번이신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호 속에 늘 평안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 인생의 실상 : 각종 위험이 있는 광야 인생
우리 인생은 마치 광야를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흔히 우리 인생을 가리켜 ‘광야 인생’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광야는 위험한 곳입니다. 기후의 위험, 강도의 위험, 맹수의 위험 등 여러 가지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마치 지뢰밭과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불허입니다.
오늘 현대인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이 많이 좋아졌지만 온갖 위험이 우리를 공격하려고 웅크리고 있습니다. 사건과 사고, 질병, 그리고 온갖 문제 거리들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람들은 늘 불안과 긴장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2] 광야 인생의 필수 요소 : 의지할 보호자
이런 광야 인생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 온갖 위험으로부터 인생을 보호해 줄 존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를 보호하고 지켜줄 존재를 찾기 마련입니다. 대개 다음의 것들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면 그것이 자기를 보호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① 소유 :
재물이나 권력 등을 소유하면 그런 것들이 자기를 안전하게 지켜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일시적이고 단편적으로 우리를 보호해 줄지 모르지만, 완전한 보호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어느 해외교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15년 전에 이민을 가서 크게 성공한 분입니다. 부러울 게 없습니다. 돈이 많으니까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호언장담했습니다. 황우석 박사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장기를 갈아 끼우면 그 까짓것 150세까지 거뜬히 살 수 있을 거라고 장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한 지 3일 만에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여러분, 그분이 소형차를 탔겠습니까? 보나 마나 크고 튼튼한 차를 탔겠죠. 하지만 그 모든 소유가 그분을 지켜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소유가 그 인생을 절대 책임져 주지 못합니다.
② 사람 :
광야 인생을 살면서 함께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됩니다. 부모, 형제, 친구 등 ... 그런데 인간은 다 약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굴뚝같지만 도움이 되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어떤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중년이 지나면서 부인이 갑자기 발병을 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큰 수술을 받는데, 병원 당국에 서약서를 제출하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수술 받다가 어떤 일이 있어도 감수한다는 서약서입니다. 남편은 보호자란에 서명날인을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렇게 뇌까렸습니다. “아내가 병드는 것도 몰랐고, 병든 지금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내가 무슨 놈의 보호자는 보호자냐 ... ?”
그렇습니다. 인간은 아무래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넘쳐도 완전한 보호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도 스스로 지킬 수 없고, 서로 서로 지켜주지도 못합니다.
③ 미신, 우상종교 :
소유도 사람도 진정한 보호자가 되지 못함을 깨달으면 사람들이 다른 것을 찾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미신이나 우상종교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 많이 가진 사람들도 별 수 없습니다. 인생이 불안하니까 엉뚱한 데 의지합니다.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 있던 일이라고 합니다. 아주 지성적으로 생긴 한 백인 여성이 중국인이 경영하는 상점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여기 혹시 부적 안 팝니까? 있으면 제일 비싼 것으로 사고 싶습니다.” 중국인 상점이니까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찾아온 겁니다. 주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니까 그 여자는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실은 제 아들이 멀리 남태평양으로 떠나거든요. 걱정이 되서 그 아이를 지켜줄 부적 같은 게 있나 해서 ... ” 그러자 주인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정말 좋은 부적이 있기는 한데 ... 하지만 그것은 돈을 주고 살 수는 없거든요.” “그게 뭔데요 ... ? 그러면 어떻게 구할 수 있습니까?” “부인,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저도 자식이 세 명 있고 손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늘 염려되지요.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어주시고 지금까지 보호해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그러실 줄로 확신합니다. 부인도 하나님을 영접하고 그분께 아드님을 믿음으로 맡기시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어느 것도 인생의 완전한 보호자가 되지 못합니다.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완전한 보호자가 되십니다.
[3] 완전한 보호자 : 내 인생의 불침번이신 하나님
오늘 본문 시편 121편은 바로 하나님만이 유일하고 온전한 보호자가 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표제에 있는 것처럼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갈 때 부르던 노래입니다. 그들은 명절 때가 되면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그 순례 길은 쉽지 않습니다. 광야 길입니다. 아마 먼 길을 오다가 마지막 유대 광야를 통과하면서 멀리 예루살렘이 보이기 시작할 때 부르던 노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시편을 두 문단으로 나누면 1절~2절, 그리고 3절~8절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문단은 ‘나’ 1인칭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문단은 ‘너’ 2인칭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동행인들끼리 교창(交唱)하던 노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쪽에서 1절~2절을 부르면, 다른 한쪽에서 3절~8절을 부르면서 순례 길을 걸어갔을 겁니다.
* 1절~2절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기자는 자문자답해 봅니다.
