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훈화 : 개요(마24:1-25:46)
마태복음 24장에서 25장까지는 감람산 강화이다.
감람산 강화는 마가복음 13장과 누가복음 21장에서도 언급된다.
여기에서는 예루살렘 멸망과 세상 끝날에 인자의 오심과 징조를 말한다.
그리고 25장의 천국에 대한 세 비유는 마태복음에서만 언급한다.
천국의 세 비유에서는 제자들의 충성과 봉사를 가르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멸망과 종말의 징조와 심판을 함께 언급하심은
예루살렘이 여호와 옛 통치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각 공관복음서의 차이는 각 복음서 기자가 말하는 주제와 강조점의 차이이다.
본문에 대한 구조는 다음과 같다.
* 주제문 : 제자들의 질문(마24:1-3)
a.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24:4-14)
b. 예루살렘 멸망의 징조들(마24:15-27)
c. 종말에 인자가 오시는 징조들(마24:29-31)
b’ 인자가 문 앞에 이른 징조들(마24:32-35)
a’ 깨어 있으라는 권고(마24:36-51)
* 신랑을 맞도록 깨어 있으라(마25:1-13)
* 충성을 다하라(마25:14-30)
* 왕 앞에 서도록 형제를 돌아보라(마25:31-45)
종말의 훈화는 제자들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찬탄에서 시작된다.
마가복음은 예루살렘 성전의 장대함과 견고함과 예루살렘 성전의 철저한 파괴를 대조한다.
제자 중 하나가 예수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이 어떠합니까?”
라고 말하자(막13:1)
예수께서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게 되리라”
고 말씀하신다(막13:2).
그러나 누가복음은 옛 성전의 이름다움에 찬탄하는 사람들과
그것들이 철저하게 파괴당할 날이 이르게 됨을 대조한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리우리라”
고 말씀하신다(눅21:5-6).
예루살렘 성전은 구원역사의 중심지이며 하나님과 교제의 처소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크고 먼저 된 자들의 외식으로 인하여
여호와께서는 성전이 파괴되도록 하실 것이다.
성전 파괴의 허락은 옛 역사가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율법으로 경영되던 옛 언약시대가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유대 땅에 오심으로 옛 언약은 종결된다.
따라서 이전처럼 여호와께서는 더는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
이처럼 여호와께서 사람으로 유대 사회에 등장하셨는데,
예수께 나아와서 그를 믿고 따름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는 일인데
어찌 예루살렘 성전이 존속될 필요가 있겠는가?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심으로 자기 백성과의 교제를 완성하신다.
이처럼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짐은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이 언약을 범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옛 언약은 종결되고 새로운 언약에 체결된다.
옛 언약 아래에서 세워졌던 예루살렘 성전이 폐쇄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마태복음은 율법의 중심인 예루살렘 성전과 멸망을 받을 예루살렘의 죄를 대조한다.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고 기록한다(마24:1-2).
종말의 훈화가 이루어진 장소에 대해서 마가와 마태복음은 감람산이라고 말한다.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물어서 가로되”
라고 기록한다(막13:3).
이는 마가복음은 권세가 있는 하나님 아들의 전투 복음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루살렘과 성전은 진군하여 멸망시킬 적의 심장부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마주 대하고 종말의 훈화를 가르치실 때 네 제자가 함께하였다.
그들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부르심을 받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나선 갈릴리 출신들이다(마4:18-22).
그러나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갈릴리 산에 앉으셨을 때 제자들을 가르치셨다고 기록한다(마5:1).
이처럼 예수께서는 나아온 제자들과 무리에게 천국 율법을 가르치신다.
이를 통하여 천국 왕의 칙령이 시행되는 종말의 하나님 나라,
모세를 통하여 설립하신 율법 나라와는 다른 종말의 천국을 세우신다.
예수께서는 율법 아래에서 자신의 처소인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당국자들과 율법을 맡은 관헌들을 심판하신다.
성전에서 나오신 후에는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짐과 인자의 오심, 이스라엘의 심판을 선언하신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 아래의 관헌들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종말의 천국 서기관이다.
이처럼 마가와 마태복음은 종말의 훈화를 가르치신 장소가 감람산이라고 언급한다.
그런데 누가복음과 대조하면 종말의 훈화 장소에 대한 의미가 자세하게 드러난다.
누가복음은 종말의 훈화 장소를 성전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 되면 나가 감람원이라고 하는 산에서 쉬시니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라고 기록한다(눅21:37-38).
이처럼 누가복음에서
성전은 예수께서 백성들에게 천국 복음을 가르치는 장소이며
감람산은 예수께서 밤에 쉬는 장소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낮에는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산에서 쉬셨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서 성전과 예루살렘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광의 도성이다.