여기서 ‘산’은 아마도 성전이 있는 시온산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산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광야 길에 도움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 3절~8절 : 화답하면서 구체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떻게 우리 인생을 도우시는지 노래합니다. 여기 보면 6개절에 지킨다는 단어가 몇 번 나옵니까? 6번 나옵니다. 그리고 의인적인 표현법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처럼 육체가 있는 게 아닌데 어떻게 주무시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과 비교하기 위해 인간에 빗대서 표현한 겁니다. 이런 표현법을 가리켜 신인동형동성론(神人同形同性論)이라 부릅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까? 내 인생의 불침번!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내 인생을 지켜주시는 불침번, 즉 완전한 보호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① 항상 지켜주시는 하나님 :
4절 보면, 하나님은 밤에도 낮에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8절을 보면,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주십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러실 겁니다. 1년 365일, 윤년일 때에는 366일, 하루 24시간 분초마다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아차 하는 순간에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고가 많이 일어납니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를 지켜주셔서 실족하지 않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켜주시되 ‘죽을 때까지’ 지켜주십니다. 시48:14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죽을 때에도’ 지켜주십니다. 잠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죽은 후에도’ 지켜주십니다. 계21:4 보면 우리가 죽은 후 천국에서 영원히 보살펴 주신다고 했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② 어떤 상황에서나 지켜주시는 하나님 :
5절 보면, ‘네 우편’에 ‘그늘’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우편’은 공간적 방향을 가리키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합니다. ‘그늘’은 ‘하나님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권능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6절 보면,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 않도록 켜주신다고 했습니다. 광야 사막에는 여러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낮에는 열사의 햇볕이 괴롭히고, 밤에는 차가운 달빛이 힘들게 합니다. 또 사막은 개활지이므로 달빛이 밝으면 강도와 맹수의 위험에 노출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늘이 되어서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7절(상) 말씀대로 ‘모든 환란’에서 지켜주십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발생할 수 있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③ 육체와 영혼까지 지켜주시는 하나님 :
7절(하)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육체가 안전해도 마음이 불안하고 흔들리면, 잘못된 사상이나 욕망에 사로잡히면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마음과 영혼조차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영혼의 병, 마음의 병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중에 ‘은둔형 외톨이’가 많다는 겁니다. 그들은 불안해하며 사람들과 접촉하기도 싫어하고, 밖에 나가지 않고 방에만 콕 박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방콕족’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10대~30대에 걸쳐 20~30만명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물질문명이 발달되고 풍요로워지면서 오히려 영혼이 빈약해 지는 겁니다. 우리보다 물질문명이 앞선 일본은 1970년대부터 그런 현상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히키코모리’(방안에 틀어박힘)라고 부르는데, 1억 2천 인구 중에 무려 1%에 해당하는 12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마음의 병이 들은 겁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이들이 어떻게 하면 치유될 수 있을까요? 병원에 입원하면 될까요? 약물을 쓰면 될까요? 별 효과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혹자는 애완동물과 놀거나 영화 연극 감상, 음악 감상을 권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얼마나 효험이 있겠습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의 영혼을 만드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분과 동행할 때 비로소 그 영혼이 치유되고 평안을 얻게 됩니다. 시73: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어떤 상황 속에서도, 육체와 영혼까지 지켜주시는 좋은 분입니다. 그분이 나를 그렇게 온전히 도와주신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세상에서 인간 중에 가장 보호를 철저히 받는 사람이 있다면 대통령일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 된 우리를 대통령보다 더 귀히 여기시고 더 철저히 보호해 주십니다. 대통령이 어디를 행차하면 몇주 전부터 난리죠. 답사를 하고, 맨홀 뚜껑까지 열어보면서 철저히 검색을 합니다. 그리고 수십 명이 에워싸고, 일단 유사시에는 경호원들이 몸을 던져 총탄을 대신 맞으면서까지 경호합니다. 그런데도 전 세계적으로 보면 국가 원수들이 암살되거나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완전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가지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물론 험한 세상 살다보면 우리 성도들도 별의 별 일이 다 겪습니다.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니까, 그리고 에덴동산도 아니니까 ...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죄인들입니다. 천국 백성이 됐지만 아직 천국에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살 동안에는 어려운 일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결국은 천국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시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4]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방법 : 믿음, 말씀, 기도
성도 여러분! 이런 사실을 확신하시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항상 의지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보호 속에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좀더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 위해 우리도 나름대로 힘써야 합니다.
무엇보다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차선과 같습니다. 차선을 지키지 않으면 좌충우돌하다 사고가 납니다. 그러면 견인차가 와서 끌어다가 공장에서 수리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도로로 꺼내 놓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고생이 많고 손해가 많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다 사고 치면 수습을 해주십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생 수업료를 지불합니까? 정말 아깝죠. 그러므로 말씀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보호를 더욱 효과적으로 받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적극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심으로 도와주십니다. 시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사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 ”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위험이 상존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내 인생의 불침번이 되어 주십니다. 아무쪼록 그 좋으신 하나님을 모시고 날마다 승리하시고, 세상에 참 보호자가 없어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보호자 하나님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두 하나님 때문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출처: 복있는 그리스도인 글쓴이: 하나님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