그러나 마가와 마태복음에서 성전과 예루살렘은 예수를 대적하는 적대자들의 근거지이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지도자들은 부하 관원들을 수시로 파견하여
예수의 동태를 감시하고 보고를 받는다.
제자들의 모습에 대해서도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정복자로 내보내시고
마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율법 선생들을 심판하시고 제자들을 천국의 서기관으로 가르치신다.
종말의 훈화 장소에 대해서도
마가와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멸망과 인자의 오심에 대하여 가르쳤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멸망의 구약 배경은 에스겔서 8장에서 11장이다.
여기에서 여호와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예루살렘 성전의 숨은 죄를 낱낱이 보여주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고하시며
예루살렘의 죄 때문에 탄식하는 자들의 이마에 인을 쳐서 보호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성전을 떠나 성전 동편 감람산에 머무셨다가
포로 중에 있는 남은 자들에게로 가신다.
따라서 마태복음에서도 예수께서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라고 반문하신다.
이는 자신을 거절하고 대적하는 예루살렘 당국자들과
율법을 맡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죄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마태복음에서만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정죄하는 내용을 성전 가르침의 마지막에 배열한다.
이는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인도한 관헌들의 죄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여호와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성전의 죄를 낱낱이 보여주신 것처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않았느냐?”
라고 반문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강조하시고 예루살렘 성전의 파멸을 선고하신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배도는 종말에 하나님 아들을 거절함에서 완성된다.
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죄는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를 거절한 일이다.
그러나 종말에 하나님 아들을 거절함은 조상들의 남은 죄를 채우고도 남는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거절함은 하나님을 거절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예가 포도원 소작인 비유이다(마21:33-40).
따라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대적함으로 조상들의 죄에 죄를 더하여 가득하게 하였다.
이에 여호와께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역할을 종결하신다.
이는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이 파기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온전히 버리시지 않고 그들의 회복을 약속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를 선포하시고 그들을 대치하는 제자들을 가르치신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게 되리라”
고 말씀하신다(마24:1-2).
이후에 감람산에 앉으셨을 때 제자들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으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마24:3).
제자들의 질문 내용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예루살렘 멸망은 언제 있을 것이며 주께서 임하시는 세상 끝에는 무슨 일들이 있겠냐는 것이다.
이처럼 제자들은 예루살렘 멸망과 주의 임하심을 같은 선상에 두고 질문한다.
이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마24:1-2).
이에 제자들은
“어느 때 이런 일이 있겠으며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마24:3).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 날’을 연계함은 구약배경 때문이다.
율법의 나라의 도읍지인 예루살렘과
율법 제사가 이루어지는 성전은 구약의 하나님 나라 심장부이다.
이는 옛 세상의 중심부이다.
이스라엘은 옛 인류 가운데서 택함을 받은 제사장 나라이며
여호와께서는 가나안을 자신의 영지로 구별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영지 중심부인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게 하셔서 동행하셨다.
이처럼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휘장으로 가리고 성전에 거하셨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지는 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교제하셨다.
이러한 여호와의 임재 방식과 예루살렘 성전은 모세율법의 핵심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내신 옛 뜻과 경륜의 핵심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아니하고 무너뜨리게 되리라고 말씀하신다(마24:2).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게 되는 것은
여호와의 임재 방식에 대전환이 있기 때문이다.
율법 아래에서 여호와께서는 휘장으로 가리고 성전에 계셨으나
공생애 당시에는 사람으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이후에는 부활의 영으로 교회 가운데 거하신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면 율법 제사가 종결된다.
율법 제사가 폐지되면 제사장 제도도 사라지게 된다.
제사장 제도가 없어지면 십일조 제도도 폐지된다.
이처럼 이스라엘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옛 세상에 대한 심판이다.
이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기도 하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율법통치가 종결되고 새로운 통치가 시작된다는 표식이다.
그것은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 파괴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도성이며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의 거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짐은 율법 시대의 종결을 의미한다.
이는 모세의 말이 종결되고 아들의 말이 시행되는 새 시대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신약시대는 모세가 아니라 예수의 말이 시행되는 시기이다.
이는 종말에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우리를 율법 아래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이다(갈4:4-5).
이는 제자들과 우리를 율법과 상관이 없는 자로 세우셨다는 말이다.
따라서 율법이 명한 짐승 제사와 제사장 제도, 십일조는 우리에게 가당치가 않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는 십일조를 주장하고 시행하는가?
십일조 시행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부인하는 일임을 알지 못하는가?
이는 믿는 자들을 율법과 상관이 없는 하나님 아들(자녀)로 구원하신
종말의 하나님 뜻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일임을 알지 못하는가?(갈4:4-5).
하늘에 속한 교회